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슨 에세이데이가 아니다 이거슨 우정과 감응의 신화적 시간이어따!!!

문탁
2020-12-21 14:35
885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러분의 파이널에세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클릭을 하면서 인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샤~악, 샤~악... 양면으로 프린트가 되면서 에세이가 hp레이저젯프린터 위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프린트에서 나오는 게 에세이가 아니라 돈다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런 속물같은 생각이 들었을까요? 만약 내가 농부였다면 “튼실하게 여문 벼를 베는 것 같은 소리였다”거나 “논에 볏단이 그득해지는 느낌"이라거나..뭐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쩝! 어쨌든 전 막 부자가 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줌환경이 되면서 제 노트북 카메라가 후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명 각도를 바꿔라 렌즈를 닦아라 조언했지만 다 소용없었어요. 그러자 누군가는 아예 노트북을 바꾸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럴수는 없잖아요? 우현에게 추천받은 웹카메라를 구입했습니다. 그걸 노트북 위에 걸쳐 올려놓으니.....와우... 이건 흑백티비에서 중간단계 건너뛰고 바로 HDTV로 바뀐 것 같았어요. 노트북 화면, 하나 가득 내 얼굴이 커다랗게, 주름과 다크써클과 감지 않은 머리와..... 오 마이 갓! 오우 노우!!  결국 노트북과 웹카메라를 좀 떨어뜨려놓아야 했어요. 핸폰 삼각대를 꺼내서 웹카메라를 거기에 장착하니 좀 낫더군요. 그러다보니 조명을 새롭게 세팅해야 했고...어쨌든 저는 여러분의 에세이를 잘 읽고 잘 질문하기 위해 최선의 장비로 최선의 환경을 만들고 스탠바이했어요. 

 

 

이날 에세이발표자는 총 14명, 거기에 에세이 튜터였던 새털, 1학기 튜터였던 저. 이렇게 합쳐서 양생팀은 총 16명이었지요. 그런데 처음부터 갤러리가 엄청 많이 와 계신 거예요. 봄날, 지원, 요요, 유, 뚜버기, 느티, 초록, 진달래, 자누리, 여울아, 달팽이, 물방울, 토용, 우현, 초빈, 새은.........등 ...그렇게 30명 정도가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10시부터 4시반까지, 에세이데이에 함께 했어요. 와~~ 놀라운 일이었죠. 갤러리들께 진짜 감사드려요.

 

 

 

 

 

음...후기에서 각 분들의 에세이를 요약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글로도 그 현장에서 벌어진 감응을 전달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사실 에세이발표는 논문심사장과 비슷한 점이 있죠. 듣는 사람은 칼을 들고 디펜스 하는 사람은 방패를 들고 칼이 더 날카로운지 방패가 더 견고한지 겨룬다고나 할까... 그런데 엊그제 양생에세이데이는 좀 달랐습니다. (앗, 제가 코스모스한테 막 비수를 날리는 순간이 있기는 했군요. ㅋ)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칼도 방패도 내려놓고 서로의 삶을 함께 보살피는 공동-자기배려의 현장을 구성하고 있더군요. 에세이데이가 그럴 수 있다는 게 그게 줌으로도 된다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그런 느낌이  확실해진 건 아마도 다섯 번째 발표자였던 먼불빛님의 에세이부터였을겁니다. 샘은 자신이 혹시 ‘사연팔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자의식에 계속 시달렸다고 하셨지만, 그 자의식을 뚫고 나온 자기배려의 글쓰기는 정말 모든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단풍이 연거푸 연타를 날렸구요. (단풍아, 사랑한다!!)  정의와미소님, 그리고 초희, 거의 마지막이었던 라라샘까지.... 각자 얼마나 고군분투의 삶을 살아왔는지, 각자 어떤 바닥을 어떻게 쳤는지, 그리고 공부를 통해 어떤 깨달음 하나를 건져 올렸는지, 그 진솔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우리 모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눈가를 적셨고 줌 채팅창에는 응원의 글이 이어졌었어요. 우리, 쫌, 멋지더군요!!

 

 

 

 

 

아, 이 분들만이 아닙니다. 첫 타자였던 스르륵, 그리고 루틴, 둥글레, 코스모스, 무사, 인디언, 기린, 코투, 매실까지, 나아가 콩땅의 차마 쓰지 못했던 에세이까지 저는 모든 에세이가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마지막 에세이데이의 감동은 이미 준비되었던 것이더군요. 1학기 푸코 때도 모두의 에세이가 저는 좋았고, 사주명리학 누드글쓰기도 저는 너무 좋았고, ‘멍때리고 걷기 10주 프로젝트’의 모든 사람의 모든 포스팅이 저는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하여 그렇게 공부가 우정이 신뢰가 쌓여오면서 마지막 에세이데이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에세이데이 후기를 자처하면서 여러분에게 우정의 이름으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작한 실험적인 이 프로그램을 함께 돌보고 가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간병블루스를 빌어 사주명리 누드글쓰기를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걷기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주신 것들이 간병지옥을 통과하던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의 잔소리를 누구보다 많이 들었던 인문약방 동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다른 사람의 에세이를 봐주느라 자기 에세이를 못 쓴 새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새털하고 나하고는 손 잡고 파이널 에세이를 써야 할까봐요..

 

 

 

무슨 연말 시상식 소감같이 되어버렸네요. 우하하핫...

연말 연시 좀 쉬시고 2021년 양생프로젝트에서 다시 만나 뵈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몸(차이, 젠더, 포스트휴먼)과 마음(인류학에서 뇌과학까지)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럼 굿바이 말고 씨 유 어게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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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다시 들어와 사족을 남깁니다. 아무래도 글쓴이와 에세이제목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1. 스르륵 : <미치겠다, 파레시아>

2. 루틴 : <자기배려 공부는 -ing>

3. 둥글레 : <2020년 자기를 보는 글쓰기>

4. 코스모스 : <진정한 치유를 소망하며>

5. 먼불빛 : <자기배려의 공부>

6. 단풍 : <지금 여기 방점을 찍을런다>

7. 무사 :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프로젝트>

8. 인디언 : <요리하는 인디언, 글쓰는 인디언이 될 수 있을까?>

9. 기린 : <걸으면서 수행하다>

10. 정의와미소 : <나의 질병 연대기>

11. 초희 : <울고 싶으면 우세요>

12. 코투 : <몸의 일기>

13. 라라 : <외면하지도, 휘둘리지도 않고 가기>

14. 매실 : <나 자신이 된다는 것>

댓글 7
  • 2020-12-21 14:50

    좋았어요... 내년에 다시 만나용~~~

  • 2020-12-21 15:09

    후기 마지막 사진에서 빵 터짐~~ 슬픈 사진임에도 ㅋㅋ
    2020 양생 프로젝트에서 함께 했던 모든 동학 여러분^^ 함께 공부해서 좋았습니다^^
    저도 역쉬 "굿바이 말고 씨유" 입니다~~~

  • 2020-12-21 15:23

    문탁샘이 에세이데이를 이렇게 보내시다니 ㅎ
    그 칼을 무디게 만든 여러샘들의 진정성이 감동이었던 양생프로젝트였어요~^^

  • 2020-12-21 15:24

    “새털하고 나하고는 손 잡고 파이널 에세이를 써야 할까봐요.”
    “넵. 이번에는 저희가 기꺼이 봐드리겠습니다^^”

    공부가 우정, 연대가 되는 경험을 선사해주신 샘들께 감사드려요^^

  • 2020-12-21 16:32

    시상식에는 미용실 원장님께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해요! 내년엔 미용실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하고 에세이 발표합시다~우아하게♥

  • 2020-12-21 16:56

    ㅎㅎㅎ이번 송년회에 헤어와 메이크업을?

    2학기되면서 깊은 연대감같은 끈끈함이 생긴거 같아요~ㅎㅎ
    너무나 좋았습니다^^
    모두 감사드려요~~

  • 2020-12-21 21:43

    저 역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카메라를 끈 덕분에 편한 자세로 타이핑을 할 수 있어 제 생각을 그때그때 문자로 전하니까 에세이에 몰두하기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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