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인문약방 / 9회> 바이러스 폭풍시대의 윤리

둥글레
2020-03-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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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의 인문약방/9회]

 

 

바이러스 폭풍시대의 윤리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고 별별 장면들이 우리 사회뿐 아니라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대중들의 심리를 손쉽게 파고드는 공포, 감염병의 유행과 직결되는 정치적 논쟁, 높은 인식 수준을 자랑했던 선진국들의 봉쇄 정책 등 매일매일이 놀람의 연속이다.

 

 

약국에서 마스크를 팔면서 느낀 점도 많다. 다들 약국에 오면 한 마디씩 한다. 중국에 마스크를 퍼줘서 마스크가 부족하다, 중국이 공산국가라서 벌을 받았다 등등. 진의 여부나 정부 비난은 차치하고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듣기 좀 불편했다. 이념적 편 가르기를 하면서도 마스크 판매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율배반에 한숨이 나왔다. 마스크 사재기를 비난하지만 마스크를 많이 사려고 하는 사람들, 마스크가 없다고 화내고, 마스크를 겨우 구해오면 비싸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등. 마스크를 파는 입장이라서 보게 되는 그림자가 많았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이 한시적 제도에 사회주의적이라며 딴지를 거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바이러스 대유행이라는 낯선 상황을 약국에서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사람들의 불만과 공포와 누구 탓을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보게 될 줄이야…. 우리는 이 낯섦이 촉발한 감정과 혼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이 낯섦은 아예 우리를 새로운 사유로 그리고 새로운 윤리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치할 수 없다
20세기 선진국에서는 감염병이 완전히 정복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선언했다.1 선진국에서 더 이상 위생 문제는 없다고. 세균에는 항생제, 곰팡이(진균)에는 항진균제, 일부 바이러스에는 항바이러스제가 있고, 위험한 미생물에 대한 백신이 있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이제 문제는 감염병이 아니라 만성질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감염병의 잦은 유행들이 있었고 신종플루와 코로나19는 대유행2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의료가 발달한 주요 선진국들이 이번 대유행에 속수무책이다.
감염병의 정복은 때 이른 선언이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한 말이었을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생물을 얕잡아 봤다. 알려진 대로 야생의 개발, 공장식 밀집 축산, 항공 여행의 보편화, 기후 변화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미생물들이 인간에게 병원체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항생제 남용이 부른 항생제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3의 출현도 의료계에 골칫거리다. 현재의 공공보건 시스템과 약제로는 조절되지 않는 새로운 존재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인간의 신종 감염병의 75% 이상이 동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보통 미생물들은 종간의 벽을 넘지 못하지만 그들의 진화의 유연성은 이를 가능케 한다. 동물 유래 미생물이 인간에게 감염되어 인간 대 인간 감염력을 갖게 되기까지는 진화가 필요하고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미생물의 입장에서는 전 지구 상에 70억 개체나 되는 숙주는 없으니 인간이라는 신대륙은 개척할 가치가 충분하다. 미생물의 진화는 생각보다 빨랐다. 진화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우리보다 고등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조류독감의 인간 대유행이 곧 있을 것이라는 경고는 계속 있었다. 조류독감(특히 H5N1)이 1997년 인간에게 처음 감염되어 사망자를 내고, 2003년 인간 대 인간 감염을 통해 사망자를 내면서 인수공통 감염병에 대한 위협은 현실이 되었다. 감기를 일으키는 일반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닌 박쥐 유래 코로나 바이러스인 사스와 메르스의 유행을 보고 또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예견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결국 조류독감보다 먼저 코로나19가 대유행이 되어버렸다.
매년 많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독감은 어쨌건 타미플루라는 치료제가 있고, 예상이 빗나갈 때도 있지만 매해 새로운 백신이 생산되고 있다.4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는 없고5 백신 또한 없다. 그동안처럼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고 백신을 개발한다고 해도 미생물들은 우리의 속도를 따라잡아 유전적으로 끊임없이 변이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미생물을 정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보건의료 영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적어도 ‘확실성’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즉 보건의료의 목표는 질병 퇴치가 아니라 적절한 통제와 조절이다.
의료분야가 자신감이나 확실성의 영역이라기보다, 그런 영역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이 그 분야에 권위적인 속성을 부여한 게 아닐까? 만성질환이라는 말의 출현 자체가 우리가 질병이라고 명명하는 ‘아픔’의 속성을 보여준다. ‘만성’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퇴치’라는 개념이 없다. 감기를 비롯해 우리가 흔히 겪는 감염병에도 ‘만성’을 붙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단순포진 바이러스는 한번 감염되면 숙주의 일평생을 함께한다. 숙주 세포 속에 잠복한 채로 있다가 숙주의 면역력이 낮아지면 증식하여 세포를 뚫고 나온다.6 그렇다고 숙주의 생명을 위협하진 않는다. 이제 만성질환뿐 아니라 감염병조차도 퇴치라는 개념을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코로나19도 퇴치하려기 보다는 갑작스러운 확산을 막고 장기적으로 잘 통제하거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앓아야 생기는 앎
우리가 항생제와 백신의 도움을 얻어 일부 위험한 미생물들의 감염을 막은 건 사실이다. 인간에게만 감염력이 있던 천연두는 완전히 사라졌다. 결핵, B형 간염,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DPT), 소아마비, 홍역 등은 공공보건 영역에서 예방접종으로 거의 조절되고 있다. 물론 이도 나라마다 차이는 있다. 백신에 대해 왈가왈부가 있지만 나는 치명적인 미생물에 대한 예방접종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그런 조치에도 ‘지나침’이 있다. 예컨대 제약회사의 상술로 인해 홍역,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 풍진은 하나의 백신으로 결합되어 판매되고 있다.7 이로 인해 아이들은 큰 위험 없는 볼거리 백신까지 덤으로 맞게 되었다.
이런 지나침으로 우리가 잃은 게 있다. 바로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다. 감기 등 가벼운 감염 질환을 충분히 앓으면서 몸속의 면역력은 차근차근 늘어간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볼거리를 앓았다. 볼거리를 앓으면서도 소풍에 가서 찍은 사진이 있어서 지금도 기억한다. 볼이 퉁퉁 부어 미워 보였던 게 싫었지 볼거리 때문에 무서웠던 기억은 전혀 없다.
요새 태어난 아이들은 많은 종류의 예방 접종8을 하고 있다. 나처럼 볼거리를 앓는 경험은 거의 못할 것이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고 바이러스 질환인 감기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다. 게다가 사는 환경은 갈수록 깨끗해져서 해롭지 않은 먼지나 다양한 미생물들과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 이런 경험이 드물다 보니까 면역계가 잘 발달하지 못해서 별로 위험하지 않은 외부 요인에 과민반응을 보인다. 이런 관점으로 아토피나 알레르기 질환의 증가를 설명하는 학설9도 있을 정도이다.
면역이란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 어떤 것이 내게 해로운지 해롭지 않은지에 대한 앎을 만드는 과정이다. 즉 앓아야 생기는 ‘앎’이다. 면역을 침공한 적을 무찌르는 전쟁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은 알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민성을 보이는 알레르기나 아토피도 결국 관계의 부재에서 온 앎의 결여일 수 있다. 또 자가면역 질환은 이러한 앎이 결여된 면역계가 자기 세포마저 구별하지 못하게 된 지경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면역은 우리 몸이 겪어온 시간과 수고가 만들어낸 앎이다. 다시 말해 앓음 (또는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내 면역시스템에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감염자에게는 증상을 경감시키는 약물치료, 세균의 2차 감염을 예방하는 선제적 항생제 투여,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격리가 요구된다. 첨단 의료와 제약산업이 무색하게도 손 씻기, 마스크 쓰기, 기침 시 소매로 입을 가리기 등 기본적인 위생 매너가 전부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면역시스템이 있다. 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면역이라는 앎이 힘이다. 자가 격리하고 있던 확진자가 푹 쉬면서 잘 먹고 잘 잤더니 자연 완치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최초의 자가 격리자의 완치 사례라고 한다. 면역세포나 면역글로불린(항체)은 우리 몸의 일부로서 몸의 영양 상태 등에 당연히 영향을 받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19는 감염력은 높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폭발적인 감염 증가로 인한 의료체계의 붕괴만 없다면 기본적 위생 매너에 무리하지 않는 일상으로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

 

윤리도 힘이다
바이러스의 유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네이선 울프의 책 제목대로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 문명이 철저히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모를까 이대로라면 인간 문명을 설명할 때 필연적으로 한 챕터를 바이러스가 차지할 것이다.
생물의 기본단위인 세포가 없는 단백질 덩어리인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적 존재(반생물)이다. 존재 자체가 우리의 분류법으로 잘 포획되지 않는다. 엄청나게 변화무쌍하다. 세균보다 훨씬 작은 이 미미한 존재가 가속도가 붙은 이 문명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렸다. 사람들의 몸속 세포에 들어가서 세포 단위에서 브레이크를 걸어버렸으니 온 세상이 멈출 수밖에. 현자들의 온갖 말에도 꿈쩍 않던 세상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그만큼 우리 모두가 서로 연루되어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누구 하나의 탓이 될 수 없는 세상임을 말이다.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 생각에, 우리 윤리에.
정부는 이번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많은 선택들을 해왔다. 다른 나라들이 선택한 국경 폐쇄, 감염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 이동 제한, 발생지역 고립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확진자를 빨리 가려내어 격리시키고 치료를 했다. 확진자의 이동경로를 공개하고 확진자가 머문 장소는 소독했다. 하지만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한 선택을 마냥 좋아 할 수만은 없었다. 정부가 추구한 투명성과 개방성은 인터넷이 발달된 나라에서 되려 공포감으로 작동했다. 확진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신상과 일상이 낱낱이 조사되고 밝혀진다.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 치르게 될 불편과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향한 비난에 대한 공포는 타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
지금으로선 우리가 한 선택들에 대해 잘했다 잘못했다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기본적 위생 매너로도 코로나19의 확산을 충분히 막을 수 있듯이, 작은 윤리적 선택들이 빛을 발하며 공포와 혐오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우한 주민들을 수용하기로 선택한 지역 공동체, 병상기록을 자세히 남겨 연구에 도움이 되길 바란 의사 확진자, 의료 인력이 부족한 대구로 발 벗고 달려간 의료인들,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양보한다는 마스크 양보 운동, 병상이 부족한 대구를 위해 병상을 내어 준 지역, 자원봉사 의료진들에게 선물을 보낸 사람들, 자신도 가난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을 후원금으로 낸 할머니 등.

 

 

이번 대유행을 계기로 질병이나 미생물만이 아닌 발전 담론, 사회제도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유가 촉발되고 있다. 감춰진 사회의 민낯이 더 속속들이 밝혀진 데에서 멈추지 않고 진전된 논의들을 끌어내기도 했다. 콜센터 직원들의 집단감염이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했고, 재난 기본소득’을 통해 비로소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경제적 활동이 줄어듬과 동시에 맑아진 하늘은 우리 스스로가 미세먼지를 만드는 당사자였음을 알려주었다. 학부모들은 힘들겠지만 학교가 없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학생들에게 자율성이 조금 생기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바람마저도 생긴다. 우리의 생각도 깊어졌고 그만큼 우리의 윤리도 갱신될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문탁네트워크도 올해 들어 기획한 여러 세미나들을 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유행 상황에 따라 공동체 내의 상황들도 변해갔다. 인원들이 많은 세미나는 결국 한 달을 연기했고, 소수 인원의 작은 세미나들은 넓게 떨어져 앉아서 마스크를 쓰고 하기도 한다. 공동체 주방은 처음엔 점심 밥상을 차리다가 다음엔 도시락을 싸와서 먹다 이제 주방도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잘하는 처사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힘들다.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자는데 동참하지 않아서 확진자가 생길 경우 덤터기를 쓸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도가 다를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래야 한다’ 또는 ‘저러면 안 된다’라는 단순한 분별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하면 어떨까? 에 귀를 기울였고 각자의 판단을 존중했다. 우리가 구성한 윤리는 공통이 만드는 감각에 따랐다고 말하고 싶다. 결과적으로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종교 지도자의 기도발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주석)

1. 소니아 샤의 책 『팬데믹; 바이러스의 위협』에 의하면 1951년 맥팔레인 버넷 경은 서구 사회가 ‘사회생활의 중요한 요인으로써 감염병의 사실상 퇴치’를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학자 압델 옴란은 사망의 주요 원인과 양상이 감염병에서 만성질환으로, 조기사망에서 후기사망으로 이행되는 현상을 ‘역학적 전환epidemic logical transition’으로 명명했다.

2. 대유행병(Pandemic)은 특정 지역에서 시작되어 여러 지역이나 대륙으로 확산된 감염 질병을 일컫는다.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플루,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최근 대유행병이다.

3. 메티실린에 내성을 가진 포도상구균(MRSA; 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과 최후의 항생제로 불리는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포도상구균(VRSA;Vancomyc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4. H5N1 조류독감에 대한 백신은 아직 없다.

5.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는 코로나19 임상실험 결과 별 효능이 없다고 밝혀졌고,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렘데시비르 Remdesivir)의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언제 완료되어 판매 가능할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6. 피부와 점막에 포진을 만드는데 보통 입술, 입술 주의, 생식기, 얼굴 등에 잘 나타난다.

7. MMR(measles, mumps, rubella) 백신이라고 함.

8. 우리나라에서 권장하고 있는 영유아용 국가 예방 접종의 종류는 결핵, B형간염,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폴리오(소아마비),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수두, A형간염, 일본뇌염 등이 있다.

9. 미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면 천식과 알레르기가 생긴다는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살면 오랜 진화 과정에서 함께 해 온 세균과 바이러스에 부대끼지 않아 게을러진 면역계가 따분해진 나머지 면역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글 : 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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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댓글 5
  • 2020-03-24 12:23

    이제 세계는 코로나 전과 후로 나누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정말 초유의 사태를 모두가 겪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전과 후, 우리는 무엇을 달리 생각하게 될까?
    나는? 이제 그만 허둥대고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 찬찬히...

  • 2020-03-24 12:43

    허리가 계속 아프니 이제 좀 덜아픈날 더 아픈날이 있고 그에따라 내 활동의 정도를 조절하며 살아가는 요즘
    이것도 통증에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일수 있겠다 싶다^^
    개인에게 오는 통증이 개인의 삶을 돌아보게하듯
    전염병 팬데믹은 질주하는 인간세상에 브레이크를 거는것
    위기는 늘 기회
    이 기회에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해야할지
    둥글레의 글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네요

  • 2020-03-24 13:30

    오늘자 신문을 검색하다 쿠바에서 이탈리아와 남미 5개국에 의료진을 파견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기사 제목에 '코로나 쿠벤저스'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쿠바와 헐리우드 어벤저스를 결합한 쿠벤저스의 어감이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일상용품 구하기도 어려운 가난한 나라 쿠바가 G7 국가인 이탈리아에 긴급의료를 지원하다니!
    윤리적 감각은 경제논리나 효율성 등과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격스럽고
    서로 국경을 걸어잠그는 세상에서 숨통 트이는 한 줄기 바람이 통하는 듯도 하여 뭉클하더군요.

  • 2020-03-24 14:29

    예전 메르스때이던가 둥글레, 지금과 세균 관련 긴급세미나 하고 웹진에 2회 글올렸던게 생각나네요.
    그때 우리는 세균은 적이 아니라는 취지로 정리를 했던 것 같은데 또 다시 닥치니 여전히 허둥되게 되네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요. 세계, 정부, 사람 심리, 등등이 예전과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으니 대처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면역은 우리 몸이 아프면서 알아가는 '앎'의 과정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의문이 하나 있어요. 면역체계라는 말에 대해서요.
    세균이 적이 아니라거나, 자연 은 공생한다는 관점과 면역체계의 확고부동한 경계성, 이 둘이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이카토인 폭풍이란 개념을 접하고 나서 면역체계가 정말 우리 몸을 지키는 자율시스템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겁니다.
    제가 알기론 '면역'이라는 개념이 근대국가 성립기에 국가 경계를 세우는 담론들과 같이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에 기초하다보니 우리의 많은 대처법들이 이런 "경계'들을 기본전제로 가지고 있는건 아닐까?
    등등의 의문들이 꼬리를 무는겁니다.
    어쩌면 전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요즘입니다.

  • 2020-03-24 19:04

    잘읽었습니다. 요즈음의 고민을 아우르면서도 전문적인 내용이 있으니 더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