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뚜버기
2020-07-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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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SVC 이슈] 참여로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인문학 커뮤니티

 

공유지 X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한국탈핵>,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와 같은 좋은 책들의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파지사유라는 멋진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의미를 나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탈핵, 탈성장, 세월호와 같은 문제들에 조금씩 더 깊이 다가가게 되었다. ‘녹색다방’이라는 탈핵활동 동아리가 만들어졌고 파지사유는 수시로 녹색다방의 공작소로 변신했다. 일주일에 한 번 벌이는 탈핵일인시위를 위한 피켓공작과 시위 나갈 사람을 조직하는 공작이 함께 벌어지곤 했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 열심히 단체모임에 장소를 제공하고 식사를 서빙하기도 했다. 매출로 따지자면 재료비를 제하면 인건비도 안 빠지는 손해였지만 그렇게 해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고 싶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의 회의가 열렸던 어느 밤의 기억도 생생하다. 매니저들이 열심히 날라주던 뒷풀이 어묵탕의 온기와, 전국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의 뜨거웠던 열기가 그립다. 연대한다는 것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만큼 지속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늘 힘이 부쳤다.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한다와, 왜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가 사이의 갈등에 점점 기운 빠져갔다.

2030 청년 모임을 만들고 싶어 했던 매실과 광합성이 파지사유에서 소셜다이닝을 주최하기도 했다. 그때 만난 2030 여자청년들이 ‘언니들의 옷장’을 열었는데, 그간 이어가게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웠던 패셔너블한 옷들을 펼치고 팔던 광경은 신선했다. 청년의 접속이 늘면서 공부로, 활동으로 청년들을 만날 기회도 차츰 빈번해졌다. 일회성의 만남은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막상 청년들과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은 다른 경험이었다. 일요일엔 청년들 맘껏 파지사유를 쓰라고 했지만, 월요일 아침이면 청소 안 된 지저분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마음은 자꾸 청년들에게 일을 맡기는게 미덥지 못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동시에 청년들을 이해 못 하는 나는 꼰대인가 아닌가 자기검열 중인 내 모습을 보는 일 또한 피곤했다.

월세도 내고 전기세도 내려면 매출이 일정 수준은 되야 한다. 강좌를 열고 공간대여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차를 팔아 매출을 올려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니저들은 열심히 메뉴를 개발하고 복잡한 제조 순서를 익히며 차(茶)판매에 힘썼다. 공유지를 유지하기 위해 파지사유에 올 때 차 한잔은 마시자는 캠페인도 전개했었다. 그럼에도 파지사유 매출은 점점 떨어졌고 커피가 맛이 없어서라는 진단이 잊을 만하면 제기되었다. 공정무역커피 탓이냐 아니냐의 논쟁 속에 서로 마음 상하는 일도 생겼다.

우리는 왜 카페를 만들었을까? 동네에 찻집이 부족해서? 주인 눈치 안 보고 맘껏 이야기 나눌 곳이 필요해서? 근본적인 부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함께 만든 공간인데 우리 대부분은 그저 찻값 내고 서비스를 받는 고객에 머물러 있었다. 매니저들 역시 관리와 서비스 활동에 치여서일까 관계를 만들고 활동을 조직하는 데까지 힘쓰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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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 변천사

 

파지사유 오픈 3년째, 파지사유를 접수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나왔다. 이름하여 주술밥상. 물론 나중에 지어진 이름이다. 이들은 파지사유에 새로운 주술을 걸고 예술적인 공동체 밥상을 차리겠다고 나섰다. 당황스러웠다. 비록 손님은 얼마 없지만 명색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 카페인데 점심때마다 된장국 냄새를 풍기면서 밥상을 차리고 여기저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니. 카페 손님들에게 어떻게 그에 대해 양해를 구할 수 있을까. 아예 외부 손님들은 오지 말라는 말인가? 이게 과연 공유지라고 할 수 있나.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대의 명분은 딱히 서지 못했다. 외부로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적인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공유지를 채워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겠다고 나선 친구가 있다는 점이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주술밥상엔 엉뚱발랄한 기획들이 많았다. 공연과 디너를 결합한 메인디쉬 덕분에 지금은 oo밴드로 유명해진 모 피아니스트의 쇼팽 연주를 떡볶이 먹으며 듣는 호사도 누렸다. 또 덜컥 맡아온 급식사업 덕분에 십대청년들과 중년학인들이 함께 공동식사를 했던 시절도 있다. 주술밥상으로 자리잡은 파지사유의 공동체밥상은 지금은 은방울키친으로 변신하여 찬방보다는 더욱 공동체밥상의 성격을 강화했다. 이제 점심시간마다 파지사유에서 공동체밥상이 펼쳐지는 광경은 어떤 이질감도 느낄 수 없다.

얼마 전 파지사유는 공간을 크게 리모델링했다. 세미나실 하나를 고쳐서 작업장이 파지사유로 들어온 것이다. 그 사이 청년들의 활동이 늘어나서 원래 월든 공방이 쓰던 옛 작업장을 아예 청년들에게 넘겨주고 온 것이다. 밉네 곱네 해도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문탁의 안과 밖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매주 의심과 감시 속에서 영화감상회를 열던 젊은 시네필들은 공모사업 프로젝트를 따내고 고급프로젝터를 장만하여 우리도 눈호강을 하고 있다. 예술프로젝트로 인연이 된 연극하는 청년은 인문약방 팟캐스트를 위해 한 걸음에 달려와 준다. 청년들이 주축이된 활동들이 활발해지면서 문탁의 감각도 촌티(?)를 벗어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한다.

처음엔 막연히 공유지란 마을사람들이 누구나 제집 드나들 듯 편안히 드나들면서 소통하는 공간이라고 여겼다. 파지사유엔 늘 문탁 사람들만 바글바글한데 우리는 공유지를 과연 꾸린다고 할 수 있나? 라는 의구심이 몇 년동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문탁 주변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 있다. 파지사유라는 장소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람들이 만나게 하고 서로를 두드리게 하고 자신을 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왔다. 남의 출판기념회 열심히 열어주다가 급기야 자기 소리를 글로 쓰고 책을 내어 출판기념회 주인공이 된다. 라이브뉴스쇼를 기획하고 리포터가 되고, 연극배우가 되고, 낭송유랑단이 되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자기공부를 표현하고 공유한다.

그 과정은 당연히 순조롭지 않다. 의욕넘쳐서 시작했다가도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갈등을 겪게 되고 일들은 실타래 꼬이듯 꼬여만 간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해 나가는 가운데 각자의 견고한 벽을 깨고 서로 만나는 순간들을 만들면서 왔다. 외부로의 확장은 우리 안에 갖혀있던 이절적인 것을 끄집어 내는 것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다. 그런 화학 반응 속에서 우리는 다양하게 변신하는 존재가 되어갔고 그러는 가운데 파지사유는 살아 숨 쉬고 있다.

 

자율성을 키우는 공간

 

파지사유의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서비스 매니저제를 없앤 것이다. 카페 이용자는 손수 차를 타고 장부에 기록하고 돈계산도 직접한다. 처음엔 가능할까 싶었으나 메뉴 단순화로 해결했다. 지금은 오히려 자신만의 레시피로 음료를 제조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유자차와 레몬차를 혼합하고 생강차로 라떼를 만들기도 한다. 커피맛 논쟁도 셀프 드립커피의 등장으로 마침내 종결되었다. 숨은 드리핑 고수들이 등장해서 우아한 자태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파지사유의 새로운 풍경으로 추가되었다. 자기가 내려 마시는 드립커피 값이 왜 전기쓰고 기계를 사용하는 커피보다 비싼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잠시 투덜거리던 이들도 자본주의 논리와 무관한 파지사유 가격정책에 그러려니 한다.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찻값지불방식도 자리를 잡아서 장부기록과 돈통잔액이 틀린 날이 별로 없다. 모두들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파지사유가 자율공간으로 바뀌면서 일어난 또 다른 변화는 청소다. 예전에 매니저가 도맡았던 청소를 세미나팀들이 돌아가면서 맡게 되었다. 세미나 회비 내고 공부하러 왔는데 왠 청소냐고 어이없어 하지 않을까 말을 떼기가 조심스러웠으나 걱정은 기우였다. 그래, 문탁은 이렇게 운영되는 곳이었지...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하지만 자기 팀 청소 당번인 날 이외에는 청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까지는 관심이 미치지 않을 때도 많다. 밤새도록 난방이 켜져 있거나 에어콘이 신나게 돌아가는 일도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세미나도 열리지 않던 시기를 겪고 나서 나는 문득 내가 그 시기에 공유지의 문은 누가 열었는지, 청소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무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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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유지의 비극을 말한다. “모두에게 개방된 초원을 상상해보라. 모든 목동들은 마음껏 자신의 가축을 공유지에 풀어놓고 키운다. 저마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가축 수는 늘어나게 되고 결국 초원은 황폐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유지를 꾸리는 것도 헛된 수고란 말인가. 공유지의 비극 우화는 중대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공유에 대한 추상적 개념만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유지를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주인없는 땅으로 보는 것은 크나큰 오류다. 목동들은 함께 초원을 관리할 것이고, 지나치게 이용한다든가 관리에 무책임한 목동에 대한 제재 규정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규범들은 긴 시간 목동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공유지는 무작정 열려있는 공간이 아니다. 공유지는 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나름의 특이성으로 구축된 규범이 주어진 곳이다.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공유지라 명명한 공간을 만들고 꾸려나가면서 비로소 우리에겐 공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나 오픈한다고 해서 공유지가 되는 것이 아님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공유지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머리를 맛대고 이 궁리 저 궁리할 때, 공유지를 터전삼아 스스로의 활동을 조직할 때 그 장소는 공유지가 됨을 체득하게 되었다. 또한 공유지의 경험은 우리에게 사적소유 아니면 공공서비스라는 이분법 너머가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니것 내것의 구별을 넘어선 공유지에서 공통의 것이라는 신세계를 구체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아마 공유지가 있었기에 우리는 감히 사적소유를 넘어보자며 무진장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을경제로 시장을 흔들겠다고 뭉친지 십년 남짓. 어떻게 시장의 방식과는 다르게 경제를 보고 다른 방식으로 삶을 구성할지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여기까지 왔다. 시장의 강력한 중력 탓에 한 발짝 떼는 일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공유지가 있다. 메마른 시장사회에서 공유지는 오아시스다. 공유지가 있었기에 우리는 활력을 얻고, 우정을 쌓고, 유쾌한 삶의 순간들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오아시스를 잘 돌보지 않는다면 그곳 역시 메말라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파지사유 한쪽 벽면엔 에코챌린저들이 에코라이프 도전 상황을 보여주는 스티커판이 붙어 있다. 중앙 벽면엔 전태일 50주기를 기리며 문탁인들이 책을 읽고 필사한 종이들이 빈틈없이 빽빽하다. 또 다른 한 켠엔 나눠쓰고 돌려쓰는 반짝이어가게가 한창이다. 오늘도 마을공유지에선 다양한 삶이 좋은 삶을 향해 서로 얽히며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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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다.

 

 
댓글 4
  • 2020-07-11 08:36

    메마른 시장 사회에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공유지~
    오아시스에서 해보면 제밌는 일... 아~ 상상력이 더 필요해 ㅋ

  • 2020-07-11 11:15

    이공유지가 그 공유지였음읊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올직히 말씀드리자면 오다가다 주역을 공부한다기에 들른 세상 개인자본주의에 찌든 일인이 느끼기엔 낯설고 불편한 시간도 제법 되었습니다 물론 기꺼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커피맛이 없었던건 콩탓이 아니고 머신탓인것 같습니다.

    • 2020-08-04 11:37

      ㅋㅋ 뚜띠님 방학 끝나고 오시면 파지사유에서 커피 한 잔 사드릴게요~

  • 2020-07-12 02:09

    이런 공간이 있어 정말 기쁘고 감사해요~
    잘 가꾸고 잘 지켜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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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0.09.24 조회 367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6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달팽이 2020.09.21 조회 167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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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버기 2020.04.23 조회 39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4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