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10] 스즈카공동체의 비밀: 경제는 마음에 기대어 있었다

봄날
2020-09-24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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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읽으면서 그곳을, 그곳의 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를 더욱 자극했던 것은 우리보다 앞서서 스즈카를 방문했던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친구들은 많은 영감을 얻은 듯, 쓰는 말이나 눈빛들이 달라져 있었다. 그들이 공들여 번역해준 <사람을 듣다>라는 작은 문건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우리의 지형과는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공동체 친구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본격적으로 국경이 막히기 직전, 우리는 인천에서 나고야로, 나고야에서 다시 배로 스즈카에 첫발을 디뎠다. 우리가 그곳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고, 어떤 것을 알게 됐을까.

 

월급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들

스즈카 커뮤니티를 알아보려면 그 공동체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야마기시 공동체를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야마기시 공동체는 1960년대에 일본의 농촌에서 야마기시 농부가 주창한 야마기시즘에 따라 생활하는 집단이었다. 야마기시즘을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생활 면에서 ‘무소유’ ‘공용(共用)’을 실천한다. 한국에서는 신안마을에서 ‘돈이 필요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이라고 야마기시즘을 체현하고 있다. 이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살던 몇 사람이 나와 스즈카에 자리잡은 것이 스즈카 공동체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즈카에 한 사람, 두 사람씩 모여 산 것이 어언 이십여 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스즈카에 도착한 첫 날, 우리를 맞이한 데루코씨와 기타가와씨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 어떤 일정으로 지낼지 여러 가지를 알려줬지만, 나의 관심은 그저 ‘어머니 도시락(오후꾸로상 벤또)’뿐이었다. 일본은 그야말로 ‘도시락 천국’이다. 수퍼든 편의점이든 어딜 가도 갖가지 도시락이 즐비하다. 그러니 도시락을 스즈카 공동체의 주력 사업으로 잡았다는 것은 내부에 전문적인 경영이 탁월한 사람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스즈카의 어머니 도시락은 인근에서 품질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고 한다. 어머니 도시락에서는 약 45명 정도가 일하고 있었고, 스즈카에 유학 온 사이엔즈 아카데미 학생들도 많이 일하고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스탭의 일원인 젊은 키타가와씨(첫날 우리를 맞아준 기타가와씨와 젊은 기타가와씨는 부자지간이다)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어머니 도시락이 하루 1,500개를 생산하는 ‘번듯한’ 회사지만, 설립 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그 차이를 알기 어려웠지만 사람들은 아마도 자본주의적 경제체계 안에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사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꽤나 고민을 한 것 같다. 그의 말로는 어머니 도시락만의 회사체제를 만들어가는데 꼬박 6개월 동안 매주 지리한 회의를 계속해야 했다.

어머니 도시락에서 사람들은 하루 평균 4시간 일하고 일정한 급료를 받는다. 월급이 얼마냐고 묻자 기타가와는 머리를 긁적이며 잘 모른다고 했다. 얼마를 받으며 일하는지를 모른다니? 자신이 받는 월급에 따라서 자신의 삶도 위치지워지는 것 아닌가? 자기 월급을 잘 모르면서 회사 일을 한다는 건, ‘돈’ 말고 회사를 다니는 뭔가 다른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스즈카 커뮤니티의 또 하나의 경제 축인 ‘스즈카팜’에도 들렀다. 여기서는 15명이 일하고 있는데 모두 약 15헥타르(약 45,000평)의 농지를 무상으로 빌려서 경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겨우 두 고랑의 밭을 얻었을 뿐인데, 그 넓은 농지를 무상으로 빌리다니. 일단 농사의 스케일은 우리보다 엄청나게 크다는 게 부러웠다. 스즈카팜의 작물이 쌀이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외였다. 대개 공동체의 작물은 야채류와 과실로 생각했었는데 쌀이라니. 그런데 스즈카팜의 주요 작물이 쌀이 된 데는 딱 한 사람의 희망이 작용했다고 한다. 쌀농사의 중심은 이나(稻)씨인데, 이나는 일본어로 ‘벼’를 뜻하는 글자이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나씨는 스즈카에서 쌀농사를 지으면서 성을 바꾼 거 아닌가요?”라고 물었고, 스즈카팜의 안내를 맡았던 다카사키씨는 웃으며 원래 성이 그렇다고 했다. 이나씨는 스즈카로 들어오면서 자신이 쌀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스즈카팜에서 이나씨만큼 쌀농사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는 사람은 없었고, 그렇게 해서 스즈카팜은 매년 40톤의 쌀농사를 짓는 농장이 됐다. 한편 다카사키씨는 야채의 싹을 키우는데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둘러본 하우스 한쪽은 온갖 야채의 싹들이 아우성이었다. 스즈카팜의 작물 중 쌀 다음으로 야채가 많이 생산되는 것은 다카사키씨 때문이었을까? 한 곳의 온실에는 용과(드래곤플라워)나무가 또아리를 틀며 자라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디에고라는 청년이 키워보고 싶다고 해서 만든 온실이었다. 나는 ‘이건 뭐지’ 싶었다. 아무리 경작지가 넓다고 해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인데, 자기가 하고 싶다고 깃발만 꽂으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키울 수 있다는 그 ‘발랄한’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말이 나왔으니 스즈카팜에서 조금 떨어진 사토야마라는 숲에서 일하는 노인의 이야기도 해야겠다. 노인은 사토야마에서 숯을 구우며 생활한다. 일년 내내 숯을 굽고, 때로 산 속에 있는 작은 작업장에 아이들을 불러 숲 체험 놀이를 하게 한다. 노인도 젊었을 때는 회사를 다니며 찌들어 살았다고 한다. 높은 소득을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온 노인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 숲의 삶에 대해 노인은 한 마디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스즈카 커뮤니티를 지탱하는 이른 바 ‘경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떤 공동체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립을 이루지 못하면 외부의 충격에 금세 허물어질 수 있다. ‘경제’가 다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런데 내가 스즈카에서 본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제’라는 관념을 넘어서거나 비껴나간 듯 했다. 우리는 어머니 도시락에서도, 스즈카팜에서도 몇 시간 일하고 얼마를 받느냐고 물었고, 그것이 만족스럽냐고 물었고, 그렇게 해서 현상유지가 되냐고 물었다. 회사라거나 사업에 대해 말할 때,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여기에는 투자의 개념, 이익의 개념을 넣지 않고는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우리의 어떤 질문에도 스즈카 사람들은 딱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대답을 피한다기 보다는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그래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하는 것 같았다. 스즈카에는 그렇게 ‘돈’을 무시하면서도 살 수 있는 든든한 뒷 배가 있다는 것일까? 너무 당연한 질문을 너무 낯설게 받는 사람들. 스즈카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상한 나라 같았다.

 

가난함고달픔의 차이

우리가 하는 질문이 매번 낯선 것이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는 우리가 어떤 고정된 생각에 갇혀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빠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은 ‘검소한 삶’과 ‘마음’이었다.

문탁에서 했던 여러 가지 공부를 통해, 나는 최소한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여야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에 야마기시즘을 거친 스즈카 사람들은 소박함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낸 일정동안 자주 같이 했던 기타미치씨의 가방은 낡다 못해 가방끈이 거의 끊어질 것처럼 너덜거렸다. 가죽과 패브릭 작업을 하고 있는 마을작업장 월든의 친구들은 그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면 가죽으로 끈을 새로 만들어 달아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낡은 가방을 보면서 우리가 안타까워 하는 것을, 기타가와씨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쓰는데 하등 지장이 없는 가방을 두고 우리는 왜 안타까운 시선을 던졌을까? 나는 여기서 ‘가난함’과 ‘고달픔’을 구분했던 장자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장자가 누덕누덕 기운 거친 베옷을 입고, 삼끈으로 얽어 맨 신발을 신은 채 위나라 왕의 앞을 지나갔습니다. 왕이 보고 물었습니다.

“선생은 어찌 이리 고달픈 모습입니까?”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닙니다. 타고난 덕과 도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고달픈 것입니다. 옷이 해지고 신발에 구멍이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닙니다.”(<낭송장자>중에서)

 

‘가난함’과 ‘고달픔’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는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삶의 풍요로움이라는 차원에서는 질적으로 다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고르게 가난한 사회’의 모습은 어쩌면 억지로 물적인 결핍을 상정하고, 그것을 일종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박속에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으니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스즈카에서는 검소함이 일종의 덕(德)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보였다. 스즈카 커뮤니티의 어디를 봐도 물건들은 하나같이 오래되었고, 물질은 일체의 ‘넘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난하지만 고달프지 않고, 가난하지만 구차스럽지 않은 삶’이 어떻게 스즈카에 자리잡았을까.

 

마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스즈카를 방문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나눠받았고 양보받았다. 먹는 것에서부터 자는 것, 돌아다니며 설명듣는 것, 위로받고 관심받는 것에 이르기까지 ‘넘치는 것’ 뿐이었다. 넘침이 없는 소박한 삶에서 넘쳐 흐르는 나눔은 어떻게 가능할까? 돌아보면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이방인들에게 기울이는 끝없는 ‘마음 씀씀이’였던 것 같다. 마음은 쓰면 쓸수록 풍요로워지며, 그것은 물적인 결핍 혹은 구차스러움을 단번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스즈카 사람들이 무엇보다 ‘마음’에 주목하는 것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요체가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즈카 사람들은 이 ‘마음’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의 지향을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이같은 사회가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탐구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식을 스즈카 커뮤니티는 ‘사이엔즈(Scientific Investigation of Essential Nature Zero)’라고 이름붙였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인간의 본성을 알아내는 구체적인 방법을 ‘사이엔즈 메소드’라고 명명했다. 사이엔즈 메소드를 통해 스즈카 사람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 즉 ‘본심’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생각과 언어라는, 일종의 버퍼링을 통해서만 자각하기 때문에 이 버퍼링의 과정에서 실제가 왜곡되기 쉽다. 정작 중요한 마음은 가려져서 보기 어렵게 된다. 그것을 걷어내고 실제의 사람을 마주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번 걷어냈다고 해서 그 마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사토야마 숲의 노인이 이야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요새 숲에서의 생활이 좀 힘들어졌어요. 사이엔즈 연구소에서 코스를 다시 밟으려고 해요.” 스즈카 사람들도 삶 속에서 수시로 그 마음을 잃고 힘들어한다. 요컨대 이 본심이라는 것은 끝없이 애프터 서비스를 받아야 다시 드러나는 것이다.

 

마음에 기댄 경제

짧은 기간동안 우리는 환대하는 마음의 폭탄을 맞았다. 지금도 우리가 나고야로 돌아가는 배를 타고 항구를 떠나 한참 후까지 마치 춤을 추듯 아련해질 때까지 팔을 세차게 흔들어주던 타케모토씨의 모습이 기억난다. 눈물이 눈물을 부르고 웃음이 웃음을 부르고 아쉬움이 아쉬움을 불러냈다. 나는 마음을 쓰는 것에 인색했던 내 자신을 발견했다. 마음의 역량은 쓰면 쓸수록 커진다는 사실을 먼 곳에서 확인했다. 스즈카에 다녀온 지 반 년이 지난 지금, 벌써 애프터 서비스가 필요할 정도로 우리는 다시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 마음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여기는 스즈카가 아니니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저 그들이 우리에게 해준대로 섬세하고 따뜻한 눈길을 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듯 하다. 나에게도 그렇고 주위의 친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 밥은 먹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말이다. 나는 처음에 스즈카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고 싶어 스즈카를 찾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시도가 접근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경제는 따로 있지 않았다. 최소한 스즈카에서 경제는 ‘마음’에 기대고 있었다. 우리의 질문이 자주 허공에 머물렀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어머니 도시락에서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모르는 청년에게 우리는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물어야 했다. 스즈카팜에서 내가 가졌던 의문도 스즈카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농사는 농사를 짓는 사람의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어떤 농사를 짓는 것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드는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이라면 돈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돈에 얽혀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은 마음을 알려고 시도하는 순간 풀려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야 말로 공동체의 모든 것을 묶는다. 우리가 경제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한데 묶어버린다. 마음이 먼저인 회사, 농부의 마음이 먼저인 농장, 그 마음을 지속적으로 재발견하는 방법을 가진 곳이 스즈카 사회이다. 현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돈벌이 경제는 여기서 무장해제된다. 소박하지만 구차스럽지 않은 삶의 형식은 오히려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소박한 삶과 마음이 어울려 내는 이중주에 우리가 이끌리는 것은 우리의 지향 또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가 새로운 변주곡을 연주할 차례다.

댓글 5
  • 2020-09-25 14:29

    맞아요! 애즈원커뮤니티와의 만남은 제게도 참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봄날님 글을 통해 다시 그 배움을 되돌아봅니다. 코로나 난리통에 스즈카분들은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하고 그립기도 하네요^^

  • 2020-09-28 18:29

    '마음에 기댄 경제' 라는 표현이 참 좋네요 ㅎ
    문탁 카톡방 눈팅하다가 반가워서 글 남기고 가요.
    코로나 유행하기 전에 투어 다녀오셨으니 벌써 9개월이나 됐네요~
    다들 잘 지내시지요? 저도, 우동사 친구들도 잘 지내요 ^^

    • 2020-09-29 08:16

      아! 이렇게라도 광합성 이름 발견하니 반갑다^^
      광합성과의 인연으로 스즈카도 알게 되고......우리 인연이 우연이 아니네!

  • 2020-10-08 09:30

    시간이 지나 더 숙성된 된장같이, 오래 두고 만나니 더 음미하게 되는 소감이어요. 조용하고 뜨거운 마음이 전해지네요. 코로나 풀리면 또 가요~~

    • 2020-10-10 16:47

      세리짱~~~~ 보고 싶어요. 스즈카 분들도요.
      本当に会い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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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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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4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