노자 첫시간 후기 '무위와 무불위 사이 어딘가를 헤매다'

토용
2022-04-11 23:02
169

세미나 모집 글을 올리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신청자가 없어서 이번에는 진짜 여울아와 나 두 명이서 하겠구나 생각했다. 겨울에 노자 강좌까지 했는데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세미나들보다 좀 늦은 4월에 시작해서인지 갑자기 신청자들이 생겨서 무려 7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첫 시간에는 개인 사정으로 두 분이 빠지고 5명이 했다. 두 시간 반이 언제 지나갔나싶게 재밌었다. 세미나 구성원들의 조합이 신선해서 앞으로의 세미나가 아주 기대된다.

 

『도덕경』은 2016년에 이문서당에서 배운 적이 있다. 벌써 6년 전이라니.... 당시 첫 시간에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을 읽는 순간 ‘이건 또 뭥미?’ 딱 이런 기분이었다. 81장까지 다 읽는 내내 노자의 사상을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난 노자와 만나자마자 이별을 했고 아마 또 만나리라 기대도 안했던 것 같다.

올해 도가를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노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책에 애정이 간다. 노자를 잘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여전히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나중에 또 다시 보면 되니까 부담 없이 읽으려고 한다.

 

『도덕경』의 첫 문장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라 할 수 있는 도는 항상된 도가 아니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항상된 이름이 아니다)이다. ‘도는 무엇이다’라고 정의 내릴 수가 없다. 만약 정의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닌 것이 된다. 그렇지만 이 도는 이 세상 만물을 생동시키는 근원이자 우주 자연의 원리이다. 분명 있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형체도 없는 그 무엇, 그것이 도이다.

도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無名, 無欲, 妙의 신비의 측면, 有名, 有欲, 徼의 현상의 측면. 신비의 측면은 도의 오묘한 원리이고 현상의 측면은 도의 세계가 구현된 모습이다. 無에서 有가 나오며, 유는 무를 바탕으로 해야 완성이 된다. 1장 ‘常有欲 以觀其徼’에서 徼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우선은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가야겠다.

 

2차 텍스트로 읽은 것은 자오치광 교수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무위무불위』였다. 무위는 노자의 중심 사상이고, 저자는 무위와 무불위를 기본으로 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무위를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애써 하지 않는 것으로, 자연 법칙이나 우주의 운행법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불위는 자연의 섭리대로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무위를 해야만 무엇이든 행할 수 있는 무불위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책은 노자를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좀 들었는데, 후반부를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고전을 당대적 맥락 속에서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고전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 되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이번에 노자를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보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그 결심은 어디로 갔는지 읽으면서 유가와 비교해보고 글자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읽고 있었다. 『무위무불위』를 다 읽고 나니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지난 주말을 보내면서였다. 토요일에 하루종일 『차이와 반복』을 읽다가 혼미해진 정신으로 깍두기를 담갔는데 시원하게 망쳐버렸다. 사실 남편이 날씨도 좋은데 산책하러 가자고 했었다. 거절하고 꾸역꾸역 읽다가 그 사단을 냈으니. ..자연의 이치대로 날 좋은 봄날에는 책이 아니라 산책을 했어야 했다. 무위했어야 했다. ㅋㅋㅋ  일요일에 펼쳐든『무위무불위』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바로 공원으로 나갔다. 

너무 어렵지 않게,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고 시처럼 노자를 읽으리라 다짐해본다.

 

 

댓글 2
  • 2022-04-12 20:28

    첫 시간이 그렇게도 재미있었다면서요?!  궁금^^

    현대의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내 머리로는 노자를 읽어내는 게 당황스럽네요.

    토용님 말마따나 시처럼, 마음으로 읽어낼 각오를 해야겠지요

    댓글로 매모 다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새 글이 없어 여기에 올립니다. 죄송

     

  • 2022-04-13 20:26

    제가 에코프로젝트 신청 안했다면

    아마, 분명, 노자 세미나 자리에 앉아 있었을 거예요.

    겁도 없이 말이죠.ㅎ

    후기 꾸준히 읽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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