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뚜버기
2019-07-0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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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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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순수한 호의에 의한 주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선물이다. 가족이나 친구·연인 사이에서 주고받는 선물, 복지가가 베푸는 자선 등등. 선물이 비록 순수하고 고귀하다 해도 어차피 기본은 등가교환이다. 선물은 그저 일시적인 기분전환 정도일 뿐이다. 여기까지가 물건을 주고받는 것에 관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들이다.

그러니 문탁주방의 선물의 노래는 선물의 순수함을 훼손하는 세속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선물이 아니라 체면 때문에 혹은 부채감 때문에 하게 된다면 진정한 선물이 아니지 않냐는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과연 진정한 선물이란 가능하기는 한 걸까?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인간 행동의 동기라고 미리 전제된 이상, 선물은 아무리 순수해보여도 호의를 가장한 이해타산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류에게 있어서 선물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원리였다. 이때 선물은 순수한 주기가 아니었다. 주고-받고-답례하는 행위가 한 세트였다. 또한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적인 것이었다. 자발적이면서 의무적이라니 모순 아닐까? 자발성을 가장한 강제이거나 의무를 앞세우지만 결국 이득이 있으니 하는 것 아닐까. 더 혼란스럽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에 빠지는 이유는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파푸아 뉴기니의 산악지역에서 타로를 재배하며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바이닝족이 있다. 이들에게는 부족장도 없고 씨족에 따른 신분구별도 없으며 연령에 따른 위계도 없다. 입문 의례나 제의 체계도 없다. 한 마디로 어떤 정치적 조직도 지속적 사회구조도 없이 유지되는 무정부주의적 평등사회다. 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중재를 해 줄 권위 있는 추장조차 없이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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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닝 사회에서 가장 명예로운 행위는 음식 혹은 소비 가능한 다른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다.....음식이나 빈랑나무 열매 등을 상시적으로 서로 주고받곤 한다. 길을 가다가 두 남성이 만나면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로에게 좀 씹으라며 빈랑나무 열매를 권하는 동시에 자신도 상대방의 것을 받아먹을 것이다....가구들끼리도 저녁 준비를 위한 타로를.....서로 주고받는다.”(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데이비드 그레이버, 그린비, 167~169.)

 

상대방도 가지고 있는 것을 굳이 선물하고 또 선물 받는다. 남들 주려고 타로농사에 필요 이상으로 몰두하기도 한다. 인간이 이해타산적 존재라고 전제하면 이들의 행동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비합리적이고 쓸 데 없는 겉치레처럼 보이는 선물이 사실은 바이닝 사회에서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관대한 태도로 물건을 주고받는 가운데 호의적인 관계가 성립되고 돈독함은 재차 확인된다. 상대가 선물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준 선물을 거부하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행위이고 공동체적 관계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금기시 된다. 따라서 선물은 자발적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분명 강제성이 공존한다. 이처럼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적인 선물을 주고받는 가운데 바이닝족은 사회적 결속을 다지고 질서를 유지하고 살아갔다.

이들 뿐만은 아니다. 남태평양의 멜라네시아 지역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부족민들은 주기적으로 카누를 타고 이웃 섬을 방문하여 선물을 교환하는 의례인 쿨라를 통해 부족들 간의 평화를 유지해 갔다. 또 북태평양 연안의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는 귀족들이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여 막대한 선물을 뿌리는 포틀래치를 벌이곤 했다. 수천 년간 인류는 의례적인 선물교환을 기반으로 하여 국가권력을 세우지 않고도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며 살아온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선물이 사적인 영역의 자발적 호의로 축소된 것은 불과 이삼백년 사이의 일이다.

    

 

2. 교환이 지배하는 세계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평화로운 사회의 토대는 국가였다. 홉스는, 어떻게 인간이 서로 가진 것을 뺏고 빼앗기는 야생의 늑대와 같은 상태를 벗어나 사회를 이루며 살게 된 것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답으로 국가를 제시했다. 사람들은 국가를 설립하여 자연 상태의 내 맘대로 할 권리를 양도하는 대신 최고권력인 국가의 강력한 규제 아래 안심하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의 보증 덕분에 타인들과 안전하게 계약을 맺고 거래를 하며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 홉스가 말하는 사회의 기원이다.

하지만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사회의 기원을 설명하기보다는 그가 살던 시대의 사회를 설명하는 원리였다. 17세기 당시는 정치적으로는 반목과 내란이 끊이지 않았고 산업자본주의와 시장에서의 등가교환거래(이하에서 선물과 구별하여 교환이라 부르자)가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였다. 선물과 달리 교환의 목적은 각자의 영리를 추구하는데 있다. 교환에 있어서 거래 상대가 누구인지 그와 어떤 우호적 관계를 맺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전의 공동체에서는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는 아무하고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활필수품은 더욱이 흥정해서 사고파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판매자, 판매가격, 판매장소는 공동체의 전통적 관습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공동체 내부에서는 필요한 물건들이 선물의 형식으로 오갔으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거래는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 부족과 부족 사이에서나 가능했다. 그조차도 원시사회들은 표면적으로는 후하게 주고받고 갚는 선물의 형식으로 거래하면서 서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기제를 작동시켰다. 선물의 원리로 구성되는 공동체가 강력한 상태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자본주의적 등가교환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등가교환시장은 기존의 중세적 사회질서가 와해되어 공동체의 결속이 흔들리는 틈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상대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필요 없는 일회적 성격의 교환은, 의무적인 성격이 강한 선물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듯 보였다. 규범에 속박된 선물의 형식보다 자유로운 교환은 부담없고 가볍게 느껴졌다. 18세기쯤 되면 최신 이론가들이었던 고전파경제학자들에 의해, 등가교환방식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고 합리적 사고의 결과라는 주장이 세간에 확산된다. 선물은 비합리적이고 번거로운 것이고 교환은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는 식으로 교환의 장점이 부각되었다. 점차 선물은 삶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교환이 인간 생활의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옹호자이자 이론가를 자임했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교환의 편에서 논리를 전개해간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선물은 교환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원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까? 백 년 전의 인류학자 마르셸 모스는 증여론(1924)을 통해 여전히 인류사회의 반석에 선물의 원리가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경제학자들의 가정 자체가 잘못 된 것임을 밝힌다.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존재-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임을 동서고금의 인간집단을 통해 보여준다. 인류 경제의 원형은 교환이 아닌 선물이었으며 더 나아가 선물은 단순히 경제적 기능만을 담당한 것이 아니라 법·종교·도덕·혼인·예술 등을 아울러 사회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이었음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적 부조, 노동조합운동,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등을 예로 들면서 증여의 윤리가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여전히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증여의 원리로부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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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보야, 문제는 선물이야  

백 년이 흐른 지금 그 가능성은 더 커졌을까. 무역 전쟁이라는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닐 정도로 각종 경제보복이 국제사회에서 무기로 작동한다. 모든 것을 화폐가치라는 단일 척도 아래 줄 세우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지배는 백 년 전보다 다 냉혹하게 우리 삶을 옭아맨다. 사회를 구성하는 선물이란 너무나 먼 옛날이야기, 흔적만 남은 고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선물의 귀환이 필요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고 대등한 교환의 주체가 된다는 말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게 시장은 환상이다. 가격비교 사이트를 돌아다니고 온갖 리뷰를 섭렵하지 않으면 왠지 손해 볼 것 같다. 모든 일에서 소위 말하는 가성비를 따지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가격흥정을 하고 중고거래를 한다. 합리적인 거래를 하려고 애를 쓰지만 상대에게 속는 건 아닌가 전전긍긍한다.

공동체 전체가 재난에 빠지지 않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 개인이 굶어 죽는 일은 없다는 말이 있다. 선물은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식이고 교환은 공동체를 해체하는 방식이라면 마을의 유대관계를 단단히 하고 거기서 함께 잘 살아가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 아닐까?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언제 어디서 사기를 당할지 모르는 경쟁관계보다 신뢰가 바탕이 되는 관계가 계산기 두르려 보아도 결코 밑지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 전 지역에서 마을카페를 운영하는 분을 만났다. 실무자 인건비라도 나오려면 수익이 어느 정도 나야 되는데 그러자니 마을 분들로부터 초심을 잃고 이익만 추구한다며 비난을 받는다며 힘들어 했다. 등가교환 관계에서는 정말 답을 찾기 어렵다. 문탁네트워크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공간을 유지하는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대부분 재정 자립을 위해 수익사업을 잘 꾸리는 비결을 듣기를 기대한다. 그 분들게 문탁의 재정자립 비결은 선물의 원리라고 알려드리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진다.

문탁의 운영은 수익사업을 하고 실무자에게 노동에 합당한 인건비를 지급하는 교환 관계 바깥에 있다. 그렇다고 사적인 관대함에서 비롯된 자선의 형태도 아니다(누군가는 열정페이-노동착취가 아닌가 의심한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선물의 형식으로 많은 것들을 주고받으면서 유지된다. 단지 경제적인 이유에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주고받는 것을 넘어서 물건과 활동과 공부와 심지어 돈까지 뒤섞어 순환시킨다. 청소당번과 밥당번의 수고도, 매니저들의 섬세한 손길도, 책을 읽고 발제를 하고 메모를 쓰면서 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도 모두 선물관계에 속해 있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많은 사람 사이를 흘러 다니고 공동체는 풍성해진다. 여기에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꾸려지는 비결이 숨어있다. 칠판에 선물을 제 손으로 적는 것이 결코 생색내기가 아니다. 퇴화된 유물처럼 하찮게 여겨지는 선물의 원리를 의식적으로 드러내고 확산시키려는 적극적 실천이다.

상상해보자. 마을에서, 공동체에서 마주하는 이웃들과 교환 대신 선물로 관계를 맺는 경험을 늘린다. 경쟁 대신 관대함이 흐르는 분위기에서 우정을 쌓고 관계는 더욱 강화된다. 교환경제의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잦아진다. 이전엔 답을 찾기 어려웠던 여러 가지 경제적 문제들에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동체는 더 탄탄해지고 선물은 더욱 활발하게 순환한다. 마을에서는 선물이 답이다.

    

 

4. 마을경제학이 필요한 이유  

올 봄 친구들과 다시 증여론을 읽었다. 이번에는 청년들도 함께 읽었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꺼냈다.

 

    청년 A : 그동안 저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받게 된다면 그것을 기쁘게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누군가가 내가 선물한 것을 그렇게 사용해준다면 기쁠 것 같고요. 이런

    감정이 전해진다면, 이것도 증여 아닐까요.

 

하지만 A의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 특히 길위기금 심사위원인 B를 몹시 당황시켰다. 길위기금은 청년들의 공부나 활동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문탁 학인들의 십시일반이 주요자금원이다. 청년A 역시 길위기금에서 지원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길위기금 심사위원 B : 마음만 감사한다고 되는 걸까? 길위기금을 선물 받았으니 시간도 잘 지키고 메모도 잘 쓰고 성실하게 공부 할 의무가 있는 거 아냐?

다른 청년 C : 길위기금이 부담스럽다는 친구들도 있어요. 선물이라고 하면서도 뭔가 계속 압박을 주는 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그래서 저처럼 뻔뻔스럽지 않으면 문탁과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어른 D : .. .. 그래도 선물엔 답례의 의무가 있다구~~

청년 C : 이번에 제가 동네로 이사왔다고 만나는 문탁 선생님마다 식권이며 간식이며 선물해 주시는데 받기는 받으면서도 이건 또 어떻게 갚나...하는 마음에 너무 부담 되요..

 

잔소리와 변명에 가까운 대화가 몇 차례 오고가다가 다른 화제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당황하는 나를 본다. 이 친구들은 선물과 의무의 차이를 이해했을까. 청년들 뿐 아니라 나조차도 선물보다 교환이, 선물의 원리보다 교환의 논리가 훨씬 익숙하다. 그렇기에 선물은 순식간에 개인적인 선의가 되어버리거나 공동체의 무거운 의무가 되어버리고 만다. 관대함과 의무가 잘 결합된 선물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선물의 주고받기에도 기술과 공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에 고전파 경제학이 있었다면, 선물로 구성되는 공동체에는 마을경제학이 필요한 이유다. NM

댓글 전체 4
  • 2019-07-04 09:49

    글이 술술 읽혀요~~~^^ 쓰시는데는 고되셨을텐데.... 

    선물을 기꺼이 주고 받는 것도 기술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씀이 위안이 되네요....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방접이 있는거니까요.... ^^

    증여론이 읽어 싶어졌어요!! 습관처럼 익숙한 교환의 삶에서 한 걸음 비껴나가보고 싶어요! 

  • 2019-07-04 10:43

    익숙하고 편안한 교환논리의 삶이 가성비 대비 참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런 논리가 삶을 참 외롭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앙꼬없는 붕어빵처럼 삶에 재미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 

    문탁와서 배운 것 중 하나인 선물의 논리..익숙하지는 않지만 참 매력적입니다^^

    그 매력에 빠지고 싶은데...  "선물의 주고받기에도 기술과 공부가 필요하다" 말이 참 와닿네요.

    하고 싶으면 배우고 해보면 되겠죠?^^

    뚜버기샘~~ 좋은 글 감사해요~^^

  • 2019-07-04 18:27

    이 글 역시! 선물이네요!

    글쓰기가 하나도 재미없는  뚜버기샘이라 더욱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 2019-07-07 12:18

    비합리적이고 겉치레처럼 보이는 것은 말이든 선물이든..

    다 싫다고 느꼈던 저와 같은 사람이 이제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 속에서 잘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ㅋ

    이 글은 저에게도 선물입니다~ 땡큐베리망치^^

    다음 글도 기다리며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