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2회차 후기

토용
2020-09-05 22:12
248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논어 세미나는 구성원이 5명뿐이지만 이번 기회에 줌도 배워볼 겸 비대면 세미나를 했다.

오전에 이문서당 강의를 줌으로 듣고, 점심 먹고 바로 세미나를 그것도 줌으로 하니 꽤 피곤하기는 했다.

더군다나 신문물에 약한 아날로그적 인간이라 그런지 강의가 아닌 세미나를 계속 줌으로 하는 상황이 된다면

차라리 안하고 말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다는거고 익숙해지면 바뀔수도^^)

어쨌든 점심, 그 짧은 시간에 고기까지 구워먹고 든든히 배 채운 여울아 반장님은 세미나가 끝나고도 쌩쌩했다.

 

상부터 춘추시대까지는 거의 1000여년의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의 역사가 『십팔사략』에서는 단 몇 십 장의 서술에 그친다.

너무 소략해서 읽는 재미가 좀 없다고 했더니 다른 분들은 오히려 중요한 내용 중심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좋다고 한다.

『십팔사략』의 허전함은 『중국 고대사』가 메워주었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이라 그동안의 고고학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고,

농경이 시작되는 신석기 시대부터 한나라 멸망까지의 중국 문명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라는 실재했을까?

 

지난 시간 양사오와 룽산의 신석기 문화에 이어 이번 시간은 청동기 문화를 공부했다.

BC 2000년 초 신석기 시대 수장사회의 한계를 넘어 국가 수준의 사회가 나타났다.

대표적인 유적이 낙양에 있는 얼리터우이다.

이 문화는 규모나 문화 발달 수준이 당시의 다른 유적에 비해 월등하였다.

중심에 성곽으로 둘러싸인 궁정 복합 단지가 있었고, 바퀴가 달린 수레를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중국 최초의 청동기 문화로서 높은 수준의 기술과 정교함을 보여주는 대형 용기까지 생산했다.

이 얼리터우 유적은 BC 1900~1600년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학자들은 이 유적이 하의 연대(BC 1900~1555)와 시기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라의 유적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서구의 대다수 학자들은 이 곳에서 하라고 입증할 수 있는 문자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하나라에 관한 기록은 『서경』, 『시경』, 빈공수 명문(서주 중기 BC 950~850년 경), 『죽서기년』(BC 3세기 초) 등에 있다. 이 기록들은 서주 이후의 것들이고, 상의 갑골문에도 상이 하를 정복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의 존재에 대해 아직도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저자는 얼리터우와 하의 관계를 입증하거나 부인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기본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적으로 합의된 주장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합의된 사실은 당대에 황하 중류와 하류 유역에서 얼리터우는 어떤 사회도 필적할 수 없는 권력과 부를 소유한 국가 수준의 사회였다는 것이다.

 

은허가 상 후기 도읍지라면 그에 앞선 상의 중심 지역은?

 

상(BC 1554~1046)은 탕이 박(亳)을 도읍지로 하여 건국한 나라이다.

자연과 정치적인 여러 이유로 도읍을 여러 번 옮겼는데 마지막이 반경이 도읍으로 삼은 은(殷 안양)이다.

『서경』에는 반경이 도읍을 옮기기 위해 신하들을 설득하는 내용이 나온다.

홍수로 농경지가 개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반경은 살기 위해 도읍지를 옮기자고 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신하들은 백성들에게 거짓 소문을 퍼뜨리면서까지 안 가려고 애쓴다.

반경이 성심을 다해 신하들을 설득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읽은 지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가물가물하다 ㅠㅠ)

 

그렇다면 이보다 앞선 시기의 상나라 유적은 어디에 있을까?

얼리터우에서 가까운 옌스와 정저우 두 곳에서 상의 중심지였다는 증거가 나왔다.

정저우가 상 왕조의 도시라고 할 만한 기록은 불충분하지만, 안양의 물질문화와 문자 시스템과 연속성을 가진다.

또 고고천문학 연구에 따르면 옌스, 정저우, 안양의 건물군 방향은 얼리터우 건물의 방향과 서로 다르다.

그 이유는 기준으로 삼은 별자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볼 때 토기 형식은 연속성이 있으나, 정치-우주관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고,

구 정치체제가 전면 붕괴한 것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왕조의 지배가 구축되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대체로 정저우(상 전기)-정저우 이후 유적(상 중기, 안양에 거의 붙어 있는 동북쪽의 환베이로 추정함)-안양(상 후기)로 보고 있다.

 

얼리터우의 청동 기술은 상나라때에는 더욱 발전하여 중국 여러 지역에 다수의 청동기 문화가 나타난다.

다른 지역의 청동기 문화가 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정치적인 확대와 관계가 있는지 아니면 단지 문화의 확산이었는지 확실하게 알수는 없다.

아마도 상 문화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문화적으로도 차별성을 가진 다른 국가 수준의 사회를 형성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작년 성도로 한시기행 여행을 갔을 때, 싼싱두이 박물관에서 사천 지역에서 발달한 청동기 문화 유물을 볼 수 있었다.

그 높은 수준에 끊임없이 감탄사가 흘러나왔었다.

대표 유물이 ‘청동 인간상’이었는데, 우리가 보는 이 책에 사진이 있으나 그 위용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상나라 청동기 유물은 이것보다 더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정주와 안양으로의 기행이 성사되었을텐데..... 좀 아쉽기는 하다.

댓글 1
  • 2020-09-06 13:03

    ㅎㅎ 이문서당, 논어세미나까지 마친 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사서덕후도 못올리고 잠들었어요. 우와.. 요즘애들은 9시부터 4시까지 비대면수업 중이예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체... 과연 적응이 될까요? 그냥 다르게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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