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프로이트 <성욕(sexuality)>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문탁
2020-04-07 20:17
559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  (1905)

Three Essays on the Theory of Sexuality

 

 

 

 

 

 

 

"<꿈의 해석>과 더불어 인간의 삶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독창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히는 이 글은, 1905년 처음 발표된 이후 20여년에 걸쳐 수정 보완되면서 판을 거듭한 유명한 작품이다. 프로이트는 1890년대 중반 이후 어린아이의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신경증과 신경쇠약의 병인으로 성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임상을 통해 관찬한 그는, 이후 정신신경증의 원인에도 성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초기의 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관심은 다분히 생리학적이고 화학적인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1897년, 자기 분석을 통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견과 그 이전까지의 히스테리를 설명하면서 거론하던 유혹이론, 즉 이런 시절 어른의 개입으로 인한 성적 유혹의 외상적 결과가 히스테리로 나타난다는 이론을 파기함으로써 그는 새로운 성이론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결국 그의 섹슈얼리티 이론은, 성적 충동은 외부의 자극 없이도 어린아이들에게 정상적으로 작용하는 충동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출발한 것이다. " (해설)

 

 

 

 

 

 

“나는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이 글이 처음 발표된 이후 불러일으킨 파장과 그에 따른 평가를 쭉 지켜보았다....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우선 먼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매일매일의 임상관찰에 근거한 것이고, 게다가 정신분석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을 덧붙여 깊이와 과학적 의의가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이 철저하게 정신분석적 연구에 근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생물학의 발견들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나는 일반적인 성생물학에서 끌어낸 것이든, 아니면 어떤 특정 동물의 성생물학에서 끌어낸 것이든 간에 어떤 선입관도 이 글에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이 글은 정신분석의 기법을 활용하여 밝혀 낸 인간의 성적 기능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글을 쓸 때 나의 목표는 정신분석학 연구가 인간 성생활의 생물학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밝혀줄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분석의 방법이 생물학적 고려에 근거한 여러 의견이나 발견과 크게 다른 의견이나 발견들을 보여 준다 해도 굳이 그 방법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1914년 10월, 3판 서문 중)

 

cf- <성의 역사 1> p61~62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글에 포함된 일부 내용-이 처음부터 정신분석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급기야 정신분석의 ‘범성욕론(pansexualism)’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내어 비난했으며, ‘모든 것’을 ‘성’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무분별한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쇼펜하우어가 인간의 행동은 어느 정도 성적 충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지 상당한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전 세계의 독자들이 그런 놀라운 정보를 그들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기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섹슈얼리티 개념을 확대한 것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어린아이의 분석과 이른바 성도착자들의 분석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더 우월한 위치에서 그것으로 인해 정신분석을 경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정신분석의 확대된 섹슈얼리티가 신성한 플라톤의 에로스에 얼마나 가까운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1920년 5월, 4판 서문 중)

 

 

 

 

댓글 3
  • 2020-04-07 20:28

    콩땅님 후기를 보고....지난 시간 강의가 좀 번다했구나...라는 반성이 들면서.......더불어 다시 요약해야겠다는 ‘의지’!!가...ㅋ

    =====================================================================================================

    보통 이렇게 말해지지요. 부르주아 사회가 등장하면서 중세의 성적 솔직함, 성적 떠들썩함은 전경에서 사라졌다고. 부르주아가 인간의 신체를 쾌락의 신체에서 노동력의 신체로 변화시키려구 그렇게 한 거라구. 드뎌 성적 억압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구.

    그런데 푸코는 말하죠. 성적 억압, 그거 진짜야? 그거 일종의 ‘썰’ 아냐?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적 억압이 맞냐, 틀리냐가 아니라 맞든, 틀리든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그런 ‘썰’을 풀기 시작했는지를 살피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뽀인트는 ‘썰’의 내용이 아니라 ‘썰전’ 전체의 그림입니다.

    물론 우리는 17세기 이래 줄기차게 이야기되었다는 서구의 그 썰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아는 게 있지요. 바로 프로이트의 썰! 그가 만들었다는 무의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런 건 대부분 대충이라도 압니다.

    그런데 프로이트에 대해선 또 보통 이렇게 말해지잖아요? 성을 ‘선데이서울’에서 구원한 자라구. 성을 음침한 곳에서 밝은 대낮으로 가져와 진지한 학문적 담론으로 만든 사람이라구. 네 맞습니다. 그가 쓴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 /Three Essays on the Theory of Sexuality>(1905)는 ‘성 과학’에 대한 최초의 저서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프로이트의 ‘썰’ (그게 ‘섹슈얼리티’입니다^^)은 수세기에 걸친 ‘썰전’의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요? 억압에서 해방으로? 혹은 무지에서 진리로? 정치적으로는 해방적 기획이고 과학적으로는 합리성의 증대일까요?

    하하 그렇게 말한다면 푸코가 아니죠... (이제 이 정도의 감은 잡으셨죠?) 푸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합리성의 증대가 아니라 어느 순간 썰전의 구도가 바뀐 것이라고. 원래 이 썰전은 누가 구원받느냐를 다투면서 출발했는데 어느 순간 누가 옳으냐를 겨루는 것이 되었다고. (음...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는데...어느날 갑자기 노회찬의원이 "이제 불판을 바꿀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판 자체가 쟁점이 되었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 과정은 옳은 것을 밝히겠다는 신념(지식의 의지)뿐 아니라 옳은것이 너무 위험하니까 감추겠다(비지식의 의지)는 전략들이 동시에 구사되는 과정이었고,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판에 맞게끔 낡은 무기(고백)가 엄청나게 혁신됩니다.

    그런데 한편에선 힘주어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조심스럽게 감추기도 하면... 아, 진짜 뭐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신박해진 무기가 열일하기 시작하면 또 그 무기를 통해 이겨야 하는 뭔가가 진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구요... 뭔가가 진리심급이 되는 거지요. (요게 바로 '진리놀이')

    그러자, 그 순간부터 진실(truth)과 진실의 금지 혹은 억압(false). 다시, 억압으로부터 해방(truth)이라는 썰도 비로소 가능해지는거죠. (뭐야? 이거 뫼디푸스의 띠야? 이게 특정 '썰'을 '썰전'-계보학-속에서 위치시키는 푸코의 방법^^)

    이게 지난 시간에 우리가 다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

  • 2020-04-08 13:14

    저는 권력이 실존하지않는 성의 진실에 마치 진실이 있는것처럼 실재성을 부여하면서 새로운 색슈얼리티를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진리게임으로 이해했는데,

    샘의 설명으로는,
    성에 대한 옳은 진실을 밝히겠다는 신념과 그 진실이 위험하니 감추겠다는 신념들이 함께 이야기되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성에 대한 진실이 있는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진리게임이라는 것이지요?

    아.....
    저도 진정 이해하고 싶습니다.....ㅎㅎㅎ

    • 2020-04-08 13:56

      그대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큰 맥락에서는 같은 이야기일 듯.
      다만 그대의 표현이... 뭐랄까...약간 애매하다고 느끼고 있음^^
      우리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어린아이의 섹슈얼리티가 '실존하느냐', '실존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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