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9] 마을이 장인을 만들더라

자누리
2020-09-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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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대신할 ‘마을경제’를, 그리고 생산팀부터 만들자는 작당모의가 이루어졌다. 급기야 내게 천연화장품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그 기술을 써먹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자리에서는 같이 웃었지만, 며칠 동안 고민스러웠다. 바로 얼마 전에 천연비누 쇼핑몰을 시작한 데다가, 세미나에서 공부한 바로는 뭔가 큰 걸 걸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쇼핑몰과 마을경제, 둘 다 앞날이 불투명하고 막연하긴 마찬가지이지만, 솔직히 마을경제가 더 심해 보였다. 책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대신하는 무얼 한다니, 이 ‘무얼’이 일단 상상되지 않았다. 더구나 기술자는 달랑 나 한사람이라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데, 이게 좀 귀찮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는데, 의미가 좋다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여느 때보다 빠르게 게시판에 올라온 후기 때문이었다. 이미 “사업단을 만들기로 했다”고 쓰여 있었고, 못하겠다고 말하면 다시 공부하러 오기가 겸연쩍을 것 같았다. 자누리화장품을 하게 된 계기가 어쩌다 보니 친구 따라 강남 간 꼴이다. 비주체적인 듯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런 점이 오히려 장인이 되는 데 더 유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인은 기술을 가진 자라기보다는 배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배움은 남에게 기대고, 응원을 받고, 실수를 고칠 기회가 주어질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2. 노동에 대한 로망

 

사람은 수동적인 듯 보일 때도 자신의 바램, 계획 등은 있게 마련이다. 끌려가듯 마을경제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노동’에 대한 로망으로 인해 어느 정도 적극적일 수 있었다. 20대에 ‘노동야학’을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때『자본론』을 쉽게 풀어 교재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어서 일본어로 된, 그것도 문고판 같은 것으로 공부했으니, 사실 깊이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만든 교재는 꽤 인기가 있었고 야학의 친구들과 재미있게 공부했다. 내가 특별히 그 일을 기억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관점, 노동의 역할에 대해서이다. 노동이란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교류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며, 인간이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들은 비록 공장에 매어서 일하지만, 노동하는 인간으로 세상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사실에 긍지를 가지려 했다. 그 이후 나는 인간성을 노동과 뗄 수 없게 되었다.

 

마을경제에서 작업공간을 만들어 친구들과 일을 하는 것은 저 텍스트적인 노동의 실재를 하나씩 알아 나가는 과정이었다. 상품을 생산하는 소외된 노동이 아니라면, 인간성을 알차게 하는 노동이라면, 도대체 어떤 것일까. 소외된 노동과 구별하려고 ‘일’이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명칭이 바뀐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일한 댓가를 시간에 따라 주는 ‘임금’을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품삯’으로 바꾸었다. 대표가 따로 없이 사업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니저’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런 것들은 ’마을경제‘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논의와 지속적인 공부로 감각을 맞추면서 진행됐으므로,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시행착오를 견뎌야 했다. 결과적으로 작업장은 힘들었지만 재밌었고, 의미 있는 공부가 되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세상의 일부가 되는 공부였다.

 

 

 

자기가 쓸 화장품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가는 ‘수작(手作) 프로그램’은 좋은 공부가 되는 활동이다. 사실 화장품을 만드는 일은 간단하다. 준비된 재료를 알맞은 양으로 계량하고 잘 혼합하면 된다. 이 간단한 일로도 여럿이 만들고, 지속해서 만들고,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깨닫는 게 적지 않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으로 재료를 저울로 계량할 때를 꼽을 수 있다. 저울 숫자의 움직임을 보면서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손을 달달 떤다. 혹시 양이 넘칠까 봐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숨을 죽이고, 마지막 한 방울이 원하는 눈금을 가리킬 때는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달달 떠는 손과 숨죽임, 그 집중의 순간은 작업실 안, 모든 사람의 시공이 멈춘 듯하다. 온 우주를 끌어모은 듯한 그 합일의 순간, 나는 갑자기 사람들의 우정을 믿게 된다. 내가 장인이라고 잠시라도 호언한다면 그 순간들이 쌓여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합일의 순간은 잠깐이고 대부분 시간은 어그러져서 살아간다. 사람들과 우정을 맺는 일은 쉽지 않다. 지향이 비슷해도 실제 행동을 할 때 오만가지 요인들이 들러붙어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 보통 사람들의 속도가 달라서라고 말하지만, 작업장의 경험으로는 순서가 달라서라고 이해하는 게 편하다. 재료들을 섞을 때 순서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순서는 내 의지보다는 재료들의 특성에 따라야 하는데 자기 고집을 세우는 경우 문제가 생긴다. 간혹 창발적인 무엇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 창발적인 것의 순서를 다시 익혀야 한다. 숙련된 솜씨는 순서를 익히는 것이고, 무언가를 따르고 맞추어주는 자세, 아마 겸손이라 불러도 좋을, 그런 품성을 익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업의 기술 속에는 이렇듯 우정을 맺는 섬세한 기술이 숨어있어서, 배움도 계속되고 마을경제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황당한 친구들

 

작업장 초기에, 만들 때는 멀쩡했던 로션이 집에서  쓰다 보니 점성이 풀려서 물처럼 되어버린 일이 종종 발생했다. 당연히 긴장했다. 그때는 소비자의 불만에 마음이 편할 리 없는 생산자의 마인드에 가까왔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품에 둘러싸여 살면서 등가교환의 냉정한 관계가 우리 모두의 몸에 배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친구들은 피드백을 줄 뿐이지, 못 믿겠다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재료도 바꾸어 보고, 작업장을 더 청결하게도 해보고, 작업도 더 꼼꼼하게 하면서 로션에 대해서 세심하게 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던 로션이지만 피드백이 거의 없어진 걸 뒤늦게 알아차린 적이 있다. 개선의 결과로 소비자 불만제로가 되었구나 했더니 웬걸, 친구들은 황당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로션이 풀려도 그냥 흔들어 쓰고 있던 것이다. 거듭된 수작을 통해, 로션이란 혼합물이며 점성이 풀린다 해서 성능이 변하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그야말로 전문가지성이 아닌 대중지성이었다. 아니, 대중지성이라는 표현으로도 불충분하다.

 

 

‘소비자 불만제로’, 얼마나 멋있는 말인지 모른다. 예사롭지 않은 것은 불만이 제로가 되는 이상으로 소비자가 없어진 것이다. 로션을 사이에 두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나는 내 편견을 수정해야 했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적 기호와 욕구에 충실할 것이라는 전제와 달리 친구들은 의외로 좋은 상품에 매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상품 중에 고르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한 편이다. 손익을 따지는데 충실한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신들이 이해한 일에 대해서는 계산적이기를 오히려 어려워한 편이다. 친구들이 보인 이러한 앎과 행동에 대해 ‘관대한 지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무조건 오냐오냐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차이에 대해 배우고,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고, ‘자기 이해 관계’를 덜 내세우는 능력을 키워가는 이러한 앎에 대해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전에는 장인의 능력을 창조성,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잘못을 수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관점이 달라졌다. 지성의 발휘는 어려울 때도 있고, 더디게 이루어질 때도 있다. 샴푸보다는 비누를 쓰는 게 더 좋다고 말해도 잘 안 먹히는 경우를 보면 그러하다. 샴푸에는 점성이나 안정성을 위해 많은 화학첨가제들이 들어간다. 당장은 쓰기 좋아 보여도 환경이나 피부에 무리를 준다고 말해도 쉽게 바꾸지 못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부들부들한 머릿결, 풍성한 거품 등, 익숙한 관성에 빠르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수정하는 능력은 관성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미려한 솜씨를 요구한다. 그런 솜씨가 부족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안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4. 신뢰라는 저울추

 

마을경제는 자립을 하나의 방향축으로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공유지라 부르는 마을경제의 활동공간을 자립적으로 운영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여러 사람이 약간의 활동비로 품과 시간을 들여 공유지 전체를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개인이 다른 곳에서 일하지 않고 문탁에서 자립하는 실험을 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여러 여건상 마을경제에서 그 실험에 나설 곳은 자누리사업단이었다. 중압감이 밀려왔다. 여러 명이 조금씩 나누던 품삯을 혼자서 훨씬 많이 가져간다는 것은 상당한 신뢰를 요구하는 일이다. 이미 친구들이 보여준 신뢰가 힘이 되었지만, 내게 그 신뢰를 지속할 능력이 있는지 부담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신뢰를 어떻게 쌓아 나갈 수 있는지 감은 잡았다는 점이다. 많은 친구들에게서 그 감각을 익혔는데, 그 중 두 친구, 주방비누를 인기 아이템으로 만들었던 두 친구를 꼽을 수 있다.

 

 

몇 년간 공부를 계속하면서 ‘좋은 삶’, ‘과하지 않은 삶’을 화두로 삼게 된 문탁의 친구들은 ‘필요’를 조절해나갔다. 그에 맞추어 생산물 중 화장품은 점차 단촐해지고, 대신 생활용품이 늘어났다. 재료에 대해 알게 될수록 물이나 땅을 오염시키는 세제들이 근심스러워 친환경적인 제품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대부분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주방비누는 게으르니와 뚜버기라는 두 친구에 의해 여타 세제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전혀 게으르지 않은 친구인 ‘게으르니’는 생태문제에 관심이 많다. 자누리사업단에서 일년 정도 일한 적이 있는데,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자연분해가 잘되는 주방비누를 신제품으로 개발했다. 적어도 문탁 내에서는 그 비누를 쓰게 만들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잊지 않고 꾸준하게 문탁의 주방과 카페에서 사용하도록 챙겼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 효과를 경험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꾸준함이 주방비누를 특별하게 만든 셈이다. 한편 우리가 만드는 천연세제는 엄선한 재료, 소량생산의 요인으로 인해 시중세제보다 비쌀 수 밖에 없다. 가격이라는 진입장벽을 해결한 것은 ‘뚜버기’였다. 자누리사업단에서 쭉 같이 일하는 이 친구는 공동체화폐부터 회계 전반을 아우르는, 이른바 문탁의 경제통이다. 그는 주방비누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좋은 뜻을 지속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양생기금’이 있었는데 그 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추자는 아이디어를 내었다. 그렇게 해서 주방비누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이 되었다.

 

게시판에서

 

두 친구들이 움직이는 방식에서 ‘가치 추구’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일이든 거기에는 특정한 가치들이 붙어서 움직인다. 만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것이 실제로 드러나도록 끝까지 집중해야 한다. 주방비누와 친구들의 움직임에 생태적 가치, 공유의 가치 등 얼마나 좋은 가치들이 따라다니는가.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문탁에서 흘러다니는 선물의 원리, 공동체화폐, 인문학 공부 등도 있다. 이런 가치들을 일부러 찾아가면서 생활 속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게 할수록 기대한 것 이상으로, 신뢰는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 같다. 신뢰는 롤러코스터와 같지만, 좋은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현실적 능력만큼 은근하게 스며든다.

 

쇼핑몰 대신 선택한 마을경제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가치를 맛보게 했는데, 그 중 신뢰는 정말 새롭다. 이 혼동의 시대에 친구들과 신뢰를 쌓는 법을 배우는 곳에서 살아간다면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앞에서 했던 질문,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은 아직은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우정의 그늘막 아래에서, 서로-장인-만들기는 계속된다. 혹은 계속되면 좋겠다. 

 

댓글 5
  • 2020-09-23 09:52

    어쩌다보니, 생산 작업 사진들이 파지사유가 아니라 문탁2층의 모습들이네요. ㅎㅎ
    장인이라고 하니 새털샘의 문학처방전도 생각나네요.

    • 2020-09-23 10:10

      네...이런 장인 또 없습니다! 청량리와 새초롬디자인도 장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걱해요. 더 많은 장인이 필요해요~

      • 2020-09-23 17:08

        2층 사진 덕분에 제가 2층에서 생산하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세미나 끝나고 우르르 작업을 같이 하면서 즐거웠던 것 같아요^^

  • 2020-09-23 16:22

    주방비누를 기린샘이 개발했군요!!!! ㅋ
    자누리생활건강의 역사가 마을경제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네요~

  • 2020-09-23 19:48

    앗!
    제가 왜 저기서 나오고... ㅎㅎㅎ

    내년 봄에 자누리 미백라인 기대해도 될까요?
    영업부장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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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7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달팽이 2020.09.21 조회 167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뚜버기 2020.07.10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