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도의 논쟁자들(1장 1~2까지)

여울아
2020-07-31 20:36
27

 

 

제1장 천명적 세계질서의 붕괴

1. 보수적 반응: 공자

공자의 나라, 노나라는 주왕조의 창건자인 무왕의 동생 주공의 봉토에서 유래되었다. <좌전>에는 이들이 주 문화의 보전에 대해 자긍심을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 <논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저자 그레이엄은 이 책을 유학의 가장 초기 기록으로 인정하겠다고 한다. 공자는 일단의 제자들과 함께 정부 개혁을 실현할 고위직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이 나라 저 나라 순방하면서 자신의 말을 들어줄 군주를 물색하였다. 이런 방식은 이후로 300년 동안 철학자들(제자백가들)이 본받게 될 하나의 전례가 된다. 그의 제자들이 <시경>, <서경>, 예, 주의 음악 등 교과 과정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점을 볼 때, 그는 여타 다른 평범한 스승과는 구별된다.

1) 의례와 음악

공자가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주의 제도는 예와 악이다. 예는 조상의 제사로부터 사회적 예절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례, 관습, 태도, 관례를 포함하는 말이다. 사회적 교제에서 예는 교양있는 태도(good manners)와 일치한다. 악은 신성한 의례상의 음악과 춤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는 예술 공연처럼 품위 있게 이루어진다.

공자가 예와 도덕적인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정의를 의미하는 義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군주와 신하로서 자신의 역할이나 신분에 걸맞는 마땅한 행위로 간주된다. 사회적 위계구조 속에서 의례적 형식이 생산하는 효과는 단순히 행동들이 마땅한 것(군주에 대한 백성의 복종)이 되기보다는 태도들이 조화(군주에 대한 백성의 존경)를 이루는 것이다. 이때 음악은 이러한 조화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자가 이상으로 여기는 과거는 태초의 과거가 아니다. 그는 요, 순에서 하은주까지 관심을 가졌지만, 특히 마지막 왕조 주에 주로 의지했다.

2) 의례로서의 정치

<논어>에서 첫째로 두드러지는 짝개념은 도와 덕이다. 도는 단지 인간 행위와 정치 조직의 올바른 진로의 의미이며, 고대, 선왕, 군자, 선인, 그리고 주의 창건자 문과 무왕의 도는 바로 이것이다. 나의 도, 스승의 도 등은 누군가의 도로서 교시된 것을 의미한다. 공자의 도는 인간 밖의 자연 세계의 진로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덕은 전통적으로 물리적 힘에 호소하지 않고 남을 움직일 수 있는 선악을 초월한 "위력"의 의미로 사용된다.(카리스마) 공자는 덕의 개념을 도덕화하였고, 이로써 덕은 도를 따라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했다. 두 개념은 상호 의존적이다. 개인의 덕은 도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의 잠재력이다.

의례로서의 정치는 공자 사상의 핵심이다. 정치가 군왕들의 의례기능과 점점 분리되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군주가 자신의 덕을 통해 의례만으로 모든 백성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원시적 마술처럼 보일 수 있다. 공자는 법률은 정치의 도구이지만 최소한으로 적용하는 것이 성공적인 통치의 척도로 간주했다. 그는 하은주 삼대의 의례를 비판적으로 선택하여 이상적인 조정 의례를 만들고자 했다. 이때 군주는 아무 일도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덕을 믿어야 한다. 이것을 무위라고 한다. 덕은 맹자의 성선설과는 다르다. 덕은 태도를 조화롭게 만들고 열등한 사람들을 우수한 사람들의 위력에 노출시키는 훈련된 행동, 관습, 의례 등의 위력에 대한 믿음이다. 공자는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인간의 순응성을 강조한다.

3) 천과 귀(鬼)

17,18세기 서양에서 공자는 합리주의자로 소개되었다. 그의 관심은 인간사에 있었다. 물론 산, 강, 하늘의 신들 및 조상의 영령들에게 드리는 제사를 인간과 우주가 조화하는 가장 위대한 의례로 인정했지만, 의례의 가치는 조화 그 자체이며 결코 어떤 외면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가령 그는 우리가 어떻게 제사를 통해 우주와 연결되는지와 같은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한대의 <설원>에는 귀신에 대한 예절의 문제를 전적으로 인간 행위의 결과에 따라 판단하는 공자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죽은 사람이 지각이 있는지 여부는 관심이 없다!! 귀신이 산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묵가를 제외하면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유가는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과 군자는 반드시 제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입장, 이 두가지로 귀와 신의 존재에 대한 모순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늘에 인격이 있는지 여부도 묵가를 제외하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공자의 경우, 하늘이 자신의 사명을 지지하느냐의 여부를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숙고할 때만 그가 하늘을 인격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목탁이 되고자 하는 사명감과 하늘이 나를 버렸다는 낙심 사이에서, 공자는 천명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는 개인적인 운수와 선정의 기복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통제를 초월한다는 사실과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에 대한 무언의 인정을 의미한다. <좌전>에는 사관, 점술가, 전의, 악사 등 천도라고 부르는 우주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논어>에서 천도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하늘과 인간의 궁극적인 합일을 암시하는 구절이 하나 있지만, 이 구절은 삶의 완전한 의례화를 통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사회와 우주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도는 인간 행위와 정치의 올바른 진행 방향으로서 분명하게 언급된다. 참으로 공자는 도를 인간 문화가 확대되면 그 자체도 확대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4) 도덕 통일의 실마리

최근 서구에서는 공자의 도덕적 사고를 그 모태인 의례로부터 분리하려고 했다. 인은 타자의 행복에 대한 이타적 관심이며, 주로 박애로 번역되었다. 인은 맹자 이후 의례에서 분리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이 <논어>에서 박애로 번역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인은 주나라 귀족 집단이 평민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명사 인(人)에 상응하는, 존재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이다. <시경>에는 사냥하는 남자들을 보며 여인들이 "잘생기고 늠름하다" "잘생기고 인하다(고귀하다)"라고 예찬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자시대에 이르러 인(人)은 인간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확대된다. 그러나 야만인들에 대해서는 이들이 개화될 때까지 금수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인은 영어의 귀족, 고귀함(noble)과 마찬가지로 교양인의 독특하고 훌륭한 특성들을 포괄한다. 저자는 인을 귀족과 동의어로 취급하겠다고 한다. 또한 만개한 상태의 인간이 지닌 특성들을 오직 군자한테서만 발견한다. 이 단어는 영어의 gentleman과 사회적, 도덕적 범위에서 완전히 일치한다.

공자의 인은 존재 상태를 나타내면서, 귀족을 다른 사람과 구별짓는 다양한 특성들의 원천에는 타인들에 대한 사심 없는 관심이 존재한다.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황금률의 부정형태이다. 이것은 예수의 정신에서 유래한다.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생각보다는 의례, 문헌, 음악, 전설이나 역사상의 인물 등에 관한 명상으로 인생관을 종합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을 꿰뚫는 보편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다.

서(恕)는 자기와 남을 동일하게 생각함을 의미한다. 충(忠)은 군주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지만, 아울러 신하들을 위해 전심전력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서는 덕목이 아니라 유추적 사고의 한 형태인데 반해, 충은 타인 특히 자신의 군주를 위해 표현된 유가의 덕목이다. 일이관지는 귀족적 인간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용기, 존경, 그밖의 내적 성향들을 통일시키는 하나를 의미한다.

이러한 인은 결코 지식이 아니다. 배움이 없으면 모든 덕목들은 미혹에 빠진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인만으로는 성인이 될 수 없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과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인의 비결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비를 발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세우는 것이기 때문.

인은 있거나 없거나 한 것으로 간주할 뿐 결코 정도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안회는 인을 3개월 이어가고 다른 사람은 하루도 잇기 힘들다. 인은 자아와 타인 사이에서 정확히 바른 균형을 잡아 옳은 행위를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방향 설정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데 이 균형은 불안정한 것으로서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자 자신조차 부정한다. 그러나 인은 자신과 남을 위하여 욕망을 조절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자연스럽고도 즉각적으로 흘러나온다.

공자가 자신과 남을 완벽한 균형 속에서 보기 위해 자아를 극복하는 순간은, 관습과의 조화가 저절로 달성되며 고정된 형식들 속에서 고상한 품격의 실천이 방해받지 않고 성취되는 순간이다. 인은 의례로 회귀하는 순간 성취된다. 복례는 의례가 가진 의미의 회복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에 의해 의례는 그 형식성이 극복된다.

 

댓글 4
  • 2020-08-04 00:46

    1. 보수적 반응 : 공자

    5) 공자와 20세기 서양철학

    공자는 계몽적 도덕주의자로서 18세기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의 사상은 진정한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허버트 핑가렛은 『공자 : 신성으로서의 범속』에서 공자를 언어의 수행적 기능과 사회적 관습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한 도덕철학의 선도자로 평가한다. 언어는 행동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거나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언어 그 자체가 행동이다. 수행적 발언이나 몸짓은 공통의 관습적 맥락을 전제로 한다. ex) 악수, 미소 또는 유죄 선언을 내리는 판사의 말, 결혼서약에서의 ‘예’ 등 취소불가의 행위의 힘을 부여하는 의례.
    언어의 수행적 기능에서 본다면 공자의 정명(正名)을 원시적 ‘언어 마술’로 치부할 수는 없다. 공자의 정명은 사회 질서 속에서 작용되기 때문이다. 공자의 명(名), 이름 부르기는 상대방을 군주, 신하, 아버지, 아들이라고 불러 그의 사회적 기능을 규정하는 행위이다. (그레이엄은 정명을 의례상의 정확한 이름에 대한 관심이라는 풍우란의 해석에 동의한다) 이름은 사회적 역할에 맞게 제대로 쓰여야 한다. 사회적 질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핑거렛이 공자를 도덕철학의 선구자로 본 까닭은 공자가 수행적 발언과 몸짓이 상호작용하는 의례화된 행위 속에 우리가 존재함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관습에 관한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관습과 더불어 행동하는 힘 안 들이는 기술과 매력을 소유한 유덕자는 비록 아무 일도 안 할지라도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질서를 분명히 향상시킨다. 공자의 현세 중심적 방향 설정은 개인적 의지의 참된 독립성의 위력으로 이해되는 신성이 영혼의 외부에서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의례화된 인간관계의 자연성 속에 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핑거렛은 인(仁), 인과 관련된 덕목들, 예는 의지, 감정, 내적 상태의 언어와 연관이 없다고 본다. 인은 공적 시공 속에 작용하는 지향적인 힘이며, 사람을 그 힘의 시발점이자 그 힘이 영향을 미치는 종착점으로 삼는 것이다. 즉 도덕철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자는 위엄 있고 존경스런 수행으로서의 의례와 공허한 형식으로서의 의례의 차이를 수행자의 마음속에 품위와 형식에 구애됨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러한 핑거렛의 주장은 중국학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핑거렛이 인을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으로 취급했다고. 그러나 핑거렛은 언표되지 않은 내적 성찰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것으로 보았다.

    공자의 도덕철학에는 서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택, 책임의 개념이 없다. 공자는 적절한 고려로 특별한 행동방향을 결정한다. - 도를 좇아라. 공자는 학(學), 인(仁), 도(道)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배워서 지식을 얻게 되면 미혹은 저절로 선별되고, 행동을 위한 방향설정은 알아서 하도록 맡겨진다.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스스로 섰으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다. 쉰에 천명을 이해했으며 예순에는 어떤 말도 소화하는 귀를 가졌으며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공자는 하늘을 초월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늘과 도가 스스로 관계된 조화로운 상호 관계의 미학적 질서, 곧 의례, 음악, 수행적 명명에 의해 지탱되는 미학적 질서를 좋아했다.

    6) 중국 문명에서 유학의 중심성

    유가는 중국 고대사상, 즉 자학시대의 초기 학파이다. 유가는 직업적인 교사들로 이루어져 육예(六藝)를 가르쳤다. 육예는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여섯 학과목이다. 이후 한나라 때 『서경』 『시경』 『춘추』 『역』 『예기』 『악경』의 육경(六經)의 교과과정이 생겼다.
    공자의 사상은 교사라는 직업에 전념한 덕분에 탄생했다. 유학의 등장도 자신들이 가르치는 다양한 교과목을 ‘일이관지’하는 그 ‘하나’를 공자를 통해 발견한 교사 계층이 광범위하게 확산한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유가는 주나라 전통의 보존자로서 중국 문명 자체의 수호자였다는 장점이 있다. 유가는 자신들의 보편적 사고의 뿌리를 현존하는 관습, 예술, 역사적 선례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만이 개인들을 문화, 사회, 그리고 중국의 사회적 불멸성이라는 비밀의 일부임에 분명한 우주 속으로 완전히 통합시키는 희망을 품었다.

  • 2020-08-04 10:31

    머리말
    - 이 책은 그들이 무엇을 사고했느냐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사고했는지를 주제로 삼는다. - 겸애(묵자) 성선(맹자) 성악(순자) 표어만 남은 사유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할 것.
    - 저자가 이 사람이 주로 중국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분석적 사고와 감응적 사고의 완전한 분리의 불가능성, 서구의 도덕 철학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바꿔놓은 중국 사상의 해석에 유용한 유사 삼단논법 등 내가 늘 이야기해왔던 주제를 개진하겠다. 중국 사상을 연구하는 가운데 항상 우리는 도덕 철학에서의 중요한 현대적인 이슈들, 철학과 과학사, 기성의 개념적 구조에 대한 해체, 언어 구조에 사고를, 상관적 사고에 논리를 연결시키는 문제를 만나게 된다.

    서론
    - 주나라 초기에 천자에게 모든 토지가 속하고, 천자는 이것을 세습영주들에게 할당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 이들 밑에는 사 가신 계층이 있었는데, 관직은 이들로 채워졌다. ... 그들 사이의 싸움은 짧았고 기사도 정신에 따라 서로 전쟁을 자재했다.
    - 그러나 우리의 주 관심 대상인 춘추시대 300년 사이에, 주의 제도는 엉망이 되어 모든 변형의 과정에 놓였다. 귀족 가문들 사이의 충돌은 승자를 가려 승자에게 중앙집권이 되는 것으로 변하고, 토지는 분배되기보다 위탁의 형태가 되고, 임금노동자를 고용하는 평민지주가 등장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는 이제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길을 제공한다.
    - 이후 사계층은 무사보다는 학자나 문인을 자연스럽게 의미하게 되었다. 기축시대의 사상가들은 이런 유동계층에 속하거나 경계선에 놓인 인물들이었다 관직을 거부하고 농민과 다를바 없거나, 부강해지는 것이 관직에 오르는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따라서 사계층의 유가, 묵가, 장자 등은 각자의 문제에 골몰했다.
    - 이런 사고들은 모두 하늘의 권위를 무너뜨린 도덕적, 정치적 질서의 붕괴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들에게 중대한 문제는 진리란 무엇인가(서양철학)가 아니라 국가의 질서와 개인의 삶을 인도할 도란 무엇인가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해답을 찾기도 했다.(법가, 유가, 묵가, 장자 등) 국가 경영에 관한 문제는 이 모두에게 진정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정권이 전제적이란 것에 질문한 사람은 없다.)
    - 많은 학파들은 정치, 사회를 응집시키기 위해서 군주의 환심을 사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주대 이전 제도로 제안하는 행위가 관습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따라서 희망은 국가를 개혁해 평화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충성을 얻으려는 쪽으로 기울었다.
    - 전통의 기원에 관심을 고정시킨 것은 기축시대 중국의 고유한 성격에 속한다.
    - 기축시대에 적용되는 한 가지 일반화는 고대 세계 문명들을 존재하게 했던 기초 사상들이 소규모의 경쟁적인 국가들에서 유래했으며, 이들이 거대한 제국에 병합되면서 창조성이 약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있어 중국은 해체되지만 또 다시 언제나 통일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서론(묵가에 대해서)
    - 문명 세계의 양극에 위치한 두 전통간의 차이점은 논리학의 운명에 있다. 서양에서는 논리학이 항상 중심적위상을 차지하고 전승의 맥은 단절된 적이 없다. 중국의 경우 명가와 후기 묵가의 논리학은 맨 처음 일어난 중요한 철학적 부흥이었으며, 3세기 4세기 이후의 신도에게까지 생상한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서양의 합리주의를 만나고 나서야 중국은 묵가의 논리의 중요성을 소화하게 된다.
    - 묵가의 특징; 후기 묵가는 그리스적인 이상과 지식을 이성의 범위 안에서 이해하는 학문이었다. 중국적 합리주의의 탄생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장자의 노골적인 반합리주의였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중국 문명에 더 긴 영향을 남겼다. 이성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이성은 수단의 문제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삶의 목적을 위해서는 경구, 예 우화, 시에 귀를 기울여라’
    - 항상 균형감 속에 힘을 유지해온 중국 문명은 애초 시작부터 알맞은 균형 속에서 이성을 발견해왔다고 우리는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이성에 대한 우리의 무한정하고 불합리한 신뢰가 방법의 차원에서 현대 과학과 기술을 포함하는 결과를 성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초기 중국 사상에 관한 역사 속에서, 우리는 후기 묵가의 합리주의로부터 장자의 반합리주의에 이르는 전체 스펙트럼에 걸쳐 사상가들이 어떻게 사유했는지 초점을 맞춰 보게 될 것이다.

  • 2020-08-04 11:40

    2. 극단적 반응 : 묵자

    그레이엄이 유가와 묵가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릅니다. <논어>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레이엄은 <도의 논쟁자들>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철학적 전통이라고 하기에 좀 미흡한 데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계속하기로 하자."(32) 서론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레이엄은 서양에서 논리학은 항상 중심적 위상을 차지해왔던 반면, 동양에서는 논리학과 관련된 문헌들이 일실되고 원형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연구의 터전이 상실되었다고 봅니다. 이때 상실된 연구의 터전이라 하면 사실상 7세기에 소실된 <묵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논리와 이성에 대한 관심이 산발적으로 되살아났지만, 서양의 합리주의를 만나고 나서야 중국은 정작 이것들의 중요성을 소화하게 된다."(23)

    책은 유가로 시작했지만 그 다음 묵가 파트에 와서야 비로소 책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그때문일 것입니다. 그레이엄은 묵가 파트를 이렇게 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합리적 논쟁은 공자의 첫번째 적수인 묵적과 더불어 시작하며, 그리고 경쟁 학파들과 충돌하면서 점점 더 세련된다."(70) 사실 좀 재미있었던 점은 어느정도까지는 서양의 합리주의의 측면에서 묵가를 해석해나가기가 어렵지 않아보입니다만, 중요한 한 지점에서 막히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슈워츠도 그렇고 그레이엄도 그렇고 서양의 합리주의 사고로 보았을 때 <묵가> 사상의 기반이 어디로부터 오는지가 불분명해보이는 것 같습니다.

    "선과 악이 이 세상에서 분명히 보상받는다는 점을 왜 묵가는 단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묻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96) 이때 묻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하면은 사실상 슈워츠를 말합니다. <묵가>의 결연한 행동방식은 현세에 선과 악이 보상받는다는 지점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 지점은 서양의 합리주의적 사고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지요. 이에 대한 그레이엄은 대답은 "아마도 ~이지 않을까" 정도로 의견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질서의 정의가 포인트이지, 각각의 개체를 위한 절대적 정의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즉 선악의 구도는 개개인의 사적인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서양의 '정의'의 측면에 더 어울리게 됩니다. 아마도 서양의 선악개념과 맞물리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외에 몇가지 재미있는 묵가의 특징을 두가지 더 집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묵가에게 개인은 비존재적이다.

    "공자와 비교할 때 신기할 정도로 개인 감정이 억제된 묵자와 그 제자들"(70), "공자는 철저히 실재의 자신으로서 남을 가르치지만, 반대로 묵자는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존재적이다."(75) 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묵가에게는 개개인의 특성이 비교적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논어> 같은 경우는 그 등장인물들의 특성이 뚜렷히 보여서 제자들에 대한 입체적인 성격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었는데요, <묵자>같은 경우는 묵자 그 자신의 모습도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장자>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러면서도 논리성을 추구하는 면에서 서양의 합리주의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2. 이상적인 사회는 과거 어느시점엔가 존재했으며, 상동의 모습을 띈다.

    묵가가 지혜의 권위를 찾는 지점은 공자와 사뭇다릅니다. 공자는 요순우와 같은 구체적인 인물로부터 찾는다면 묵가는 막연한 과거의 어떤 고대 성왕으로부터 찾아내는 것이지요. 여기서 원시주의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윗사람을 잘 따르는 사회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이장의 말을, 이장은 황장의 말을, 황장은 국군의 말을, 국군은 천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이지요. 천자의 도덕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이때 천자는 천자 어떤 개인이라기보단 하늘의 명을 받잡는 대리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 2020-08-0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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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중국고대사상사를 연구한다는 것(2분기 5회차 후기) (3)
여울아 | 2020.07.20 |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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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숙제)벤자민슈워츠_중국고대사상의세계(서론~2장) (1)
여울아 | 2020.07.17 | 조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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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2분기 4회차 후기 : 부족한 정보에 대한 해석 (1)
고은 | 2020.07.13 |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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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논어, 학자들의 수다>10장~14장 (3)
여울아 | 2020.07.08 | 조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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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자공이 있었다!(2분기 3회차 후기) (2)
여울아 | 2020.07.03 | 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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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논어, 학자들의 수다> 2회차 숙제 (5)
동은 | 2020.07.02 |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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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6월 14일 2분기 많이 늦은 첫 시간 후기
동은 | 2020.06.30 |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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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공자세가, 중니열전(숙제)
여울아 | 2020.06.29 |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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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논어 , 학자들이 수다 : 사람을 읽다 - 1부 1장 숙제 (3)
고로께 | 2020.06.27 | 조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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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2분기 2회자 후기 - 공자의 가르침을 공유한 가족 (2)
고로께 | 2020.06.27 |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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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1분기 마무리 간단한 에세이 발표 후기 (1)
고은 | 2020.06.15 |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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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와 한시읽기 위진의 풍도, 죽림칠현의 발자취를 따라서 (1)
자작나무 | 2020.06.11 |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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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1분기 정리글 (1)
여울아 | 2020.06.09 |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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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공자 인간과 신화 (마지막까지) 숙제 (4)
동은 | 2020.06.07 | 조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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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세미나 8회차 후기-공자는 민주주의 선구자
토용 | 2020.06.03 |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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