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3분기>1회후기: 정사에 능했다는 염유가 무능해진 사연

기린
2021-07-2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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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전한 공자님

 

계씨편 1장의 문장은 계씨 집안에서 가신으로 일하고 있는 염유가 스승을 뵙고 장차 계획하고 있는 일을 아뢰는 것으로 시작한다. 계씨 집안에서 노나라의 속국인 전유를 공격하기로 한 것. 공자님이 천하 주유에서 고국인 노나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을 쓴 계씨 집안이고 염유는 그 집안의 가신임을 감안할 때, 계씨 측에서는 공자님의 명성에 기대 자신들이 계획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여론을 조성하고 싶었을 것이고, 공자님이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는 의도도 읽힌다. 하지만 공자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씨 집안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그릇된 일인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공자님이 직접 정치 일선에서 활동한 때(50대 초반)에도 노나라의 실세는 세 대부 집안이었고(맹손, 계손, 숙손) 그들의 권력을 무력화 시키려다가 실패했던 이력으로 본다면, 공자님은 대부 집안이 권력을 잡고 있는 당시의 상황이 천하를 혼란하게 하는 원인 이 된다는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2.제자를 추궁하다

 

공자님은 첫째, 전유는 노나라의 속국이고 그렇다면 사직의 신하인데, 계씨 집안에서 전유를 공격하는 것은 나라 안에 내분을 일으키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한다. 염유는 계손이 하려는 일일뿐 자신은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물러선다. 이 대답은 한 편으로 염유의 곤란함으로 읽힌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결정한 일을 하라마라 할 수 없는 입장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님은 하라마라 할 수는 없지만 신하로서 그 일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는 행동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신의 자리를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염유는 말을 바꾸었다. 전유 땅의 강고함이 장차 후손들에게 근심이 될 것입니다. 계씨집안에 이로울 일이라 반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자님은 군자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응수한다. 염유가 계씨의 가신으로 활약하면서 보여준 성과에 비추어 계씨의 계획이 오로지 계씨만의 결정이겠는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라. 전유 땅을 차지해서 계씨 집안의 세력을 더 공고히 하고 싶다. 그것이 곧 염유 네 자신의 안위에도 이롭다고. 변명하는 제자가 감춘 속마음까지 추궁하는 스승님이다.

 

3. 염유의 곤경

 

『논어』에는 염유가 계씨의 가신으로 정사를 보는 와중에 공자님과 나눈 대화가 몇몇 실려 있다. 계씨가 태산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막을 수 없겠느냐고 묻고(팔일-16), 조정에서 늦게 돌아온 염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자로-14)도 했다. 결국 계씨 집안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과하게 거둬들인 것을 지적하며(선진-16) 그를 자신의 제자가 아니니 성토해도 좋다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공자님의 질문에 염유는 계씨 첫 편과 별다르지 않은 반응을 했다. 제사를 멈출 수 없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공문에서 쫓겨날 때 모습은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 염유가 계씨 집안의 가신으로 발탁되는 데는 공문에서 수학했다는 이력이 반영되었다고 본다면, 공문 출신으로써 스승의 뜻을 거스르는 상황이 거듭되는 것이 염유로써도 꽤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춘추 시대 말기 주나라 친족 관계에 기반한 봉건제도는 이미 효력을 잃은 상태였다. 각 제후국에서는 대부들이 무력을 써서 권력을 쟁취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시대적 정황에서 계씨 집안도 노나라 조정의 속국인 전유 땅을 정벌하려는 것이다. 염유는 무력이 득세하는 시대에 문덕(文德)을 닦아서 백성들을 오게 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님 역시 그런 무력에 가담하는 제자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무력을 쓰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하는 행위라면 더더욱.

 

이렇게 스승과 제자가 팽팽하게 맞서는 문장을 읽고 있으니, 염유가 현실적인 반면 공자님은 너무 순진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력은 또 다른 무력으로 대체되는 속성을 아는 공자님이 현실적인 반면 가신의 임무에 맹목인 염유가 너무 순진한 것도 같다. 더구나 이 팽팽함의 이면에서 가신의 영향력으로 스승을 모셔와 고국 노나라에서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조처한 염유가 보이기도 한다. 만약 계씨 집안에서 출세한 염유가 없었더라면 공자님의 말년은 좀 다른 풍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염유의 맹목적인 충성이 있었기에 공자님이 고국행이 성사됐다고 본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어쨌거나 정사에 능한 제자로 알려진 염유가 스승에게 무능함을 추궁당하는 결정적 장면이 된 계씨편 1장이다. 염유는 좀 억울하겠다.

 

<不對田賦: 토지세에 대한 자문에 답변하지 않다>:계씨 집안에서 세금에 관해 공자님께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는그림

오른 쪽 계강자와 그 앞에 공수하고 있는 염유/ 왼쪽 공자와 일행

댓글 3
  • 2021-07-24 22:36

    샘... 잘읽었습니다.  생각이 헝크러져 뭐라 평을 쓰기도 어렵지만,,, 여튼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후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 2021-07-26 12:10

    뚜띠님의 솔직한 댓글도 감사드려요.ㅎㅎ

     

  • 2021-07-26 12:21

     스승과 제자의 애증? ㅋ

    기린샘의 글을보니 시대를 보는 시각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면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닮은 구석이 있는것도 같은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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