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뚜버기
2019-07-0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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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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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순수한 호의에 의한 주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선물이다. 가족이나 친구·연인 사이에서 주고받는 선물, 복지가가 베푸는 자선 등등. 선물이 비록 순수하고 고귀하다 해도 어차피 기본은 등가교환이다. 선물은 그저 일시적인 기분전환 정도일 뿐이다. 여기까지가 물건을 주고받는 것에 관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들이다.

그러니 문탁주방의 선물의 노래는 선물의 순수함을 훼손하는 세속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선물이 아니라 체면 때문에 혹은 부채감 때문에 하게 된다면 진정한 선물이 아니지 않냐는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과연 진정한 선물이란 가능하기는 한 걸까?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인간 행동의 동기라고 미리 전제된 이상, 선물은 아무리 순수해보여도 호의를 가장한 이해타산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류에게 있어서 선물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원리였다. 이때 선물은 순수한 주기가 아니었다. 주고-받고-답례하는 행위가 한 세트였다. 또한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적인 것이었다. 자발적이면서 의무적이라니 모순 아닐까? 자발성을 가장한 강제이거나 의무를 앞세우지만 결국 이득이 있으니 하는 것 아닐까. 더 혼란스럽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에 빠지는 이유는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파푸아 뉴기니의 산악지역에서 타로를 재배하며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바이닝족이 있다. 이들에게는 부족장도 없고 씨족에 따른 신분구별도 없으며 연령에 따른 위계도 없다. 입문 의례나 제의 체계도 없다. 한 마디로 어떤 정치적 조직도 지속적 사회구조도 없이 유지되는 무정부주의적 평등사회다. 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중재를 해 줄 권위 있는 추장조차 없이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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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닝 사회에서 가장 명예로운 행위는 음식 혹은 소비 가능한 다른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다.....음식이나 빈랑나무 열매 등을 상시적으로 서로 주고받곤 한다. 길을 가다가 두 남성이 만나면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로에게 좀 씹으라며 빈랑나무 열매를 권하는 동시에 자신도 상대방의 것을 받아먹을 것이다....가구들끼리도 저녁 준비를 위한 타로를.....서로 주고받는다.”(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데이비드 그레이버, 그린비, 167~169.)

 

상대방도 가지고 있는 것을 굳이 선물하고 또 선물 받는다. 남들 주려고 타로농사에 필요 이상으로 몰두하기도 한다. 인간이 이해타산적 존재라고 전제하면 이들의 행동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비합리적이고 쓸 데 없는 겉치레처럼 보이는 선물이 사실은 바이닝 사회에서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관대한 태도로 물건을 주고받는 가운데 호의적인 관계가 성립되고 돈독함은 재차 확인된다. 상대가 선물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준 선물을 거부하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행위이고 공동체적 관계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금기시 된다. 따라서 선물은 자발적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분명 강제성이 공존한다. 이처럼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적인 선물을 주고받는 가운데 바이닝족은 사회적 결속을 다지고 질서를 유지하고 살아갔다.

이들 뿐만은 아니다. 남태평양의 멜라네시아 지역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부족민들은 주기적으로 카누를 타고 이웃 섬을 방문하여 선물을 교환하는 의례인 쿨라를 통해 부족들 간의 평화를 유지해 갔다. 또 북태평양 연안의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는 귀족들이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여 막대한 선물을 뿌리는 포틀래치를 벌이곤 했다. 수천 년간 인류는 의례적인 선물교환을 기반으로 하여 국가권력을 세우지 않고도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며 살아온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선물이 사적인 영역의 자발적 호의로 축소된 것은 불과 이삼백년 사이의 일이다.

    

 

2. 교환이 지배하는 세계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평화로운 사회의 토대는 국가였다. 홉스는, 어떻게 인간이 서로 가진 것을 뺏고 빼앗기는 야생의 늑대와 같은 상태를 벗어나 사회를 이루며 살게 된 것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답으로 국가를 제시했다. 사람들은 국가를 설립하여 자연 상태의 내 맘대로 할 권리를 양도하는 대신 최고권력인 국가의 강력한 규제 아래 안심하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의 보증 덕분에 타인들과 안전하게 계약을 맺고 거래를 하며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 홉스가 말하는 사회의 기원이다.

하지만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사회의 기원을 설명하기보다는 그가 살던 시대의 사회를 설명하는 원리였다. 17세기 당시는 정치적으로는 반목과 내란이 끊이지 않았고 산업자본주의와 시장에서의 등가교환거래(이하에서 선물과 구별하여 교환이라 부르자)가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였다. 선물과 달리 교환의 목적은 각자의 영리를 추구하는데 있다. 교환에 있어서 거래 상대가 누구인지 그와 어떤 우호적 관계를 맺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전의 공동체에서는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는 아무하고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활필수품은 더욱이 흥정해서 사고파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판매자, 판매가격, 판매장소는 공동체의 전통적 관습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공동체 내부에서는 필요한 물건들이 선물의 형식으로 오갔으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거래는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 부족과 부족 사이에서나 가능했다. 그조차도 원시사회들은 표면적으로는 후하게 주고받고 갚는 선물의 형식으로 거래하면서 서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기제를 작동시켰다. 선물의 원리로 구성되는 공동체가 강력한 상태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자본주의적 등가교환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등가교환시장은 기존의 중세적 사회질서가 와해되어 공동체의 결속이 흔들리는 틈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상대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필요 없는 일회적 성격의 교환은, 의무적인 성격이 강한 선물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듯 보였다. 규범에 속박된 선물의 형식보다 자유로운 교환은 부담없고 가볍게 느껴졌다. 18세기쯤 되면 최신 이론가들이었던 고전파경제학자들에 의해, 등가교환방식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고 합리적 사고의 결과라는 주장이 세간에 확산된다. 선물은 비합리적이고 번거로운 것이고 교환은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는 식으로 교환의 장점이 부각되었다. 점차 선물은 삶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교환이 인간 생활의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옹호자이자 이론가를 자임했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교환의 편에서 논리를 전개해간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선물은 교환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원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까? 백 년 전의 인류학자 마르셸 모스는 증여론(1924)을 통해 여전히 인류사회의 반석에 선물의 원리가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경제학자들의 가정 자체가 잘못 된 것임을 밝힌다.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존재-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임을 동서고금의 인간집단을 통해 보여준다. 인류 경제의 원형은 교환이 아닌 선물이었으며 더 나아가 선물은 단순히 경제적 기능만을 담당한 것이 아니라 법·종교·도덕·혼인·예술 등을 아울러 사회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이었음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적 부조, 노동조합운동,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등을 예로 들면서 증여의 윤리가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여전히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증여의 원리로부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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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보야, 문제는 선물이야  

백 년이 흐른 지금 그 가능성은 더 커졌을까. 무역 전쟁이라는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닐 정도로 각종 경제보복이 국제사회에서 무기로 작동한다. 모든 것을 화폐가치라는 단일 척도 아래 줄 세우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지배는 백 년 전보다 다 냉혹하게 우리 삶을 옭아맨다. 사회를 구성하는 선물이란 너무나 먼 옛날이야기, 흔적만 남은 고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선물의 귀환이 필요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고 대등한 교환의 주체가 된다는 말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게 시장은 환상이다. 가격비교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온갖 리뷰를 섭렵하지 않으면 왠지 손해 볼 것 같다. 모든 일에서 소위 말하는 가성비를 따지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가격흥정을 하고 중고거래를 한다. 합리적인 거래를 하려고 애를 쓰지만 상대에게 속는 건 아닌가 전전긍긍한다.

공동체 전체가 재난에 빠지지 않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 개인이 굶어 죽는 일은 없다는 말이 있다. 선물은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식이고 교환은 공동체를 해체하는 방식이라면 마을의 유대관계를 단단히 하고 거기서 함께 잘 살아가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 아닐까?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언제 어디서 사기를 당할지 모르는 경쟁관계보다 신뢰가 바탕이 되는 관계가 계산기 두르려 보아도 결코 밑지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 전 지역에서 마을카페를 운영하는 분을 만났다. 실무자 인건비라도 나오려면 수익이 어느 정도 나야 되는데 그러자니 마을 분들로부터 초심을 잃고 이익만 추구한다며 비난을 받는다며 힘들어 했다. 등가교환 관계에서는 정말 답을 찾기 어렵다. 문탁네트워크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공간을 유지하는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대부분 재정 자립을 위해 수익사업을 잘 꾸리는 비결을 듣기를 기대한다. 그 분들게 문탁의 재정자립 비결은 선물의 원리라고 알려드리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진다.

문탁의 운영은 수익사업을 하고 실무자에게 노동에 합당한 인건비를 지급하는 교환 관계 바깥에 있다. 그렇다고 사적인 관대함에서 비롯된 자선의 형태도 아니다(누군가는 열정페이-노동착취가 아닌가 의심한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선물의 형식으로 많은 것들을 주고받으면서 유지된다. 단지 경제적인 이유에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주고받는 것을 넘어서 물건과 활동과 공부와 심지어 돈까지 뒤섞어 순환시킨다. 청소당번과 밥당번의 수고도, 매니저들의 섬세한 손길도, 책을 읽고 발제를 하고 메모를 쓰면서 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도 모두 선물관계에 속해 있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많은 사람 사이를 흘러 다니고 공동체는 풍성해진다. 여기에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꾸려지는 비결이 숨어있다. 칠판에 선물을 제 손으로 적는 것이 결코 생색내기가 아니다. 퇴화된 유물처럼 하찮게 여겨지는 선물의 원리를 의식적으로 드러내고 확산시키려는 적극적 실천이다.

상상해보자. 마을에서, 공동체에서 마주하는 이웃들과 교환 대신 선물로 관계를 맺는 경험을 늘린다. 경쟁 대신 관대함이 흐르는 분위기에서 우정을 쌓고 관계는 더욱 강화된다. 교환경제의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잦아진다. 이전엔 답을 찾기 어려웠던 여러 가지 경제적 문제들에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동체는 더 탄탄해지고 선물은 더욱 활발하게 순환한다. 마을에서는 선물이 답이다.

    

 

4. 마을경제학이 필요한 이유  

올 봄 친구들과 다시 증여론을 읽었다. 이번에는 청년들도 함께 읽었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꺼냈다.

 

    청년 A : 그동안 저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게 된다면 그것을 기쁘게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누군가가 내가 선물한 것을 그렇게 사용해준다면 기쁠 것 같고요. 이런

    감정이 전해진다면, 이것도 증여 아닐까요.

 

하지만

댓글 4
  • 2019-07-04 09:49

    글이 술술 읽혀요~~~^^ 쓰시는데는 고되셨을텐데.... 

    선물을 기꺼이 주고 받는 것도 기술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위안이 되네요....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방접이 있는거니까요.... ^^

    증여론이 읽어 싶어졌어요!! 습관처럼 익숙한 교환의 삶에서 한 걸음 비껴나가보고 싶어요! 

  • 2019-07-04 10:43

    익숙하고 편안한 교환논리의 삶이 가성비 대비 참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런 논리가 삶을 참 외롭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앙꼬없는 붕어빵처럼 삶에 재미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 

    문탁와서 배운 것 중 하나인 선물의 논리..익숙하지는 않지만 참 매력적입니다^^

    그 매력에 빠지고 싶은데...  "선물의 주고받기에도 기술과 공부가 필요하다" 말이 참 와닿네요.

    하고 싶으면 배우고 해보면 되겠죠?^^

    뚜버기샘~~ 좋은 글 감사해요~^^

  • 2019-07-04 18:27

    이 글 역시! 선물이네요!

    글쓰기가 하나도 재미없는  뚜버기샘이라 더욱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 2019-07-07 12:18

    비합리적이고 겉치레처럼 보이는 것은 말이든 선물이든..

    다 싫다고 느꼈던 저와 같은 사람이 이제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 속에서 잘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ㅋ

    이 글은 저에게도 선물입니다~ 땡큐베리망치^^

    다음 글도 기다리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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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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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