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1회차 후기

뚜띠
2021-10-23 12:39
525

春秋는 魯나라의 역사 만을 시간 순으로 간략하게 서술한 책이고
左傳은 춘추시대의 여러 나라의 역사를 시 간순으로 비교적 자세히 서술한 책입니다.
春秋左傳은 이 두 책을 시간에 따라 함께 볼 수 있도록 편집한 또 다른 책입니다.
그러니 춘추좌전을 읽는 것은 이 세 책을 다 아우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논어 수업에서도 공자님의 시대에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춘추좌전 수업도 그에 못지않게 재미가 있네요.
저는 이번 수업에서 제후나 대부처럼 역사의 전면에 서있던 사람들보다 이름 없는 그러나
시대의 혼란속에서도 나름 지혜롭게 혹은 심술궂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楚나라를 방문했다가 唐成公의 명마를 욕심낸 초나라 令尹子常의 갑질로 발이 묶였던 당나라 사람들입니다.
작은 나라긴 하지만 일국의 諸侯였던 당 성공은 영윤자상의 탐욕스런 요구에 순순히 말을 바치기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약한 나라의 제후 정도는 강대국의 영윤이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런 시대라 당 성공과 그 일행은 꼼짝없이 초나라에 삼년이나 잡혀있게 되었죠.
이미 기울어진 판세에 정식으로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을테니 당나라의 신하들은 꾀를 냅니다. 따라온 신하들과 교대하게 해달라는 청을 넣고 새로 온 신하들이 자신들이 독단으로 한일인냥 말을 훔쳐 자상에게 바친 것이죠. 당 성공의 체면도 살리면서 귀국할 수 있는 묘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다들 알고서도 모른척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귀국 후에 자신들의 죄에 대한 벌을 스스로 청하면서도 말관리자에게는 같은 말로 갚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또 성공은 너그럽게 죄를 사해주는 걸로 삼년의 파노라마같은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종결.

두번째는 초나라에 佩玉과 갑옷을 들고 갔던 蔡나라 昭侯 일행들입니다. 초나라 영윤자상은 여기서도 패옥에 대한 탐욕으로 소후 일행을 3년동안이나 잡아둡니다.
소후와 함께 3년 동안이나 속수무책으로 잡혀있던 채나라 신하들은 당나라 일행이 귀국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도 패옥을 바쳐 귀국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돌아가는 배 안에서 초나라에서 받은 굴욕을 잊지 않기로 굳은 다짐을 하죠.
속으로 얼마나 이를 갈았던지, 이후 채나라와 당나라의 제후들은 晉나라와 吳나라에 자신들의 자식들을 인질로 바치면서까지 초나라에 대한 복수를 도모하고, 결국 오나라를 중심으로 뭉쳐 柏擧전투에서 초나라를 대패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채나라나 당나라의 제후들이 영윤자상의 탐욕에 순순히 물건들을 내놓았다면 3년이나 남의 나라에서 고생할 일이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라를 비워두는 일보다는 아끼는 말이나 패옥을 바치는 게 더 싫었던 윗사람들의 찌질함때문에 아랫사람들만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머리를 쓰게 되었으니까요.

세번째는 주나라의 莊公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은 문지기 이야기입니다. 비록 대부 夷射姑에게 고기 한점 얻어먹으려다 속수무책으로 몽둥이찜질을 당할 만큼 낮은 신분이었지만 해를 넘기도록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교묘한 계획을 세울 만큼 뒷끝 있는 인물입니다. 장공의 깔끔함때문에 미리 순장되어 무덤을 치우러 들어간 다섯 사람과는 대조되는 인물이랄까요.

역사의 전면에는 백거전투와 채나라, 당나라 제후들의 외교전같은 스펙타클한 모습이나 혹은 제 성질에 못이겨 팔팔 뛰다 화롯불에 불타죽은 주나라 장공의 이야기가 간판으로 걸리겠지요. 하지만, 저는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끝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훔치고 고국에 돌아가 의례적이나마 스스로 벌을 청하던 당나라 신하들과 채나라 신하들, 또 복수의 칼날을 갈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장공이 내려다볼 때를 기다려 슬며시 마당에 물을 뿌리던 주나라의 문지기와의 만남이 더 기억에 남는 수업이었습니다.

댓글 2
  • 2021-10-25 21:41

    진달래님이 북앤톡에 논어 카메오열전을 쓰고 있어요. 공자나 제자들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카메오들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춘추좌전에도 뚜띠님 말대로 그런 재미있는 인물들이 많이 있네요. 다음시간에는 또 어떤 뉴페이스들을 만날지 흥미진진합니다. 멀리서 찾아와서 청소도 해주고 후기도 써주시는 뚜띠님 감사합니다!!!

  • 2021-11-01 23:09

     춘추좌전~~ 겁없이 도전했다고 생각중인데

    뚜띠님은 따라가기도 쉽지않은 첫시간에  이리 다양한 사건들과 군상들을 정리해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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