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사상사를 연구한다는 것(2분기 5회차 후기)

여울아
2020-07-20 19:35
279

 

<논어세미나>는 벤자민 슈어츠의 <중국고대 사상의 세계>를 2회에 걸쳐 서론부터 3장까지 읽습니다.

첫 시간 서론부터 우리는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이미 한 차례 개역을 했다는데... 할많하않.

저는 이 책을 영어책이라고 생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문장 말미의 어미에 휘둘리지 말자는 차원에서요.

동은이는 저자가 남발하는 “그러나”라는 연결사를 지우고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도 뜻이 통하니까요.

토용은 역자후기를 봤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역자가 스승 슈어츠와 하버드에서 공부할 때

가장 많이 들었다는 말이 “다른 한 편(on the other hand”이라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의 모든 주장은 양보절로 표현될 정도로 모든 고정된 입장을 부정하고 개방적이라는...

으아악~ 그래서 우리는 슈어츠가 하려는 말을 한마디도 단도직입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절판과 품절을 밥 먹듯이 오고가는 이 책을,

특히 학이당 때도 읽지 않고 넘어갔던 서문을 과연 국내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읽었을까요?

우린 별다른 의도 없이 커리큘럼에 이 책을 넣음으로써 “소수자”가 되었지만,

저자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그 소수자들”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소수자란 칼 야스퍼스가 기축시대(기원전 천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 출현한 특정한 개인들,

즉 “창조적 소수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인도, 이집트, 그리스, 황하 문명 등

자신의 문명에 기반하여 역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이들입니다.

가령 중국의 유가, 도가, 묵가 등은 기존의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숙고하는 삶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슈워츠는 이들 소수자들이 당대의 지배층 고급문화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와도 상호작용하였다고 말한다. 가령 중국의 도가는 민간의 도교에 서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풍우란이 중국철학사를 쓰면서 계속해서 서양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과학적, 논리적 방법으로서의 중국철학의 부재라는 표 딱지를 떼려고 매달렸듯이,

슈워츠 또한 중국사상은 과학과 도덕(가치) 그사이 어디쯤인가를 계속해서 묻고 있습니다.

저자는 집단무의식이라던가 이름없은 사고방식이 아닌,

다분히 의도적인 “의식적 삶”을 다룰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어쯔(상징문화인류학자)는 이데올로기와 과학의 구분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과학이 공정성의 잣대이며, 도덕적인 정서를 함양함으로써

공정성이 효과를 발휘할 때 과학과 도덕이 병행되는 것 아닌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입장에서는 문화와 역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고 합니다.

과학적 방법은 이러한 인간의 전제조건을 궁극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레비스트로스와 기어쯔 등 문화인류학자를 소환하고 있는데,

문화인류학이 갖는 과학적 방법에 대한 애매모호한 입장을 여기에서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슈어츠가 중국초기 문화 방향설정에 주목하는 것은 조상숭배입니다. 

갑골문은 종교적일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보여주는데, 

조상숭배가 혈족관계의 강화만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국가로의 확장성뿐만 아니라

인간을 요순과 같은 신적 존재로까지 확장시켰다는 것입니다.

가령 아프리카의 조상숭배는 정치적 질서를 만들어내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

혈연 관계를 중심으로한 중국의 도시 형성은 그리스의 도시와 같은 일체감을 형성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후로 슈어츠는 주초 <시경> <서경> 부터 공자 <논어> , <노자>, <묵자> 등

원전과 소수자들의 사유를 따라가며, 중국사상사를 완성해나가고 있습니다. 

 

내게 지금 <논어>는 어떤 의미일까요?

군자=위정자라는 도식에 빠져버리면 <논어>가 내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거추장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슈어츠가 풀어내는 "고급문화"표현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자는 공자가 당시 기준으로 결코 하이클라스는 아니었지만, 그가 만들어낸 사상은

하이클라스(고등문화)와 대중문화 모두에게 영향을 줄만한 "고급문화"였다고 풀이합니다.  

가령 <논어>가 엘리트 집단을 위한 책이었지만 지배 계급뿐 아니라 민중의 삶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아주 오랫동안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동양사상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해방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최근 칸트 강좌를 인용하자면, 이제라도 굽어보고 펼쳐보고 두들겨 보고 탐구하면서 물자체(예속)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봅니다. 

 

앞으로 3장에서는 <논어>에서 공자가 그리는 이상 사회, 예, 인, 학습, 가족, 정치, 종교 등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댓글 3
  • 2020-07-20 22:33

    전 소설도 100쪽이 될때까지 더디게 읽어요.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지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근데 이 책은 번역문인데다가 내용도 어려워 정말 더디게 읽히더군요. 그래도 서론이 제일 어려우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ㅎㅎ 3장은 찬찬히 읽으면 읽을만하니 또 얼마나 다행이예요!

    • 2020-07-21 00:51

      그쵸..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

  • 2020-07-21 08:11

    할많하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울아, 혹시 기억날 지 모르지만...학이당 때 풍우란, 슈워츠, 그레이엄...이렇게 3명을 세트로 읽었잖아요?

    풍우란은 신실재론의 방법론을 통해 서양처럼 중국에도 "철학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지요.
    슈워츠(1916~1999)와 그레이엄(1919~1991)은 비슷한 또래로 각각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중국학 전공자들입니다.
    슈워츠가 동양,서양을 아우르는 어떤 보편성(ex -'축의 시대')에 주목해 철학사를 기술한다면 그래서 유가 중심으로 고대중국의 사유를 정리하고 있다면
    그레이엄 (도의 논쟁자들)은 서양과 다른 동양의 어떤 사유방식에 주목합니다. 서양의 합리성과 다른 동양의 반합리성?! (비합리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언어에 주목하고 후기 묵가와 장자의 길항관계를 중심으로 고대중국의 사유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슈워츠를 읽을 때는 (슈워츠 뿐만 아니라 사상사를 읽을 때 다 적용되는 것이지만) 이런 각자의 '방법론'을 이해하고 읽는 게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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