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뚜버기
2019-05-31 09:21
34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뚜버기 프로필 02.png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 십년을 보낸 기분이다. 뭘 하느라 이리도 세월 가는 줄 몰랐을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밤새도록 어려운 책 붙잡고 씨름하던 일과 써지지 않는 에세이 때문에 꿈에서도 글을 쓰던 기억들이다. 사서 고생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문틈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작은 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공부를 계기로 문탁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원래 나는 경제엔 관심도 없었고 그저 물리 법칙처럼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겠거니 했다. 수요공급 곡선이나 복잡한 수식, 그런 것들에 의해 인플레도 되고 디플레도 된다고 여겼다. 1997IMF 사태로 생활에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운이 없는 탓으로 돌렸다. 하필 그 직전에 집을 샀고, 갑자기 금리가 치솟아 대출이자 때문에 돼지 저금통까지 털어야 했고, 남편은 야심차게 이직한 직장의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실직하고. 이 모든 것은 그저 우리 가족에게 우연히 닥친 불운이라 받아들였다. 하지만 언제 닥칠지 모를 불운에 대비하고 살아야 하기에, 일상에는 늘 위기의식과 불안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다르게 다가왔다.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으로 촉발된 위기는 온 세계로 파급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집, 저축을 잃고 다시는 중산층의 대열에 끼지 못하는 타격을 입었다. 얼마 뒤 <인사이드 잡>(2010)이라는 다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로 접한 사태의 내막은 기가 막혔다. 더 높은 수익을 위해 고위험 파생상품을 만들어 사고판 인간의 탐욕이 일으킨 사건이지만 놀라운 것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비롯 소위 세계 최고의 경제브레인들이 위기를 예측도 못했다는 점이다. 사태 수습과정 또한 경악스러웠는데, 철저히 가진 자들의 손해를 막기 위한 방향으로 대책이 세워졌다. 경제엘리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씁쓸했다.

경제 전문가들의 전문 지식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것을 당연시했던 믿음이 사라졌다. 내 생활도 그들의 탐욕을 위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 왔던 것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집을 사면 집값이 폭락하고 금리가 치솟더니 집을 팔아버리자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거기에 덩달아 전세값도 따라 올라버렸던 일도 떠올랐다. 도대체 왜 이리 운이 없나 싶을 정도로 내 삶을 흔들기만 했던 경제라는 괴물. 그 배후에 뭔가 있는 것 아닐까.

    

2008사태.jpg



 

이자 없는 화폐가 있다고?  

2010년 초 동네에 지역화폐 워크숍이 열린다 하여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서 대안적인 화폐제도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미국 소도시 이타카의 이타카아워, 대전 한밭레츠의 두루. 이것들은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화폐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화폐로 품앗이를 하고 물건을 사고판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출이자니 예금이자니 하는 개념은 아예 없다. 이자가 붙지 않는 화폐인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화폐의 핵심용법은 이자를 통해 부를 쌓게 해주는 것라고 생각해왔는데 뭔가 확 깨지는 느낌이었다. 이자를 없애고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수단으로서의 편리함만 남겨둔 화폐로서 상부상조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갑자기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곤란해지는 극한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도 지역화폐가 도입되면 훈훈한 일이 많겠거니 기대했으나 안타깝게도 모임은 중단됐다. 대신 모임에서 만난 몇몇 사람이 문탁에서 공부모임을 꾸린다는 소식에 아쉬운대로 거기라도 가보자 싶었다. 그리하여 꽃피는 사월, <마을과 경제>라는 생소한 이름의 공부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문탁의 홈페이지에는 <마을과 경제> 세미나 모집글이 이렇게 올라와 있었다.

 

마을과 경제 세미나'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경쟁하는 것을 부추기는 세상의 논리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살림살이를 고민하는 세미나입니다.

 '마을과 경제 세미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관계와 삶의 터전인 마을이

더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지역화폐의 도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지역화폐에 관심있는 분, 조금 일하고도 더 행복하게 사는 법을 고민하시는 분,

더불어 함께 신나는 세상을 꿈꾸는 분, 뭔가 새롭게 사는 방법에 도전해 보고 싶으신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10.4.16. 문탁홈페이지의 <마을과 경제> 안내글)

 

살림, 선물, 화폐, 마을, 경제 ......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쏭달쏭한 단어들이 조합된 수수께끼 같은 글이었다. 세미나는 격주로 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격주마다 모여 공부가 되긴 할까 싶지만 당시로서는 그나마 2주에 한번 한다니 마음을 낼 수 있었다. 얼렁뚱땅 시작을 하고 나니 모든 참여자가 돌아가며 발제도 하고 후기도 써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서서히 문탁 공부에 익숙해져 갔다.

세미나에는 의료생협을 추진 중인 사람, 작은도서관 운동을 하는 사람, 지역신문 일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자기 활동으로도 바쁜 그 분들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빠지는 일이 잦았지만 꼬박꼬박 출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요산요수, 달팽이, 노라 그리고 지금이 그들의 별명이었다. 조금은 게으른 세미나가 결성된 행운 덕분일까? 공부를 통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경제 성장, 해야 된다?  

세미나에서 처음 읽은 책은 녹색평론에서 나온 작은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2002)였다.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것들이 원래부터 상식적인 것은 아니었음을 파헤치는 전개는 반전있는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했다.

발전이라는 단어의 용법이 고쳐 만들어진 사례는 드라마틱했다. 발전을 의미하는 단어 develop은 본래 자동사였다. 꽃망울이 꽃이 된다든가,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든가 하듯이 주로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이 발전이었다. 하지만 1949120일 새로 미국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취임연설에서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공표한다. 발전을 타동사로 쓴 것이다. 스스로 발전한다고 할 때는 각자의 잠재력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다. 꽃망울이 터지는 시기도 저마다 다를 것이며, 나뭇가지가 어디를 향해 뻗을지도 제각각의 사정대로다. 하지만 타인이 시켜주는 성장이 되자 상황이 달라진다. 아마존 원주민 아이도 숲속의 베리를 구별할 줄 아는 것 대신 시계를 볼 줄 아는 게 성장이 된다. 수렵채집의 삶을 버리고 노동자가 되어 임금을 벌고 나이키운동화를 신게 되는 게 발전이 된다.

그동안 나는 성장이란 건전한 생활인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해왔다.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정당하게 자산을 늘리며 사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양식이었다. 월가 고위층들이 탐욕을 채우기 위해 부를 독식하려는 것이 문제였지, 경제 성장 그 자체는 가치있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나 자신도 경제성장을 하기위해 노력해 왔을 뿐더러, 3세계 어린이의 학교교육을 지원하는 유니세프 기금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좋은 일로 믿어왔던 성장과 발전이 알고 보니 자율을 막고 획일적 경로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누구를 위해 성장을 추구해온 걸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등바등 살아왔지만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는 한계는 없었다. 노후대비에 필요하다는 돈의 액수도, 이만큼은 갖춰야 한다는 잣대도 자고 일어나면 저만큼 앞질러 가 있었다. 그야말로 시지프스의 노동. 이게 바로 성장의 숨겨진 본 모습이었다.

사실 그 즈음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지쳐있었다. 열심히 일해도 모이는 돈은 쥐꼬리만 해서, 아파트니 땅이니 부동산을 사고팔아 큰 돈 굴리는 친구들에겐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 친구들을 부러워 한 건 아니었다. 친구들이 소위 말하는 투자라는 게 사실은 집값 올려 없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드는 투기라고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였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자 어느새 나는 복부인 친구들에게 충고를 들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윤리적으로 살려고 하는 내가 왜, 도리어 그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것인지 우울했다. 복잡미묘한 감정들에 지친 일상을 보내던 바로 그 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인연으로 <마을과 경제> 세미나에 발을 들여 놓았던 거였다.

    

 지역화폐워크숍.jpg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성장이라는 개념이 다르게 이해되자 성장의 그늘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경제성장을 위해 동원되어야 하는 수많은 자원들은 실은 자연의 다른 이름이었다. 인류의 모습은 빙하를 향해 돌진하면서도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고 있는 타이타닉호와 다를 바 없다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표현은 딱 맞았다. 성장논리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현실을 비판하는 일에 너도 나도 맞장구쳤다. 하지만 누군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꺼냈다. 그래도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 덕분에 우물가에서 빨래 안하고 편히 살게 된 건 사실 아닐까. 성장을 멈추고 그런 편리를 포기하고 살 수 있을까. 또 성장을 안 하겠다고 하면 당장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는 어째야 되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오버랩되니 책에서 얻은 새로운 앎은 또 다른 무게가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 무게는 갭투자니 뭐니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세상물정 모르는 애 취급받던 때 의 갑갑함과는 다른 종류였다. 우리는 세상 물정은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이 바뀔까. 세상이 좋게 바뀌려면 내가 뭘 하면 될까. 그게 가능하긴 할까. 점점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세미나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그 답을 찾으려 애썼다. 새 책을 펼 때마다 이번 책은 답을 줄 거라는 기대를 걸었으나 끝까지 읽어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정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책 속에서 여러 스승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배움을 얻었다.

앙드레 고르는 노동을 덜 하고, 소비를 덜 하면서 보다 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이렇게 욕구의 영역을 의지적으로, 집단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그럼으로써만 이 자율의 영역을, 즉 자유를 확장할 수 있어야만 한다(에콜로지카, 생각의 나무, 2008, 106)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세탁장, 빨래건조장, 놀이공간, 문화공간들을 만들어 에너지를 덜 쓰고 차를 덜 타는 생태적 공동생활을 제안한다

댓글 8
  • 2019-05-31 10:58

    함께 한 세월이 꽤 기네요 ㅋㅋ

    마을경제 그 애매하고도 달콤한 걸 찾아 좌충우돌해온 세월이요

    올해 다시 새로운 큰 사건이 벌어지려는 때에 비전세미나로 모여 

    같이 고민할 수 있어 좀 다행인 거 같아요

    뚜버기샘이  묵묵히 늘 지치지도 않고 뚜벅뚜벅 반발 앞서 걸어주시니  참 좋아요

    나도 우렁우렁 좀 줄이고 부지런히 발을 떼야할텐데

    제자리에서 소리만 요란 ㅋㅋㅋ

    그래도 같이 붙어 마을경제 같이 해볼랍니다 ㅎㅎㅎ

  • 2019-05-31 14:44

    저질러볼랍니다...요런 단어가 제 취향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2019-05-31 20:08

    문탁 강의실은 아닌데.. 여기는 어디, 이 사람들은 누구? 

    글 중간에 있는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네요.

    아하, 십년전 이우생공에서 한밭레츠에서 오신 선생님을 모시고 열렸던 지역화폐 워크샵 사진이군요!

    사진을 보니 몇 사람은 얼굴이 익고.. 또 몇 사람은 기억이 가물가물..ㅋ

    마을경제 세미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바로 그 모임이네요.

    그 만남이 십년 뒤 뚜버기에게 이런 글을 쓰게 할 줄이야!! 

    (그 때는 난 정말 몰랐었네~~)

  • 2019-06-01 20:25

    느낌이 정말 경제 전문가 포스가 폴폴~ㅋ

    재밌게 읽었어요^^ 완주를 기대합니다 ~

  • 2019-06-01 21:30

    마을경제는 여전히 (숫자에 약해서일까요? ㅎㅎ) 제겐 어렵지만 뚜샘의 글은 재밌네요~ 열심히 잼나게 읽다보면 뭔가 감잡을 수 있겠죠?  힘! 많이많이 내세용!! ^^

  • 2019-06-02 08:53

    "체구와 달리 우렁찬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던 달팽이의 모습"...이래...ㅋㅋㅋㅋ...


    문탁에 뚜버기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뚜버기를 친구로 둘 수 있어서 참 행운이다...

    지난 십년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어요^^

  • 2019-06-03 12:05

    '어떻게 살아야하지? ' 이런 질문만 막연히 .... 여러 순간 던지고 살고 있어요. 생태를 말하면서, 과학 기술 앞에서 소외를 말하면서, 교육의 무한 질주 가운데서 교육을 말하면서.... 막연히.... 막막히....

    선생님의 글이 그 가운데서 새롭게 반갑고, 궁금하네요. ^^

  • 2019-06-04 15:37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나두요~ ㅎㅎ

글쓰기
봄날 2020.09.24 조회 368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자누리 2020.09.22 조회 198
  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달팽이 2020.09.21 조회 169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뚜버기 2020.07.10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4.23 조회 39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2.23 조회 219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6] 우리에겐 '복'이 있다       지난 겨울 문탁 축제 때 열린 <대놓고 노래자랑>에 세 청년이 출전하여 1등상을 수상했다. 그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그 청년들이 자그마치 10만‘복’을 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복 상위권을 달리는 그 청년들이 어떻게 복을 벌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이너스가 줄어든다 생각하니 안도가 되었달까. 게다가 본회계(문탁네트워크는 활동단위마다 자율적으로 회계를 하고 네트워크 전체의 통합적 활동이나 살림에 관한 회계가 별도로 있는데 이를 본회계라 부른다)에 쌓여있던 수십만 복도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온다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복(福)’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대안화폐다. 처음 작업장을 꾸릴 때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장 일꾼 품삯을 줄 때,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것이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다. 작업장의 모태인 마을과 경제 세미나의 탄생계기가 지역화폐 모임이었던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미나를 시작하고 1년이 넘도록 우리는 『증여론』과 『거대한 전환』과 같은 고전텍스트의 매력에 빨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지역화폐는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이제 지역화폐는 물건너 갔나보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작업장을 만들고 ‘복’이라는 다정한 이름을 붙인 화폐까지 만들게 되었다. 나는 복을 잘 운영해서 사람들이 활발하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더 나가서 우리 동네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꿈꾸었다. 다른 어떤 문탁활동보다 복화폐 운영에 힘을 쏟아왔다.   1. 복은  화폐일까     경기가 불황이던 1980년대 캐나다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된 레츠는 돈 없이도 서로의...
뚜버기 2020.01.06 조회 247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19.11.26 조회 235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듯...
뚜버기 2019.09.2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3] 마을에는 마을의 가치이론이 있다     얼마 전 이가 아파 치과엘 갔는데 생각보다 견적이 비싸게 나왔다. “더 싸게 안 될까요”라는 부탁에 돌아온 답은 “저희 선생님은 그 아래엔 절대 안 하십니다”였다. 단호한 그 말투는 치아 하나의 치료비가 치과의사의 가치에 비례한다는 듯 들렸다. 영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 작전이 통하는 이유는 그 말 속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논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임금의 집안일보다 돈벌어오는 직장일이 우선시된다. 학교 때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가 대기업에서 수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갑자기 가치가 올라가 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대접도 달라진다.   나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한 하루를 보낸다. 거기엔 문탁에서의 공부와 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뭐하느라 바쁘냐는 눈총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내가 바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오히려 고생한다며 격려까지 받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무심결에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가치는 내 연봉이 결정한다   2020년 최저임금협상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내건 최저시급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점을 머리숙여 사과했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최저시급의 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임금인상 이외에는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일까.   임금은 노동자가...
뚜버기 2019.07.04 조회 37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2]   마을경제학개론 제1장은 선물이다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문탁에서 운영하는 자율카페 <파지사유>의 아침은 세미나하러 온 학인들이 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밥당번들이 준비한 소박한 점심식사가 학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방 앞에는 선물 받은 식재료들이 빼곡이 적혀진 ‘선물의 노래’ 칠판이 붙어있다. 누군가의 텃밭에서 온 싱싱한 푸성귀, 나눠먹기 위해 넉넉하게 만들어온 밑반찬들, 집안 어른 손맛이 깃든 김치. 가져온 찬거리를 주방에 슬쩍 던져놓고 나가면 기어코 누가 가져온 선물인지 밝혀내서 칠판에 적는다. 선물을 가져온 본인이 자발적으로 뭘 가져왔노라고 칠판에 적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문탁의 이런 풍속(?)이 불편하다는 분이 있었다. 선물 가져오라고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본인은 생색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처음 문탁에 왔을 때는 이런 것들이 의아했었다. 밥당번이나 청소도 선물이라고 말하는 데,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것 아닐까. 과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모두 증여의 윤리에서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내 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에도 개인의 이익을 따지지...
뚜버기 2019.05.31 조회 348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1]   갭투자도 모르는 내가 경제를 공부한다니     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친구들과 마을작업장을 열어 이런 저런 작당모의를 하고 ‘마을경제’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나는 이 실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다. 먹고 살 만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함께 작업장을 꾸려온 몇몇 친구조차 도대체 마을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을경제는 허황된 소리고 나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 걸까. 사람들과 ‘마을경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경제를 생각해 보는 것을 노리고 있다. 환영이든 반발이든 다양한 생각과 만날 때 마을경제는 분명 질기고 생생한, 구체적인 우리 삶의 개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삶을 흔드는 괴물일까?   일의 발단은 9년 전 용인 수지 동천동의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 (이하 문탁)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문탁의 주변경관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한적한 변두리 마을의 동네 텃밭 자리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나는 9년을 변함없이 뻔질나게 문탁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늘 십 분씩 지각하는 고질병도 여전하다. 세미나, 밥당번, 운동, 각종 회의와 행사들... 온갖 일로 정신이 없지만 귀찮거나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탁 덕분에 신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