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세미나 프리뷰①]순자는 억울하다

제자백가세미나
2021-03-09 20:59
190

순자는 억울하다

 

  작년 논어를 읽으면서 공자의 주옥같은 말씀들 중에 ‘예’에 끌렸습니다.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기술이 예에 있음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죠. 고리타분한 예의범절로서의 예가 아니라 ‘관계의 기술’로서 예는 이천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즘 같은 세상에 다시 소환되어야 할 공자의 위대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린 문탁 선생님의 응원을 받아 야심차게 일견 무모하게 ‘예와 법’을 공부하자고 고전학교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공지를 올리고 동학들을 기다렸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아, 문탁에서 동양고전은 이제 변방의 공부가 된 것인가.’ 근데 주역세미나에 사람들이 몰린걸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딱히 관심 가는 주제가 아니었겠지요. 거기다 익숙히 들어본 공자, 맹자도 아니고 느닷없이 순자라니. 주자가 설정해 놓은 유가의 도통 계보에 순자는 없습니다. 비주류로서 오랫동안 비판받아왔죠. 더구나 듣기만 해도 기분이 안 좋아지려는, 인간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론’을 주장했으니 호감이 생기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관심을 못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오해까지 받으면 억울하지 않겠어요? 세미나를 통해 순자를 점차 알아가겠지만 그 전에 순자를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순자는 누구인가

 

  순자(荀子, BC298~BC238)는 조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순황(荀況), 존칭해서 순경(荀卿)으로 불립니다. 50세에 제나라의 직하학궁에 유학하여 그 학궁의 장인 좨주를 세 번 역임하고, 초나라 춘신군의 신임을 얻어 지방장관이 되기도 합니다. 학문과 사상의 요람 직하학궁에서 여러 사상들을 접하고 『순자』라는 저작을 남겨 제자백가의 집대성자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진의 통일이 BC221년이니 순자는 거의 전국시대 말기를 살았습니다. 이 시기는 맹자의 시대와는 또 달랐습니다. 맹자의 시대는 전국 칠웅이 자웅을 겨루던 시대였으나 불과 70여년 뒤 순자의 시대가 되면 칠웅, 7개 나라 사이에서도 격차가 생겨 진나라가 원탑 강대국이 됩니다. 변방의 진이 중원의 대국들을 물리치고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은 상앙의 변법이래 법에 의한 통치가 성공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미 군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법가 앞에 다른 의견과 주장이 먹혀들 수 없었겠죠. 진나라 소왕이 순자에게 ‘유가는 나라에 아무 쓸모가 없지 않는냐’라고 묻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와 상황이 아주 다르죠. 불과 100년도 안 되어 유가는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예에 대한 관점

 

  공자는 예와 법을 서로 대립적인 관계로 보았습니다. ‘법령으로 다스리고 형벌로 바로잡으면 백성이 형벌을 피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 바로잡으면 백성이 부끄러움을 알고 마음이 바르게 될 것이다.’(위정3) 예는 내적인 진실한 마음이 밖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적절한 상호작용을 예라는 형식과 질서로 나타낸 것입니다.

  맹자는 모든 사람들이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예는 이러한 선함이 외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에 따라 행동하면 우리 본성의 선함을 잃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법은 본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외부로부터 가하는 징벌일 뿐이지요.

  순자의 예는 공자, 맹자와 좀 다릅니다. 순자는 예가 인위적인 것이지 본성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는 사람들의 본성을 다스리고 바로잡기 위해서 생긴 것이지요. 사람의 본성은 누구나 이로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는데 예로 그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본성이 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고나기를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기보다는 예의 구속을 받지 않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라는 위(僞)가 가해져야 선하게 된다는 것이죠.

 

  무릇 예의라는 것은 바로 성인의 위(僞)에서 생기는 것으로 처음부터 사람의 본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저 도공은 흙을 반죽하여 기와를 만든다. 그렇다면 기와는 도공의 ‘위’에서 생긴 것으로 처음부터 도공의 본성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저 목수가 나무를 깎아서 목기를 만든다. 그렇다면 목기는 목수의 ‘위’에서 생긴 것으로 처음부터 목수의 본성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성인이 사려를 쌓아 인위작업을 거듭하여 예의를 만들고 법도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예의와 법도란 것은 바로 성인의 ‘위’에서 생긴 것으로 처음부터 사람의 본성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性惡(성악)>

 

  그렇다면 예를 몸에 장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배움입니다. 순자는 배워서 성인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순자 첫 편이 <권학(勸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자에게 예와 법은 같은 층위에 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순자에게는 차이가 없습니다. 예와 법 모두 인위적으로 고안된 외적질서이기 때문이지요. 예는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이고, 법은 벌을 받지 않기 위해 강제되는 것입니다. 배워서 예를 내면화하여 군자의 모습으로 살 수도 있고, 열심히 배우지 않더라도 법의 규제를 받아 틀을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하면 됩니다. 어찌 보면 순자의 이런 생각이 유가와 법가의 절충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순자는 맹자가 그토록 싫어했던 패도(覇道)를 긍정하여 법가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전국말이라는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진나라 통일에 공헌한 이사와 법가의 집대성자인 한비자 모두 순자의 제자였는데, 이들이 스승과 어떻게 달랐는지는 세미나 시간에 차차 알아가도록 하지요.

 

 

  순자는 요임금, 우임금도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인위적인 노력으로 악한 본성을 바꾸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예를 실천하며 도덕적 수양을 거듭하여 성인이 되는 길은 배움에 있습니다. 『순자』의 첫 편 <권학>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학문이란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는가. 말하기를 ‘그 과정은 『시』, 『서』를 외우는 데서 시작하여 『예』를 읽는 데서 끝나며 그 의의는 사(士)가 되는 데서 시작하여 성인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정말 성실하게 노력을 쌓아 오래 지속하면 학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학문은 죽음에 이른 후에야 그만두게 되는 일이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학문의 과정에는 끝이 있더라도 그 의의는 잠시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학문을 하면 사람이 되지만 그것을 버리면 짐승에 불과한 것이다.

 

  세미나 방학 기간 읽었던 『순자』는 『맹자』처럼 격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치밀하고 논리적이었습니다. 만약 순자가 없었더라면 유가가 한나라 이후 중국 왕조의 주류사상이 되었을까 싶습니다. 전국말 여러 학파들의 사상을 종합하고 비판하면서 써내려간 『순자』를 많은 학우들과 같이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6
  • 2021-03-09 21:25

    😁 방학동안의 노~오력이 작은 결실을 맺었네요^^
    토용 화이팅!!!

    달려라~ 🏃‍♀️🏃‍♀️🏃‍♀️제자백가~~ 우리도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제자들에 도전해봅시당~

  • 2021-03-09 21:32

    아, 좋네요!
    토용님의 예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자백가세미나를 통해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제자백가세미나 프리뷰 2탄도 곧 올라오나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 2021-03-11 07:15

    사람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문탁에서 동양고전을 그렇게나 오래 했는데 이 세미나를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쪼매 서글프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울면 또 차요.
    여울아, 토용님만 항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하면 또 언젠가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거예유^^

  • 2021-03-11 18:46

    善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惡(저는 이말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非善으로 쓰고 싶지요)을 공부하는 것은 괜찮은 방법 같아요.

  • 2021-03-11 23:32

    와~ 토용, 미리 공부했으니 가르쳐주는거죠?
    내내 마음이 쓰였는데, 마음가는대로 움직여야 할까요?

    • 2021-03-12 08:08

      샘은 마음이 아니라 몸가는대로 움직이셔야 해요^^
      자중하셔야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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