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 2부 숙제

동은
2020-04-29 22:58
451

6장 충성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충성이라고 하면 군주(특정한 인격)에 대한 신하의 맹목적 복종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상위자의 도덕적 정당성과는 상관없다. 때문에 충성(충), 의리(의), 배신(신)이 같은 맥락으로 쓰인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유교의 핵심적 개념들이다 이 개념들은 어떻게 유교의 바탕으로 여겨졌는가?

 

  1. 성삼문의 충의

성삼문은 생전에 사사로운 은혜 때문에 단종(문종)을 충성하다 세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런 조선시대의 충의는 사마천의 백이숙제열전에서 유래한다. 사마천의 백이숙제, 효제충신, 충의의 행동은 동아시아 전역 사람다운 행위의 표준적인 모델로 정착한다. 그러나 이는 백이숙제 열전이 사기에서 충의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텍스트로 활용된 것이다.

 

2. 충의의 범전, 백이숙제

이후 백이숙제의 이야기는 유교적 정치행동의 상징으로 추앙되며 설화들이 들러붙어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된다. (저자는 사기를 한나라의 군주독재체제를 부식하기 위한 정치적 텍스트로 보아야한다고 말한다.) 백이숙제의 이야기는 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고 불리며 전통사회에서 순종적인 백성을 기르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이렇듯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백이숙제는 쓰임새가 많은 상징이었다.

조선 초기의 백이숙제는 불의한 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상징으로 쓰였다. 조선에 처음 백이숙제 이야기가 퍼지게 된 것은 고려 말 조선 초기, 왕조교체기다. 이 시기에 백이숙제=불사이군 등식은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는데 기준이 되었다. (고려왕조 충성의 모범이 된 정몽주, 조선왕조 출사를 거부하고 죽임당한 두문동 72현인의 행태는 조선 건국 이후 충의의 상징이 된다.) 이후 백이숙제는 세조의 권력 찬탈 사건에서 성삼문으로 인해 다시 부상한다.이 시기에 이들이 충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규범이나 가치가 아니라 군주 개인이었다. 이는 중기까지도 계속됐다

그러나 조식의 묘사에서부터 결이 달라진다. 그에게 백이숙제는 불변하는 가치(이념)에 복종한 사람이기에 위대한 것으로 변하게 된다.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것이 불의와 의를 판단하고 의로운 길을 선택한 데서 찾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사기 속에 그려진 불사이군 백이숙제가 아니라 공자에 의해 평가된 ‘인을 구하여 인을 획득했으니 무엇을 탓하리오’라던 백이숙제의 본래 모습에 부합한다. 이후 조선 중기 유학자들에게 진퇴 출처(출처진퇴-나아가고 물러날 때와 장소를 가린다)의 기준이 사람에서 이념으로 바뀌었다.

 

3. 백이숙제 설화는 거짓이다.

후기로 접어들며 백이숙제=충의=불사이군 등식은 무너진다. 실학파 이익은 백이숙제가 죽은 것을 두고 ‘충의는 인정하나 편협하다’고 비판한다. 이후 백이숙제에 덧씌워진 충의의 이데올로기는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에게 의심을 산다. 본래 유고의 충과 의, 신뢰의 원형은 어떠했는가?

 

4. 공자 대 자로 – 관중은 배신자인가

논어에 실려있는 공자와 자로의 대화를 통해 알아보자. 자로는 적대자의 편으로 배신해 영광을 누린 관중이 인하지 않느냐며 공자에게 묻는다. 자로는 ‘관중은 가신이니 주군을 따라 죽어야 한다. 그것이 충성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에 “사람이 인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대답한다. 공자에게 충성, 의리는 특정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대상이 아니라 문명적 차원의 이념, 자연법적 이치에 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관중의 배신은 도리어 공자로부터 정당성을 가진다. 공자에게 관중은 천하의 혼란을 규합하려는 평화 건설의 대의를 실천하려는 가치에 충실했기 때문에 더 충성했다고 본 것이다. 문명적 방식으로 대의를 실현하니 ‘인’한 것! 원래 공자가 지향한 충성과 의리는 결코 가변적인 군주 개인의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5. 공자의 꿈

공자가 제시하는 참된 충성이란 무엇인가? 공자와 남궁괄의 대화를 보면 평범한 농사꾼으로 입신하여 주변 사람을 보살피고 스스로 몸을 낮출 줄 알았던 우(禹) 임금과 재상 직(稷)은 끝내 국가를 건설하고 천하를 평화롭게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례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공자의 정치학은 힘을 통한 제국의 건설이 아니라 덕을 통한 왕정의 건설에 있다는 점에 있다. 공자의 충성은 권력자나 폭력 정부가 아니라 내면의 덕성에 바탕한 덕치사회의 건설을 지향한다. 결국 우리에게 낯익은 충성=불사이군=백이숙제라는 등식은 어떤 유교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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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30 20:26

    7장 여민(與民)이란 무엇인가

    유교사상, 특히 맹자의 정치사상을 나타내는 말로 ‘위민’과 ‘민본’은 부적절하다. 맹자는 이런 용어를 쓴 적이 없다. 그는 인간 중심의 사유를 펼치기 위해 ‘여민’이라는 말을 썼다.
    『맹자』에는 ‘여민’이 들어간 표현이 많다. 여민동락(與民同樂), 여민해락(與民偕樂), 여민동지(與民同之), 여민수지(與民守之), 여민유지(與民由之) 등과 함께 ‘여민’과 유사개념인 ‘여인(與人)’이라는 말도 자주 보인다. 여인락악(與人樂樂), 여인위선(與人爲善), 요순여인동(堯舜與人同) 등.
    그러나 ‘여민’은 맹자뿐만 아니라 당대의 지식인들이 널리 썼던 개념이다. 전국시대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다양한 사상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던 때였다. 『맹자』에도 맹자가 종횡가, 묵가, 양주학파, 법가 등과 논쟁한 내용이 있다. ‘여민’은 그 중 농가학파와의 논쟁 속에 등장한다.

    쟁점 1. 여민(與民)이냐, 려민(厲民)이냐

    농가학파의 허행은 군주가 백성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 농사지어 먹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진정한 ‘여민’이라고. 그런데 지금 인정(仁政)을 베풀겠다고 하는 등나라의 군주는 백성을 수탈하여 곡식창고, 재물창고, 무기창고가 즐비하다. 이것이 어찌 ‘여민’인가? ‘려민’이다.
    그러나 맹자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반박한다. 농가학파의 ‘여민’은 같이 일하고 같이 밥을 지어먹던 소박한 원시공산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농업, 공업, 상업의 발달로 직업에서도 분화가 일어나고 전문화의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고 있다.

    “분업과 전문화 그리고 생산물의 교환 마당으로서 시장과 차등 가격은 인간문명의 핵심이다. 또 직업의 분화로 인한 사회의 분열 가능성을 방지하고 다양한 직업군들 간의 소통과 접합을 다룰 전문적인 정치가의 출현 역시 문명화 과정의 필연이다.”(131)

    농가학파는 분업과 전문화로 인간 본연의 가치인 ‘함께 더불어 사는 삶’, 즉 ‘여(與)’가 파괴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맹자는 실제 농가학파도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옷감이나 농기구 등은 시장에서 곡식과 교환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여민’은 인간문명의 진보와 변화된 사회적 환경을 감안하여 재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쟁점 2. 참된 정치란

    허행 : 등나라 군주가 훌륭하긴 하지만 참된 정치를 알지 못한다. 군주의 생활은 인민과 실제 함께 해야 한다. 군주가 인민의 일상과 유리되어 궁궐 속으로 격리될 때, 정치가 권력 화되고 사유화된다.
    맹자 : 정치 또한 인간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전문화된다. 직업의 분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확 대된 공공영역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치는 분화와 전문화에 따른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자, 생 산물이 정당한 가격으로 매매되고 또 순조롭게 유통되도록 질서를 잡는 전문적 업무 다.”(135)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

    맹자는 정치가와 인민의 관계를 상호보완적 구조로 파악한다. 정치가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이고, 백성은 몸을 쓰는 자이다. 노심자인 정치가는 노력자인 백성들이 제각각 맡은 일들을 잘 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노심자가 노력자를 지배,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이 서로 다를 뿐이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런 필요성이 정치가와 인민이 함께 국가를 구성하고 유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로서 존엄성과 지혜, 정의를 가진 인간이다. 공공의 업무에 여가를 쓸 수 없어 정치가에게 그 일을 맡겼을 뿐이다. 인민과 정치가는 국가를 구성하는 두 핵심요소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맹자의 여민체제란 서로 다른 요소(이질성)가 함께 관계를 맺음(관계성)으로써 보다 큰 하나(우리)로 통합되는 것이다. 공자가 제시했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원리, 즉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되 하나로 만들지 말라’는 원리가 여민 속에 관철된다.”(141)

  • 2020-05-04 17:18

    맹자의 꿈 – 여민체제

    유가들은 제도(시스템)가 아니라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강하다. 그랬기에 이상 정치에 그치고 현실 정치로 발전할 수 없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배병삼샘은 맹자의 여민정치가 현실적인 제도화를 염두에 둔 주장임을 밝힌다.

    1. 여민체제의 제도들
    1) 정전제도 – 여민체제의 뼈대
    정전이란 국가의 인민들에게 토지를 나눠 줄 때,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구획한 데서 나온 이름이다. 정전제는 토지분배 방식으로, 인민들이 서로 협력하여 공전을 경작하고, 또 사전을 이웃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며 품앗이를 하고 친목하게 된다. 이 제도는 일상적 삶 속에 “함께 더불어 살기”, 즉 여민의 가치를 구조화하는 핵심적 제도가 된다.

    2) 조법 – 여민의 세제
    정전제도의 한가운데 땅, 즉 공전을 공동 경작하며 내는 세금을 조(助)라고 부른다. 조법은 정전제의 여덟 가정이 서로 도와서 경작한 후 그 땅에서 나온 소출을 세금으로 내는 수취 제도인데 반해 공(貢)법은 개인 소득으로 세금을 바친다. 조법은 홍수나 가뭄으로 흉년이 들 경우, 사전의 소출이 줄어든 것처럼 공전도 줄어들기 때문에 풍흉에 따라 실제 세액이 들쑥날쑥하게 된다. 즉, 풍년에는 많이 내고, 흉년에는 적게 낸다. 따라서 인민들의 경제사정에 따라 국가재정이 조절되기 때문에 이것이 여민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풍년에 백성이 기뻐하면 더불어 함께 누리고 흉년에 백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3) 안전망의 구축 – 환과고독의 구제
    춘추전국 시대의 전쟁의 시대. 가족이 붕괴되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홀로된 사람들이 출현했다. 유교는 환과고독을 인간됨의 최악의 조건으로 여기고, 이들을 구제하는 것을 급선무로 했다. 절연된 관계를 잇고 서로를 연결지우는 안전망을 건설하는 것이 여민정치의 출발이다.

    4) 학교제도 – 인간다움의 교육과 보존
    인간다움은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획득된다는 여민의 이념을 가진 맹자는 교육을 통해 북돋아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유교의 학교는 “대학”과 “소학”으로 구성되고, 대학은 특히 인간관계를 밝히기 위한 교육의 장으로 여민체제를 제도화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

    5) 순수제도 – 감찰과 보조
    순수는 군주(천자)가 관내를 두루 순시하면서 제후들이 자기 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감찰하는 제도이다. 제후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자기 직무 성과를 조정에 보고하는 것을 술직이라하며, 천자는 5년에 한 번씩 그 실제를 확인하기 위한 행차한다. 천자는 넉넉한 나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순수를 통해 확인한 가난한 나라 빈민들을 보조하는 것이다. 이것을 순수제도의 평천하의 원리라고 본다.

    6) 시사(詩史) - 여민의 미디어
    시는 인민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 때문에 민심이 오롯이 들어있다. 여기에 담긴 인민의 욕구와 바람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치가의 역할이라고 맹자는 본다. 시를 통해 군주와 인민이 의사소통하는 “여민체제의 미디어”로 본다. 그러나 왕조 시대의 말년에 혼란의 시기가 오자 시를 채보하는 전통이 끊어지고, 이를 대체하여 궁궐 내부의 역사 기록, 즉 사의 기능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 텍스트가 공자의 <춘추>이다.

    2. 권력의 전환과 주권의 소재
    맹자의 여민체제를 떠바치는 기초는 인민주권론이다. 인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것. 맹자에게서 통치권은 군주에게 속하지만(정치의 자율성), 주권은 인민에게 귀속되는 것이다(인민의 주체성). 맹자에게 군주는 통치권은 갖고 있으나 국가를 군주의 사유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맹자는 국가 주권의 소재가 국가의 균열, 권력의 변동기에 드러난다고 본다.

    1) 선양, 혁명, 혈연계승
    선양은 첫 단계에서 전임자가 후임자를 추천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 전임자가 죽고 난 후, 인민들이 요의 아들과 순 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권력 승계가 추천권과 선택권의 어우러지는 것을 여민의 성격으로 해석한다.
    혈연승계는 법적으로 전임자의 지명과 인민들의 묵인으로 이뤄진다. 이런 장자승계의 관습이 균열을 일으키는 순간을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맹자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폭정을 뒤엎은 탕/무의 역성혁명을 인민들의 정당한 주권 행사로 보는 것이다.

    2) 인민이 주권자다
    국가운영 권력의 변동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전환되지만, 주권 즉 국가의 소유권은 인민에 귀속하고, 그 소재는 변동하지 않는다. 변동의 시기에 인민들이 통치자를 선택하고, 정권을 승인하며 또 왕조를 개체하는 최종최고의 결정권(주권)은 인민에서 비롯된다.
    맹자에게 정치란 군주의 현실적인 권력인 통치권과 이를 승인하고 또 결정하기도 하며 전복시키기도 하는 인민의 주권이 한데 어울려 국가를 구성해나가는 “여민의 과정”이다. 그러나 전국시대 군주들과 관료들은 그리고 인민들조차 통치자를 주권자로 오해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기에 맹자는 군주가 통치권을 양도받은 존재임을 천명하고 주장한 것이다.

    3. 맹자의 꿈
    맹자의 이상 국가는 중앙 집권적인 단일 국가가 아니라 연방제 국가로 여겨진다. 여민국가의 성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진한시대 천하통일 이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군주독재체제로 유지되어온 동아시아 정치사와 전혀 다른 국가 형태를 맹자가 제시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정부체계는 계급, 사회는 나이, 학교는 덕을 기준으로 삼아, 정부는 군주, 사회는 연장자, 학교는 유덕자를 최고의 권위자로 본다. 그러나 여민국가를 구성하는 세 영역을 상호 교섭하고 소통하는 핵심 기제로 “덕”으로 표상한다. 각 독립적인 분야를 한데 아울러 여민의 국가로 만드는 접착력은 “덕”이라는 것이다.
    배병삼샘이 여민을 강조하는 이유는 “위민”이 인민을 위한다면서 오히려 인민들의 목숨과 삶을 바치기를 강요하는 독재 이데올로기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 2020-05-07 21:20

    9장. 왜 요순인가

    1. 요와 순
    1) 역사에서 정당성을 찾다
    - 서양은 사람 됨의 근본을 하느님에게서 찾았지만, 동아시아에는 절대자로서의 하느님이 없다. 대신 그들은 시간, 즉 ‘역사’로부터 찾았다.
    - 따라서 맹자의 정당성 역시 요순을 통해 언술되어야 했다.
    2) 공자의 요순
    - 요 : 인간사회의 원형을 만듬, 인간다움의 기준을 처음 세운 문명창조의 어버이
    - 순 : 좋은 정치의 모델을 만듬, 좋은 정치의 모델을 제시한 성왕
    - 공자에게보다 맹자에게 요순이 더욱 필요했다. 역사의 권위에 기대어 제 말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2. 요순의 속살은 다 다르다
    - 요순은 “그 이름 밑에 깔린 각기 다른 서술자의 다양한 욕망의 투사물로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1) 「격양가」
    - 노장풍의 자연주의 관점에서, 요임금은 무위이치(無爲而治)를 실현한 사람.
    2) 정약용
    - 조선 후기의 이완되고 부패한 사회를 일신하기 위해, 요순을 엄혹한 통치자로 읽음.

    3. 요순 - 맹자의 '오래된 미래'
    - 맹자는 자신의 비전을 요순에게 투영시킨다. 요순은 오륜의 표준 모델이다.
    ① 부자유친 : 순의 대효 설화가 있음
    ② 군신유의 : 임금인 요와 신하인 순의 관계을 보면 알 수 있음
    ③ 부부유별 : 순임금에게 부부의 맺음의 특별함을 읽어낼 수 있음
    ④ 장유유서
    ⑤ 붕우유신

    4. 요순 - '여민'의 정치모델
    - 이어서 요순은 여민체제의 모델로 중요하게 부각된다.
    ① 맹자가 우임금을 듣는 존재로 그림으로써, 정치가를 말하는 존재에서 듣는 존재로의 전환을 꾀한다.
    ② 이때 우임금에게 듣는다는 것은 적극적인 것으로, 전문가를 찾아가 배우는 것 즉 ‘취저인’(상대방의 견해를 나아가서 취함)이다.
    ③ 순임금의 출세의 내력은 남에게 나아가 적극적으로 청취하여 실천에 옮긴 것, 즉 벤치마킹의 힘 덕분이다.
    ④ 그리하여 핵심은 지배하고 군림하는 통치가 아니라 이웃과 의사소통하는 ‘與’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5. 독백에서 대화로
    - 맹자는 군주가 스승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말하는 자인 군주가 말하는 자인 스승이 되면 그저 독백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전쟁상태로 이어지게 된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 따라서 독백 다신 군신 간의, 군민간의 대화와 소통이 중요하다. “맹자에게 정치란 군주와 인민들의 ‘사이’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위나 바깥에서 강요하는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184)

  • 2020-05-10 07:24

    10장 유교의 정의란 무엇인가
    언어는 결핍과 바람의 투사물
    정의의 결핍과 정의로운 사회에의 바람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이름의 번역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배면.

    1. 정의의 어원
    서양어의 저스티스(justice)의 번역어. 일본 근대 지식인들이 서양 법학사전을 번역하는 와중에 선택한 단어. 초창기에는 공의나 공정과 같은 말도 저스티스의 번역어로 쓰였던 듯한데, '정의'가 남음.
    돋양에서의 '정의'용례, '올바른 논의' 또는 '올바름과 의로움'
    서양 저스티스 각자에게 자기 것을 귀속시키는 것9suumcuique tribuere), 한자의 의(義) 본래 뜻과 다른 바 없음.
    양(羊)과 아(我)자 모양의 창칼. 원시공동체에서 먹을거리를 정확하게 갈라 균등하게 나누는데서 생겨난 자형. 먹어야 살지만 고르게 나눠 먹기, 이것이 '의'라는 글자의 밑바탕. '의'자에는 분ㄴ배의 균등성, 업무의 합리성이 박혀있음. '의'자에는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는 뜻도 있음. 부족하거나 불행한 것을 사람의 힘으로 메우려는 노력, 나아가 공동체에의 헌신과 이웃의 아픔에 대한 배려 가은 것이 '정의'의 사회적, 실천적 의미 구성

    2. 정의란 공동체의 기초다
    원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복수가 옳다"는 이직보원(以直報怨)의 원칙은 유교 정의관의 얼개
    권력자의 방자한 이익추구에 대해 합당한 복수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곧 붕괴되고 말 것임.
    "군자는 그 어디서나 꼭 해야만 할 일도 없고, 꼭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이, 다만 정의(義)에 따를 뿐!" '정의의 원리'를 삶의 철학으로 강조.
    불의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려는 사색과 실천은 공자로부터 파생하여, 유교의 핵심 주제가 됨.

    3. 정의란 균형이다
    공자를 계승하여, 정의를 핵심적 주제로 삼은 사상가가 맹자
    하필왈리, 인의이이의-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시오! 오로지 인의가 있을 따름인 것!
    정치가인 군주가 이익에 몰두한다면 결국 국가(공동체)는 위험에 빠지고 말 것
    맹자, 시장경제 활동을 장려한 사상가, 사회정의가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님. 시장에서는 이익 추구를 당연한 것으로 수긍하고, 또 적극 권장. 다만 그들이 문제삼은 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역역과 정의를 중시하는 공공영역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 그들이 인식한 춘추전국시대의 큰 문제는 두 영역이 섞여 공공영역이 시장판으로, 정의보다는 이익이 우선시되는 데 있다는 점이었음. 당대위기의 핵심!
    사적 이익을 위해 유통질서를 무너뜨림으로써 다수의 원망을 낳는 자는 척결해야 함. 인민의 원망을 해소하고 공정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국가가 행해야 할 정당한 행위.
    유교의 시장은 자유시장이 아니라 분배와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소통의 장.
    균등한 분배(均), 인민 각자의 처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화합(和), 그리고 안정된 생활(安) 이 세가지가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
    유교의 정의란 정치(도덕)와 경제(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리라.

    4. 정의는 보편적이다
    맹자는 권력자와 일반 대중은 똑같은 사람이라고 주장,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을 사단의 논리로 구성.
    측은지심은 인의 실마리, 수오지심은 정의의 실마리
    '인과 정의'를 지향하는 씨앗은 모든 사람 마움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다움의 고유성이라고 주장
    맹자는 권력의 문제에 예민, 권력자가 자기 이익에 매몰될 가능성이 누구보다 크다고 염려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보편적으로 정의가 내재한다는 주장은, 정의가 인간의 내부에 근거할 때라야만 자율적, 자각적, 자주적 인간으로서 인민의 자립이 가능하다는 신념이 담겨있음. 이는 정치가 효율성이나 경제성 혹은 어떤 특정한 가치를 위한 조직 운영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화(共和)의 생활세계여야 한다는 믿음 때문.
    맹자에게 정의란, 국가의 정치 운영의 원리로서 제도화해야하는 것(여민정치), 인민들에게선 폭정에 저항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인민>사직>군주, 맹자가 지향하는 여민체제의 속성을 보여줌

    5. 정의는 마음에서 비로하여 사회로 나아간다
    부끄러움이야말로 사람다움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다!
    수치심이 개인적 덕성이라면, 증오심은 공적 덕목
    부끄러움을 잃은 소인배들의 권력 추구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대응하는 방법은 증오심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저항은 공자와 맹자가 권하는 합당하고 올바른 길

  • 2020-05-1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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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묵경'과 과학기술 (1)
토용 | 2023.06.06 | 조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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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는 반전주의자인가? (2)
여울아 | 2023.05.26 |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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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묵자의 천(天)과 귀(鬼) (1)
토용 | 2023.05.22 | 조회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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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용>, <절장>, <비악>을 중심으로  (1)
여울아 | 2023.05.03 | 조회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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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묵자 사상의 키워드 兼 (1)
토용 | 2023.04.27 | 조회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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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가 백이 숙제의 자손이란 말인가?(후기) (1)
여울아 | 2023.04.24 | 조회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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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묵자> 후기 : 묵자는 누구인가 (1)
토용 | 2023.04.17 | 조회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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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에세이 모음 (2)
토용 | 2022.12.21 | 조회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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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자백가세미나] 전쟁과 평화의 시대, 묵가와 병가 읽기 (2)
여울아 | 2022.12.20 | 조회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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