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자들의 수다>10장~14장

여울아
2020-07-08 16:32
356

14장 : 민자건, 중궁, 원헌: <논어>에서 <장자>까지, 새로운 삶으로 가는 길

 

  1. 노장에서 논장으로

<논어>를 <맹자>와 <순자>를 함께 연결하여 유가로 묶고, 도가는 <노자>나 <장자>와 대비시키면서 이해하는 전통이 강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노장으로 병칭하여 읽는 전통이 강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전통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도가를 유학사상 내부의 다른 조류로 이해하며, <논어>에서 외면당했던 사람들이 <장자>에서 의미있게 다뤄지는 점을 들어 공자가 지향했던 어떤 부분을 <장자>가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노장이 아니라 “논장”, 즉 <논어>에서 <장자>로 이어지는 전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 벼슬을 거부한 민자건

민자건이 벼슬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공자학단에서 소수 그룹이지만 이러한 흐름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사대부가 반드시 벼슬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식이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민자건의 ‘건(騫)’과 이름 ‘손(損)의 한자 이름을 해석하여, 그가 절름발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장자>에서 민자건이 왕태, 애태타와 같은 장애인들과 덕충부편에 등장하는 것을 이유로 든다. 저자는 <장자>가 공자를 비판하는 문헌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3. 군주가 될 만한 천민, 중궁

공자가 학단 내부에서 “군주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던 유일한 인물 중궁. 저자는 그가 신분이 비천했기 때문에 제자들 사이에서 더욱 치켜세워줄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공자가 “중궁이 인의 경지에 도달했는지는 모르겠다”는 <논어>문장을 근거로 그만한 자질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특히 그가 말을 잘하지는 못했다는 일화로부터 덕행파가 “문”의 전통에 있던 사람들이 아닐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전국시대로 들어서면서 왕과 신하, 명령체계 등에 있어서 행정문서의 내용을 제대로 시행하는 능력이 중요해진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중궁은 “문”의 전통에 익숙했던 3기의 제자들 자장, 자하와 달리, 2기 제자였기 때문에 문의 전통에 있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중궁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읍재를 맡고 나서야 정치에 대한 질문을 시작한다. 저자는 이것으로부터 그가 읍재가 된 까닭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공자의 강력한 추천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외에도 중궁이 <논어>에서 자상백자에 대해 묻고 있는데, 자상백자는 <장자>에서 “자상호” 등으로 출현하는 은자이다. 저자는 그가 은자들의 삶을 자신의 모범으로 삼고자 했던 공자학단 내부의 학문적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4. 장자로 넘어가는 가교, 원헌

원헌은 안회, 민자건과 마찬가지로 <장자>에 등장한다. 자공이 멋진 옷을 입고 나타나 원헌의 가난한 행색을 탄식하자, “저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일화는 장자가 위나라 혜왕을 만났을 때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장면과 비슷한 것으로부터 원헌의 안빈낙도 정신의 상징적인 일화로 풀고 있다. 저자는 유가의 전통으로 1)공자에서 맹자로 이어지는 계통, 2)순자로 이어지는 것, 3)더 나아가 장자로 이어지는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원헌의 출신이 장자의 고국인 송나라라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본다. <논어>에서 원헌은 공자가 자신에게 너무 많은 녹을 준다고 사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일화로부터 저자는 원헌이 녹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해석하며, 원헌의 이런 태도가 공자의 녹봉에 대한 또 다른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벼슬을 거부하는 것이 “소외받은 자들의 저항”은 아니었을까....

장자는 진퇴의 문제에 대해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점이 공자가 14년간 천하를 주유하였음에도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본다. 그 정신이 덕행파 제자들에게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스스로의 삶을 향유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유를 열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댓글 3
  • 2020-07-09 23:58

    12장 자하 : 텍스트의 제국, 경학의 탄생

    1) 만년의 제자들
    - 훋의 3기 제자들, 후대에 유학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그중 자하는 삼진 지역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시경과 춘추를 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2) 텍스트의 제국을 열다
    - 자하는 문학(문해력)에 뛰어났다. 독서를 좋아하고 문헌에 전통했다.
    - 문학에 탁월했던 이들이 텍스트의 제국 시대를 열었다.
    - 자하는 구체적인 정사가 아니라 예라는 구체적인 행위와 절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예가 바로 문자화된 기록이다.
    - 자하는 학을 강조했다. 이 학은 텍스트에 대한 학이고, 텍스트에 대한 학을 통해 도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3) 공자의 가르침 보전, 경학의 탄생
    - 물론 자하는 문해력만 강조한 게 아니라, 내면적인 무언가가 실현되어야 학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 자하의 말은 공자ㅏ 한 말을 다시 해석하고 언급한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주석이다.

    4) 너는 네 길로, 나는 내 길로 : 논쟁의 시작
    - <논어>에서 제자들의 논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후기 제자들은 자하 자유, 자장, 증삼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공자의 말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해석이 다른 공동체들이 있었다는 차원에서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5) 공문의 '학'에서 제국의 '학'으로
    - 이런 논쟁의 과정을 거쳐 공자 문하에서 국정과 관련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 학문을 함으로써 유학이 제국의 학, 통치학으로 변모했다.
    - 자하는 군자에 대해 자주 말하는데, 이는 군주를 의미한다.

  • 2020-07-12 13:29

    11장. <증삼, 전전긍긍하는 유학자의 길>

    공자의 문하에 뒤늦게 합류했으나 후대 공자와 맹자 다음가는 정통의 계보를 이은 증삼. 공자는 그를 노둔하다고 평가했다. 이 말 속에는 느린 것 같지만 꿋꿋하고 성실한 사람의 뜻이 담겨있다.
    증삼은 효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논어를 비롯하여 여러 문헌에서 그에 대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유학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장자>의 우언편에서도조차 유학자로서의 증삼은 비판하지만 부모에 대한 그의 효심은 칭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증삼은 부모가 살아계실 때 부모를 부양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 정성스럽게 지내는 제사(신종)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후대에서는 증삼이 <효경>의 저자이거나 혹은 그 문하에서 편집되어졌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증삼의 효는 스승인 공자가 생각한 효와는 달랐다. 공자는 효를 인을 실천하는 출발점이자 수많은 백성에게 미치게 해 어떻게 천하를 구할 것인가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면 증삼의 효는 오로지 자기 부모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다.
    증삼은 많은 텍스트를 남겼는데 그 속에 충서와 반성은 대표적 키워드이다. 그는 공자의 인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이며 공자사상의 핵심인 서(恕)에 충의 개념을 더하여 공자 가르침의 정수를 얻었다고 평가받는다. 더불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반성’의 출처도 증삼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증삼과 관련된 논의들 속에서 고지식할 정도로 실천만 강조하며 전전긍긍하는 증삼의 모습은 답답하다. 증삼의 학문적 지향은 정치가, 행정가. 사상가등 다양하게 현실에 탄력적으로 접근하는 유교의 현실성을 아카데믹한 학문으로 축소시켰다. 증삼이 말하는 인은 타자가 아닌 자신에게만 향해 있으며 심지어 때로는 비겁하고 소심한 면까지 보여주고 있다. 결국 증삼은 자신에 대한 반성과 원칙들은 현실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지 못하고 결국 효밖에 모르는 고지식하고 아둔한 원칙주의자로 남게 되었다.

  • 2020-07-13 23:00

    염구, 비틀거리며 도를 따라가다.

    현실주의자 염구
    -저자는 염구를 공자학단에서 파문당해 쫓겨난 인물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논어에서 상당한 비중이 있는 인물이다.
    -염구는 공자가 좋아하지 않음에도 계씨에게 충성한 인물이다. 이것은 염구가 공자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염구는 공자를 존경하고 따랐지만 이념보다 현실의 처지를 생각하며 소신을 따른 인물이다. 주유중이던 공자를 노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든 이가 염구이다. 이것으로 보아 염구가 공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저자는 염구가 염백우, 중궁의 손에 이끌려 어렸을 때부터 공자학단에서 지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 염구는 1. 소극적이고 소심했다. 2. 약삭빨랐다. 3. 예술적 감각이 있고 다재다능했다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염구는 공자와 대화를 많이 한 것 같지 않다.

    뛰어난 실무자
    - 논어에도 염구가 정치와 행정에 뛰어난 인물로 그려진다. 공자는 염구를 국가의 사령관급이라고 평가했다. 공자는 염구를 용기있고 정치행정실무를 맡겨도 좋은 인재로 평가한다.

    스스로 역부족이라고 말하는 소심남?
    - ‘역부족’은 염구를 설명하는 단어이다. 공자가 염구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염구가 시도도 하지 않고 물러나기 때문이다.
    - 공자가 염구를 소심하다고 생각하느 이유는 염구가 공자 앞에서 언행을 가렸기 때문이다. 염구는 공자가 지향한 세계를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공자의 이상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신중했던 것이다.
    - 염구가 자화의 어머니에게 과하게 곡식을 보내준 것으로 보아 염구가 실무자로서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염구가 공자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염구는 공자를 좋아했지만 무조건 추종하기보다 자기 한계 안에서 비틀거리며 따르는 것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도를 따르다
    -염구가 계씨의 제사를 말리지 않은 것은 염구가 공자와 다른 현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씨의 성공에 기여하고 이로 인해서 자신의 야망을 이루길 원했다.
    - 염구는 일관되게 관직에 나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염구는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할 때만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덧붙여 염구는 계속해서 공자가 벼슬을 하길 원했다. 그래야 자기도 벼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 나아가 저자는 염구의 예가 부족하다는 말을 자신의 부족함보다 예악정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 실력자 계씨일가 도와 공 세우기.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에 들어서면 약육강식의 원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전쟁의 시대가 된다. 이런 시대에 대한 판단은 오히려 정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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