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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19.03.08 조회 361
‘청년 루쉰’, 그리고 ‘청년과 루쉰’ (1)      글 : 문탁   1. 청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문탁에서 공부하다 아이 낳고 독박육아를 경험한 후 페미니스트 맘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 늘 딱했고, 한편으로 기특했고, 언제나 응원하는 마음이었는데 얼마 전 그 후배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자기 세대들이 이렇게 힘들어진 것은 나 같은 선배들이 가부장제와 제대로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고, 이 부당한 현실을 절대, 절대 좌시하지 않고 계속 투쟁하겠다고도 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뭣이라? 싸우질 않았다고? 아니 내가 얼마나 전투적인 페미니스트였는데... 운동권 내에서 계급 이슈를 넘어 젠더 이슈를 처음 제기한 것도,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실험한 것도, 여성들 간의 연대를 위해 물심양면, 불철주야 발로 뛴 것도 우리 세대였는데.... 그런데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고? 하지만 난 속에서 우글거리던 이 모든 말들을 그냥 꿀꺽 삼켜 버렸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말야 ~~”라고 입을 떼는 순간,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청춘을 다 바쳐 산업화를 일구었다고 말하는, 심지어 그러면서 태극기를 흔드는 우리 부모 세대와 별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그 말들, 약간은 억울한 그 속내를 우리끼리 모여서 뱉어내고 풀어낸다. 얼마 전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 모임에서 나는 무슨 대단한 봉변이나 당한 냥 앞의 이야기를 토로했고, NGO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친구 한명은 젊은 간사와 소통하는 게 너무 힘들어...
문탁 2018.12.19 조회 474
노라는 퇴사 후 어떻게 되었는가?   글 : 문탁  1. 왜 평범하면 안 되나요?   요즘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핫하다고 한다. 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짬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드라마에 니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게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가 없었다.^^ 다행히 요즘엔 드라마를 정주행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장면만을 검색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결국 난 그 문제적 장면, 대학병원 의사, 로스쿨 교수 등 상위 0.01%의 가족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모두 손에 들고, 겉으로는 “아름다운 캐슬에서 인류의 정신적인 유산을 전수하기 위해”, 실제로는 자녀의 ‘생기부 독서리스트’에 단 한 줄을 올리기 위해 모여 앉아 있는 그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 정말 빵 터졌다. 간만에 장르적 쾌감을 제대로 맛봤다고나 할까. 이 작가, 혹시 천재 아냐? ㅋㅋ 드라마 속에서는 자사고쯤 되는 학교를 공동으로 수석 입학한 두 아이가 이 책에 대해 정 반대의 리뷰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는 니체가 자뻑의 대가인데 자뻑을 부정하지 않는 그 관점이 너무 신선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니체는 적을 갖되 증오할 가치가 있는 적만 가지라고 했는데, 그래서 자기가 정말 싫어하는 자신의 경쟁자가 오히려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진정한 벗임을 알았다고, 그 경쟁자를 통해 자신을 극복하는 위버멘쉬가 되겠다고 ‘자신감 넘치게’ 말한다. 반면에 다른 아이는 니체는 뒷골목, 씨름판, 링을 가리지 않고 인간...
문탁 2018.10.09 조회 576
장타이옌, 전사(戰士)인 스승-루쉰의 스승들(2편)- 글 : 문탁 1. 단발과 혁명 루쉰은 1936년 10월 17일, 「타이옌 선생으로 하여 생각나는 두어 가지 일」을 쓴다. 스승인 장타이옌 선생이 사망한 것이 6월 14일. 쓸쓸한 그의 추도식을 보면서 스승을 추억하는 글을 쓴 것이 10월 9일. 그러나 좀 미진했고 더 쓰고 싶은 게 있어서 새로 글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글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다음 날 쓰러졌고, 그 다음 날 결국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글은 루쉰이 죽기 이틀 전에 쓴, 루쉰의 마지막 글이 된다. 그런데 그 글은 죽기 이틀 전에 쓴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주 심상하게 시작된다. 지난 번 장타이옌 선생에 대한 글을 쓴 다음 날 신문을 보니 쌍십절(雙十節) 25주년이었다는 것. 시간이 참 쏜살같다는 것. 그런데 다시 신문에서 “신진작가가 노인을 증오하는 글을 읽고 찬물을 반 바가지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을 느꼈다는 것. 그러면서 자기가 감탄할 때 하는 정수리를 만지는 손동작도 구닥다리 유물이지만, 그것은 원래 마침내 변발을 잘라냈다는, 승리의 제스추어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루쉰은 변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사실 당시 정세는 엄중했다. 1927년의 백색쿠데타로 정권을 쥔 장제스는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아니라 어제까지의 동지였던 공산당을 섬멸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5차례에 걸쳐 감행된 초공작전(剿共作戰) (혹은 위초작전圍剿作戰이라고도 불린다)이 그것인데 심지어 1933년 마지막 작전 때는 100만의 군대와 500여대의 비행기가 동원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백주에 살해되거나 체포되어 고문 받고 처형당했다....
문탁 2018.09.11 조회 441
후지노 겐쿠로 그리고 장타이옌- 애닯고 아득한 청춘의 모퉁이, 그곳에 늘 서 있는 스승들 -글 : 문탁나도 무지에서 홀로 방황한다    1909년 29세의 루쉰은 약 8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온다. 딱히 내세울만한 성과는 없었다. 3년 전 의대를 때려 치고 문학으로 방향을 틀었었다. 중국인의 병은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어리석고 겁약한” 정신이기 때문에, 생리학이 아니라 문학이 그들의 병을 고쳐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잡지를 만드는 일도 문예운동을 펼치는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실을 돌파하는 것은, 바람만으로는, 희망으로만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게가 그를 귀국시켰다. 그리고 그는 교사로 취직한다.    그 시기, 일본, 중국, 조선의 사정은 엇비슷했다. 유학파들이 귀국하여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만만한 것 중의 하나가 ‘교사’였다. 물론 그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계몽의 파토스에 불탔던 많은 청년들, 예를 들어 조선의 이광수 같은 이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루쉰의 경우, 그것은 밥벌이였다. 그렇다고 그가 불성실한 교사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첫 직장이었던 저쟝의 2급 사범학당에서 그는 자기가 맡은 화학과 생리학을 충실히 가르쳤다. 삽화를 포함시킨 교재, 요점이 분명한 설명으로 학생들의 신뢰도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루쉰 자신은 “죽을 만큼 황량”하다고 말한다. 식물학을 가르치는 동료를 도와 열심히 식물채집을 하러 다녔고, 당나라 때의 백과사전(類書) 등을 뒤적이며 옛날 소설들을 모아 편집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교사로서의 사명 때문도 아니었고, 학자로서의 탐구정신 때문도 아니었다. 루쉰은, 그것이 “공부라고는 할 수 없고 좋은 술과...
문탁 2018.07.31 조회 604
복수는 나의 것          글 : 문탁 복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나는 무협지도 좋아하고 무협영화도 좋아한다. 매일 매일의 정직한 단련으로만 체득되는 내공의 힘, 그런 고수들이 합을 겨루는 강호무림(江湖武林), 그 실전의 세계가 좋았다. 그곳은 야바위나 설레발이 통하지 않는 투명하고 정직한 세계이고, 오직 고수들만이 맺고 유지할 수 있는 우정과 신의의 세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무협스토리가 ‘복수’를 주제로 삼아 전개된다는 것이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뜻의 ‘군자복수십년불만(君子復讐 十年不晩)’이라는 말은 무협물의 단골 레토릭인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의 유장한 기질도 아주 맘에 들었고, 원수를 찾아 헤매는 정처 없는 여정에도 매료되었고(보통 주인공은 이 과정에서 평생친구 하나쯤을 사귄다^^), 단도직입(單刀直入) 끝에 원수를 갚고 장렬히 죽음을 맞는 바로크적인 비장미에도 황홀해했다. 강호는, 적어도 나에게 무협의 세계는, 복수의 서사가 살아있는 곳이고 영웅의 죽음이 환기되는 곳이고 정의가 회복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른 복수극도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박찬욱의 영화 중 <복수는 나의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이전의 무협지적인 복수물과도 다르고, 이후의 사적복수를 다룬 많은 영화들과도 다른 독특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위 <와호장룡>(리안, 2000), 아래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2002) 영화의 주인공은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자 공장노동자인 류. 그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의 장기이식을 위해 장기밀매업자를 찾아가지만 역으로 자신의 신장 하나와 전 재산인 1,000만원을 빼앗긴다. 그렇게 되자 주인공의 애인이며 미군축출과...
문탁 2018.07.03 조회 712
너희는 어떻게 사랑할래? : 루쉰의 사랑에서 너희들의 사랑을 묻다         글 : 문탁 ​        루쉰의 스캔들    1906년 6월, 루쉰은 어머니가 정해준 정혼상대와 결혼한다. 루쉰은 스물여섯이었고 일본유학생이었고 센다이의전을 때려치우고 문예운동을 하겠다며 도쿄에서 암중모색 중이었다. 상대는 전족을 했고 읽고 쓸 줄 몰랐던 구식 여성, 스물아홉의 주안(朱安)이라는 인물이었다.    1925년 3월, 루쉰은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답장과 답장이 이어지면서 둘 사이에는 연애감정이 생긴다. 루쉰은 마흔 다섯이었고 대학교수였으며 이미 몇 편의 소설을 히트시킨 바 있는 명망가였다. 상대는 전족을 하지 않은 채로 베이징으로 유학 와있던 신여성, 스물여덟의 쉬광핑(許廣平)이라는 인물이었다.    1927년 10월, 마흔일곱의 루쉰과 서른의 쉬광핑은 함께 상하이에 도착하고,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공개적인 동거를 시작한다. 2년 후 1929년 9월, 둘 사이에서는 아들이 태어난다. 이후 루쉰은 1936년 쉰여섯으로 사망할 때까지 쉬광핑과 산다. 본부인은? 베이징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1947년 독거사 한다. 일흔이었다. 쉬광핑은 루쉰이 죽은 후에도 마우저뚱의 완벽한 후원 하에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9년에 숨진다. 일흔 하나였다.    자, 여기까지가 전기적 팩트이다. 루쉰은 본부인이 있는 상태로 무려 열일곱 살이나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살았고 아이까지 낳았다. 어떤가? 뻔하디뻔한 유부남의 불륜스토리인가? 아니면 시대의 통념과 맞장 뜬 위대한 러브스토리인가?                       주안(朱安)                       ...
문탁 2018.06.09 조회 564
인트로 : 정처 없는 길을 나서며         글 : 문탁      아이들의 소가 된다구?     運交華蓋欲何求,未敢翻身已碰頭. 破帽遮顏過鬧市,漏船載酒泛中流. 橫眉冷對千夫指,俯首甘為孺子牛. 躲進小樓成一統,管他冬夏與春秋.                   화개운이 씌웠으니 무엇을 바라겠소만, 팔자 고치지도 못했는데 벌써 머리를 찧었소.                   헤진 모자로 얼굴 가린 채 떠들썩한 저자 지나고, 구멍 뚫린 배에 술을 싣고서 강물을 떠다닌다오.                  사람들 손가락질에 사나운 눈초리로 째려보지만, 고개 숙여 기꺼이 아이들의 소가 되어 주려오.                  좁은 다락에 숨어 있어도 마음은 한결같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슨 상관있겠소.       1932년 루쉰이 쓴 <자조(自調)>라는 제목의 구체시이다. 난 2016년 여름, ‘루쉰 온 더 로드’ 프로젝트 때문에 베이징 루쉰기념관에 갔다가 이 시 전문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기념관 안에서 마주친 ‘민족혼(民族魂)’이라는 거대한 액자만큼이나 입구 대리석 벽면에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이 시에 뜨악했다. 이거 도대체 뭐지? 왜 루쉰을 이런 식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시는 베이징 루쉰기념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샤오싱 루쉰기념관에는 거대한 루쉰동상과 함께 황금빛으로 새겨져 있고, 항저우고급중학교 안 루쉰기념관에도 빨간 색으로 쓰여 있었다. 중국 최고 대학이라는 베이징의 칭화대학에도, 변방의 귀주대학에도 이 글자는 커다란 상징물로 조성되어 있다. 심지어 루쉰의 다양한 ‘굿즈’에도 이 시는 단골로 등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