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4회 후기 (횡설수설)

영감
2020-06-30 08:09
258

 

공자는 학이편의 후반부에서 신의와 겸손을 군자의 행동 규범으로 들면서, 천박하게 말초적인 안락에 유혹되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예의, 염치, 명예 따위의 중세시대 기사도가 생각나네요. 맨 앞에 나왔던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을 끄트머리에서 ‘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로 되새기고 나서 위정爲政편으로 넘어갑니다.

 

초반서부터 정치를 논하는 게 좀 성급한 듯 한데요, 당시 정계 진출에 뜻이 있었던 제자들을 배려한 취업 특강 정도로 이해합니다.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 이중성공지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   위정 1장에서는 군주가 덕으로 다스리면 가만히 있어도 백성들이 따른다고 합니다. 어려운 얘기지요. 멀쩡한 사람도 정치판에 뛰어들면 성격이 나오는데요.  오히려, 모든 국정혼란은 절대적으로 위정자의 부덕의 소치라는 걸 돌려서 말한 게 아닐지요. 위정 2장에선 시경을 소개합니다. 직전 학이편 말미에서 자공이 접대성으로 인용한 절차탁마가 생각나셨을까요? 저는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될 삿됨, 즉 부패를 경계해서 ‘사무사思無邪’를 부각시키시려는 목적이었다고 봅니다. 그게 아니면 정치학 개론 두번째 강의에 시를 들고 나올 이유가 없지요 애들 헷갈리게.  

 

3장은 법철학입니다. 법의 본질과 효력에 있어서 실전에서도 통하는 유용한 사상입니다. 결론은 ‘제지이례 유치차격齊之以禮 有恥且格’ 인데요, 핵심 개념은 ‘恥’라고 생각합니다. 벌 받는 공포보다는, 부끄러움 즉 죄책감 때문에 나쁜 짓을 피하게 된다는 가설이지요.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감옥가는 거보다 주위에 ‘쪽 팔리는게’ 싫어서 조심한다는 주장입니다. 관성적으로 뿌리내린 우리나라 지배계층의 부패는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사정이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부패지수가 아주 높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부패죄의 형량이 절도죄보다 높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와 당사자 공히) 체감하는 죄책감이 약하기 때문에 개선이 안되는 것 같아요. 강력한 형사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죠. 부패범으로 하여금 도둑놈 이상의 수치恥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 범죄 예방책이라는 걸 2500년 고전에서 확인합니다. 

 

4장에서는 공자의 일생을 요약했습니다. 정이천은 성인이 꼭 그렇게 살았다기 보다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이루신거라고(盈科而後進) 해석해서 좀 안심 시켜줍니다. 좌우간 제게는 하나 남은 구간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가 탐나는 벤치마킹 대상이긴 하지만 난이도가 높아요. 달성하는 길은 오직 하나, ‘구矩’를 좀 맛사지하는 수 밖에 없지요. (삿되게) 꼴 대를 넓히는 거지요, 배운 게 변칙이니까요.

 

5장 부터 내리 8장까지 효孝에 관한 사례 연구에 들어갑니다. 이 상황에서 사제간의 대화를 상상해봤어요.  제자들: “선생님, 지금 전공 과목 시간인데요. 학이편에서 교양과정 다 끝났는 거 아닌가요? 통으로 외워쓰는 시험까지 봤쟎아요!’    子曰: ‘니네들 보니까 아직 기본이 안 되어있어. 기초부터 다시 다지고 진도 나가도 안 늦어. 효는 기본 중에서도 끝판왕也,  仁도 孝보다는 한 수 밑이거든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근본은 세우고 지키는 게 중요하지요. ‘君子 務本 本立而道生’입니다. 여기서 ‘立’은 한번 세우고 마는 일회성의 동작동사 라기보다는, 세운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상태동사에 가깝다고 봅니다.

 

4개 장에서 설파한 효孝의 정의는 문답에 참여한 제자들의 성향만큼이나 다양합니다. 5장에서 예를 통한 효, 6장에서는 부모 자식 간의 숙명적 관계를 확인하고 7,8 장에 와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효의 실천을 가르칩니다. 고전에서 지적하는 문제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대개 오늘날에도 미결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지요.  7장 ‘자유문효子游問孝’에서 공자는 부모에게 기계적으로 숙식만 제공하는게  짐승을 기르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공경심이 결여된 孝를 질타합니다. 그러면서면서도 ‘요즘 껏들(금지효자今之孝者)’의 시대적인 현상으로만 한정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봉양奉養을 축양畜養에 빗댄게 좀 과해서 그러셨을까요? 하지만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더 기형적으로요. 가장의 서열이 애완견에 밀리는 가정이 있다지요. 제 아이가 우리집 마당에 들어온 도둑 고양이 ( 길고양이로 순화시킵니다) 눈 자위에  다크 서클이 생겼다고 걱정하는 걸 보고 기가 막힌 적이 있습니다. 전에 제가 백내장 수술을 해서 눈을 싸매고 있을 때 그 아이가 제게 물어보기라도 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효는 이 시대에 이미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개념으로 치부됩니다. 자식으로부터 부양 받는 기대를 지레,  손사레치며 포기하고 사양합니다. 어차피 고령화 시대에 효의 실천도 아웃 소싱이 불가피하긴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이미 망자가 됐을 군번인 맏상주를 보고 안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老노 부양의 문제이지요. 위정 5장에서 공자가 열거하신 세 단계의 예는 수정내지 간소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도 효가 만사의 으뜸이라는데 괜찮을까요?   미친복습 시험 공부부터 하고나서 생각해 봐야겠어요.

외3

댓글 3
  • 2020-06-30 08:26

    미친 복습 하면 이런 생각의 실마리들이 싹을 틔운다는 말씀이시죠^^? ㅋㅋㅋ 효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때에 또 <논어>를 읽고 있네요^^

  • 2020-06-30 08:34

    영감님 후기 읽으며 복습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어요. 이번주부터 저도 복습하러 갑니다~

  • 2020-07-01 07:59

    영감님 후기는 늘 기대하며 읽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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