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의 시 3수

우연
2020-10-27 14:25
271

한시 읽기 3분기 두번째 시간이다. 

지난 시간에는 당제국이 설립된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았다.

중국의 지도와 지리가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아서 세미나를 할 때마다 매번 새롭다. 

황하와 양자강의 위치, 그 사이를 오가며 중국 문화의 발달이 이전되는 역사,

함곡관 동,서의 지리적 특성과 이와 밀접한 장안과 낙양의 호족 세력간의 권력관계,

양자강 이남으로 이동하는 문화의 전파와  통일된 제국, 당에서의 수리시설과 황하 유역의 다스림 등.

우리나라의 지리와 다르게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역시 공부는 어렸을 때 해야. 

 

이번 시간에는 당나라 대표 시인 두보의 시를 읽었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험란함을 온 몸으로 겪으며 일생의 대부분을 가난과 고단 속에서 보냈던 시인. 

詩聖으로도 불리며 詩史라고도 불리는 두보는 전란의 시대 민생의 어려움을 빼어난 시로 그려내고 있다.

세미나 회원 각자는 마음에 드는 시를 읊으며 함께 그 의미를 생각하고 시를 느꼈다.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강물 파랗고 새 더욱 흰데
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  산 푸르고 꽃은 타는 듯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이 봄도 목전에 또 지나가니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어느 해에나 돌아가려나

만물 생동하고 화려하게 꽃 피는 봄, 자연이 그 에너지를 가장 충실한 형태로 들어내는 때,

그 봄이 내 눈앞에서 지나감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看. 계절의 흘러감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허무의 응시.

오래전부터 희망해 오던 歸鄕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저쪽으로 밀려나가는 듯한  시인의 애잔함. 

강렬한 봄의 풍경과 대비되어 안타까운 시인의 마음이 슬프게 다가온 한 수였다.

 

春望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나라 깨어져도 산하는 그대로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성에 봄 들어 초목 깊어라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시절에 느껴 꽃도 눈물을 쏟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이별을 한하여 새도 놀란다.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봉화가 삼월에도 이어져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집 편지는 만금값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흰머리는 긁는대로 짧아져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도무지 비녀를 못 이길 지경

첫 구절부터 國破다. 國敗가 아니다. 단지 전쟁에 패한 것이 아니다.  나라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너덜너덜해진 상태이다. 

한시는 그 글자 한자 한자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그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나라는 깨어졌지만 山河는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在는 단순히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연하고 확고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 세계는 질서를 잃어버렸지만 자연의 질서는 여전하다. 허나 꽃도 울고 새도 놀랄 정도로 우리네 삶은 힘들기만 하다.

봄이 왔건만 전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집과 소식을 주고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서민이 감당할 수 없는 만금에 상당한단다.

수심이 깊을 때마다 긁어대는 백발. 긁으면 긁을수록 빠져 이제 비녀를 꼽을 수도 없다. 

나라에 대한 근심, 가족에 대한 근심. 그 비통함과 절망감이 渾欲(도무지, 완전히, 모두 다, 전적으로)을 통해 애통하게 드러난다. 

 

返照

楚王宮北正黃昏(초왕궁북정황혼) 초왕 궁성 북쪽에 어둠이 덮일 새

白帝城西過雨痕(백제성서과우흔) 백제성 서쪽에 소낙비 스친 자국

返照入江飜石壁(반조입강번석벽) 강물에 반사된 석양빛 절벽에 번득일 새

歸雲擁樹失山邨(귀운옹수실산촌) 구름은 산과 나무 마을 덮어 가린다

衰年病肺惟高枕(쇠년병폐유고침) 노년에 폐 앓어 베개를 높이 베고

絶塞愁時早閉門(절새수시조폐문) 변경지대 두려워 일찍 문을 닫네

不可久留豺虎亂(불가구류시호란) 시호같은 난적 들끓어 살 수 없는 곳

南方實有未招魂(남방실유미초혼) 남쪽에 버려진 채 못 불린 혼이 있어라

석양이 질  때 그 빛을 바로 바라본 것도 아니다. 석양빛에 반사되어 동쪽에서 빛나는 빛, 그 빛이 返照다. 

스러지는 빛일지언정  스스로의 힘도 아니라 반사되어 되돌아 오는 석양, 어둠, 소나기, 구름, 노년.....

어둠이 내려앉는 거대하고 스산한 협곡의 마을에서 병든 노년의 시인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평생 계속되는 전쟁과 피난살이로 지친 시인은 수도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의 험한 산골마을에서 초나라의 불우시인 굴원을 생각한다. 아직도 떠돌아 다니는 불리워지지 않은 혼, 未招魂. 나야말로 되불려질 수 없는 영혼이 아닐까....

 

두보의 시는 서정적 감성을 노래한 것도 많지만 그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 서사적 시가 많아

두보의 시를 읽으면 그 시대를 알 수 있다고 하여 詩史라고도 불린다.

50대를 넘어가는 회원들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두보가 50대에 지은 서정성에 더 공감하였던 것일까

지난 시간 마음에 든다고 꼽은 시는 모두 이런 풍이었다.

 

다음 시간에는 당의 역사 후반기를 살펴보고  또 하나의 당의 위대한 시인 이백의 시를 읽기로 하였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이 가을 한시 읽으러 오세요. 사전지식 같은 건 전혀 필요치 않아요. 몰라도 괜찮습니다.

친절하신 자작샘이 상세히 일러 준답니다.^^ )

댓글 6
  • 2020-10-27 16:41

    갑자기 어느 분이 어떤 시를 고르셨는지 맞춰보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첫번째는 마음님
    두번째는 자작님
    세번째는 우연님
    맞았나요? ㅎㅎ

    • 2020-10-28 08:24

      33점. ㅋㅋ 뭐가 맞았을까요?

  • 2020-10-28 08:37

    토용님은 과연 누구의 마음을 읽었을까요^^

    우연님의 "한시는 그 글자 한 자 한 자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그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
    는 말씀에 저도 공감!!! 제가 처음 漢字 가득한 한시를 접했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며 미소짓게 됩니다.

    • 2020-10-28 09:10

      끝까지 토용에게 답을 안하네. ^^

  • 2020-10-28 12:55

    음... 정답이 중요하지는 않아요.
    다음에 또 도전하지요 ㅋㅋ

  • 2020-10-28 18:35

    자발후기라니 ^♡^
    역시 시가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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