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뚜버기
2020-02-2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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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노동력과 재화를 교환하여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 지역 내부의 거래 시스템이다. 국내 최초의 레츠인 대전 한밭레츠 역시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탄생했고 지역화폐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생소했던 지역화폐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지방자치정부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 오면서부터이다. 그러다 보니 원조 지역화폐인 레츠와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다.

  지자체의 화폐는 말 그대로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다. 상품권이나 충전식 카드 형태로 된 지자체의 화폐들은 기본소득 지급 등에 사용된다.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어서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발행주체가 지방정부이고 그 화폐를 얻어야만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은행 발행권과 다르지 않다.

  반면 레츠는 스스로 발행하는 화폐, 이자가 붙지 않는 화폐다. 복 역시 이 두 가지 성격을 그대로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처음 복회원이 되면 잔고가 제로인 복계정이 생긴다. 이후 복거래를 하면서 복계정의 잔고는 늘거나 줄어든다. 예를 들어, 복을 발행하여 문탁의 자율카페인 파지사유에서 이천복을 주고 차를 마실 수 있다. 그러면 회원의 계정에는 마이너스(-) 이천복이 기록되고 파지사유의 계정에는 플러스(+) 이천복이 기록된다. 복을 받는(플러스로 만드는) 활동없이 발행만 계속 한다면 계정의 잔고는 마이너스쪽으로만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복잔고가 많건 적건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복을 저축해서 더 큰 복으로 불릴 일도 없고, 마이너스로 인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태를 겪을 일도 없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복 초창기, 복의 활성화를 위해 기본적인 이용방법만 알려주고 복회원 가입을 받곤 했다. 동네 주민 한 분이 제법 값나가 보이는 운동화를 거금 3만복을 발행하여 가져간 적이 있었다. 요즘도 대부분의 거래는 이천복에서 오천복 안쪽인 걸 감안하면 꽤 거금이다. 가입과 동시에 복을 발행했으니 당장 복잔고는 (-)3만복이 되었다. 그런데 이후로 그분은 도통 복 버는 활동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부하러 오시는 분이 아니라 얼굴 볼 기회도 없고 복을 버시라고 강하게 권유하기도 어려웠다.

 

     

 

  지금껏 화폐는 가장 사적인 것이었다. 자기 지갑에 있는 돈 자기 맘대로 쓰겠다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욕구를 채우겠다는 합리주의를 장착한 소비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처음 기대했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가 꿈꾼 건 돈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한 것을 얻는 그런 풍경이었다. 복을 돈처럼 쓰는 상황, 화폐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그런 따뜻함은 생겨나지 않았다.

  복을 많이 가진 회원이 강좌수강료 전액을 복으로 내는 경우가 있었다. 또 작업장에 쌓인 복을 품삯으로 지출하지 않고 본회계에 이관하는 일들도 있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복이 본회계에 계속 쌓여 갔다. 내 주요 업무가 복계정 정리여서 나는 그런 상황을 제일 빨리알게 되고 제일 신경이 쓰였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복을 왜 거기에 썼냐, 왜 복을 그렇게 많이 받았냐 타박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복은 점점 알 수 없는 무엇이 되어갔다. 복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드러난 현상에 대한 해석도 제 각각이었다. 복은 안건으로 등장하면 모든 회의는 블랙홀로 빠져버렸다. 가끔은 복이야기로 회의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미안할 정도였다.

  어떻게든 해법을 찾고 싶어서 화폐 공부를 시작했고 맑스 공부로까지 이어졌다. 맑스는 “화폐 그 자체가 공동체가 아닌 곳에서는 화폐가 공동체를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공동체에 화폐가 출현하면 그 공동체는 와해되고 화폐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면 복은 공동체 활동과 양립할 수 없는건가? 복이 화폐가 아니게 해야 하나? 사서 고생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저질러 보는 쪽을 택했다. 안 하고 미련을 가지느니 일단 해보는 쪽을 택했다.

 

2. 복은 빚일까

 

  대부분의 복회원들은 처음엔 마이너스를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마이너스 통장이라든가 외상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와 겹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버지로부터 절대 빌려주지 말고 빚지지도 말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랐다. 그러나 복은 마이너스라 하더라도 마이너스 통장과는 전혀 다르다. 마이너스통장은 담보 없이는 절대 빌릴 수 없다. 거기에 대출 이자가 발생하고 제 때 갚지 않으면 연체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금융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빚은 당연히 이자를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돈을 쓰는 것은 그 돈의 기회비용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돈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가 붙어서 점점 불어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렇지만 돈을 써서 사업을 하고 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아닌가. 증식하는 돈이라는 개념은 진짜 억지다. 어쨌든 복은 이자가 붙지 않는다. 아무리 복잔고가 마이너스라도 하루빨리 탕감해야만 하는 압박 따위 전혀 없다.

  시간이 지나자 복회원들은 슬슬 마이너스 복에 익숙해져 갔다. 마이너스도 괜찮다고 독려하고 다녔던 나로서는 늘어나는 복거래에 마음이 뿌듯했으나 그도 잠시였다. 주머니에 잔돈이 없다는 이유로 복을 쓰고, 계좌이체하기 귀찮아서 복을 쓰고 그런 뒤엔 나 몰라라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땐 힘이 빠졌다. 어떤 회원에게 마이너스가 너무 심하니 당분간 현금 거래만 하시라고 권유했는데 그 이후로 그 분이 거래 자체를 안 하게 된 일도 있었다. 자본주의 화폐를 거부하는 급진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늘 마이너스 복 걱정만 하는 나 자신이 쫌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마이너스 어떻하냐고 궁시렁거리며 머리를 맞대는 가운데 종종 쓸만한 아이디어들을 얻었다. ‘마이너스 복 클럽(줄여서 MBC라 부른다)’을 결성해서 복잔치날 복벌이를 결의하는 이벤트도 벌이고, 자기 복이 얼만지 신경 좀 쓰고 살자며 ‘복수첩’도 만들어 보았다. 그런 시도들은 대체로 잠깐 반짝하고 끝나버리곤 했다. 그러나 MBC회원 당사자보다 주변인들이 더 마이너스를 걱정하게 되는 이 시스템은, 내 지갑과 네 지갑의 경계가 분명한 각자도생의 자본주의적 삶과는 동떨어진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모든 복을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복 희년(禧年)을 하자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올 수 있는 세계다.

  마이너스복이 계속 쌓이는 게 부담스러워서 현금으로 탕감하고 싶다는 회원도 있었다. 하지만 복은 돈의 대체물이 아니라서 그렇게 할 수 없다. 복을 버는 활동을 해서 플러스를 늘리는 수밖에 없는데 복을 벌려면 문탁의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탁사람들이 의미있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활동들을 통해 벌 수 있다. 작업장의 공동생산, 터전을 돌보는 매니저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활동들, 중고물품의 순환, 먹거리를 만들고 나누는 셰프활동과 같이 일상을 공유하는 가운데 복은 돌고 돈다. 복에서는 문탁사람들의 향취가 묻어나온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그 흔적을 알 수 없이 세탁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돈과는 전혀 다르다. 가장 문탁스러운 복 활동으로 몇 년전에 열린 ‘복스토리펀딩’을 꼽고 싶다. 탈핵활동이면 활동, 우크렐레 동아리면 동아리, 공부면 공부.....,열심히 하는 활동들은 모두 복 안 되는 일뿐이라는 사연을 가진 회원이 있었다. 궁리 끝에 묘수를 짜냈다. 이름하여 복스토리 펀딩. 탈핵활동 계속 열심히 하라고, 살아만 주어도 고마우니 운동 열심히 하라고 친구들이 복을 쾌척하여 마이너스를 탈출한 훈훈한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히말라야의 복스토리펀딩

 

  고대 그리스의 루크레티우스는 “삶은 누구에게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빌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빚짐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금융자본주의 세계는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사람들은 남에게 신세 지느니 카드를 쓰고 은행대출을 받는 쪽이 올바른 선택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이웃과 서로 빚지고 사는 유대관계를 끊고 금융자본이라는 채무관계, 때로 생명마저 저당잡혀야 하는 폭력적 채무관계 속으로 포획된다. 그에 비해 복은 마이너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훤히 보여준다. 전체 복이 제로로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에서 누가 복을 많이 가지면 상대적으로 복이 부족한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공개되는 복의 흐름을 살피다 보면 우리는 모두 다른 친구들의 활동에 빚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뚜렷이 느껴진다. 서로서로 빚지고 사는 관계. 복은 그런 끈끈한 관계를 이어주는 빚이다.

 

3. 복은 선물일까

 

  복이 처음 만들어질 때 문탁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선물로 주고받으며 운영해 왔는데 화폐를 도입하면 선물의 오고 감이 줄지 않을까 염려한 탓이다. 차갑고 계산적인 등가교환의 수단인 돈의 쓰임새를 생각하면, 대안적이라 해도 화폐라는 이름이 붙은 복에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했다. 의심과 우려 속에서 복이 화폐냐 아니냐는 질문이 계속 되었고 마을경제 세미나는 그 답을 찾으려 애썼다. 선물경제도 더 열심히 공부했다. 글쓰기라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피하는 나 역시 복에 대해서라면 기꺼이 오케이했다(그래서 내가 쓴 글들은 대부분 복 이야기다).

  많은 복회원들이 그런 마음으로 복을 돌보고 노력을 한 덕분일까. 언제부터인가 복은 선물과 하이브리드되기 시작했다. 지난 달에 일어난 복거래를 살펴보자. 누구는 복으로 식권 사서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청년 래퍼 우현이를 응원하며 복을 선물했고, 또 누군가는 무거운 짐을 배달해준 청년 목수 지원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복을 선물했다. 오고간 복과 함께 이런 저런 근황들도 함께 읽힌다. 선물의 공동체에 복이 녹아들자, 일상을 공유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기술들이 더 다양해진 것이다.

  선물의 원리를 표현하는 복의 쓰임새를 잘 보여주는 한 순간은 복 포틀래치다. 일 년에 두어 번 복회원들이 모여 복잔치를 연다. 복포틀래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 손님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엄청난 선물들을 제공하는 포틀래치 풍습에서 착안한 이벤트다. 복잔치를 열 즈음이면 준비팀이 모여 복잔고를 쭉 훑어본다. 자작나무 복이 꽤 많은데? 쓸 데가 있어서 모으고 있대. 이사간 풍경도 복이 많구만... 본회계에 복이 많이 쌓여 있는데 좀 풀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너도 복이 많구나! 이렇게 복부자들이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복포틀래치를 하라는 요청에 들어간다. 모처럼 모은 플러스복인데.....라며 아까워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흔쾌히 응한다. 오만복, 십만복 그렇게 모인 복은, 마치 추장이 귀한 보물인 동판을 손님들에게 마구 내동댕이 칠 때처럼 복잔치날 풀려난다. 보물찾기로 뿌려질 때면 사오십대 어른들이 복을 찾아 온 사방을 뒤지고 다니게 하기도 하고, 사회자 재량껏 뿌려질 때면 사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오버액션이 난무하기도 한다. 열광의 분위기는 금새 퍼져 나간다. 복을 쾌척하고 탕진하는 가운데 마이너스 복을 탕감받는 운 좋은 일도 생긴다. 흥청망청 복잔치는 과잉을 유쾌하게 소모하는 현장 그 자체다.

  책에서만 배웠던 증여사회의 포틀래치를 우리는 복을 통해 강렬하게 실감한다. 어떻게 강제적이면서 동시에 자발적 선물이 가능한지 복을 주고받는 동안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복 덕분에 문탁의 선물경제는 더욱 활성화되어 있었다. 서로의 필요를 등가교환의 방식으로 거래하기보다는, 수고를 베풀어주고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복으로 답례하는 방식으로 전하고 있었다.

  한 군데 고여있지 않도록 물꼬를 잘 터주는 만큼 복은 활발해졌다. 복이 잘 돌아다닐 때 많은 것들이 함께 순환하는 게 보였다. 강사료에서 작업장 물건값으로, 다시 품삯으로 그리고 강의 수강료로 복이 잘 흐를 때 그만큼 문탁 공동체의 경제가 풍요로워졌다. 좌충우돌 속에서 우리는 차츰 스스로 발행하는 화폐의 참뜻을 깨달아 간 것이다. 스스로 발행하는 자유는 내 주머니 상황만 생각하는 내 맘대로의 의미가 아니었다. 어떻게 발행하는 게 적절한 지 살피고 결정하는 과정을 배우면서 우리는 복의 흐름을 능동적으로 순환시키는 존재가 되어갔고, 복은 그렇게 공동체 화폐가 되어갔다. 그러나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는 법. 복의 잘 나가던 시절도 무한정 계속 되지는 않았다.

 

      

MBC창립모임과 복보물찾기

 

4. 우리는 지금 또 다른 실험으로 이행중

 

  지난 가을 열렸던 복잔치는 역대급으로 재미있고 뜻 깊었다. 작업장과 파지사유의 각종 장비들과 친해지는 도구5종경기가 벌어져서 참가자들에게 복이 쏟아졌다. 가죽에 구멍을 뚫고, 미싱 바늘에 실을 꿰어보고, 커피 머신 조립을 해보면서 파지사유가 보다 친밀한 장소가 된 것 같았다. 타로를 봐주고, 캘리그래피를 가르쳐주고, 공들여 만든 도자기를 내놓고, 안마를 해 주는 복활동들도 구석구석에서 열렸다. 마침 좋은 기회라서, 혹은 의리로 재미로 복을 주고받는 정이 넘치는 잔치였다. 하지만 그날 복잔치에 참여한 사람 수는 예전에 비해 매우 적었다. 한때 파지사유 전체가 왁자지껄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던 풍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2015년엔 년간 총거래량이 일억복을 돌파할 정도로 열 띠었던 복거래도 2019년엔 5천만복이 채 안될 정도로 감소했다.

  그 시절 무엇이 그렇게 복에 활기를 불어넣었을까, 그때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흥분시켰을까. 작업장이라는 중심이 있어서 과감하게 복을 순환시킬 수 있었고, 복이 있었던 덕분에 작업장의 가격 책정도, 품삯 책정도 여유로웠다. 그렇게 작업장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복으로 포틀래치를 열고 펀딩을 하고 경매도 벌이며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보았다. 복을 만든 덕분인지, 화폐가 문탁을 만난 덕분인지 독특한 색깔로 마을경제를 실험할 수 있었다. 복은 이제  문탁에서 공기와 같아졌다. 처음 경험할 때는 낯설어서 나의 경제 행위를 되돌아보게 만들지만, 늘 호흡하다보면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요소로 문탁에 존재한다.

  복으로 시작한 실험은 또 다른 이슈로 이행 중이다. 돈을 멀리하려고 복을 만든 우리가 복을 넘어 이제는 ‘돈’으로 하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회원들이 한 통장을 공유하여 입금하고 출금하는 무진장이 바로 그것이다. 복과 선물이 혼용되는 경험, 복으로 사적 경제의 경계를 흐트러트린 경험을 돈에 적용하는 시도다. 지금은 작은 규모의 실험이지만 복이 그랬듯이 어느 사이 야금야금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 버릴지도 모른다. 반대로 가족경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지리멸렬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마을경제의 실험들은 쭈욱 계속되리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뚜버기 프로필 02.png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다.

 

 

 
댓글 7
  • 2020-02-24 09:32

    감명깊게 읽었어요. 저만 해도 복에서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네요. 아니, 떨어져 있지 않은데, 우리 곁에 공기가 있어 숨을 쉬지만 너무 당연해서 공기의 존재를 앚어먹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뚜버기랑 같이 복에 대해 생각하고 일을 벌였던 제가 다 뿌듯하네요. 그라고 이렇게 멋지게 글까지 쓴 것에 리스펙트!!!!

    • 2020-02-24 13:05

      참 잘했어요는 누구지??
      암튼 저도 리스펙트!!

    • 2020-03-03 08:58

      자누리 샘이죠? ㅋㅋㅋ
      아뒤에서 냄새가 나는데~~~

  • 2020-02-24 13:13

    복 개념이 아직도 모호하지만 복받을 일을 안해서 복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갑자기 제복은 마이너스인지 풀러스인지가
    궁금해지네요?
    민폐를 안끼치려면 어느정도 발란스를 맞추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복받을 일이 뭔지 궁금해집니다.
    돈을 내는것을 바라는것은 아닌것 같은데...
    복받을일 방법을 알려주세요~

    • 2020-02-24 17:52

      복을 받으려면
      공지를 열심히 보고 복활동을 신청하시거나
      복팀과 의논하셔서 하실수 있는 복활동이나 복잼활동을 하시면 됩니다. 또 복잔치때 셀러로 참여하셔도 되고 곧 진행될 개인간복거래에 적극 참여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닉네임이 누구신지 잘 모르겠어서요~~
      알려주시면 연락드릴수도 있어요~#

  • 2020-02-24 23:52

    복에 대한 문탁의 고민의 역사!!
    복에 대해 복터지게 고민하는 뚜버기쌤! 복받을꺼유~ ㅋ

  • 2020-03-03 08:58

    샘 글을 읽고 새삼 ‘복’이 문탁의 중심에서 우리의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본주의의 화폐가 잃어버린 그 능력을 복은 가지고 있었네요~

글쓰기
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8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달팽이 2020.09.21 조회 169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뚜버기 2020.07.10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