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8] 나는 손으로 공부한다

달팽이
2020-09-2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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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손작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다.

 

2010년 봄날길쌈방을 열다

 

 

처음 우리가 공방을 시작한 건 어쩌면 필연이었다. 우리는 간디의 책을 읽으며 우리도 “간디의 물레”와 같은 자립과 간소한 삶의 시그니처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활철학을 장착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에겐 봄날이라는 재봉 잘하는 친구가 있었고, 주변에 놀고 있는 재봉틀도 여러 개 구할 수 있었다. 우리의 첫 활동은 2011년 축제 때 현수막으로 장바구니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때는 아직 공방을 열기 전이었는데 아마도 그 첫 재봉질이 지금 월든 공방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월든공방은 처음 봄날의 별칭이 붙은 “봄날길쌈방”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다. 봄날이 올린 2011년 12월 20일 첫 게시글에는 현재 월든공방이 향하고 있는 지점들이 잘 담겨 있다.

“우리에게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길쌈재능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 어머니들은 직접 바짓단을 줄이고 월남치마를 아이 원피스로, 다시 방석으로, 하다못해 냄비집게로 재활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새롭고 낯선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르칠 수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간단한 바느질, 재봉질에서부터 예술혼을 쏟아 붓는 개념제품까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간직한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봄날길쌈방을 열고 봄날은 날이 컴컴해질 때까지 재봉질을 멈추지 않으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낡은 재킷을 독특한 가방으로 재탄생시키고, 버려질 폐현수막을 모아 노라찬방의 도시락 가방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길쌈공방에서 즐거운 예술작업과 그 작업으로 일정한 수익을 내는 삶의 자립과 손을 쓰는 삶을 친구들에게 전파하는 일이 조금씩 이루어져 가리라 꿈에 부풀었다.

 

공예삼매에 빠진 사람들

 

 

봄날길쌈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디어를 모아가는 중에 가죽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샘플가죽들을 선물 받을 기회가 생겼다. 우리는 가죽이라는 재료가 가진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고민했지만 선물을 기꺼이 받기로 결정했다. 봄날과 지금이 하루 초단기 가죽강좌를 수강하고 난 후 용감하게 가죽공예에 돌입했다. 물론 우리의 재봉기술자 봄날의 꼼꼼한 준비와 연구 덕분에 도구를 구비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죽공예는 패브릭공예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천제품은 완벽한 바느질의 제품들이 흔하니 웬만한 실력으로는 좀처럼 제작의 기쁨을 누리기 힘든 반면, 가죽공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도 뭔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패치워크 작업은 작은 조각가죽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듯한 즐거움마저 느끼게 했다.

가죽교실에 친구들의 호응이 따랐고 길쌈방에는 매니아 그룹들이 생겨났다. 삼삼오오 모여서 바느질 삼매경에 빠진 친구들이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문탁친구들 사이에는 문탁에서만 유행하는 아이템이 생겨났다. 가죽이 가진 부드럽게 말리는 특징을 가장 잘 살린 돌돌말이 필통은 그 중 가장 흔템이었다. 모두가 색이 다른 돌돌말이 필통을 작은 책상 한쪽에 놓고 필기구를 꺼내 책에 밑줄을 긋는 모습은 일상이 되었다. 손작업으로 탄생한 물건들은 마음을 마음껏 담아 보낼 수 있었기에 선물하기에 더 없이 좋았다. 손작업 작품들이 선물로 흥청망청 돌아다녔다. 그 즐거움이 길쌈방을 살아있게 했다.

그런데,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재봉틀이 소박한 삶의 상징이 되게 하겠다는 포부는 어느새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손작업의 기쁨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났지만 그것이 삶을 소박하게 만드는 데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공방운영으로 어느 정도 수익을 내 삶의 자립을 도모하는 것에도 한계가 뚜렷했다.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고 판매의 대부분이 문탁 내에서 이루어지는데 물건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없었고, 거래건 수도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방운영으로 꼭 자립을 이루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공예작업은 소수 매니아들의 즐거움에 머무는 듯 보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넘쳐나는데 뭔가를 더 만드는 것은 낭비가 아니냐, 자신만의 독특한 물건을 만들겠다는 것도 소유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공방은 누굴 위한, 무엇을 하려는 공간인가. 공방 내, 외부에서 이런 질문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고만고만한 것들도 모이면 제법 그럴듯해진다

 

 

처음 질문들이 제기되었던 그 즈음 나는 “공방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다양하게 실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뻔질나게 들락거리던 공방에 정규일꾼으로 합류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 수도 대폭 늘리자고 제안했다. 나는 공방이 문탁학인들 모두의 공유작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 쓰면서 그 물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로부터 소박한 삶의 기풍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공방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실현해보려는 생각이나 운영수익을 조금 더 내서 작더라도 자립을 이루어보겠다는 생각들과 달랐다. 아마도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방향키를 어디로 돌릴 것인가 대결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방향을 어디로 정향하자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공방과 이어가게 활동을 병행하고 있던 참이라 이어가게 운영매니저들을 요일별로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공방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손작업을 한 번씩 해볼테고, 그러다 보면 공방활동으로 친구들과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기대는 반쯤은 맞았고 또 반쯤은 어긋났다. 어쨌거나 그리하여 우리는 한 때 11명이나 되는 친구들과 함께 공방에서 복닥거렸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 여러 가지 일을 벌일 수 있었다. 문탁 강의실에서 쓸 방석을 청바지 조각들을 이어 만들었는데 문탁학인들 모두가 참여했다. 간단한 디자인에서부터 조금 복잡한 것에까지, 제법 그럴듯한 바느질에서 삐뚤빼뚤한 바느질까지 다양한, 그러나 모두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방석커버들이 만들어졌다. 그 방석들은 몇 해째 우리 엉덩이를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시작이 좋아 우리는 공동작업에 자신감이 생겼고, 그 후 세월호 추모 “손으로 기억하기”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며 몸으로 기억하는 방식을 만들어갔다. “세월호 퀼트”와 “기억방석 만들기”, “이름 수놓기” 3년간 이어진 활동은 슬픔을 나누고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몸에 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별이 된 아이의 이야기를 읽는 떨리는 친구의 목소리와 시야를 뿌옇게 만들던 글썽이는 눈물, 그럼에도 간신히 바느질을 이어가던 손, 그 기억들은 그렇게 손을 통해 내 몸에 새겨졌다.

이어가게 매니저들은 스스로 공간을 돌보고 의견을 나누며 일을 해가는 과정에서 함께 해서 풍요로워지는 삶의 기쁨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어울리는 고만고만한 여럿이 함께 사는 근육을 키우다 보면 공통의 기쁨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했던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일이 좋았다. 그러나, 이벤트들은 금새 잊혀졌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공방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이어가게가 갑작스런 화재로 문을 닫으면서 공방의 일상은 큰 변화 없이 일꾼들의 공동작업과 가끔 열리는 손작업 교실들로 이어졌다. 여전히 우리는 왜 인문학 공부를 통해 삶을 바꾸어보겠다는 인문학네트워크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손으로 하는 공부

 

그럼에도 공방활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건 텍스트에서 만난 손작업의 가치와 의미를 실제 작업현장에서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손작업을 하며 우리는 새로운 앎에 다가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어떤 이벤트가 없어도 많은 사람이 함께 하지 않아도 우리는 작업장에서 많은 걸 몸에 새기고 있었다.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저 한 공간에서 병렬로 각자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께 하는 작업은 서로의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섞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우리는 아마추어인데다 체계적인 강습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경험을 쌓은 친구에게 배우고 서로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섞어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유튜브를 보며 재봉기술을 더듬더듬 익히기도 하고, 단기적인 강습으로 살짝 기술을 익혀오기도 하면서 우리는 월든공방 나름의 기술을 만들어왔다.

우리의 한계는 오히려 협력을 부추기는 동기로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협력의 기술을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때로 스타일의 차이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둔갑해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보탠다는 것이 간섭으로 전달되어 저항만 키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할 때 우리는 몇 년간 함께 했던 기술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우리가 작업장에서 협력하는 기술을 익히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협력의 기쁨을 맛본 다음에야 작업장이 협력을 익히는 장소로서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었음을 알게 되었다.

작업장에는 도구들이 있다. 그 도구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언제든 우리를 맞아들인다. 그 도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의 성격과 쓰임새를 잘 알아야한다. 바늘처럼 성격이 무난한 친구들은 내 손이 이끄는 대로 나의 신체 리듬에 잘 맞춰준다. 내 손이 이끌어주지 못하면 그 친구도 뭘 잘하지 못하니 내 손이 유능해져야 하지만 어느 정도 기술을 장착하면 그 친구가 성질을 부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 수월하게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다. 반면 재봉틀은 성격 있는 친구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재봉틀이 성질을 부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재봉기술자 봄날을 찾는다. 그녀는 언제나 능숙하게 재봉틀의 나사를 풀고 뜯고 조이고 기름칠을 한다. 나도 여러 번 그 장면을 보고 익혔으니 이제 흉내를 내보려 뜯고 조이고 해보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게 찾아온다.

이렇게 도구와 사귀는 과정은 그대로 사람 사이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도구, 재료라는 사물들을 매개로 동료 작업자와 함께 작업한다. 작업과정에서 도구와 재료를 다루며 조금씩 진척되는 작업물은 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밟아가고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낸다. 거기에는 우리의 협력의 정도도 그대로 담기게 된다. 서로의 작업에 얼마나 잘 리듬을 맞추고 있는가. 각각의 작업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다. 반복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조금씩 적절한 리듬을 만들어간다. 그런 리듬을 혼자가 아니라 같이 만들다보면 협력의 기술도 조금씩 늘어간다. 바늘과 재봉틀이 사귀는 방법이 다르듯 친구들마다 리듬을 맞추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도 저절로 익히는 것이다.

 

 

월든공방의 물건이 독특한 것에는 기술의 독특함 외에도 재료의 한계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가능하면 있는 재료로 만든다. 우리에게 있는 재료의 대부분은 처음 공방을 시작할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받은 갖가지 천들과 지퍼같은 부속품들, 선물 받은 가죽, 그리고 청바지를 비롯한 재활용 재료들이다. 그 재료들에 독특한 아이디어가 결합되면 사물로서의 새로운 삶이 이어진다. 집집마다 처치 곤란이던 여러 벌의 여벌 청바지를 선물로 받아 우리는 방석, 에코백, 배낭, 냄비받침 등등 원 없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보았다.

이렇게 주어진 재료들로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우리 삶도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은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진행되는 법이 없다. 주어진 바탕에서 그것을 토대로 그저 살아갈 뿐. 잘 산다는 것은 주어진 재료의 한계 안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뭘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 그것들을 엮어내는 다양한 기술을 어떻게 조금씩 익혀갈 것인가에 초점 맞추는 것이다.

공방에서 배우는 게 뭔지 언어로 표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제 겨우 표현하게 된 것들도 서툴고 두루뭉술하다. 모든 공부가 다 그렇겠지만 손으로 배우는 것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몸이 뭔가 배우는 것 같긴 한데 그것이 뭔지 말할 수는 없는 단계에서 텍스트를 읽으며 발견한 개념들과 손으로 배운 것을 연결하는 단계, 또 몸이 배운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기까지 길고 지루하다.

우리는 이런 지루한 과정을 “손인문학”이라고 이름 붙여 계속해보려고 한다. 텍스트 읽기와 손작업을 병행하는 이러한 방식이 독특한 공부 방법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저 실험 중이다. 실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공방에서 앎의 기쁨이 생산되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바느질도 멈출 것이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알 수 없음과 사귀면서 맞닥뜨리는 저항들을 살살 다루어 가는 것이 삶 아닐까? 그 안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늙어 가면 그게 바로 좋은 삶 아닐까? 손이 알려주는 것들을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나의 감각을 예민하게 열어 놓아야겠다.

 

댓글 6
  • 2020-09-21 17:07

    오랜만의 달팽이의 글도 반갑고,
    304명 아이들의 이름을 수놓은 퀼트작업으로 시작하여, 방석만들기며, 신고리5,6호기 승인반대 현수막까지.
    세미나가 끝나면 아래층으로 내려가 함께 마음을 모았던 공동작업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 2020-09-21 20:40

    각자 독특한 리듬이 적합한 리듬으로~ 그 리듬이 새로운 리듬을 만들었던 월든의 시간이 느껴지는군요^^

  • 2020-09-23 09:55

    예전에 어디선가,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고 들었는데.
    엉덩이를 위한 방석을 만드는 손도 필요하지요!!!!!!!

  • 2020-09-23 10:08

    요즈은 월든에서 만들어준 천마스크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어요^^

  • 2020-09-23 14:17

    손이 배운 것이 몸에 새겨지면 그것 또한 텍스트일텐데...
    글로, 말로, 개념으로 정리한다는 게 어렵지만
    또 이런 작업이 손 작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기도 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이 왠지 그런 작업의 시작같기도 하구요.

  • 2020-09-23 17:24

    손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꽤 진입장벽이 높은 공부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왁자했던 월든의 한 때 열기를 잇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똥손으로써 한 마디 하자면, 축제 때 잠깐 체험하기 같은 거 계속해주세요. 잊고 있던 나의 다른 근육들이 꿈틀거리더군요. 이러다 어느 순간 월든 뒷자리에 앉아서 토용한테 맴매 맞으면서 수놓고 있을지 몰라요^^

글쓰기
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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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