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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 2019.10.20 조회 7
[둥글레의 인문약방/5회]   달콤살벌한 다이어트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약국이 한가하다. 감기나 알레르기 질환들이 뜸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약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노인 환자들이 많아서 늘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에 대한 처방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여름이 되자 약국으로 일명 ‘다이어트 처방’이 몰려들었다. 다이어트 처방은 계절에 상관없이 늘 있지만 노출이 많은 여름이 되면 당연히 더 늘어난다. 근무약사 입장에서는 이 처방을 가져오는 손님들이 달갑지는 않다. 처방 일수가 길고 약 가짓수가 많아서 조제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약을 먹으면서까지 살을 빼려는 그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다이어트 처방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원칙적으로는 진료과에 상관없이 발행이 가능하다. 여러 약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거의 다이어트 처방을 조제했다.   소름 끼치는 다이어트 처방 다이어트로 허가를 받은 약은 식욕억제제와 지방흡수(소화) 억제제로 크게 두 가지다. 하지만 처방을 보면 약 종류가 5가지가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떤 병원에서 처방했건 이 처방들은 마치 복사라도 한 듯이 비슷하다. 위 두 가지 약 이외에 간질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각성제, 당뇨약, 비충혈 제거제(감기로 인한 코막힘 치료), 변비약, 이뇨제, 유산균 제제, 녹차추출물 등이 추가된다. 여기에 알약으로 나오는 한방 제제(방풍통성산이라는 처방)까지 쓰인다. 약사로서 처방 내용을 보면 소름이 절로 끼친다. 약들의 작용과 부작용을 알게 되면 과연 복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지방 섭취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주로 식욕억제제인 암페타민류(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가 처방된다. 이...
둥글레 2019.09.02 조회 322
[둥글레의 인문약방/4회]   수면제와 네모창   강박과 수면제 5월부터 새로운 약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근심이 하나 생겼다. 이 약국은 오래된 의원 옆에 있어서 노인 환자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방문하는 노인들 중 반 이상이 수면제 처방을 받아 온다. 약사 인생에서 요즘 수면제를 가장 많이 조제 투약하고 있는 것 같다. 수면제는 ‘향정신성의약품’(이후 향정)¹으로 분류되고 마약과 같은 법률로 관리된다. 향정을 오남용 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의존성이 생기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의료기관에서는 향정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국가기관에서는 의료기관을 불시에 감사한다. 감사가 오든 안 오든 약국에서는 향정 개수를 세서 관리하고 그 조제 내역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고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향정을 취급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손쉽게 수면제를 처방받고 있다니! 나는 놀랬다. 물론 수면제는 작용시간이 짧고 부작용을 줄였기 때문에 다른 향정에 비해 안전하다. 그래도 장기간 복용했을 때의 부작용²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정도면 수면제 처방을 남발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나? 특히 약물대사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이렇게 일상적으로 수면제를 먹어도 괜찮을까? 최근 살인 사건이나 성폭행 사건에 수면제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만큼 수면제를 구하기 쉬워진 것 때문일까? 걱정스러웠다.     수면제를 받아 가는 노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며 알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노인들이 수면 장애에 대해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흔히 말하길, 나이가 들면 잠이 준다고 한다. 동양 의학에서 볼 때, 노쇠로 인해 정기가 줄면 혈도 준다. 거기에 따라 잠도 자연스럽게...
둥글레 2019.07.19 조회 334
[둥글레의 인문약방 / 3회]     바이오 기술의 과속 스캔들           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바이오 스캔들 최근 한 유전자 치료제가 큰 스캔들에 휩싸였다. 국내 최초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케이 주(이후 인보사)’이다. 인보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이다. 그러나 7월 9일 자로 식약청은 인보사의 허가취소를 확정했다. 인보사는 연골을 재생하기 위한 동종 연골세포(1액)와 염증과 통증을 억제하기 위한 성장인자 유전자(TGF-beta1 gene)가 도입된 연골 세포(2액)로 구성된다. 그런데 2액의 세포가 신장 세포로 밝혀졌다. 식약청의 조사 결과, 개발사에서 허가서류에 허위정보를 기재했고, 또 2액의 세포가 신장 세포임을 알면서도 숨긴 것이 드러났다. 식약청은 이 회사를 형사 고발했다. 식약청의 허가취소 발표 후 이 개발사의 주식은 거래가 중지되었고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해가 예상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미 이 약을 투여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부작용이 발현될지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자 도입을 위한 벡터1)로 사용된 바이러스가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가진다. 또 유전자가 원치 않는 위치에 도입되면 오히려 종양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인보사의 경우는 벡터나 유전자 문제는 크게 없어 보이지만 다른...
둥글레 2019.06.14 조회 271
[둥글레의 인문약방 / 2회] 자기도 아프면서 누굴 치료한다고 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천식이라는 아이러니 회사에 다닐 때 기침감기를 심하게 두 번 앓았다. 두 번 다 기침이 한 달가량 지속되는 감기였다. 기침을 해대면서도 난 병원에 간다거나 약을 먹는다거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왔는데도 그것을 무시했다. ‘더 심해지면 약 먹지 뭐’라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던 시기다. 증상이 심해지자 폐렴인가 싶어서 내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렴은 아니었고 기관지 알레르기였다. 다른 말로 하면 알레르기성 천식이다. 그때는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종합병원 근무할 때 난 호흡기약물 상담서비스(Respiratory Service)를 전문적으로 하는 약사로서 폐질환 환자들에게 흡입제 사용법을 지도했다. 그런데 내가 천식에 걸리다……. 천식 치료제의 부작용을 너무 잘 알기에 처음부터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단식과 채식 요법으로 몸을 정상화시키자 마음먹었다. 생애 최초의 단식을 3일 동안 했다. 그리고 동물권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내 몸을 위해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등산도 하고 건강 관련 책도 열심히 읽었다. 비쌌지만 유기농으로 먹거리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빵에 우유가 들어있어서 책을 보고 직접 비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외국 고객들과 식사 자리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채식을 했다....
둥글레 2019.05.14 조회 374
[둥글레의 인문약방 / 1회] 약사가 되면 돈 많이 벌 줄 알았다 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솔까말, 돈 많이 벌고 싶었다 나는 왜 약사가 되었을까?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서 의사가 되었다는 말은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약사가 되었다는 말은 약사들 사이에서도 못 들어 봤다. 나라고 그런 거창한 이유가 있을 턱이 없다. 엄마가 원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미술공부는 집안 사정상 어려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쩌면 다 핑계일지 모른다. 나는 안정적인 전문직 여성의 삶을 거부할 용기가 없었고, 미술에 대한 열정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치유’나 ‘치료’ 등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약대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첫 직장인 종합병원은 그야말로 빡셌다. 그때는 의약분업 전이라 내원하는 환자들의 처방을 모두 약제과에서 조제했다. 천 명 이상 오는 환자들의 약을 조제하느라 밥도 오분만에 먹고 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야간 근무를 할라치면 끝없이 오는 응급환자들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웠다. 사용하는 의약품의 가짓수가 많은데다 새롭게 들어오는 약도 많았다. 그 모든 의약품 코드, 효능, 부작용 등을 외우느라 힘들었다. 처방전에는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기, 처방대로 맞게 조제되었지 검수하기, 환자들에게 복용법을 설명하며 투약하기 등 눈코 뜰 새가 없는 나날이었다. 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