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뚜버기
2020-01-06 23:51
24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성미산마을’도 당연히 1순위 탐방 대상이었다. 마을 곳곳에 동네 반찬가게, 중고물품판매점, 마을청년들이 만들어 파는 빵집, 대안학교, FM라디오, 공동주거지가 알차게 들어서있는 부러운 동네였다. 또 지역화폐 ‘한밭레츠’를 운영하는 대전에도 다녀왔다. 돈 대신 지역화폐로 농작물서부터 병원까지 이용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자가용 두어 대 나누어서 탐방단을 꾸렸는데 나중에는 관광버스를 대절할 정도로 탐방규모가 커졌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마을경제 세미나 몇 사람만의 바램이 아니었던 것이다.

 

발로 하는 탐방만 한 것은 아니다. 하승우 선생을 초청하여 협동조합 공부도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내용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도 매출-수익 중심으로 회계를 하게 되면 결국 활동의 평가도 돈을 기준으로 하게 된다고 했던 부분이다. 어떻게 화폐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회계에 넣을 수 있을까. 호혜성의 지수가 올라갔다든가 내려갔다든가 정량적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 과연 사회적 가치를 정량화해야만 회계에 포함시킬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탐방을 다니고 협동조합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우리도 중고가게를 차리자, 반찬을 만들고 나누자, 지역화폐도 도입하자는 구상들이 더욱 구체화되어 갔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마을경제는 협동조합과도 달랐고 사회적 기업도 아니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방식을 기존의 틀에 끼워넣기보다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해보자는 쪽으로 일은 굴러갔다. 출자금이 아닌 기금을 모아 작업장을 열기로 했다. 돈을 주면 우리가 시장경제 아닌 마을경제 방식을 실험해서 세상이 좋아지도록 잘 쓰겠다고 큰 소리쳤다. 친구들은 처음엔 생소해 했으나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문탁학인 육십 여명의 쌈짓돈이 모여서 작업장이 탄생했다.

 

2.  다르게 만드는 자유

 

작업장의 구성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한 친구가 뭐든 만들어 운영에 보태라며 제법 많은 양의 짜투리 가죽들을 선물로 주기 시작했다. 가죽이라는 재료에 대해 찬반이 있었지만, 선물 준 마음을 받아 가죽으로 지갑이며 필통이며 만들어 냈고 수공예 공방(당시 ‘봄날길쌈방’, 지금은 ‘월든공방’)의 주요 생산품목이 되었다. 천연화장품 기술을 가진 세미나 멤버 자누리를 앞세워 만드는 비누와 화장품, 이웃 도서관에서 스콘을 만들던 이가 소문을 듣고 합류해서 만들어진 ‘담쟁이베이커리’등.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 수 있고 만들고 싶은 것들에서 시작했다. 반찬을 만들어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한 친구는 찬방을 조직했고, 물건을 리사이클링할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다들 공감했기에 그걸로 월세를 낼 수 있나 염려는 잠시 접어두고 중고물품 가게를 작업장 전면에 차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오묘하다. (후에 ‘이어가게’라는 재미난 이름을 얻은 이 중고가게는 2017년 작은 화재사건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철 바뀔 때만 열리는 ‘반짝이어가게’로 변신했다.)

 

나는 ‘자누리화장품’의 멤버로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화장품을 만들다보면 분업을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이 끝나겠다 싶을 때가 있다. 누구는 사전작업을 하고 누구는 재료를 섞고 누구는 포장과 뒷마무리를 맡으면 빨리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작업장에서는 분업을 하는 대신 누구든지 비누를 만드는 전 과정을 다 경험해서 혼자서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작업을 배치한다. 신참자가 간혹 실수로 망칠 때도 있다. 숙련된 선배가 나서서 되살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생이 어려울 때도 있다. 미안한 마음에 망친 건 제 품삯에서 빼달라고 하는 신참들이 많지만 그런 일은 작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참이 민망해 할까봐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는 일이 선배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그리되면 품질이 제멋대로 아니겠냐는 불신의 눈으로 작업장 물품들을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매번 만드는 비누며 화장품은 조금씩 색깔도 향도 다르다. 질감도 살짝 다를 때가 많다. 만일 우리가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을 만든다면 이런 방식을 고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불특정 대상에게 판매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늘 균질한 상품을 내놓는 것이 시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 때는 그것을 사용할 친구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오일을 섞고 향을 첨가한다. 요새 로션이 좀 묽은 것 같다고 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좀 더 젓는데 신경을 쓰고, 천연치약 짱이라고 좋아라하던 이의 표정을 떠올리며 더 신나게 치약재료들을 배합한다. 친구가 쓰고, 친구가 선물할 물건들이라고 생각하면 시장과는 다른 의미로 허투루 만들지 못 한다.

 

수익이나 효율이라는 막연함 대신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만나는 것들에 충실하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손쉽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되면 좋고 안 되도 괜찮고의 정신이 흘러 다니는 작업장은 역동적이다. 함께 세미나를 하고 함께 생산을 한다. 아침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소를 치고 밤에는 비평을 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기분전환의 농담이라고 말했던 맑스의 상상을 조금은 실현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작업장이다.

 

 

3.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

 

문탁 바깥에서 만나는 지인들이 내가 매고 있는 특이한 숄더백이나 지갑 등에 관심을 보일 때가 있다. 나는 당당하게 작업장의 핸드메이드라고 자랑을 하는 데 이내 얼마주고 샀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가격을 말해주면 브랜드도 아닌데 좀 비싸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나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든다. 예전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좀 더 가격을 낮춰야 하나 고민부터 됐다. 나만 해도 처음엔 작업장 물건들과 마트 제품들, 프랜차이즈 빵들과 가격 비교하면서 물건 집기를 주저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격비교를 전혀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장경제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실감에 놀라는 것이다. 작업장의 물건 값이, 그것을 만든 일꾼의 생활 요긴하게 쓰이고 공유지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매일매일 눈으로 본다. 여러 사람의 생활에 생기는 작은 여유들이 모이면서 우리 모두의 삶이 조금씩 풍성해졌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어느 새 가격에 무심해 진 것이다. 그저 친구가 그것을 만드는 광경을 떠올리며 산다. 점점 사고파는 건지 선물을 주고받는 건지 경계가 흐려진다.

 

사고팔기와 주고받기가 뒤섞이는 가운데 고안된 제일 특이한 방식은 아마 문탁 주방의 단품판매일 것이다. 문탁 주방에서는 시장거래에서는 상상도 못할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판다. 오이소박이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면 주문을 먼저 받는다. 그리고 필요한 양의 식재료를 사고 음식을 만들어 사람 수대로 나눈다. 그리고 재료비와 품삯 등을 따져서 가격을 책정해서 주문자들에게 알려준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식재료의 특성 상 구입하는 양이나 시기에 따라 가격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누구일지 모를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한다면 가격 변동에 대한 위험부담을 감안해서 가격 책정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것이다. 얼마의 가격을 정해야 소비자들이 상품의 교환가치를 인정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길 것인가는 장사하는 사람에게 정말 큰 고민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만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노력에 힘을 뺄 필요가 없다는 점에 다들 수긍한다. 주방에서는 더 풍성하게 나누어 주지 못해 안달이고 음식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셰프 품삯이 너무 적지 않냐고 걱정이다. 주방의 판매방식과 만나면서 우리는 점점 사고파는 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른 경제를 말하면서 이렇게 돈주고 사고팔아도 되나 걱정했던 적도 있었지만, 물건을 사고팔긴 하는데 시장경제와는 뭔가 달랐다. 시장경제의 거래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인격이 제거되고 오직 상품과 화폐의 대리인으로 만나 교환가치를 주고받는 것이다. 마을경제 방식의 사고팔기에서는 물건이 어떻게 쓰이는지, 또 상대가 누군지가 생생하게 잘 보였다. 절로 교환가치 대신 사용가치가 중요하게 되었고 거래관계를 넘어 서로 배려하는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었다.

 

4. 진짜 미니멀리즘과 절제 속의 즐거움

 

앞치마가 필요하면 월든공방에 부탁하고 통밀로 만든 담쟁이스콘에 입맛을 길들이고 이만 원짜리 한방샴푸를 쓰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장 물건을 사재끼느라 허리가 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생활비가 더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큰 마트에 한 번 가면 할인판매하니까 사자, 온 김에 사자 싶어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다보면 장보기에 지출하는 돈이 적지 않았는데, 마트에 발길을 끊고 나니 필요 이상의 과소비가 없어졌다. 장본다고 차 끌고 다닐 일도 없다. 최신 트랜드와 멀어지니 꼭 장만하고 싶은 물건도 없다. 게다가 작업장에는 이어가게가 있다. 이어가게가 생긴 뒤 옷이며 신발 등은 제 값 주고 신상품을 사 본 적이 언제인가 손꼽을 정도다. 생활 자체가 심플하다.

 

문탁 사람들은 더 이상 이어가게에 내놓을 옷이 없다고 한다. 전에 샀던 것들은 이미 이어가게에 다 내놨고 더 이상 쇼핑을 하지 않다보니 신상이 귀해진 것이다. 이제 이어가게에서 득템한 옷을 곱게 잘 입고 다른 이웃에게 물려주는 단계로 진입한 것 같다. 올해는 내가 입고 내년엔 다시 내놓을 테니 그때 네가 입으라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어떤 친구는 여행용 트렁크를 사야하는데 당근마켓에서 사는 게 좋을지 친구에게 빌릴지 고민이라고 한다. 새 걸 사는 건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다. 또 다른 친구 역시 연필깍기가 필요한데 값은 얼마 안 되지만 감히 새 걸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분명 누군가의 집에 연필깍기가 놀고 있을 텐데 어떻게 새 물건을 또 사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라 한다. 누군가는 설레지 않으면 다 버리라고 하고, 미디어에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려면 이런 물건을 구입하라고 떠들어댄다. 미니멀리즘을 위해 버리고 또 사야한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오히려 웬만하면 안 버리고 안 사는. 나눠쓰고 돌려쓰기 스킬을 점점 연마해 가는 이어가게 단골들의 생활이 진짜 미니멀리즘 아닐까.

 

 

그렇다고 수도승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래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았다. 뭘 하나 사려면 잘 사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너무 많아 제 풀에 지치기 일쑤였다. 쇼핑 중에서도 제일 질색이 옷 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어가게가 생긴 뒤로는 철 바뀌고 옷 고르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눈썰미 좋은 친구들이 내게 맞을 만한 옷을 딱딱 골라주니 기분 좋고, 가격 또한 저렴하니 부담없이 여러 벌을 팍팍 산다. 덕분에 나는 평소 돈 주고는 절대 사지 않을 스타일에도 과감하게 도전한다. 친구들이 경악하든 말든, 아니 그게 더 재미있어서 형광빛 감도는 파란 레이스 치마를 입거나 월남치마에 체크무늬셔츠를 매치하는 언밸런스한 패션(테러?)을 감행한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바지는 퇴근길 인문학에 오시는 먼불빛님이 내놓은 것이고 외투는 문탁선생님이 내놓은 것이다. 문탁선생님은 내가 본인 옷을 입고 있는 걸 볼 때 마다 반가워 하시고 나도 내가 내놓은 옷을 입고 있는 친구를 보면 더 친한 느낌이 든다.

 

『성장을 멈춰라』에서 일리치는 산업화와 제도화로 인한 현대사회의 위기의 해결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서로 절제하면서 보살필 때 더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간파”할 때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어가게의 경험은, 절제하는 삶이 욕망을 억누르고 참는 고행이 아니라는 것을 진심 이해하게 해주었다. 일리치 말처럼 서로를 보살피기 위해 절제하는 가운데 이전과는 다른 기쁨이 찾아왔다.

 

5. 마을경제 : 다르게 사는 기술 쌓기

 

문탁홈페이지에 카테고리로도 걸려 있기도 하고, 우리가 하도 떠들어 대서 그런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마을경제가 뭐냐고 묻는다. 작업장에서 물건을 만들고, 대안화폐로 친구가 만든 물건을 산다. 이어가게로 물건을 순환시키고, 시도 때도 없이 선물을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경제 실험이 마을경제라고 하면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한다. 자본주의를 벗어나 사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돈 때문에 쪼들리는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이 문제를 함께 풀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고 십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있다.

 

머리 맞대고 책을 읽으며 다르게 살았던 사회를 공부하고 그로부터 얻은 영감을 활동에 접목시키는 실험을 해왔다. 별 것 아닌 듯 별 것인 듯한 다르게 살기 신공들을 발휘해 왔다. 공부와 활동을 공유하면서 얻은 작은 전환들을 정리하여 공통의 지혜로 만들려고 애써왔다. 시장을 흔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출발했으나 우리가 이룬 것은 소소하다.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지도 못했고 그럴 듯한 사례연구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업장을 만들고 공유지를 가꾸는 소박한 실험을 하는 과정은 우리 일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었다. 비록 우리가 시장을 흔들지는 못했지만 함께하는 친구들의 삶은 조금 흔들렸다.

 

* 참고한 책 

『성장을 멈춰라: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이반 일리치 지음, 미토, 2004년.

 

 

 

뚜버기 프로필 02.png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다.

 

 

 
댓글 4
  • 2020-01-07 10:34

    오늘도 가슴에 와 닿는 글 잘 읽고 가요. 감사합니다.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 2020-01-07 10:38

    올라오는 글마다 꼬박꼬박 읽어주시는 루틴님께 새해 복 많이!!!

  • 2020-01-08 12:16

    흔들린만큼 다르게 사는 기술이 늘어난 1인이지만...
    여전히 흔들리면서 또 모색하고 있습니다~

  • 2020-01-11 23:55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을 흔들지는 못했지만 우리 각자의 시장은 기분 좋게 흔든 것 같아요.

글쓰기
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8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달팽이 2020.09.21 조회 169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뚜버기 2020.07.10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