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후기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겸목
2021-04-14 10:14
463

지난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에서 해러웨이를 마쳤다. 그 순간 일주일간의 긴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속이 시원하고 후련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주가 시작되어도 나는 이틀이나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냈다. 지난 주의 과로가 아직 안 풀렸기 때문이다. '과로'의 원인은 해러웨이 메모에 있었다.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번역이 좋지 않고, 내용도 단순하지가 않아, 독해가 쉽지 않으르라 예상했지만, 예상 밖으로 더 힘들었다. 세미나시간에 조원들에게 얘기했듯이, 마치 외국어로 토론하는 장소에 나만 혼자 못 알아들어서 애를 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뭔가 하나라도 내가 아는 단어가 나올까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그마저도 산산이 흩어지는 기분으로 책을 한 번 읽었다. 들인 시간에 비해 내가 얻은 소득은 너무 없고, 그렇다고 다시 읽을 엄두가 안나고, 다시 읽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이 몰려왔다.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우리 조에서는 <상황적 지식>과 최근에 치뤄진 보궐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오세훈 당선에 대한 박원순사건 피해자의 소감을 들으며, 그의 입장을 공감하면서도 씁쓸함이 드는 것이 당황스러웠다는 병아리님의 메모를 중심으로, 각자의 복잡한 심경을 이야기했다. '20대 남자 보수'의 프레임이 이번 선거의 판세를 결정짓는 것처럼 '과잉해석'하고 있는 래거시미디어에 대한 불만과 페미니즘선거에서 페미니즘은 왜 쟁점이 되지 못했는가 하는 한계, 그리고 왜 페미니즘진영은 정치적으로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는가, 그리고 도대체 박원순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라는 점까지 망라되었다. 

 

우리 조 세미나의 특징이 있다면, 해러웨이와 사랑에 빠진 지원이와 함께 세미나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세미나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 수 있음을 느낀다. 해러웨이에 대한 맥빠지는 얘기는 자제하게 되고, 뭔가 긍정적인 측면에서 토론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의 '애정'은 표현에 있어 강렬함이 있다.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뭔가 지원이를 붙잡고 있는 해러웨이의 매력이 하나둘 드러나게 된다. 보궐선거가 치뤄지기 전, 정의당 장혜영의원의 성추행사건이 있었고 이것은 박원순사건과 같은 사건으로 프레임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장혜영의원은 그런 식의 해법을 원하지 않았고, 사법적인 해결이 아닌 공동체적 해결을 희망했다. 가해자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정의당은 이번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가뜩이나 존재감이 없어지는 정의당의 입지가 이번 선거로 더 희미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정의당은 이번에 다른 해법을 보여주었다. 지원이는 이런 방식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탁샘의 강의에서는 상황적 지식을 체현하는 시력의 은유가 인상적이었다. 보통 시각은 주체와 대상을 구획짓고, 진리와 비진리를 구획짓는 '근대적 프레임'으로 소개된다. 근대는 다른 감각에 비해 시각이 우위를 점한 시대이다. 시각에는 착시현상도 포함되어 있어, 왜곡을 은폐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력의 체현을 제시한 해러웨이의 생각이 독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다'는 것은 항상 어떤 맥락 안에서 본다는 것이고, 그때마다 보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해러웨이는 강조한다. 그리고 문탁샘의 강의에서 알게 된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더 많이 보게 될수록 더 잘 보게 될수록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환기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시력은 부분적임을 아는 것! 이런 의미의 '상황적 지식'이다. 더 잘 보게 될수록 곧 완벽히 보게 될 것이라, 전체를 보게 될 것이라 추측하리라 예상되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해러웨이는 말한다. 더 잘 보게 될수록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아주 낯선 생각 같기도 하고, 이미 생활 속에서 우리는 이걸 알고 있는 것도 같다.

 

이런 '긴가민가'가 해러웨이를 읽는 내 독후감이다. 어찌 보면 아주 새롭고,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 같은 것! 그 미묘함에 나는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해러웨이는 유머러스하지만 함께 유쾌하게 웃지 못하는 나의 마뜩찮음은 해러웨이와 이별하는 순간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 마뜩찮음이 무얼까? 가끔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사랑한 프랑스영화감독 '바르다'와 해러웨이는 비슷하다. 그런데 왜 나는 바르다의 영화를 보면서는 깔깔 웃었고, 해러웨이의 책을 읽으면서 웃지 못할까?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데, 끝까지 나는 '좋다'는 말이 안 나온다. 그래서 해러웨이 생각을 가끔씩 해볼 것 같다. 그게 뭔가?하고......

 

댓글 3
  • 2021-04-14 11:25

    와~ 제 심정을 어찌 이리 정확하게 정리해주시는지요. 감사합니다. 겸목님. 

    저도 페미니즘 공부를 좀 더 한 후에 다시 꺼내볼 것 같습니다. 바르다와 해러웨이라...그래도 영상 속 두 분을 떠올리니 급 유쾌해지네요^^

  • 2021-04-14 13:26

    많이 힘드시져.  미투네요.  

    문탁샘 강의를 듣고 나면 그나마 '아~'하지만 마이 어렵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게 몬가.... 그래서 아직 정치적 단일화라는 건 꿈도 못꾸고 있는 건 아닌가,  정치적 단일화라는 게 가능은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페미니즘을 잘 모르겠어서요. ... 그저 센 언니들이 페미니스트인 줄 알았었습니다.

    해러웨이의 글은 잘못하면 오독할 가능성이 있음을 자주 느낍니다. 그 게 한 끗 차이일지는 모르겠으나, 상황적 지식에서 이야기하는 시력은 '전문가에 대한 오해'와 같은 이야기 아닌가, 하고 넘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다'는 것은 항상 어떤 '맥락' 안에서 본다는 것이고, 그때마다 보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라는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상황적 지식인 거고... 불교에서 말하는 '空'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근데, 이제 해러웨이가 끝이 아닌 시작아니었던가요 ???

  • 2021-04-15 05:40

    저한테도 헤러웨이는 좀 마이 어려웠는데요, 그러면서도 어딘지 익숙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감도 있었어요. 부분밖에 볼 수 없는 한계를 설명하는 방식의 어법과 유가들이 명이라 설명하는 방식/ 도가가 자연이 곧 법이다 라고 설명하는 방식 / 그러므로 전 이번에 해러웨이 읽으면서 언어로 설명하는 한계에 대해 좀 더 실감해 보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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