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해석학> 두번째 시간 B조 후기

새털
2020-06-23 13:48
279

푸른사자코, 코투, 매실과 한 철을 같이 공부하고 있다. 우리 네 사람은 서로 공통분모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한 편이라,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본다. 고3 딸과 지방근무하는 남편의 이야기로 자신의 애로사항을 표현하는 푸른사자코, 지난 겨울 들뢰즈강좌로 문탁에 처음 와서 푸코까지 공부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부분이 많은 코투, 일곱살 딸에 대한 육아와 자신의 일과 페미니즘 책읽기에 몰두하고 있는 매실과 문탁에서 주구장창 10년 동안 붙박이로 공부하고 있는 나. 우리의 토론시간은 이런 각자의 사정 속에서 푸코와 자신과의 연결지점을 찾으려는 노력의 시간이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푸코도, 어디까지가 지금의 이야기고, 어디까지가 각자의 개인사인지 뒤섞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넉 달째 입을 맞춰가고 있다. 이 새로운 조합이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뭐가 될라나?

 

지난 시간 우리가 열심히 이야기했던 부분은 세네카와 아우렐리우스의 편지에서 들어나는 스토아의 의식점검술과 요즘 유행하는 '셀프코칭'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이었다. 월 6만원의 비용을 내고, 코치와 함께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감정을 돌아보는 일을 신자유시대의 자기계발의 주체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시대 주식과 부동산에 목을 매고 과열된 사람들도 있지만, '소확행'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편안한 일상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방식이 셀프코칭이나 명상과 요가와 같은 프로그램을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 받는 방식이다. 스토아의 방식에서도 비용이나 대가를 지불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의식을 점검하는 자와 '사제/우정/사랑'이 뒤섞인 친분관계를 맺었다.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셀프코칭으로, 명상으로, 요가로, 북클럽으로 옮겨다니는 것이 문제일까? 우리는 이 점에 대해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음은 헬레니즘시대 유행한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 무지의 스승이 아니고 거친 말로 사람들을 일깨우는 전형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언변이 좋고 패션센스까지 갖춘 헬레니즘 시대의 지식인은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 유튜버나 인문학강사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우리가 많이 언급했던 '김미경TV'. 김미경의 화술에는 단지 화술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공과 안목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또 그런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 가르치려 들고, 혼내려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감응을 일으키는 화술. 그것은 무엇이 문제일까?

 

그리고 우리가 좋아했던 시간은 각자에게  '한 번도 되어 보지 못한 자기'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매실은 어떤 일을 끝마친 다음에 다른 일로의 전환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자신의 일인 디자인과 글쓰기를 동시에 척척 해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는 모두 그건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이고, 누구나 모드전환이 쉽지 않다고 위로했다. 그러니 모드전환의 기술을 익혀보는 걸로. 디자인+요가/글쓰기+집안일 같은 방식의 조합이 조금은 일상의 리듬을 원활하게 할 것 같다. 예민해서 일상이 힘든 푸른사자코는 무덤덤한 사람처럼 생활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고 자신의 예민함을 스스로 조절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코투님은 푸코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푸코의 책이 잘 읽혔으면 좋다고.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했다. 다들 얼마나 잘 쓰고 싶냐고 욕심이 많다고 했지만, 일단 나에게는 글을 쓸 공간이 없다. 그래서 현재 문탁을 내 공부방으로 쓰는 것이 나에게 자기배려술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더니 문탁샘 왈 '한 번도 되어 보지 못한 자기'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럼 무엇인가???

 

나에게 자기배려의 황금기라는 헬레니즘과 매니지먼트가 트렌드가 된 오늘날은 유사해 보인다. 현상만 유사한 것인지 그 본질이 유사한지는 모르겠다. "자기 실천은 자기 자신, 자신의 문화적 환경, 타인들이 영위하는 삶에 대한 점차적인 '비판행위'가 됩니다. " (131쪽) 최근에  '비판'이라는 키워드가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3월에 '비판이란 무엇인가'도 읽었었는데, 비판과 자유는 푸코의 자기배려술에서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댓글 2
  • 2020-06-24 11:22

    크게 두 가지가 이슈겠네요.

    첫번째는 그리스의 자리배려와 신자유주의의 셀프매니지먼트는 어떻게 차이가 나나?
    차이가 있다면 그 분절선은 어디에 어떻게 그어야 하나? -- 아마도 이건 모든 조에서 제기한 질문 같아 보입니다.

    요건, 계속 함께 논의해봅시다. 참고로 저는 현상이냐 본질이냐로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유형화를 해보는게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두번째는 '한번도 되어 보지 못한 자기'.......라는 '레토릭'인데.... 맥락이 이런 거지요?
    제정로마 시기의 자기배려는 자기실천인데 (고전기의 자기인식이라기보다는) 그 핵심은 교육-지식보다는 교정-자유에 가깝고 세네카에서처럼 내부의 악을 "추방하고 정화하고 지배하고 또 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하는 문제지요. 즉 자기교정을 통해 "단 한번도 그렇게 되어 본 적이 없는 자기 본래 상태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질문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세네카가 이야기하는 내부의 악은 무엇일까요? 그걸 교정해서 자기 본래의 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

    저의 독해는 이렇습니다. 고전기에는 이데아로서의 선, 상기로서의 자기배려(이게 자기인식이죠)가 특징인데 비해...이 시기에 와서는 악=파테이아를 물리치는 것, 결국 '아파테이아'에 도달하는 게 "단 한번도 그렇게 되어 본 적이 자기본래상태의 회복"이었다고.

    • 2020-06-24 13:56

      내부의 악을 물리치기를 읽고도 그것을 '단 한번도 그렇게 되어 본 적이 없는 자기 '와 연결시키지 못했네요.
      요즘의 자기관리를 내부의 악 물리치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고요.
      뭔가 알듯말듯 잡힐듯말듯 아리까리를 반복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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