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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식 2019.04.20 조회 264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세상’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책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고 하면 이 글을 읽는 ‘녀석들’, 즉 수업의 당사자들은 조금 당황스러워 할 것 같다. 겨울 수업에서 이 책은 녀석들에게 썩 호응을 못 받은 쪽에 속했기 때문이다. (아마 『소년이 온다』 쪽이 훨씬 호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비단 그 때 뿐만은 아니다. 그 뒤로도 나는 종종 다른 수업들에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교재로 썼고 대개 꽤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어쩌면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꼽을 테니까. 같은 이유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꼽으라 해도 이 책을 꼽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채워주었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줄 수...
차명식 2019.04.06 조회 251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16) 2008년, 서울의 기억 임정은,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아이들에게 “정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사실 정치라는 단어만큼 아이들과 동떨어진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드무나 어른들이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임정은의 책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는 그러한 아이들의 정치를 조망한다. 딱 보아도 아동서적‘다운’ 아기자기한 제목은 벌써부터 그 내용이 엿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아, 이 책은 아이들에게 정치가 뭔지 조곤조곤 알려주는 책이겠구나. 민주주의가 왜 정의로운지, 선거에 왜 꼭 참여해야 하는지, 삼권분립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그런 내용들을 친절한 말들로 설명해주는 책이겠구나 싶다. 그러나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는 민주주의 대의제의 교과서적인 장점들을 설명하기보다 곧바로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정치의 이야기로 치고 들어간다. 인문학 동아리 ‘문사철인’에 속한 중학생들이...
차명식 2019.03.22 조회 305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⑮ 1980년, 광주의 기억 한강, 『소년이 온다』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돌이켜보면 그 때 나는 녀석들에게 무언가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단지 한 사람의 시선에서 역사의 기억을 바라보고 그에 이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 우리와 우리를 지나쳐가는 하루하루 역시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나아가 자신의 질문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아직 그러지 못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생각했다. 내 바람과 기대는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녀석들과 『쥐』를 읽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소년이 온다』를 읽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하지만 녀석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텍스트와 자신을 연결시켰고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앞서 읽은 책들을 통해 인지했을지도 모를 자기 삶의 문제들을 타인의 기억 속에서 묻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아우슈비츠의 ‘무엇’에 대하여 묻느냐 하는 것에 이미 녀석들 각자의 삶의 맥락이 스며들어 있다. 녀석들은 그렇게...
차명식 2019.03.15 조회 312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⑭ 1940년, 폴란드 남쪽의 기억 아트 슈피겔만, 『쥐』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었고 수업도 그 해의 마지막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상. 봄에는 ‘학교’였다. 여름에는 ‘집’이었다. 가을에는 ‘마을’을 하고, 겨울에는 ‘세상’. 처음부터 그렇게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 해의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익숙한 관계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깨어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했기에 집보다도 학교를 먼저 놓았다. 익숙하다 여길 테지만 실은 턱없이 낯설 ‘집’이 두 번째였다. 늘 거닐면서도 지각 밖에 있을 ‘마을’은 그 다음이었다. ‘세상’은 마지막이었다. 앞의 주제들을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시즌을 시작할 때에도 나는 어떤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가장 멀게 느낄 이야기일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우리조차도 자신의 이야기로 느끼기 힘들 테마들 - 역사와 정치. 이것들은 매일 같이 드나드는 학교나 집 이야기와도 다르고 단지 지각하지...
차명식 2019.02.08 조회 269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⑬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말한다 (2) 장성익,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그날따라 아침부터 부산했다. 무심코 평소 시간대로 오는 아이들이 없도록 전화도 해야 했고, 미리 언질을 한 마을 장터 운영진과도 재차 연락해 일정을 확인해야 했다. 안에서 수업하는 것에 비해 여러모로 손에 많이 가는 야외수업이었지만 그래도 마을과 같은 테마에 있어서는 한 번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열 번 글로 읽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행히 다들 제시간에 도착했고 날씨도 맑았다. 우리는 예정대로 시간에 맞춰 마을 장터가 열리는 마을 하천가로 출발했다. 야외수업이라고는 해도 막상 시작하고 나면 딱히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마을장터를 둘러보게 한 다음에는 마을 공동체에서 주관하는 마을투어 프로그램에 참가시키는 게 전부였다. 나는 현장학습에 따라온 학부모 마냥 그런 아이들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걷다보니 어느새 장터에 도착했고, 나는 아이들에게 투어 시간까지 자유롭게...
차명식 2018.12.29 조회 385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⑫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말한다 (1) 장성익,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도시가 탄생한 뒤 그리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도시의 침묵을 알아차렸다. 도시에서의 삶은 이전보다 외롭고, 각박하고, 파편적이다. 한동안 그것들은 그저 견뎌내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곧 그러한 침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의 형식을 발명하고자 했다. 그들은 그 형식의 이름을 다시 ‘마을’이라 했다. 언제부터인가 도시 곳곳에서 말해지는 ‘마을’의 이름은 도시 한 가운데서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의미한다. ‘슈퍼 아저씨’, ‘옆집 아줌마’, ‘아래층 할머니’ 등 한동안 익숙함의 루트에서 빗겨난 채 낯설음의 영역에 방치되어 있던 관계들을, 과거 시골 마을들이 그러했듯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다시 이어내자는 의미다. 그리고 장성익의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는 그러한 일련의 시도들을 아주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 잘살아...
차명식 2018.12.02 조회 435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⑪  도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연작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도시는 난산 끝에 태어났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감시와 탐욕스런 투기꾼들의 눈치싸움, 변두리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있은 끝에 남겨진 땅 – 그 땅 위로 탐식하듯 허겁지겁 올라간 빌딩과 아파트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도시의 모습이다. 그런 까닭에 도시에는 항상 ‘메마른’, ‘삭막한’, ‘차가운’, ‘외로운’ 따위의 형용사들이 달라붙는다. 우리는 제각기 흩어져 홀로 부유하는 도시의 사람들을 상상하며 또한 그 상상을 실제로 살아간다. 그것이야말로 ‘도시다움’이다. 그리고 ‘도시다움’에 익숙한 나와 아이들에게 『원미동 사람들』 이 그리는 도시의 모습, 80년대 부천시 원미동의 풍경은 낯설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양귀자는 『원미동 사람들』 작가 후기에서 그녀가 영위했던 원미동에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한동네에서 6, 7년을 산다는 일은 이웃 아이들의 이름을 알고, 이웃들이 무슨 벌이를 해서 먹고살며, 앞으로의 희망은 무엇인가를 흐릿하게나마 짐작하고 엿볼 수 있다는...
차명식 2018.11.27 조회 347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⑩  그리고 도시가 태어났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 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나와 아이들이 함께 수업한 문탁 네트워크는 용인 수지지구 동천동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즈음에는 우리 집도 그 부근에 있었는데, 대충 13년 정도를 거기서 살았던 것 같다.   13년 전 내가 처음 동천동에 왔을 때에는 지금 들어선 건물들의 채 절반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자리에는 높은 철제 벽이 둘러쳐져 있었고, 얼핏 보이는 틈 사이로는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에 무너져가는 단독주택이 보였다. 해가 질 무렵이면 들개들이 그 폐가에 모여들어 울어댔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그 옆을 지나야 했다. 그런가 하면 학교 가는 길에는 현대사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앙상한 널빤지를 밟고 개천을 건너면 나무판이며 각목을 얼기설기 엮어 세운 지붕 낮은 집들이...
차명식 2018.10.26 조회 387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⑨  가족이라는 ‘홈 패인 공간’ 조나던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미스 리틀 선샤인』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성공으로 향하는 9단계’를 강의하는 아버지는 보잘 것 없는 출판 계약 하나만 바라봐야 하는 실패자다. 어머니는 몇 주에 걸쳐 저녁 식사를 패스트푸드와 종이 식기로 때우는 중이다. 할아버지는 마약 중독자에다 아이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섹드립을 일삼고, 문학교수이자 게이인 외삼촌은 동성 애인에게 차여 자살을 시도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런가 하면 아들은 항공학교에 들어가 파일럿이 되겠다며 아홉 달째 침묵시위 중이며 일곱 살짜리 막내딸은 오매불망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만을 꿈꾼다. 대충 보기에도 정상은 아닌 이 콩가루 집안이 바로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주인공들이다. 이들 가족이 정상이 아니란 건 비단 우리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등장인물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가족이 제대로 된 가족은 못됨을 알고 있다. 단지 그 사실로부터 눈을 돌려버리고, 입을 다물고, 애써 모른 척할...
차명식 2018.10.09 조회 433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⑧ 어머니라는 ‘익숙함’ 김고연주, 『우리 엄마는 왜?』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문탁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혼 여성이 상당히 많고 그분들 중 대부분은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이다. 게다가 그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문탁네트워크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가끔은 나와 함께 공부를 하거나 여타 활동을 함께하는 선생님들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로 인해 나는 때때로 매우 미묘한 상황에 처한다. 한 번은 세미나 시간에 다른 선생님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가르치는 녀석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녀석은 그 선생님의 자녀이기도 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 아이의 어머니에게도 해도 될까? 무릇 아이들에게는 다른 어른에게는 말할 수 있어도 어머니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는 법이다. 또한 어떠한 부모라도 자녀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차명식 2018.09.18 조회 406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⑦  아버지라는 ‘두려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커, 『오이대왕』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볼프강은 수학은 서투르지만 수영 하나는 자신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볼프강의 집에 느닷없이 왕을 자칭하는 자그마한 오이 모양의 괴물 하나가 나타난다. 그가 말하길 자신은 ‘오이대왕’으로, 볼프강네 집 지하에 사는 쿠미-오리란 정령들의 왕인데, 발칙하게도 그들이 자신을 쫓아냈으므로 볼프강네 집에 정치적인 망명을 하러 왔다는 것이다. 지저분하고, 흉측한데다, 무엇보다도 거만하고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볼프강네 식구들 모두가 오이대왕을 내키지 않아 한다. 할아버지도 엄마도 누나도 볼프강도 마찬가지다. 아직 어린 막내 닉은 별다른 생각이 없다. 다만 단 한 사람, 오직 볼프강의 아버지만이 별다른 까닭도 없이 마치 오이대왕이 자신의 왕인 것처럼 떠받들고 아낀다. 결국 아버지 한 사람 때문에 볼프강네 식구들은 오이대왕과의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이미 알아차린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오이대왕은 어떤 의미에서는 눈속임 장치...
차명식 2018.08.14 조회 499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⑥ 독립이라는 ‘자유’ 라헬 하우스파터,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여름이 왔고, 아이들과의 책읽기도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다. 시즌이 바뀐 뒤의 첫 시간에는 으레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자기소개를 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전부터 있던 아이들은 다 아는 사람들에게 굳이 자기를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새로 온 아이들은 낯을 가리느라 제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나는 일종의 타협점으로써 아이들에게 딱 세 가지만 말해볼 것을 제안했다. 이름, 나이, 여기에 오게 된 이유. 이렇게 말해야 할 것들을 정해주면 아이들은 어렵잖게 대답한다. 그리고 처음 오는 아이들이 ‘여기에 오게 된 이유’는 대개 다들 같다. “엄마가 가보라고 해서요.” “저 몰래 엄마가 신청했어요.” 가끔은 “아빠가…….” 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자기 의지로 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별로 놀랍지는 않다. 중학생들이 자신의 의지로 어떤 일을 하려드는 경우도, 그것을 부모들이 허락하는 경우도 드문 일이니까. 그런 면에서, ‘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 여름...
차명식 2018.07.03 조회 507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⑤ 봄을 마치며 : 무지라는 ‘평등’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학교’를 다루었던 봄 시즌을 마칠 즈음 나는 그간 던진 질문들을 되돌아보았다. “선생은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가.”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아이들은 학교를 왜 가는가.” 새삼 아이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싶었다. 분명 밑도 끝도 없는 물음으로 느껴졌으리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는 질문들은 대개 그러하다. 당혹스러움과 곤란함,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다. 그것은 앞선 질문들을 모두 아우르는 질문이며, 그럼으로써 교육에 있어 가장 ‘극단적’인 담론들을 만들어낸 질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질문으로부터 학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질문으로부터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 스승을 주장했다. 그 질문이란 이것이다 - “배우려는 자는, 의존적이어야 하는가?”   존 테일러 개토가 『바보 만들기』를 통해 학교를 성토한 가장 큰 까닭은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는 촘촘히 짜인 시간표, 정해진 커리큘럼,...
차명식 2018.06.04 조회 529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④ 학교가 만들어내는 ‘바보’ 존 테일러 개토, 『바보 만들기』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이쯤에서 슬슬 학교 제도에 대한 나의 견해를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사랑의 학교』 대신 『수레바퀴 아래서』를 고른 시점에서 이미 들통 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나는 학교 제도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몇몇 교사들의 인성이나 도저히 ‘구제가 불가능한’ 몇몇 학생들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만들어질 때부터 내재되어 있는 태생적인 결점들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래서 대체 –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질문을 던질 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리는 질문이고, 까딱하면 질문하는 사람이 얼간이로 여겨지거나 질문을 듣는 사람을 얼간이로 여긴다고 오해받을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불쾌감부터 느끼지 않도록, 천천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뿔싸, 그런데 책 제목이……너무 노골적이다. 『바보...
차명식 2018.05.07 조회 696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③ 삶이라는 ‘가르침’ 김명길, 『학교는 시끄러워야 한다』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학교는 시끄러워야 한다』는 봄에 읽은 책들 중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책이었다. 나이 든 교사가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쓴 수기라는 점에서는 『학교의 슬픔』과 같지만, 아이들은 프랑스 선생님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보다는 우리나라 선생님의 우리나라 학교 이야기를 더 즐거워했다. ‘우리 학교에도 이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이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래서인지 마음에 드는 구절로 골라온 부분도 서로 비슷비슷했다. 몇 명이나 되는 녀석들이 똑같은 부분을 골라왔다. 바로 이 부분이다.   「수진이는 영어 심화반에 편입되었다. 안 한다는 것이 통하지 않는 이 학교에서 수진이 뜻과는 상관없이 수업을 받아야만 했는데, 이 금액은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바로 오늘이 그 돈을 내는 날이고, 액수는 3만 5천원이다. 그런데 수진이네는 그 돈조차 낼 형편이 안 된다 한다. 이...
차명식 2018.04.08 조회 728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② 선생이라는 ‘일’ 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나를 보통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좀 익숙해졌다 싶은 녀석들은 쌤. 딱히 그리 부르라 말한 적은 없지만 어느 사이엔가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아마 녀석들이 느끼기에 이 시간은 책을 읽고 덤으로 이것저것 배워가는 시간 정도일 테고, 그것들을 가르쳐주는 나는 자동적으로 선생님이 된 것이리라. 그러니까 녀석들에게 선생이란 곧 가르쳐주는 사람인 셈이다.        헌데 때때로 드는 의문은 과연 선생에 대한 녀석들의 정의가 합당한가 하는 점이다. 수업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는 아이들과 시시한 잡담과 인사를 나누고, 책에 대한 느낌과 인상 깊게 읽은 부분 그리고 그 까닭을 나눈다. 책 속의 질문들을 좀 더 확장시켜서 아이들에게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대단한 이론이나 획기적인 독서 테크닉 같은 것을 전수해주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만나 이렇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차명식 2018.03.12 조회 666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① 학교라는 ‘공간’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자, 이거 봐. 페이지 수로 들으면 많아 보이지만 두께도 요것밖에 안 되고, 그리고 책 모양 자체가 홀쭉한데다 여백도 많지? 그러니까 한 페이지 당 내용도 얼마 안 돼.”   쉽게 읽어올 수 있는 분량이라고 열을 올려가며 광고를 해봤지만 다들 하나같이 표정이 시큰둥했다. 아무래도 영 약발이 듣질 않는 모양새다. ‘다음 주에 수업할 책은 집에 가서 생각할래요.’ 그런 꿍꿍이들이 훤히 다 보였다. 어쩌겠나, 이 이상 달리 할 말도 없는 걸. 결국 이쪽이 먼저 손을 들고 항복했다. 펼쳐들었던 책을 닫으면서 그대로 수업을 매조졌다.   “좀 지루해보일수도 있겠지만 아주 유명한 소설이야. 너희랑 통하는 부분들도 꽤 있을 거고……그러니까 다들 빠짐없이 읽고 인상 깊은 부분을 골라오도록!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언제나처럼 마지막 인사할 때가 가장 힘차다. 제각기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는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서 총총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