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7] 무진장의 실험: 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뚜버기
2020-04-23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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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청년들도 안정된 일자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 역시 남편은 실직하고 아들 녀석은 취직할 가능성이 보이질 않으니 이대로 괜찮으려나, 조바심을 떨치기 어려워졌다. 작지만 선물로 구성되는 공동체 경제를 구축하고 그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면서 시장경제의 균열이 되고자 했던 응집력이 불어닥치는 태풍에 다 날라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태풍 2015년에 대한 스톡 벡터 아트 및 기타 이미지 - iStock

그러던 차에 2016년 가을 직언직설로 때로는 사이다를, 때로는 당혹스러움을 선사하던 한 친구에게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급한 불이라도 끄려면 꽤 목돈이 필요할 텐데 어찌하나. 우리에게 핵사이다를 날려줄 친구마저 돈벌이 때문에 문탁을 떠나는 걸 또 봐야 하나. 걱정스러웠다. 문탁에선 그동안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알게 모르게 돈을 융통해주면서 넘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친구 사이에 돈거래 하지마라, 돈 잃고 친구 잃는다”는 말이 있지만 문탁에서 돈 때문에 친구 사이가 금 갔다는 얘긴 듣지 못했다. 아마 은행 빚까지 내면서 급전 구하러 다니는 걸 보느니, 내 돈 좀 손해보는 게 낫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알음알음 변통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조직화된 방법을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공동체 돈에서 맞춘 감각으로 개인적인 돈 문제도 함께 해법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마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돈에 대한 또다른 배움

 

그 움직임의 배경엔 당시 많은 학인들이 함께 공부했던 맑스의 『경제학 철학초고』와 그 해 봄 방문했던 홍성 마을공동체가 있었다. 1844년 청년 맑스는 “왜 자본주의 아래에서 인간의 소외현상이 발생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그는 인간 소외는 결국 사적소유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사적 소유 관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며, 인간의 활동이 화폐를 소유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삶을 향유하기 위한 목적을 추구할 때 비로소 소외는 극복된다는 맑스의 주장은 동학들의 머릿속에 “사적 소유를 넘어서자”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었다.

 

또 다른 계기가 된 홍성군 홍동마을에서 우리가 만난 건 지역 공동체금융조직인 ‘도토리회’였다. 홍성 도토리회는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회원들의 공동출자와 곗돈납입을 통해 협동기금을 만들고, 그 자금으로 공익적인 마을사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급전을 무이자로 융자한다”(홍성도토리회 창립총회 소식글에서)는 취지로 2015년 창립되었다. 도토리회의 지향 속에는 제도권 금융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큰 이윤을 기대하며 투자한 파생상품이 흘러흘러 무기산업의 자본이 될지도 모르며 어떤 이의 피눈물의 댓가로 얻어낸 고리대출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도토리회는 금융안전망 역할을 했던 계(栔)의 전통을 되살려서 제도금융의 문제를 넘어서고자 했다. 성미산에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대동계를 만들어 회원들의 경제적 협력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공동체들이 사적인 자금을 순환시키는 장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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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생활자금이나 창업자금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혹은 의미있는 활동을 꿈꾸는 지역단체에 빌려준다면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더 소중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이 가꾼 가치의 결실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올 테니 말이다. 마을사람들이 여유자금을 모아 운용하면 마을에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살맛나는 동네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런 활동은 주민들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 토대가 되는 마을 공동체가 든든하게 제 역할을 할 때 가능한 일이지만, 동시에 그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어 갈 때 때 비로소 마을이 만들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과정의 끝은 결국 사적 소유의 담장이 허물어진 세상 아닐까.

 

 

대출이 아니라 출금

 

우리도 도토리회같은 조직을 만들어보자고 삼삼오오 모여 나눈 이야기가 퍼져나가 동참하겠다고 모인 사람이 십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 얘기가 나오고 두어달 만에 오십만원 이상의 가입비를 내고 열 두명의 창립멤버가 모였다. 가입비가 부담인 경우 다른 회원이 대신 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종잣돈 이천만원으로 일단 출발했다. 이후에 이름도 정했다. 써도 써도 잔고가 줄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마르지 않는 창고, 무진장>이 탄생했다.

 

무진장에서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돈이 들어가고 나가는 하나의 통장이 있고 회계가 이를 관리한다. 무진장의 돈을 써야 할 필요가 생기면 자금의 사용처를 회원들과 간략히 공유하고 회계에게 출금을 요청한다. 그걸로 끝이다. 수입이 줄어들어서 모자라는 생활비에 도움을 받고자, 갑자기 고장나 버린 오래된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 무진장이 이용되었다. 나도 딸래미 자취방 보증금을 마련해야 했을 때 무진장에서 일단 돈을 받아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출금이 있다면 반대쪽엔 입금이 있다. 입금 역시 각자의 형편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입금을 하면 된다. 그리고 누가 입금했는지,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는 회계의 보고를 통해서라든가 인터넷 검색으로 언제나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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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회원들은 무진장이 무이자 대출과 상환이라는 방식으로 돈을 운영할 걸로 예상했다. 나 역시 그 방법말고 다른 방식은 생각도 안 해봤다. 그러나 비록 무이자라도 대출과 상환이라고 하면 상환에 대한 약속을 정해야 하는데 그 계획조차 세우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떻할까? 차라리 돈이 필요하면 돈을 빼서 쓰고 돈에 여유가 생기면 언제든지 돈을 채워 넣는 방식이 더 명실상부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감이 가긴 하는 이야기지만 그랬다가 금새 통장잔고가 바닥날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또 나는 아끼고 아껴서 무진장에 입금을 하는데 누구는 무진장 돈으로 값비싼 자동차를 사겠다고 하면 그 출금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냐는 얘기도 나왔다. 어쩌면 여기서 서로의 민낯을 보고 얼굴 붉히며 갈라서게 될 수도 있다. 잔잔한 인문학공동체에 파문을 일으키는 돌팔매질이 될 지도 모른다. 굳이 그런 모험을 해야 할까. 의견차이를 좁히기 위한 전체 모임이 육개월 정도 매월 진행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면부지의 남이 아니고 그 집 숟가락젓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아는 관계라면 대출/상환이나 출금/입금이나 실제로는 크게 다르지 않게 작동할 것이다. 꼭 대출이라 명시하지 않아도 자금에 숨통이 트이고 나면 공동의 통장에 돈을 채워 넣어서 빚짐의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할 테니 말이다. 그런 윤리감각마저 함께 하지 못 했다면 그건 운영방식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데 다들 동의를 하게 되었다. 과연 마르지 않는 창고가 될 수 있을까 모두들 반신반의 했지만 입출금 방식으로 무진장은 출범하게 되었다.

벡터 개요 코르누코피아 또는 호박, 포도, 밀, 단풍 나무 잎의 전체 많이 의 뿔 흰색 배경에 고립 된 검은 색. - 로열티 프리 10월 벡터 아트

 

마르지 않는 창고를 꿈꾸며

 

활동의 주요 내용이, 아직은 다루기 부담스러운 돈이다 보니 무진장은 가볍고 유연하기보다는 무겁고 보수적인 운영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운영규정을 만들었고 중요한 내용은 회원 전체가 참석하는 총회에게 결정하기로 했다. 매월 만나 공유한 내용을 자누리님이 잘 다듬어 운영규정에 실었다.

 

“...무진장의 운영은 상호부조와 재분배의 원리로 시작한다. 우리는 상호부조의 원리를 서로 돕는 일뿐만 아니라 각자의 소유의식과 욕구에 질문을 던지는 일로 이해한다. 따라서 무진장은 서로의 삶을 돌아보는 일을 상호부조의 가장 중요한 작용으로 본다. 우리는 재분배의 원리를 공동창고 내에서 사적 소유의 경계를 허무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출자자의 소유권과 그에 기반한 대출의 개념을 배제한다. 무진장을 하나의 통장처럼 사용하여 회원들의 긴급한 생활자금에 운용한다. 회원들은 필요에 따라 찾아 쓸 수 있으며 마음껏 채워놓을 수 있다. 출금과 입금, 어떤 경우든 무진장의 규모와 흐름을 살펴야 한다. 무진장은 회원들의 능력에 따라 변형을 거듭할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법을 배워서 품격있는 삶을 살수록 무진장은 더 많은 용법을 갖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무진장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무진장 운영규정 전문)

 

2017년 4월 창립총회를 열었을 때에는 스물네명의 회원이 모였다. 그 사이에 이미 총 삼천만원의 입금활동과 칠백만원의 출금활동이 발생했다. 여기엔 좋은 취지를 응원하며 멀리 빛내님과 가까이의 마로니님이 낸 특별회비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출금도 서너명에 한정되어 있었고 가입 이후 그저 관망하는 회원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주요활동인 입금도 출금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뭘까. 솔직히 나는 그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무진장을 만들었는데 왜 다들 주춤하고 있는 걸까.

 

돌이켜보니 무진장이 추구하는 상호부조와 재분배라는 두 원리 사이에서 회원들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누구는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가입했을 뿐이고 또 누구는 사적경제와 공동체 경제를 섞는 실험에 관심이 있어 가입했다. 친구 따라 강남 온 이들도 있었다. 제각각인 동기들이 만나니 의견차이가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매달 스물 남짓이 함께 모여 논의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회원들은 목소리 큰 회원들의 기에 눌려 자기 의견을 말하기가 눈치보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상상을 현실화하는 새로운 실험이 되기는커녕 재미없고 의무감만 남은 활동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었다.

 

 

마중물에서 조아까지

 

2018년 정초, 어떻게든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보자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문탁 강좌수강료를 모두 무진장에서 공동출금하기로 한 것이다. 꽤 목돈이 드는 강좌비를 무진장 돈으로 내고 조금씩 입금해서 채워가다보면 무진장이 몸에 익으리란 기대감이 있었다. 천만원 넘는 돈이 한꺼번에 빠져 나갔지만 기대처럼 활동이 활발해지진 않았다. 이후로 확 줄어든 잔고가 혹시 바닥나면 어쩌나 마음 졸이게 되었다는 점에선 어쨌든 더 마음을 쓰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해나갔다. 하나는 나중에 ‘마중물’이라는 이름을 얻은 실험이고 다른 하나는 ‘조아’라고 불리게 된 실험이다. 마중물은 매월 일정액을 고정적으로 출금해서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첫해에는 한 명이, 나중엔 두 명, 세 명으로 늘려서 월 오십만원 정도씩 별도 출금요청없이 회계가 송금해준다. 마중물을 받았던 한 회원이 남긴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비록 그 돈으로 생활 전체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기획서니, 결과보고서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돈”이 있어서 든든했다는 것이다. 올해는 네 명의 회원이 마중물을 이용하고 있다. 마중물이 진짜 마중물이 되기엔 팍팍한 세상이지만 마음의 마중물정도는 되는 듯하다.

[이 아침의 시] 마중물 - 윤성학

 

‘조아’는 무진장 역사상 가장 첨예한 논쟁 끝에 시작되었다. 무진장회원들이 문탁에서 쓰는 돈을 무진장통장에서 공동출금하는 제도다. 말 그대로 무진장을 공동지갑으로 이용하자는 취지다. 식권을 사거나 자율카페 찻값을 내거나 작업장 물건을 살 때 무진장으로 계산하겠다고 기록을 남기면 월말에 일괄적으로 회계가 지불을 한다. 문탁의 경제생활이라도 함께 섞어보자는 아이디어다. 통장잔고도 아슬아슬한데 굳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까지 무진장 돈을 빼 쓸 필요가 있냐는 반대도 컸다. 하지만 넣는 사람과 빼는 사람이 분리되지 않는 공동지갑이라는 실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공동지갑이 되면 입금도 늘 것 같아서 찬성하는 쪽에 섰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무진장의 모습이 아니라며 탈퇴하는 회원도 생겼다.

 

돈을 섞는다는 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명분이 분명한 기금을 모으는 일에 일회성으로 참여하는 것과는 다른 여러가지가 끼어들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가정경제와의 만남이었다. 남편과 무진장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한 회원의 토로에 물꼬터지듯 이야기들이 터져나왔다. 누구는 집에선 가족들이 눈치를 주고, 무진장에선 가정경제 울타리에 갇혀 있다고 탓하는 것 같아 힘들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남편이 벌어들인 돈을 무진장에 입금하는 것에 당당하던 회원도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입금이 고민되고 또 그런 자신의 모습이 찌질해보여서 차라리 무진장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경제라는 부분에 있어서 사적인 영역의 울타리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절감하는 계기였다. 골치아픈 무진장에 적은 두고 있으나 이미 마음이 떠난 듯한 회원들도 여럿이다.

 

 

이번 총회엔 과연 전원출석이 가능할까 매번 염려하는 가운데 벌써 무진장 4년째다. 사적 소유의 담장을 허물기는커녕 그 견고함을 확실히 알게 해준 것이 무진장 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장이 없었다면 훨씬 표면적인 관계에 머물렀으리라 생각한다. 각 가정의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그 차이를 확인한 것에서 출발해서 조금씩 서로의 생활에 개입해 가고 있는 것 아닐까. 공부만 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안 보고 우아한 모습만 보며 살 수 있었을까. 아마 우리의 공부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을 것 같다. 공부공동체로 만나 생활공동체가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지리 궁상을 서로 보이면서 나가고 있다. 마음이 불편해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공동체의 경험 속에 엮여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정념의 소용돌이 대신 지성적 생활공동체에 도달하는 내공을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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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다.

 

댓글 5
  • 2020-04-23 10:42

    "사적 소유의 담장을 허물기는커녕 그 견고함을 확실히 알게 해준 것이 무진장 활동이다."
    저도 동감합니다. 제가 무진장의 실험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구요.
    글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는 뚜버기샘의 글은 읽는 사람은 재밌어요~ㅎㅎ

  • 2020-04-23 10:47

    무진장 활동을 비회원이 지켜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간혹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요. 또 간혹 문탁의 소중한 실험에 거리를 두는 것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생각거리를 던져주네요.

  • 2020-04-23 10:59

    무진장으로 공부와 돈과 생활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진장이 없었다면
    공부 따로 생활 따로, 가정경제 따로 마을경제 따로가 눈에 잘 안 들어왔을 텐데
    무진장이 이걸 자꾸 생각해보게 하네요.

  • 2020-04-24 00:51

    저는 무진장이 있어서 가난하면서 도를 즐기는 '빈이락'과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부이호례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많아요^^ 그래서 좋아요^^

  • 2020-04-24 14:17

    무진장 실험의 중간정리 같은 느낌입니다.
    별 수가 없구나 체념의 마음이 들 때,
    '마중물', '조아' 라는 용법이 생기면서
    무진장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무진장이 마르지 않듯 그 용법도 마르지 않길 기도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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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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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뚜버기 2020.07.10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6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