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서당 ] 4회 후기 : 극기복례  克己復禮

영감
2021-03-14 20:50
354

 '우리 애가 천성은 착한 데... ' 가끔 듣는 흉악범 어머니의 넋두리다.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하나 마나 한 얘기다. 판사가 이 말 듣고 참작해서 형량을 깍아 주지도 않는다. 가족의 말이라 더더욱 안 믿는다.

 

유학儒學의 인성론에 따르면 이 어머니의 주장은 사실이다. 천성天性은 사람이 타고나는 선한 본성이라고 했다. 하늘이 나쁜 마음을 주었을 리가 없다. 제품의 사양은 물건을 만들어낸 생산자가 잘 안다. 아들을 생산한 엄마가 그가 타고난 선한 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중용中庸에서도 하늘이 부여한 선한 본성을 따라가는 게 도리道理라고 확인해 준다. 제1장 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에서 성性이 바로 타고난 인간의 본성이다.

 

맹자는 중용의 사상을 발전시켜 성선설을 확립했다.

인간이 타고나는 네 가지 선善한 본성인 사단四端을 성선설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사단(四端)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을 말하며, 사단은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상편에 나오는 말로 실천 도덕의 근거로 삼았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남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잘잘못을 분별하여 가리는 마음

 

세상을 살아 갈수록 사람의 본성은 외부 환경과 반응하며 감정에 오염되고 후천적으로 변형된다. 마음의 앙금이 쌓여 무거워진 보따리baggage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본성은 점점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과도하게 깔아놓은 앱, 데이터, 사용자의 습관, 바이러스에 의해 스마트폰이 느려지고 말썽을 부린다. 공장 초기 설정으로 돌아가면 회복된다고 해도 앱, 저장해 놓은 데이터를 모두 지우라고 하면 고민한다.

 


 

안연顔淵이 공자에게 인仁이 무어냐고 물었다. 공자에게 인을 물어본 사람들은 많은데 상대에 따라, 때에 따라 대답이 다르다. 제자인 번지樊遲가 인仁에 대해 물었을 때 (논어 옹야 편) '인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나중에 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다음 번 (논어 안연 편)에 번지가 다시 물으니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제자인 안연이 물은 인에 대해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답했다. 유명한 구절이다.

 

여기서 기己는 사욕私慾을 뜻한다. 욕심을 이기는 건 욕심을 버리는 거다. 스마트폰 초기화만큼이나 극기는 강한 의지를 요하는 행위다. 

 

사사로운 욕심의 자기를, 본성이라는 정체성에 기생하는 타자他者로 분리시키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요즘도 자기 자신을 복수로 나누는 화법을 편리하게 쓰는 걸 본다. 여행갈 때 할 말 없으면 자기를 찾으러 간다고 하거나, 위정자들이 책임을 돌릴 때 쓰는 유체이탈 화법도 같은 류다.

 

몸에서 악령을 내보내는 퇴마의식처럼 욕심을 쫓아내야 인仁을 실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도 부실해지면 굿 컴퍼니 배드 컴퍼니로 분할해서 배드 컴퍼니는 처분해 버린다. 2009 년 금융위기 때 파산 위기에 놓인 미국의 지엠GM도 이렇게 해서 살려냈다.

 

하늘의 이치를 구체화시킨 예禮는 사람이 살아가며 지켜야 할 규범이다. 사욕을 이겨 하늘의 이치 (예禮)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인을 정의하고 있다. 돌아간다는 뜻의 복復 자를 쓴 것은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 바로 하늘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안연은 그러자 극기복례가 좀 막연하니 자세히 얘기해 주십사 한다. 우등생답다.

공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가지 실천요령을 설파한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마라 非禮勿動

논어 안연 편

 

지각과 언행을 통제해야만 자기 욕심을 이겨내고 본성으로 돌아가 인을 실천할 수 있다. 뜻은 어렵지 않지만 함정이 있다. 이 규범을 따라 하려면 적어도 예와 비례를 판별하는 기본 식견이 필요하다. 질문을 한 제자 안연 이면 그 정도 진도는 나갔다고 봐야 한다.

 

보고 듣는 건 피동적인 감각 기관의 통제인 반면 나머지 두 가지는 적극적인 언동의 통제에 해당한다. 이 규범이 발전해서 형사법이 된다면 뒤로 (視->聽->言->動) 갈수록 법정에서 때리는 형량도 세질 것 같다.

 


 

북송 때 유학자 정이천程伊川이 극기복례를 부연해서 사물잠 四勿箴을 지었다.

 

사물잠은 외부와 감응하는 나의 행동을 제어해서 내적인 본심이 망가지는 걸 다스리는 잠언이다. 마음이 기울지 않게 지키고 기르는 심법心法이다.

 

비례물시非禮勿視 1) 사람의 본성인 마음이 비어있어서 사물에 응해도 자취가 남지 않는다. 2) 그렇지만 보는 것에 의해 마음이 흔들린다. 눈앞을 가린 물욕에 마음이 끌려가지 않게 볼 것을 가려서 봐야 한다. 도리에 어긋나는 게 눈앞에 보일 (見, 看) 때 지나가게는 하되 보지(視) 않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 1)과 2) 간의 논리적 연결이 매끄럽지는 않다.

 

비례물청非禮勿聽 사람은 본래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다. 외부로부터 잘못된 말을 듣고 솔깃하면 올바름을 잃는다. 예가 아닌 것이 들릴(聞) 때 귀담아들으면(聽) 사악해진다. 선각자들처럼 그칠 데를 알아 유혹당하지 말고 양심을 유지하라.

 

비례물언非禮勿言 마음의 움직임은 말을 통해 퍼진다. 말을 통해 싸우기도 하고 친해지기도 한다. 길·흉·영·화·오욕 모두 말이 초래한다. 쉽게 한 말은 허황되고 말이 많으면 핵심이 없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말 같지 않은 말은 하지 마라. 조급하고 가벼운 말을 삼가해서 속마음을 고요하고 한결같이 하라.

 

비례물동非禮勿動 사리에 밝은 사람은 낌새를 알아 생각을 진실성 있게 하고, 뜻이 있는 선비는 행실을 힘써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 천리에 순종하면 여유가 있고 욕심을 따르면 위험에 빠진다. 잠깐이라도 깊이 생각하여 처신하라. 습관이 (타고난) 천성처럼 이루어지면 더불어 성현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

 


 

맹자의 성선설을 논하면 으레 라이벌인 순자의 성악설이 따라온다. 흉악범의 어머니는 성선설을 믿지만 아들 본인은 어느 쪽을 믿을지 궁금하다.

 

외5

댓글 2
  • 2021-03-15 13:55

    후기로라도 뵈니 반갑습니다
    극기복례를 사물잠 까지 확실히 복습시켜주시네요^^
    맹자나 순자나 자기(의 사욕)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건 마찬가지인데 그 욕망에 대한 시각이 달라서 완전 반대주장을 하는 것처럼 되어버리다니 ㅎ

  • 2021-04-07 09:11

    복습을 너머 다시 새로운 영감님의 강의를 듣는 듯하군요~~ 현재성있는 적절한 비유와 파고드는 예리함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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