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사(상)-3장, 4장 숙제

여울아
2020-04-16 17:11
492

(논어세미나는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세미나 이후에 요약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숙제입니다.)

 

  1. 직(直)·인(仁)·충(忠)·서(恕)

 

직(정직)이란 무엇일까?

풍우란은 진실한 마음은 안과 밖이 같은 것이라고 한다. 즉,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논어13장>에서 공자는 양을 훔친 아버지를 아들이 신고하는 것은 정직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아버지를 고발하고서 마음이 편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팎이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할까? <논어>에서 미생고가 식초를 옆집에서 빌려다가 준 사례를 예로 든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상대가 상심할까봐 어떻게든 그의 요구에 응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행동의 기준이 밖에 있는 사람은 교언영색(巧言令色)하기 쉽고, 누구에게나 잘 보이려고만 애쓰는 사람을 향원이라 한다. 따라서 광자(狂者)와 견자(狷者)가 비록 한쪽으로 치우쳐 부족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진실한 마음의 발로를 따른 자들이기 때문에 적어도 향원보다는 낫다고 평한다.

 

인(어진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진실한 마음만으로는 군자가 될 수 없다. 군자는 예에 따라 행하는 자이다. 고대에는 예의 범위가 풍속습관, 정치사회 제도를 모두 포함했지만, 공자에 이르러서는 주례의 옹호자로서 예를 가르쳤다고 한다. 따라서 공자의 인은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예에 맞게 행하고 동정심을 바탕으로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것이다(推己及人).(117p) 내 마음이 어떠한지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남의 마음도 헤아려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인이다. 따라서 초순의 <논어보소>를 인용하여, 자기 욕망을 확인하고 이윽고 남의 욕망을 인정하며, 자기가 싫어한다는 사실로부터 남도 싫어할 것이라고 이해하는 차원(119p)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욕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욕망을 멀리하거나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 욕망을 확인하고 이윽고 타인의 욕망을 인정함은 곧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통하고 싶으면 남도 통해주는 것(忠)이고, 자기가 싫어한다는 사실로부터 남도 싫어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恕)이다. 특히 풍우란은 충이 <논어>에서 개념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많은 문장들에서 적극적으로 남을 위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진기(盡己), 즉 자신에게 성실한 것으로 보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인을 충과 서와 같다고 해석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기 쉽다. 이런 점에서는 송명도학의 육왕학파에서 말하는 양지와 달리 진실한 마음의 발로일지라도 사심을 극복하고 예를 실천(克己復禮)하지 않으면 불인(不仁)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인은 효(孝), 충(忠), 지혜(知), 용기(勇), 예(禮), 신(信) 등을 포함하고 있다.

 

  1. 의(義)·리(利)와 성(性)

공자에게 예를 따른다는 것은 외부의 고정된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재아가 부모의 삼년상이 너무 길다고 했을 때 오직 그의 기준은 “네 마음이 편하냐?”는 것이었다. 주변의 평가와 결과적으로 얻어질 이득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라는 성문지기의 평가에도 의연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자와 맹자의 주장은 묵가의 공리주의와도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이외 공자가 성선설이나 성악설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인간의 마음과 이치를 중시했기 때문에 후대에 유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이다.

 

**

생각해볼 문제 : 오늘날 예(법)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 주변에 의해 강요되는 것, 현실과 맞지 않아서 타파해야할 대상 등등 외적인 요인이나 기준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삼년상이 현재의 삼일장이 된 것처럼 예는 거추장스럽고 형식적이 되는 순간 생명력을 잃거나 아니면 마음을 내서 기꺼이 따르는 수준으로 생명력있게 살아 움직이는 것 아닐까?

 

(다음 분은 아래 댓글로 숙제를 올려주세요.)

댓글 5
  • 2020-04-19 18:16

    3. 정명론
    공자는 당대를 천하무도(天下無道)의 시대라 생각하여 자신이 이상적인 시대라 여겼던 주(周)의 문물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였던 때를 그리워했다. 공자는 그 때를 천하유도(天下有道)의 시대, 즉 정치, 사회의 모든 면에서 질서가 있었던 시대로 보았다. 당시에는 질서가 무너져서 천자가 결정해야 할 일을 제후나 대부가 결정하였고,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만 하더라도 삼환이라 불리던 맹손, 숙손, 계손의 세 대부가 국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공자가 주장한 것은 ‘정명론(正名論)’이었다.
    정명은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실상(實)을 이름(名)에 부합케 하는 것이다. 각각의 이름들은 그 정의가 있으며, 그 정의가 의미하는 바는 그 이름이 지칭하는 사물의 본질이다. 공자는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 답한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정명에 대한 예로써, 공자는 군주가 군주다워야 한다는 정의에 실제 부합하게 되면 천하유도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공자는 정명론의 근거로 『춘추』를 들고, 이 책을 정명의 교육서로 쓴다. 공자는 진, 제의 태사(사관)들의 기록을 취하여 난신적자를 단죄하는 명분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바로 『춘추』의 대의가 정명임을 주장한 것이다.

    4. 계술을 통한 창작자로서의 공자
    공자는 원래의 제도를 이론화하고 이론적인 근거를 부여하는데 힘썼다. 그 결과 시, 서, 예, 악, 춘추, 역을 새롭게 편찬하였다. 공자의 작업은 한마디로 ‘이술위작以述爲作(계술을 통해 창작함)’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주역』을 계술하는 과정에서 「계사전」 「문언전」은 주석서로서 유가의 창작이다. 『춘추』의 「공양전」, 『의례』의 「예기」도 마찬가지. 중국사상에 영향을 끼친 것은 원전 자체가 아니라 주석서가 포함된 원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술(述)은 주석달기이자 재해석이다.

  • 2020-04-20 20:42

    제3장 : 공자 이전과 당시의 종교 철학사상

    1. 귀신
    - 우주간 사물은 모두 신이 통치하고 있다고 여겼다.
    - 다신론, 즉 신령이 많았다. (백신白神)
    - 신령 중 일부는 인귀(人鬼 )였다.
    - 공자는 귀신의 존재를 보류해두고 논하지 않았고, 묵자는 귀신에 의해 세상이 대혼란에 빠졌다고 탄식했다.

    2. 술수
    - 각종 술법으로 우주간에 사람의 주의를 끌 만한 현상을 관찰하여, 인간의 화복을 예측했다.
    - 한서에는 여섯가지의 술수가 등장한다. 별자리와 행성의 질서를 관찰하는 천문(天文), 계절과 절기를 살피는 역보(歷譜), 인의예지 오상의 기운을 말하는 오행(五行), 시초점과 거북점을 의미하는 시구(蓍龜), 만사의 조짐을 포착하는 잡점(雜占), 땅의 지세를 다루는 형상법(形法)이 그것이다.
    - 하늘의 이치를 바탕으로 인간사를 예측한 일부 술수는 인간사와 천도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음을 보여준다.
    - 이후 등장한 음양오행가는 중국철학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하늘
    - 天은 중국 문자가 나오기 이전부터 인격적인 하느님을 지칭해왔다.
    - 중국 문자가 등장한 이래 天에는 다섯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 땅과 상대적인 하늘, 둘째, 황천상제로서 인격적인 하늘, 셋째 운명, 넷째 자연의 운행, 다섯째 우주의 최고원리.

  • 2020-04-21 07:42

    5. 인간의 발견
    사회의 각종 제도에 관해서도 인간은 처음에 하느님(天帝)이 만든 것으로 여겼고, 『서』에서는 하늘이 정한 일을 인간이 대신 완성하기 때문에 관직을 비워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는 ‘하늘이 뭇 백성을 산생할 때, 만물이 저마다 법칙이 있게 하셨네’라 말한다. 부지불식간에 하느님의 법도(帝之則)를 따르는데 여기서 “하느님의 법도”란 하느님이 제작한 예교와 제도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들 역시 여러 국가제도는 신이 만들었다고 여겼고, 고대인들은 대부분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춘추시대에 이르러 점차 각종 제도에 인본주의적(Humanistic)해석을 부여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나타나, 각종 제도는 모두 인간이 설치한 것이며 또 인간을 위해 설치되었다고 생각했다. 정환공 때 사백(史佰)은 이렇게 말했다. “화합(和)은 실제로 사물을 산생하지만, 같은 것(同)끼리라면 아무것도 산생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에다 다른 것을 조합하는 것이 화합입니다. 만일 같은 것에다 같은 것을 보태는 경우라면 둘 다 못 쓰게 되고 맙니다.” 한 가지 색깔이면 어떤 식으로 중복하든 화려한 색채를 이룰 수 없듯, “화(和:화합)”와 “동(同:뇌동, 동일)”의 차이를 제시하여, 예약 및 각종 제도가 반드시 풍부하고 다양해야하는 까닭을 설명했다.

    안자는 오직 양구거와 나만이 화합하고 있다는 임금에게 그 역시 뇌동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금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그른 점이 내재할 경우 신하는 그 그른 점을 지적함으로써 옳은 일을 [바르게] 성취할 수 있도록 하며, 임금이 그르다고 여기는 일에 옳은 점이 내재할 경우 신하는 그 옳은 점을 지적함으로써 그른 일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럼으로써 정치가 평정되어 과오를 범하지 않게 되면, 백성들은 불평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양구거는 그렇지 못합니다.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은 그 역시 옳다고 하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는 것은 그 역시 그르다고 합니다.
    그 밖에 예약(禮樂)과 정치조직(政刑)의 기원 및 기능을 설명했는데, 장애백은 임금이란 마땅히 덕을 밝히고 악의 근원을 봉쇄하여 백관에 군림해야 하므로 도리어 실수하지 않을까 늘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임금이 예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백관이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자율을 위반하지 못하도록”하려는 것이라 했다. 또 소공 6년, 숙향은 자산에게 준 글에서 옛 선왕은 사건의 경중을 헤아린 다음 그것에 근거하여 단죄했지 별도의 형법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 까닭은 [형법으로는] 백성들 사이에서 발생하게 될 쟁론의 심리(爭心)를 금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했다. 순종적인 사람들을 권면하고, 엄정한 형벌로 방종한 사람들을 위압하며 재난과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기에 말세에나 흥한 형법의 공포를 반대했다. 풍우란은 보수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형법에 인본주의적 해석을 부여했다고 보았다.

    소공 25년 자태숙은 말했다. 예란 하늘의 떳떳한 이치이자 대지의 올바른 법도요, 사람의 행위준칙이다. 천지의 떳떳한 이치이므로 만민이 본받는바, 천상의 영명함을 본받고 대지의 본성을 준거한다는 말이다. 예약과 형벌의 효용은 백성이 ‘혼란’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고, 그 기원은 바로 천지를 모방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제사에 인본주의적 해석을 부여한 관역보는 임금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사란 효를 천명하고, 사람을 번성하게 하며 국가를 안위하며, 인민을 안정시키는 것이므로 결코 폐지할 수 없습니다. 마치 신령이 임하여 계신 듯이 엄숙하고 경건하게 제사를 지내며, 제사야말로 인민을 굳건히 단속하는 것인데 어찌 폐지할 수 있겠습니까?
    풍우란의 해석은 이렇다. “마치 신령이 임하여 계신 듯이 엄숙하고 경건하다”함은 반드시 임하는 존재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반드시 신령이 강림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 기회를 빌어 마을 사람들과 친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아울러 경건한 마음을 훈련시키려는 것이었다. 제사의 기능은 “인민을 굳건히 단속하는”데에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사란, 순자의 말대로, 군자는 “인간의 도리”로 여기고 백성들은 “귀신의 일”로 여기는 그런 것이었다.

    또 풍우란은 『국어』에서, [날아든 이상한 새를 장준문이 제사 지내게 하자, 이에 반대하며]유하혜가 한 말로 보은의 도리를 제사의 근거로 여겼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도 역시 제사는
    “인간의 도리”이지 “귀신의 일”이 아니다. 각종 제도가 다 인본주의적으로 해석된 이상, 임금의 존재도 신성불가침적인 존엄을 상실했다. 『국어』 「노어」는 말한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했는데 누구의 잘못이냐는 물음에 물론 임금의 잘못이라 답한다.
    『좌전』에서 조는 사직은 영원히 모셔지는 것이 아니며 군신의 지위는 영원불변한 것이 아님의 자고 이래의 진실이라 했다. 풍우란은 신하의 임금 시해를 옳다고 여겼으니, 당시로서는 실로 일종의 혁명적인 언론이라 썼다. 또 비록 좌구명(『좌전』과 『국어』의 작자)이 과장적이어서 수식이 더해졌다하더라도 그가 서술한 여러 인물들의 근본사상은 인본주의적 경향을 지녔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고 했는데 앞에 인용한 여러 인물들의 말 역시 이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대로 직업을 세습한 사관 혹은 정치에 종사한 귀족이어서, 그리스의 “소피스트”처럼 학생들을 불러모아 강학하며 주장을 선전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중국사상사상 권위의 자리는 부득불 공자나 묵자 같은 그후에 등장한 제자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 2020-04-21 09:55

    공자와 유가의 흥기

    1. 중국역사상 공자의 위치

    - 공자는 육예를 일반인에게 가르친 최초의 인물이었다. 공자는 국가를 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했으며, 모두 여섯가지 과목을 가르쳤다. (뜻-시, 정치-서, 행실-예, 화합-악, 음양의 이치-역, 명분-춘추)
    - 유가라는 이름과 관련해 설문에서는 “유는 유순, 술사를 지칭한다”고 했고 논어에서 “공자는 자하에게 군자유가 되어야지 소인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유는 본디 지식과 재예를 소유한 사람에 대한 통칭이었기에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있었다. 유가가 제일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칭했던 것이다. 그 후 한 학파의 이름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통칭이었다.
    - 공자는 차별없이 교육을 했다. 이것은 일종의 신분, 지식의 해방이었다. 공자 이후 임금에게 유세하는 행위가 풍습이 되었다.
    - 공자 이후로 농부도 공인도 상인도 관리가 아닌 선비가 존재하게 되었다.

    2. 전통적 제도와 신앙에 대한 공자의 태도

    - 중국문화는 주대에 이르러 문왕과 주공으로 인해 규모를 갖추었다. 노나라는 주공의 후손국이었기 때문에 종주의 문물이 많이 남아있었다. 찬란한 종주의 문물이 많이 상실되었기에 종주의 문물은 노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 공자는 계술만 하고 창작하지 않았으며 신념을 가지고 옛것에 심취했다. 그가 계술한 것이 주나라의 예이다.
    - 공자는 전통신앙에 대한 태도에서 보수적이었다. 논어에서 공자가 하늘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보면 공자가 말하는 하늘은 의지를 가진 하느님으로 ”주재지천“이다.
    - 논어에서 공자는 귀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상께 제사를 드릴 땐 조상이 앞에 계신 듯 하고 신령께 제사를 드릴 땐 신령이 앞에 계신 듯 해야한다. 귀신은 공경하디 멀리하는 것이 지혜다"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혜이니 멀리하지 않으면 지혜가 없는 셈이다. 이것은 체계적인 ”제사관“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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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본 파일은 나중에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

  • 2020-04-22 11:13

    4. 일부 사람들의 개명적인 사상

    춘추시대에는 비교적 진보적인 선비들이 점차 귀신 소위 천도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됨.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공경하되 멀리하는 태도를 취함.

    음양의 학설로 우주간의 현상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것도 있음. 그간 길흉으로 생각했던 일을 음양의 자연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생겼으며 길흉은 사람의 행위[의 선악]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함.
    음양으로 우주현상을 해석한 것은 막연하고 혼돈스럽지만 하느님이나 귀신으로 해석한 것보다 낫다고 봄. 풍우란은 범여가 말한 하늘이 자연지천으로서, 언어가 노자와 상당히 비슷한 점을 미루어 노자학의 효시인 것 같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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