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뚜버기
2019-09-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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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노동력을 판매하여 노동력과 똑같은 가치만큼 받는 화폐라는 것이 통념이다. 이 생각의 배경에는 노동가치설이 있다. 얼핏 들으면 노동이 가치있다는 말로 들리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가치에 대해 처음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애덤 스미스(1723~1790)이다. 당시 유럽은 금화를 많이 보유하는 것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길이라 여겨 무역을 중요시하던 분위기였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반박하며 화폐는 그저 교환수단일 뿐이고 생활에 필요한 재화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진정 국가의 부를 늘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재화의 생산이 가치를 증진시키고 부를 늘리는 길이며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애덤스미스의 논의는 데이비드 리카도에 이르러 더욱 정교해 진다. 사고파는 재화들 즉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노동했는가를 소급하여 계산할 수 있다는 리카도의 주장은 고전경제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물건의 가치가 정량적으로 계산 가능하다면 서로 다른 질의 물건들도 가치의 비교를 통해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등가교환이 가능해진다. 거래는 활발해지고 모든 가치를 대표하는 형태 즉 ‘돈’이 전면에 부각된다. 상품의 가치는 가격으로, 노동력의 가치는 임금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대량생산 설비를 갖춘 면방직공장이 생기면 시장에서 면의 가격은 급락한다.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생산한 면도 덩달아 가격이 하락한다. 전과 다를 바 없는 노동력을 투입했지만 수공업자의 면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칼 맑스(1818~1883)는 노동력의 가치란 사회 전체의 총노동에 대한 평균적인 ‘필요노동시간’에 해당한다고 정리해 냈다. 그렇게 보면 노동생산물의 가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객관화 가능한 것이며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는 내용인 셈이다.

 

 

  그럼에도 노동가치설이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인간의 노동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되어 사고 팔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낳았다. 노동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노동자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식으로 사고의 역전이 일어난다.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은 무가치하다는 식의 극단으로까지 몰아 붙여진다.

 

  리미티드 에디션을 욕망한다

  산업자본주의를 넘어 정보자본과 금융자본이 전면적인 시대이다. 웹과 앱을 오가는 우리의 손가락질은 소비인지 노동인지 구분이 안 된다. 또 놀면서도 막대한 부를 벌어 들이는 금융소득자의 치부 역시 노동가치설로는 설명이 안 된다. 사실 노동가치설은 자본주의가 발흥하고 확산되던 19세기 다양한 가치이론의 각축 속에서 맑스에 의해 재정립된 이론 중 하나였다. 오스트리아의 칼 멩거(1840~1921)를 시초로 하는 한계효용학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가치이론을 전개하고 있었다. 멩거는 가치란 개인들이 자신의 삶과 복지를 유지하는 데 그 재화가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니는가에 관계한다고 보았다. 이때 재화의 효용만이 아니라 희소성이 가치결정에 작용하게 된다. 없어서는 안 되는 물보다 유용성이 훨씬 떨어지는 다이아몬드가 더 큰 가치를 가지는 이유를 쉽게 설명해준다.

  스미스와 리카도만 해도 부는 사회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애덤 스미스는 ‘국가의 부’란 무엇인지 질문했던 것이고 사회적인 부를 어떻게 지주와 노동자와 자본가가 합리적으로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앞에 두고 가치라는 개념을 정립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치가 주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효용성과 희소성에 따르는 것이 되자, 부는 사회적 맥락과 무관한 개인들의 경제활동에만 관계되는 것으로 한정된다. 재화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력이 아니라 개인들의 욕망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의미부여가 그 재화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설명은 희소한 재화들을 앞에 두고 개인들이 경쟁하는 자본주의 시장을 연상시킨다. 한계효용 이론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토대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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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소성과 효용성을 기초로 가치를 평가하게 되자 또 다른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다. 턱없이 높은 가격표를 붙이더라도 한정판이라고 하면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말해 주듯이, 실제로는 주관적인 의미부여 때문에 욕망한다기보다 희소하기 때문에 욕망하는 역전이 발생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옷을 입어야 하고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배우고 남이 가지지 못한 스펙을 쌓아 더 높은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 희소한 것에 대한 욕망은 더 많은 것들에 가격을 매기고 휘황찬란한 쇼윈도우 앞에 진열시켰다. 개인적인 의미로 가치가 다양화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개인주의적인 세계는 화폐라는 단일한 가치평가 시스템을 가진 거대한 전체성 속에서 놓이게 된 것이다.

 

  비시장경제의 가치론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가치를 다르게 이해한다면 어떠했을까? 마셜 살린스는 『석기시대 경제학』(한울아카데미, 2014년)에서 이와는 다른 가치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들을 탐구한다. 뉴기니의 휴언만 인근의 부족들의 예를 살펴보자. 휴언만을 둘러싼 부족들의 교역은 중심촌락인 부사마에서 공급하는 타로에 크게 의존한다. 타로는 그들의 주식이기 때문이다. 입지적으로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쪽과 남쪽의 산물의 중계 교역에도 큰 역할을 한다.

  부사마는 식량을 독점 공급해서 큰 이익을 누릴 수도 있지만 주변 촌락의 토기나 돗자리 등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치로 교환된다. 소형토기 1개에 타로 50파운드의 교환율은 필요노동시간이라는 측면에서 토기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부사마인들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인다고 관찰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게다가 재화의 교환율은 휴언만 전체에 걸쳐 똑같이 적용된다. 돗자리 1장은 주머니 4개나 소형토기 1개와 교환된다는 비율이 생산지와 멀리 떨어진 촌락이든 가까운 곳이든 변함없이 지켜진다.

  시장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부사마인들은 경제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미개인 취급받기 십상이다. 식량을 독점공급하는 유리한 상황을 잘 활용해서 타로의 교환율을 올린다든가 남쪽 토기를 사다가 북쪽에 더 비싸게 팔고 북쪽 돗자리를 남쪽 마을에 가져다 줄 때 유통 차액을 챙긴다는가 하면 얼마든지 ‘부’를 축적할 수 있을텐데 답답한 노릇 아닌가. 가진 자의 갑질을 하기는 커녕, 부지런히 일해서 얻은 자신들의 풍요를 일도 별로 안 하는 이웃마을에 빼앗기는 꼴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부사마 사람들은 혼례용 선물 등으로 북쪽 촌락의 돗자리가 꼭 필요하지만 북쪽 마을은 타로 수요가 크지 않다. 반면에 북쪽 마을 사람들은 남쪽 촌락에서만 생산하는 토기를 가지고 싶어 한다. 부사마인들은 식량이 부족한 남쪽 마을에 타로를 가져다 주고 토기를 받아다가 북쪽에 가져다 주어 우호적 관계를 지속시키면서 돗자리를 얻는 방식으로 거래한다. 부사마인들에게 토기의 가치는 사용가치를 넘어서는 중요성이 있기에 남쪽 촌락과 거래관계를 잘 맺기 위해 경제적 이익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작은 공동체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런 교역체계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다양한 산물들이 교역망 속으로 추가되는 경향을 띠게 된다. 주변부의 촌락들은 다른 곳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이국적 품목들을 거래망에 추가시켜 보다 활발한 거래를 꾀할 것이고 점점 교역망의 공간적 범위는 확장된다. 새로운 공동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가운데 물질적 흐름도 활발해지면서 다함께 풍요를 누리게 된다. 휴언만의 공동체들이 자신들 나름의 교환율을 고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웃과 잘 지내야 잘 살 수 있다는 실용주의에 입각한 호혜성과 관대성이 교환율의 근저에 깔려있다.

  휴언만의 교환율이 노동가치나 한계효용과 같은 획일적인 틀로 정량화하지 않는다고 가치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어떻게 복잡한 교역관계망이 깨지지 않고 역동적으로 통합되는가가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 획일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차별적인 방식이, 결정론적인 기준을 가지기보다는 함께 수긍할 수 있는 교환율을 도출하는 감각이 필요했다. 실생활에서 끊인없이 그 감각들을 키우면서 적절한 교환율을 찾는 노하우가 그들의 가치론이라 할 수 있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와 같이 획일적 틀에 맞추기 위해 팔다리를 모두 쳐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섬세한 고려가 민감하게 작동하는 가치법칙, 용어와 숫자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가치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탁네트워크의 교환율

 

  문탁네트워크에는 여러 매니저들이 있다. 자율카페에, 공동체 주방에 매니저들이 있고 또 작업공방마다 일꾼들도 있다. 그 외에도 회계며 홈페이지 제작과 관리, 강좌의 기획과 홍보 등등, 하나의 공동체가 원활히 유지되려면 해야 할 일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애쓰며 활동하는 이들 덕분에 문탁의 일상은 굴러간다.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이 일들은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보수를 지급하고 맡겨진다. 내부활동가이든 외주이든 일에 상응하는 보수를 임금의 형태로 준다는 점, 그리고 그 기준이 시간비율 혹은 일의 난이도에 따른다는 점에선 세간의 가치척도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탁의 경우는 외부에 맡기는 일은 복사기 대여와 홈페이지 서버 호스팅 정도만 해당 될 뿐, 웬만한 일은 어떻게든 회원들의 손으로 해결하는 편이다.

  사람이 몇 안 되었던 초기에는, 온종일 터전에 상주하며 잡무를 처리하는 일도 점심저녁 밥을 짓는 일도 선물로 주어졌다. 심지어 밥당번이 본인이 한 밥을 밥값을 내고 먹는 게 전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규모가 커지고 일도 점점 늘어나면서 활동비를 지급하는 일들이 하나둘 생겼다. 처음 고정적인 활동비가 지급되었던 것은 아마 작업장 일꾼 품삯이었던 것 같다. 작업장은 일당받고 고용된 노동력이 아닌 방식으로 일하고 돈도 벌고 싶어서 만든 일터였다. 그래서 직원이니 일당이니 하는 말 대신 일꾼과 품삯이라는 말을 썼다. 나는 작업장 회계를 맡았었는데 처음 품삯을 정할 때 은연중에 일한 시간을 품삯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르게 해보자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노동가치설이나 희소성의 원리가 아닌 기준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일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하면서 활동비 혹은 품삯을 둘러싼 설왕설래는 계속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러는 가운데 어느새 하나의 기준이 정해져 있었다. 어떤 일에 얼마라는 식의 획일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 활동비 책정의 대원칙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전제로 하여 다양한 일에 차별적인 기준들이 정해지고 있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돈이 필요한 사람이 더 가져간다. 밖에서 덜 벌고 문탁에서 더 많이 일하고 자립하겠다는 자누리사업단에는 제법 돈이 되는 활동비가 책정됐고 그 시도를 지원하는 많은 친구들이 자누리 단골고객이 되었다. 리사이클링과 손작업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은 월든 공방은 작은 품삯만 받고 일하지만 누구도 그 일이 가치가 낮아서 품삯이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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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쉽게 이런 결정들이 쉽게 이루어 지지는 않았다. 일한 만큼 받는다는 것이 정당하다고 배워왔기에 더 받고 덜 받는 것에 대한 부담과 불편함이 앙금처럼 마음에 남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수년 동안 비결정적 활동비 정책이 지속되자 문탁에서 이런 방식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청년들에게는 이런 저런 일자리를 만들어 활동비를 주려고 애쓰지만 밤낮을 새면서 홈페이지를 만드느라 수고해준 직장인 회원에게는 감사하는 마음만 주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다른 식의 보답을 고민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가치의 기준이 꼭 하나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것. 자본주의 시장논리와는 다른 가치기준들을 세워보는 것. 우리는 지금 마을 경제의 새로운 가치법칙을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 중에 있다.

  가치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면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마셜 살린스는 “시장-산업체계는 완전히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희소성을 제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도화된 희소성의 세계에서 우리는 늘 결핍을 느낀다. 그리고 결핍된 것을 수중에 넣기 위해서 대신 가질 수 있는 어떤 다른 것을 앞서 포기해야 한다. “결핍에서 출발해서 상실로 끝나는 이중적인 비극” 속에 살아가기를 그만두는 것. 그것은 우리만의 가치기준을 새로 만들어보는 일, 마을의 가치법칙을 만들어보는 일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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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다.

 

댓글 3
  • 2019-09-25 12:07

    글쓰느라 수고하셨습니당.
    병치례 끝에 완성된 글이라서 그런지 남다른 가치가 느껴지네요. ㅋㅋ

  • 2019-09-28 16:01

    돈을 받지 않고 어디선가 이렇게 일했다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것 같아요.
    문탁에는 돈을 뛰어넘는 가치가 이미 존재하는 거겠죠.

    증말 이상한 데라니까요 ~~ ㅋㅋ

    • 2019-09-28 22:55

      그니깐요.
      저는 몇년째 마을버스에서 만나면 어디가냐고 묻는 어르신들께 여기가 어디라고 확실한 대답을 못해드린다니깐요. ^^
      왜 그런데를 계속 다니고 있는 걸까요? 호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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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8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달팽이 2020.09.21 조회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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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