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천재의 전형 백거이

우연
2020-11-07 09:15
55

이번 시간은 8세기 당나라 시인 백거이를 살펴 보았다.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특출난 재능으로 가문의 기대와 그 뒷바라지 속에서 자라난 백거이는 과거 급제 이후 그 가문의 앞날과 실제적 부양의 책임 속에 놓여나지 못한다. 관직과 정치가 자신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았음을 알았어도 도연명처럼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70대 죽을 때까지 녹봉을 위해 관직을 유지한다. 그의 유언은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게, 부드럽지도 않고 뻣뻣하지도 않게 처세하라였다. 우리가 너무 강직하게 살아온 위인들에 대한 환타지가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는 이런 백거이의 삶의 태도가 그닥 흥미롭지 못했다. 적어도 역사에 남을 만한 위인이라면  굶어죽을지언정 자신의 뜻과 이상에 맞게 자유롭게 살다가야지. 나는 아직도 역사적 인물을  피와 살을 가진 개체적 인간이 아니라 삶의 구차함을 잊게 해줄 환타지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자신의 삶을 돌봐줄 어떠한 뒷배경도, 물질적 지원도 없었던 백거이는 오직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연좌된 가문과 집안을 꾸려나가야 하는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만이 그의 삶의 당면 과제였다. 구차한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지식인으로서 경제적 기반은 관직을 통한 녹봉이 최선이었기에 백거이는 좌천의 모욕과 母에 대한 윤리적 비난여론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관직을 놓지 않았다. 소를 팔아 대학을 보내고 오직 그 자식만이 집안을 일으켜 줄 거라는 60-70년대 우리 시골의 부모님의 기대와 그 무거운 기대를 짊어지고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한 후 시대의 부조리를 알아버린 청년, 출세와 양심의 부름 사이에서 고뇌와 번민으로 푸른 청춘을 하얗게 지새우던 힘든 나날들. 우리네 평범한 젊은 날들이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백거이도 그런 평범한 지식인이었다. 평범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와 강주부사로 좌천되었을 때 지은 비파행 가운데 몇구절을 살펴보자.

歸來池苑皆依舊 귀내지원개의구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 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류여미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불루수  이들을 대하고 어이 아니 눈물 지리.

春風桃李花開日 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엽낙시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섭만계홍부소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어낼 사람 없네..........

 

피난길에서 生과 死의 길로 갈리어 헤어져 버린 사랑. 다시 돌아온 궁궐은 그대와의 추억으로 가득하다. 꽃 피고 지는 계절은 변함없이 다시 돌아오고 그대와 함께 한 이 곳 역시 변함 없건만 오직 그대만이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쓸쓸함, 가슴 먹먹함.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대임을 알기에 나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臨別殷勤重寄詞 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양심지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천상에서 나의 아리따운 그녀가 전해온 말, 비익조가 되고 연리지가 되자던 둘만이 간직한 우리의 맹세. 유구하다는 천장지구도 언젠가 다함이 있겠지만 우리의 이 슬픈 사랑의 한은 다함이 없을 터, 애절하기 한이 없다.  현종과 양귀비의 비윤리적 모습은 차치하고 장한가 그 한 수는 애절하기 짝이 없는 사랑시이다. 젊은 시절, 사랑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던 그 때의 그 열정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아니 그러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장한가를 읽다보면 이 가을, 가슴 한 켠이 아련히 싸~해지는 그런 그리움을 만나게 된다.

 

굵은 현 소리는 마치 모진 비바람 소리와 같고, 작은 현 소리는 마치 속삭이는 소리와도 같구나.
비바람 소리와 속삭임 소리가 섞여 어울리니 마치 크고 작은 구슬들이 옥쟁반에서 굴러가는 소리와도 같네.
비파 소리는 꽃 사이에서 들리는 구성진 새소리 같았다가, 또 마치 빙하 아래서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나지막하여 목메여 끊겼다 이어지는 소리같네.
응결된 물줄기처럼 비파 소리도 응결되고, 응결되여 원할하지 못한 소리가 점점
끊기니 사무치는 원한과 한이 암암리에 번성하는것 같구나.
이 순간 소리없는 것이 오히려 소리가 있는것보다 더 감동을 주는구나.
갑자기 은 항아리가 깨지고 물이 사방에 튕기듯이, 또 마치 철갑 옷을 입은 기마병이 칼창으로 싸우는 소리와도 같네.
곡이 막을 내리자 그 녀는 현의 중심에 손을 두고 네개의 현을 튕기니 마치 직물이 찢기는 소리와도 같네.
배의 동서쪽 사람들 모두가 조용히 경청하고 있고, 강물에 비추어진 가을 달빛 그림자만 보이는구나. 

大弦浑宏悠长嘈嘈如暴风骤雨;小弦和缓幽细切切如有人私语。
嘈嘈声切切声互为交错地弹奏;就像大珠小珠一串串掉落玉盘。
琵琶声一会儿像花底下宛转流畅的鸟鸣声,一会儿又像水在冰下流动受阻艰涩低沉、
呜咽断续的声音。好像水泉冷涩琵琶声开始凝结,凝结而不通畅声音渐渐地中断。
像另有一种愁思幽恨暗暗滋生;此时闷闷无声却比有声更动人。
突然间好像银瓶撞破水浆四溅;又好像铁甲骑兵厮杀刀枪齐鸣。
一曲终了她对准琴弦中心划拨;四弦一声轰鸣好像撕裂了布帛。
东船西舫人们都静悄悄地聆听;只见江心之中映着白白秋月影。

가을 호숫가에 배 한 척을 띄웠다.  멀리 강주로 좌천되어 나날이 울분과 시름이 깊어 맑은 달 아래 술이나 한 잔 하고자 마련한 자리다. 풍류를 즐기기엔 악기 하나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지독한 촌 구석이다. 그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범치않은 비파소리. 그 주인을 불러 한 곡 청한다. 옥쟁반에 구슬 굴러가는 소리, 지절대던 새소리와도 같던 것이 응결된 한을 담아 빙하 속에서 쏟아지는 폭포소리, 은항아리 깨지는 소리,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소리로  변한다. 사무치는 원한을 일깨우듯 비파 소리는 창칼이 부딪히는 전장의 한 가운데로 나를 데려가는구나. 가슴 속 아픔을 갈기갈기 헤집으며 그렇게 연주는 끝났다. 멍한 채 주위를 둘러보니 가을 밤 잔잔한 호수면은 무심한 달빛으로 휘황하다. 듣고 있던 이 모두 고개를 숙였고 내 얼굴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비파행을 읽으니 내 귓가에는 보지도 못한 비파 연주가 들리고 그 연주 소리 따라 나도 같이 눈물 짓는다....

 

이 가을, 시 읽기 참 좋은 계절이다.

 

 

 

댓글 1
  • 2020-11-18 01:01

    평범한 천재^^ 함께 계속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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