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문학 S3]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첫번째 후기

곰곰
2019-11-18 10:34
284

예전에 엄마와 선물 답례에 무심한 사람들에 대해 뒷담화를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분명 어떤 대가를 바라고 선물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쁘게 받기만 하고 (지속적으로) 아무 답례가 없으니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다른 누군가는 그런 물건을 아는 사람끼리도 돈을 주고 사고 팔기도 한다는데, 엄마는 그런 관계는 또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래저래 선물하는 재미가 없어진다고 투정하면서도 엄마는 또 선물할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거면 왜 선물을 하는 거냐, 선물은 답례를 기대하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답례 안해줘도 서운하지 않을만큼만 선물해! 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이건 말인지...방군지... 참... ㅋ)

 

그런데 정말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선물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이번에 읽은 책 나카자와 신이치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서 소개된 <어린 사환의 신>은 순수증여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이야기 속 국회의원 A씨는 어린 사환 센키치에게 연민을 느껴 자신을 완전히 감춘 채 보답할 수 없는 선의를 베풀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일로 인해 번민에 사로잡혔다. 그는 자신이 선행을 통해 상찬을 기대했던 것은 아닌지, 신만이 할 수 있는 순수증여를 자신이 흉내낸 것은 아닌지 자책했다. 저자는 이러한 혼란이 근대사회 안에서 증여가 처해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입장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근대인에게 교환의 바깥인 증여의 세계는 혼돈이 가득한 곳이다. 그렇지만 증여와 교환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은 교환의 원리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증여는 교환의 모체다. 지금의 교환 경제는 표면상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증여나 순수증여와 같은 불확정성을 포함한 활동을 움직이는 인간정신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엄마 역시 증여와 순수증여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켰던 것이 아닐까. 사실상 순수증여는 신적인 영역이고 인간으로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감정이었는데, 나는 왜 쿨하게 순수증여를 해주지 못하냐며 다그쳤던 셈이다...;;; 엄마의 불평은 순환에 대한 의무, '우주적 책임감'이 없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한탄이 아니었을까. ㅎㅎㅎ

 

세미나에서는 순수증여에 대해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완전히 별개의 신적 영역으로만 단정지을 수는 없겠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친밀한 관계에서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순간순간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증여의 상태를 넘어, 순수증여의 상태가 되면 '물'을 주었다는 사실도 받았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게 된다. 마치 그 사람이 '나'인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도 가능하다. 다만 습관적인 행함과는 구분될 필요가 있겠는데, 내 마음과 노력이 담겨 있었는가, 어떠한 기대없음에도 행복했던가 등등으로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사랑의 연결이라는 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우리는 통상 협소한 의미로 '경제'를 파악하려 하기 때문에 '경제'를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을 '사랑'을 결합시킨다는 아이디어에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경제 현상을 움직이는 것이든 사랑이든 둘다 인간의 욕망, 즉 인간의 마음 내면에서 나타나는 것이니 이들을 하나로 융합되는 전체로 파악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아주 생뚱맞은 시도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 더욱이 저자는 2001년 9.11 테러를 통해 목격한 불균형(비대칭성)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연결성', '전체성'을 이야기 했다고 하니, 그의 접근법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잘 몰랐지만,,, 그래서 왜 꼭 토폴로지로 설명하려고 하는걸까... 조금 억지스럽다고도 생각했었는데,  라캉의 마음구조 토폴로지가 20세기에 아주 유명했기 때문에 그것을 인용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증여가 양자론적 본질(확률구름 형태. 구름과 같은 힘의 유동을 가진 '물'로서 증여를 설명한다)을 가졌기 때문에 기존의 고전역학적 사고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양자역학적 사고가 요구된다는 주장도 재미있다. 신화학자가 얘기하는 새로운 마음의 과학이 궁금해진다. 

 

그 외에도 

  • 증여중심의 옛날 사회에서 '물'과 결합된 인격을 깍아내고 분리시켜 상품을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
  • 순수한 파괴의 포틀래치(순수증여)를 통해 사람들이 증여의 원리가 접촉하고 있는 어떤 절대적인 원리(순수증여의 원리)를 직감했다는 내용
  • 증여자 - 증여되는 '물' - 수증자까지 전부 해체되어 구별될 수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순수증여의 사상인 신란의 사상
  • '은밀하게 치러지는 동굴의 의식'형 사고는 쇠퇴해가고 무한증식의 '코르누코피아'형 사고만 발전해 나가는 것에 대한 위험성 등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후반부도 재미있겠지? 일단 그림보다 도식이 많이 보여서... 조금 걱정은 되지만...;;;;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첫 시간이었다. 멀리, 좋은데로 여행가신 띠우샘이 빠지셔서 아쉬웠지만, 달팽이샘과 나, 그리고 감기 몸살로 전날까지 몸져 누우셨다는 곰돌이샘과 무릎 염증으로 고생 중인 새은씨까지 모두 참석했다.(새은씨는 요양차 다음주엔 쉬기로 했다)

 

다음 시간에는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온다. 발제는 달팽이샘과 곰돌이샘이 맡아주셨다. 다음 시간에 뵐께요~

댓글 1
  • 2019-11-19 21:03

    사랑과 경제를 연관짓는다는 것이 마냥 이상하게만 여겨지지는 않을 정도,
    그러니까 그 둘이 연결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세미나만 되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어떤 순간에 우리는 사물에 마음을 담는구나!물건에서 마음을 감지하는구나!하고
    이 책을 떠올리는 순간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후반부 책 잘 읽어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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