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동의보감 미니에세이데이 후기

겸목
2021-08-22 22:11
321

5주간 도담샘의 동의보감 강좌를 들었고, 5주간 도담샘의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을 세미나했다. 월토, 주2회씩 만나는 나름 빡센 일정이었다. 이렇게 2분기는 하드트레이닝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2년 전에 기린, 둥글레와 도담샘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때 기린과 나는 둥글레의 속을 터지게 하며 설렁설렁 대충 읽었다. 도담샘이 참 글을 잘 쓰시는구나! 감탄은 했지만, 그때 나에게 와닿았던 부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책을 내가 다시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올해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2년 전보다 알아듣는 부분이 많이 늘어서 와닿는 부분도 많았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도담샘이 책에서 하신 얘기와 강좌에서 하신 얘기가 다르지 않는데, 확실히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책의 내용이 이해가 쏙쏙 됐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도담샘이 강조하신 부분이 다른 것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말로 풀어내는 내용이 훨씬 입체적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강의를 듣는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읽을 기회가 되면, 그땐 또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궁금하다. 이렇게 여러 번 읽힐 수 있는 책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인데, 동의보감과 도담샘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의 미니에세이는 현재 지금 각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워킹맘인 그믐은 밀키트로 식구들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마음에 쓰여 '곡기'를 정미하게 쓰는 일에 대한 에세이를 써왔지만, 그러기 위해 가사노동시간이 느는 것도 부담스럽고, 공부시간을 줄일 수도 없는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우리의 처방은 '대충대충' 해라였다. 더 잘하려 하지 말고, 그 많은 일을 모두 설렁설렁해야 그믐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시기인가 그믐에게도 여유있는 시기가 돌아올 때 그때 공부든 가사노동이든 정성을 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음양이 교대된다니, 바쁜 시기 다음엔 한가한 때가 돌아오지 않을까?  

 

동양고전을 오래 공부해온 기린은 정/기/신의 기와 맹자의 호연지기를 연결짓는 글을 썼다. 동의보감을 공부하며 예전에 공부했던 경전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는 소감과 함께 칠정이 맺히지 않게 하기 위해 호흡을 크게 하고 내 마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호연지기와 유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에서 얻지 못한 것을 기에서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을 가져와 마음과 기가 분리될 수 없다고 설명해줬는데, 우리가 동양고전에 익숙지 않아 기린의 문제의식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은, 현민, 초희 청년 3인의 글에 대해서는 에세이발표 전에 문탁샘의 호평이 있었다. 문탁샘은 정말 청년들을 편애하신다. 청년들의 표현 하나하나에 감격하시고, "우린 이제 그런 글을 쓰지 못할 거야!"라고 탄식하기도 하시는데, 나는 의견이 다르다. 글쓰기에 나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거야말로 '연령주의' 아닐까 싶다. 청년의 표현은 신선하고 중년의 표현은 상투적이라고 볼 일이 아니라, 조은, 현민, 초희의 표현이 새로운 것이고, 기린, 둥글레, 겸목의 표현이 상투적인 것일 것이다. 청년과 중년이 함께 공부하며 자꾸 서로에 대해 연령대로 구분지으러 하는 '습관'이 약간 마음에 안 든다. 나이에 따른 경험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공부가 되려면 '나이'라는 필터가 아니라 다른 필터로 서로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은은 주3일 일하는 서점일을 주5일 하고 있는 과로에 대해 토로하며 "쉬는 것도 연습이고 경험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에세이에 써왔다. 발표 후에 자신의 글이 너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있다는 자기 평가가 나는 참 좋았다.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닌 듣기 불편한 소리를 써올 조은의 다음 에세이가 기대된다.

 

현민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바쁜 일정과 불규칙한 생리불순을 연결지어 글을 썼고,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해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도 놀라운 발견이다. 자신을 가장 방치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고 살고 있을 텐데, 이걸 자각하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그래서 현민이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희는 배탈과 비위를 연결지어 글을 썼다. 알바를 구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읽으며, 요즘처럼 알바 구하기가 어려운 시절에 초희의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더 많이 됐다. 비위의 건강을 위해 '덜 생각하고 걷기'라는 처방이 주어졌는데, 걸으며 생각을 덜어가면 또 새로운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세상사가 빤한 것 같아도, 알 수 없는 게 세상사다. 일단 걸어보자! 초희야~

 

모로의 글을 통해 나는 '공황장애'라는 것을 비교적 자세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모로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원인을 알고자 명상을 하기도 하고 동의보감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병의 원인과 상태를 이해하게 됐다. 모로의 글을 읽으며 정말 질병이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좋기만 하고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는 문장에 공감했다. 좋은 것만 쫓아서 살려 했는데, 그때마다 나쁜 것이 발을 걸었다고 억울해했는데,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는 거였다!! 살다보면 다들 '도사'가 되는 시점이 한 번씩 있는 것 같다.

 

먼불빛님은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두려움'을 가지고 글을 쓰셨다. 발표후 두려움의 종류와 맥락이 다 다를 텐데 그것을 두려움으로 뭉뚱그려서는 파악이 어렵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먼불빛님은 사실 이번 에세이가 부담스러웠고 쓰기가 즐겁지 않았다고 실토하셨다. 장기프로젝트로 공부할 때, 우리가 한 번씩 느끼는 곤혹스러움이다. 일정상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럴 형편이 안 될 때 '내가 이 공부를 왜 했을까?'라는 원망과 '이건 누구를 위한 공부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이런 감정의 우여곡절을 겪어가는 것도 공부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며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니, 내가 원해서 선택한 공부일지라도 '꽃길'만 깔려 있는 게 아니다. 구비구비 고민이고 공부다.

 

둥글레는 최근 '콜록콜록 기침을 달고 사는 약사 둥글레'라는 수식어를 '폐를 중심으로 자기배려하는 약사 둥글레'로 바꿨다. 언제까지 기침을 달고 살아야겠냐는 자각이다. 그래서 최근 산에도 가고 풋샵도 한다. 확실히 예전보다 체력이 나아지는 것 같다. 둥글레의 건강이 일리치약국의 사활이 달린 일이기도 해서, 둥글레의 발심을 응원한다.

 

겸목은 왜 신장병이 걸렸을까 원인을 찾아봤더니, 수가 부족한 사주상의 문제뿐 아니라 '기교'에 눈이 멀어 '상화망동'의 시간을 보낸 것을 실토하는 에세이를 썼다. 기교보다는 기본기다! 이 당연한 걸 나이 오십이 넘어서 알았다. 이제라도 안 게 다행이다.

 

이렇게 다들 조금은 촉박한 일정 속에 동의보감을 마무리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공부한다. '몸'을 이렇게 건성으로 하고 '마음'으로 옮겨간다는 게 걱정된다는 현민의 의견도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떨어진 것이 아니니 우리는 '마음'을 키워드로 '몸'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아자아자 화이팅~

 

 

댓글 7
  • 2021-08-23 08:29

    하하하

    2학기 개강 준비도 못하고 팟캐스트 원고에 문학처방전에 양생칼럼에....뭔가를 계속 쓰고 있다는 겸목이 끝까지 뭔가를 쓰는군요.

    이렇게 겸목의 여름방학은 후딱 가버렸지만 인문약방은 아주 좋았시유. 겸목이 열일해서^^

     

    내가 청년을 편애하는가 아닌가...는 나중에 더 따져봅시다. 크하하하하핫

    (청년은 모르겠고 아가들은 편애해유. 요즘은 기현이 보구잡고 한결이 못 보게 되서 어쩌나 싶구 한서 보구시퍼요^^)

    • 2021-08-23 19:21

      찬결이요? ㅋㅋㅋ

      • 2021-08-24 09:20

        음...나 왜 이러니?ㅠ

  • 2021-08-23 09:08

    이토록 꼼꼼한 후기라니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겸목님의 예리한 시선으로 에세이를 한 번 더 읽어본 느낌입니다 ㅎㅎㅎ

  • 2021-08-23 19:22

    그러네 성의있는 에세이데이 후기네요~~

    후기로 읽으니 그래도 우리가 5주간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1-08-24 01:21

    '먼불빛님은 사실 이번 에세이가 부담스러웠고 쓰기가 즐겁지 않았다고 실토하셨다. '

    ==>저는 모든 에세이가 늘,언제나 부담스럽고, 힘겨웠고, 도망가고 싶었어요...ㅎㅎ 새삼스럽지 않죠..

     

    *후기 읽으면서 제가 에세이에서 쓰려고 했던 잡히지 않았던 맥락이 퍼뜩 떠올랐어요~ 감사!!

    *여기에 댓글을 달 이야기는 아니지만, 4회차 후기를 못올렸습니다ㅠㅠ..시간이 너무 지나버려..배째는 심정으로 패쓰합니다~ 죄송!!

  • 2021-08-24 13:22

    컴터의 소리를 켜지 않았는데, 사운드 지원이 되는 줄 깜놀했네요.

    겸목의 목소리가 좔좔좔~~~

    저는 겸목하곤 세미나를 처음하는데, 줌으로 손을 번쩍번쩍 들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걸 또 여기다 풀어놓으셨네요.

    이렇게 정리해주셔서 고마워요 ^^

    p.s.) 근데 저는 겸목의 '기교'라는 말은 아직도 잘 이해못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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