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 세미나] 슬픈열대 첫시간

뚜버기
2022-01-0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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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책 두 권을 읽는 세미나 첫날.

참여하신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마치 문탁과 파지사유 세미나 대표들의 모임 같았다. 동양고전, 하이데거, 영화인문학, 단짠 글쓰기, 일본어셈나, 에코프로젝트...또 모처럼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된 르꾸흐쿠 선생님까지. 신선한 조합의 세미나, 앞으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까?

 

이날 범위는 1부에서 3부. 철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시골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젊은 레비스트로스가 어떻게 인류학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는가의 이야기가 마르세이유에서 리우데자네이루를 거쳐 상파울루까지 이르는 뱃길을 따라 펼쳐졌다. 그 사이에는 이차대전 중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를 가까스로 탈출하여 서인도 제도에서 영화같은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간신히 뉴욕에 도착하게 되는 모험담?도 곁들여진다.

르꾸쌤 말처럼 딱딱하고 논리가 치밀한 과학적 글만 쓸 것같은 저자가 시각적 묘사가 뛰어난 글을 썼다는 것은 의외였다. 읽다 보면 눈에 보이는 듯할 뿐 아니라 냄새마저 풍기는 듯할 때도 많았다. 흥미로웠다는 평도 있었지만 당황스러웠다는 평도 있었다. 눈앞의 풍광을 세필화 그리듯이 묘사하다가는 회고담으로 빠지는 듯 하더니 어느새 비판적 사유가 슬쩍 끼어든다. 문학책인지 사회과학책인지 어디에 초점을 맞춰 읽을지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대서양을 건너는 뱃길을 따라가는 순간순간 저자는 구조주의적 사유의 면모를 드러낸다. 힘의 탐구라는 주제에서 원주민사회의 이니시에이션 의례에 대해 쓴 부분(143)이 있다. 성년이 되는 젊은이들은 사회제도의 경계 끝까지 나아가서 마법적인 힘을 얻어 돌아온다. 힘을 얻었다고 인정되는 만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띠우쌤은 단지 사회의 요소라는 수준을 넘어선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말할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제도와 풍속들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건가 라고 레비스트로스는 묻는다. 정태적인 사회에서 동적인 힘은 어떻게 유입되며 작동하는지 보여주는구나 맞장구 치는 순간 그건 피상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허를 찌른다. 개인이 가르침을 받은 것도 집단이며 수호신에 대한 믿음도 집단에서 만들어 놓은 일이고, 또 사회에 둘러싸여 있을 때 거기서부터 벗어나려면 절망적인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가르친 것도 사회라는 것이다. 유럽 사회에서도 젊은이들이 먼 이국땅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식으로 일종의 성인식을 경과하기도 한다. 서구근대사회도 남미원주민 사회 사이에 구조의 동일성이 있다는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120쪽에서 비슷한 인간유형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어떤 사회적 기능을 하는가를 고찰해 볼 때 그들 사이에 등가체계를 설정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인간을 지나치게 틀에 가두고 보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었다. 레비스트로스가 원시와 문명 사이에 차이가 아닌 보편성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었을까라는 의견도 나왔다

 

레비스트로스는 세 스승으로 프로이트와 지질학, 마르크스를 꼽는다. 마르크스에게 배운 것은 사회과학의 방법론인데, 그 방식은 경험에서 분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리학이 그렇듯이 사회과학도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라 모델을 설정하고 실험적 검토를 거쳐 경험적 차원의 문제 해석에 적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171쪽) 하지만 과연 사회과학이 그런 학문인가?라는 이견이 제기되었다. 현실의 사건과 체험 없이 모델링이 가능한가라는 점에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마르크스도 영국노동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보면서 자본론을 쓰지 않았냐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체험과 실재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하는 현상학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 같은 맥락인 것 같다. 그는 실재와 체험 간의 통로는 불연속적인 것이어서 “실재에 도달하려면 모든 감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객관적 총합 속에서 후에 되찾을 각오를 하고, 우선 체험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관서의 환영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지닌 실존주의를 그런 의미에서 정당한 사고에 반대된다고도 말한다(172). 저 유명한 사르트르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비판이 떠오른 대목이기도 하다. 주체의 강조와 그에 따른 역사의 발전이라는 논리가 서구의 자민족 중심주의로 귀결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이 바탕이 되는 것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레비스트로스의 이런 논지에는 지질학과 프로이트 정신분석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합리성을 넘어서 더욱 중요하고 보다 유효범위가 넓은 영역이 있다는 것을 그는 두 학문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사실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은 무의식이나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심층/지층을 떠올리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어갈 수 있다 ㅠㅠ)

 

자기 비판적인 시선을 떼지 않는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리스펙도 있었다. 구조주의자의 사유를 곳곳에 드러내면서도 바로 이어 모호함과 이율배반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배치하는 것들이 그의 학문적 여정이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해 갈 것인가를 예감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이건 무슨 맥락에서 나온 얘긴가 싶은 부분도 많았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함께 읽어나갈 시간들이 무척 기대된다!

 

뒤로 갈수록 메모를 못 하고 놓친 얘기가 많습니다. 혹시 이 얘길 빼먹다니 싶은 내용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슬픈 열대>를 세 번 더 읽고 <야생의 사고>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다음 시간은 4부와 5부이고 발제는 진달래(4부)와 달팽이(5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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