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서당 6회차 후기: 대국에 예로 맞서는 노나라

고은
2021-11-29 23:28
519

 

 

 

[경] 夏에 公會吳于鄫

여름, 애공이 오나라와 증에서 만났다.

 

애공 7년, 애공과 오나라의 국제회담이 열렸습니다. 당시 오나라는 패자가 되고 싶어하는, 떠오르는 강대국이었습니다. 오나라 사람이 백 가지의 백뇌(百牢)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소, 양, 돼지를 각각 100마리씩 잡아서 연회를 열라는 겁니다. 이는 해낼 수 있는 규모의 일이 아니었다고 해요. 그래서 자복경백이 옛 선왕에게도 그런 적이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러자 오나라 사람이 말합니다.

 

 

 

[전] 吳人曰 宋百牢我注 魯不可以後宋 且魯牢晉大夫過十注 吳王百牢 不亦可乎

오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송나라는 나에게 백 가지 요리의 향연을 베풀었습니다. 노나라가 송나라만 못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노나라는 진나라의 대부에게도 요리 열 가지가 넘는 향연을 베풀었으니 오왕이 백 가지 요리의 향연을 받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까?"

 

완전 양아치 아닌가요..? 요점은 다른 나라에 뒤질 수 없으니, 노나라에게 성대한 연회를 베풀게 하여 오나라 자신들의 입지를 이 회담에서 내보이겠다는 심보입니다. 거의 만나자마자(?) 이정도 규모의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 노나라를 아주 휘어잡을 생각으로 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정도의 뽐내기가 괜찮다고, 이것으로 입지를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오나라 내부의 상황이 어느정도 짐작되기도 합니다. 자복경백은 아주 길고 긴 말로 오나라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景伯曰 晉范鞅貪而棄禮 以大國懼敝邑 故敝邑十一牢之 君若以禮命於諸侯면 則有數矣注 若亦棄禮 則有淫者矣注 周之王也 制禮 上物不過十二注 以爲天之大數也注 今棄周禮 而曰必百牢 亦唯執事

자복경백은 말하였다. "진나라 범앙은 탐욕스러워 예를 무시하고 대국의 위세로 우리를 두렵게 하여 그 때문에 우리로 열한 가지 요리로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귀국 군주께서 만약 예로써 다른 제후들에게 명하신다면 정해진 수량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귀국 군주 역시 예를 무시한다면 정해진 수량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것이 됩니다. 주나라가 천자가 되어 예를 정하되 향연의 상한은 열두 가지 요리를 넘지 않도록 하였으니 이는 하늘의 대수입니다. 지금 그러한 주나라 예를 버리고 반드시 백 가지 요리의 향연을 요구하신다면 역시 귀국 집사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자복경백이 진짜 패자가 되고 싶다면 예를 따르고 법도를 지키라고 차근차근 말합니다. 천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예를 지키지 않는다면 패자의 자리에 갈 수 없다는 그래서 곧 망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 뭔가 멋있습니다. 예를 지킨다는 것이 무엇일지 요즘 자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그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예를 지키지 않는다면 정말 천도를 어기게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어그러질 것이라는 말에 조금씩 동의하게 되고 있습니다. 여하튼 자복경백은 예를 가지고 대국의 압박에 맞섰는데요, 오나라에게는 먹히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오나라 사람이 듣지 않았다(吳人弗聽)고 합니다. 그러자 자복경백은 장차 오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후 오나라 태재비가 계강자를 불렀는데, 계강자는 자공을 시켜 이것을 거절하도록 합니다. 태재비가 국군이 먼 길을 가는데 대부가 마중나오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된 예냐고 묻습니다. 주에 따르면 태재비는 오나라 멸망을 재촉한 인물로 그려진다고도 하네요. 자공은 태재비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對曰 豈以爲禮 畏大國也注 大國不以禮命於諸侯 苟不以禮 豈可量也注 寡君旣共命焉 其老豈敢棄其國 大伯端委 以治周禮 仲雍嗣之 斷髮文身 羸以爲飾 豈禮也哉 有由然也注

 

자공이 대답하였다. "그것이 어찌 예이겠습니까? 큰 나라를 두려워하여 그런 것입니다. 큰 나라가 예를 지키지 않으면서 제후들에게 마구 명하고 있으니 진실로 예로써 하지 않는다면 앞일을 어떻게 헤어라겠습니까? 우리 임금께서는 이미 공손히 귀국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데 원로들이 어찌 감히 나라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태백꼐서는 현단과 위모관의 복장으로 주나라 예를 갖추셨으나 중옹께서 그 뒤를 이어서는 단발문신을 하고 벌거벗은 차림을 장식으로 여겼으니 그것이 어찌 예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복경백이 그랬듯 자공도 오나라에 예로 맞섭니다. 제가 자공을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멋지게 느껴집니다. 초장에 그것이 어찌 예이겠냐고 반문하고, 큰나라를 두려워하는 것뿐이라고 박아놓고 시작하는 모습이 대범해보이네요. 예를 지키지 않으며 마구 명령을 내린다고 지적하는 것 또한 대단합니다. 헤어지는 길에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이 회담에서 맺힌 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오래도록 예와 친하게 지내지 못했는데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어떤 때 쓰이는 것인지 너무 아리송하게 느껴졌습니다. 최근들어 어쩌면 예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런 글을 볼 때면 새삼 감동(?)비스무리한 것을 받는 것 같습니다. 당시엔 예에 대해 말하면서 예가 지켜지지 않았던 시대라면, 오늘날은 예에 대해 말하는 것을 터부하시는 시대이니까요. 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으로 흥하고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저에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댓글 2
  • 2021-11-30 09:48
    '대국에 예로 맞서는 노나라' - 내용을 두루 함축하는 제목입니다.
    글을 쓸 때 제목을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확장하면, 대국에 맞서는 소국의 시대를 초월하는 핵심 전략이 아닌가 합니다. 

  • 2021-12-03 08:01

    예는 타인과 자신의 존엄을 행위로 나타내는 형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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