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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통신 2018.10.18 조회 545
갑작스러운 인사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진입니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저번 달 원고 약속을 깬 것은 죄송합니다. 망가진 몸과 마음 때문인지, 마주쳐 본 적 없는 벽에 막힌 듯한 느낌 때문인지 말이 나오지 않아 쉬어버리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약속을 마저 지키지 못 할 것 같아서요. 스스로를 가다듬고, 남은 3개월 간 밀양 소식을 전하려던 찰나에 또 다른 일이 닥쳤습니다. 9월 17일, 소집 영장이 예고 없이 날아왔습니다.   어쩌면 운 좋게 빗겨갈 수도 있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판정 난 이는 신체검사를 받은지 4년이 지나면 ‘장기대기자’라는 명목으로 면제가 된다는 것을 올 초 병무청과 통화한 후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엄청나게 재수 좋은 일이 나에게는 생길 것이라는 희망(착각)으로 숨죽여 남은 날을 새었습니다. 8월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그 희망이 현실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목수 일을 제대로 해보려 트럭도 사고, 드릴도 두개나 사는 바보 같은 짓을 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징집 시스템이었다면 군은 유지되지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장을 받는 순간 지난 몇 년 동안 느껴보지...
밀양통신 2018.07.31 조회 2065
강정 마을 사람, 딸기에게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살면서 처음 해 보는 일이네요. (그것도 공개적으로) 우리는 서로 현장의 활동가로 만나, 매번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눈짓 한 번, 짧은 말 한 마디 한 번씩만 나누며 몇 년을 알고 지내며 함께 차 한 잔 해볼 수도 없었네요. 밀양 주민과 함께 제주에 가거나, 서울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때 말고는 얼굴 보기도 참 힘들었어요. 강정에서 살며 겪는 일의 자세한 사정도, 당신의 속내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관함식’ 때문이에요. 정확히는 강정마을에 사는 평화활동가들의 마음이 끊임없는 무너짐의 연속일까 걱정되어, 어떻게 하면 조금의 위로라도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속상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당신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만 할까봐 글을 시작하는 지금도 조금 망설여지네요.     편지를 쓰다 막 올라온 주민투표 결과를 보았어요. 뉴스에는 숫자로만 보여질 저 결과 때문에, 당신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짐작이 되지 않아요. 결국 이번에도 청와대는 다른 이들의 손을 빌려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군요. 이미 ‘관함식 개최 반대’로 정해진 주민들의 뜻을 알면서도, ‘대통령의 사과’와 ‘마을공동체 회복사업’을 미끼로 주민총회를 다시 하게 만들고,...
밀양통신 2018.07.10 조회 430
또래 친구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패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살이 더 빠져보인다,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이다. 반면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겠어요.” 다. 지금까지 이 말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나 속이 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인사치레로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니와, 오히려 타인이 나의 고생을 이런 식으로 위로해주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고됨’이나 ‘외로움’은 걱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밀양 할매들과 대책위 식구들이라는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이자, 고됨을 견디는 동료가 있었다. 이들은 띠동갑, 두 띠동갑, 세 띠동갑도 넘는 나이에도 나를 존중해주었고, 그래서 나는 남들이 보기에 ‘미친 듯이’ 살 수 있었다. 50대 농부가, 20살짜리에게 꼬박 꼬박 “쌤”이라고 불러주는 일은 흔치 않다. (모두 이렇게 사는 세상이 오면 참 좋을텐데)     할매들이 “젊은 나이에 친구들이랑 놀지도 않고 여기에 계속 잡혀서 어쩌노.”라는 말을 하실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여기도 즐거운데,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하실까’라고 생각했다. 백수가 되어 놀기 시작한 지 세 달, 이제야 내게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 둘 느껴진다. 집이나 자동차 같은 것들은 없으면 몸이 조금 힘들 뿐이지만, 남아도는 이...
밀양통신 2018.06.04 조회 389
관료를 파면하라!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5월 11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밀양송전탑 경과지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밀양 방문은 10일 저녁 9시에 취소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이하 밀양대책위)는 국민인수위에 4대 요구안 접수(2017.6), 밀양송전탑 공익 감사 청구(2018.3) 등의 활동을 펼쳤고, 2018년 4월부터 정부조사단 논의가 시작되었다. 조사단의 활동은 마을공동체파괴/ 재산피해/ 건강피해에 대한 진상조사 후 제도개선으로 하며 위원장/ 법률 / 의학 / 갈등관리 / 회계 /에 각 1명씩 총 5인의 조사 위원을 두는 것으로 외부 전문가 그룹이 제안하였고, 밀양대책위와 산업부가 동의하여 장관 결제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5월 9일, 장관 방문 날짜와 장소, 동선, 발언자 주민 등 세부 사항까지 확정되며 장관 방문과 조사단 출범은 확정되는 듯 했으나 산업부 공무원들이 마지막에 발톱을 드러내며 일이 어그러졌다.           조사단 구성에 대한 장관 결제를 전제로 진행된 방문이었다. 하루 전까지(10일) 5인 명단에 대한 장관 결제 확인이 되지 않자 밀양대책위는 방문 거부를 이야기 하며 항의했다. 그러자 산업부 전력산업과 과장은 “5인에 이견 없다. 믿고 가자” 는 식으로 답변하였다. 하지만 장관이 방문한다는 언론 기사가 뜨고 나서는, 위원 추가가 산업부의 입장이라고 통보했다. 2주 동안 논의한 합의는 단숨에...
밀양통신 2018.05.01 조회 578
활동가가 아닌 삶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터가 바뀌었다.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 상근 활동가’ 일이 끝났다. 세상 돌아가는 소음과는 멀어졌고 기계소음이 가득한 곳과는 가까워졌다. 백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돈벌이가 필요해 공사 현장을 나가고 있다. 항상 마음이 시끄럽고 아팠는데, 이제는 귀가 시끄럽다. 망치로 손을 때리고, 부러진 칼날을 뽑아내다 베이기도 하며 일을 배운다. 요령이 없는 초보는 몸이 고생이다. 그날 공정에 따라서 아픈 부위는 달라진다. 짐통에 시멘트를 져 나르는 날에는 어깨가 아프고, 석고보드를 하루 종일 붙이는 날에는 팔뚝이 아프다. 한 순간만 방심하면 크게 무언가 잘못되는 것 말고는 대책위 일과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는 곳이다. 실수하면 큰소리가 날아오고, 긴장 가득하다. 그래도 매일 10만원이 생기고, 누군가 살 집을 짓는 매력 있는 일이니 즐겁다.    대책위를 그만두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일이 몇 번 있었다. 나를 무엇이라고 소개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밀양 대책위 활동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노가다 하러 다닙니다.” 라고 소개를 마쳤다. 돌아오는 질문들에 내가 ‘밀양싸움’의 주체인 것처럼 대답하는 것이 대책위에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밀양통신 2018.03.26 조회 1021
동화전 사랑방 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동화전 사랑방을 뜯게 되었다. 한때는 ‘철탑 막는 데모’를 함께 했던 땅주인이 땅을 비워주길 요구했다. 수없이 근거지를 세우고 뜯어왔지만 때마다 이 씁쓸한 느낌은 희석되지 않는다. 7평짜리 조립식 농막 하나 뜯는다고 생각하면 편할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방은 하늘에 있는 팽창섭 아저씨의 땀이 배어 있고, 농활 온 사람들과 손수현 아저씨의 막걸리잔 부딪치는 소리가 담겨 있고, ‘포기는 없다’라는 뜻이 새겨 있는 공간이다. 귀영엄니의 높은 목소리와 은숙엄니의 빠른 말이 어우러지던 순간이 그립다. 글을 읽는 당신들의 기억에도 동화전 사랑방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줬던 공간이 사라진다.    2014년 행정대집행 이후, 우리는 송전탑 경과지 7개 마을에 사랑방을 세웠다. 대부분의 이장들이 ‘송전탑 찬성’으로 넘어가, 더 이상 마을회관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전탑을 여전히 반대하는 주민들과 연대자들에게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각 마을 사랑방들은 ‘반대 주민의 마을회관’으로 잘 쓰여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변했다. 철탑이 완공된 지 4년, 포기하는 주민은 더 늘었다. 250세대였던 미 합의 가구수는 100세대 이하로 줄었다. 끝까지 남아봐야 무엇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은 무섭다. 나는 사랑방을 만들며, 공간이 있으면 사람이 모인다고 생각했는데...
밀양통신 2018.02.25 조회 675
가뭄과 한파      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 서울과 충청, 전라도는 폭설이 왔다고 하는데, 남부지방은 오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 온 비를 두고 한 할머니가 “내가 울어도 이것보다는 많이 오겠다”고 말했더니, 다른 할머니가 “운문댐에 물이 한 바가지 남았다더라.” 라고 대꾸했다. 청도 운문댐과 밀양댐은 댐이 생긴 이후 가장 낮은 저수율을 기록 중이다. 밀양댐은 올해 1월 27%의 저수율을 기록하고 있고 운문댐은 8.4%만 남아있다. 정말 한 바가지만 더 쓰면 물이 바닥날 지경이다.   가뭄에 가장 먼저 삶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농부들이다. 동화전에서 농사짓는 빛나누나는 대파를 심었는데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 물을 퍼다 조리개로 줬다고 한다. 안 그랬으면 대파가 말라죽을 뻔했다. 작년 여름, 어르신들께 땅이 딱딱해져서 양파가 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집 수도꼭지에는 물이 잘 나왔기 때문에 “가물어서 큰일이에요”라고 말은 했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실 물도, 씻을 물도, 밥을 지을 물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 되었다. 물이 마르면 곡식이 마른다. 가뭄이 지속된다면 밀양 시내에 있는 나, 더 큰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번질 것이다.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처럼 이제는 기후변화도 나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문제가...
밀양통신 2018.01.27 조회 1439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이후 밀양 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월 2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백지화를 염원하며 마지막 108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절을 하는 동안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생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공론화위 위원장이 권고안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19% 차이가 난다고 했을 때 이미 사람들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가장 많은 기자들이 온 기자회견이였다. 카메라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으로 모두 함께 가자고 선언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땅을 치고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동래할머니는 “이거는 아니다.. 이거는 아니다.”라고만 말하셨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차에서 “전국 곳곳을 쌔 빠지게 돌아다니고, 대통령한테 편지 쓰고, 사람을 만나도 다 소용이 없다. 이제 우리한테는 희망이 없다.” 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12년 간 모든 것을 다 해보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는 말로 들렸다. 침묵과 분노가 번갈아 차안을 덮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러게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백미러에 비치는 할매들의 얼굴에 피로가 보였다.      여수마을에서 고추농사 짓는 김영자 총무님 하우스에 가면 피복도 없는 전깃줄이 하늘을 덮고 있다. 너무 가까워 줄이 조금만 늘어나도 머리에 닿을 것만 같다. 총무님은 하우스에 갈 때마다 아삭이 고추를 검은 비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