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후기 - 금수가 아니라 다행이야!

도라지
2021-02-28 21:21
513

 

나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불편하다. 여기에 글까지 잘 쓴다면?

지금 게시판에 올라온 이 후기까지 꼼꼼하게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맞다! 당신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누구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ㅋ

공부를 잘해본 기억은 없지만 공부에 관심이 많은 나는,  (문탁) 학기중엔 내가 인류의 한 일원이 된 충만한 느낌에 취하곤 한다. 하지만 학기가 끝나 공부를 놓자고 들면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0'으로 아주 빨리 수렴되곤 하는데, 공자는 이런 이를 '금수'라 하신다.

 

작년 말에 이사를 했다. 책장은 뒤죽박죽. 양심 없는 나는 새해를 맞고도 한 달이 더 지나서 논어 책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우리 작년에 어디까지 배웠죠?"라고 단톡에 묻지 않은 나라서 다행이었다.

예열을 좀 하고 공부를 시작했어야 했지만, 이번 학기 시작이 '선진'편이라 잃어버린 논어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제 제자들의 성/이름/자를 연결하여 떠올리기! 어조사로 헤매다 마음 상하지 않기! 외운 글자 또 외우며 좌절하지 않기! 주석 찾다가 길 잃지 않기! 나의 논어 공부는 이번 학기도 이 무한 반복 구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나저나 올해 나는 간신히 인류에 편승했다. 봄날 반장님이 옆구리 찌르지 않았으면, 강의 신청 댓글을 달지 않을 이유는 오만가지였기 때문이다. 원래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고만 고만한 이유로 늘 공부하지만 무릇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다양하게 구질 구질한 이유로 공부를 안하지 않던가? 하마터면 나는 구질 구질한 금수가 될 뻔 했다. 봄날 반장님 땡~큐!

 

반성문은 이제 끝.

지난 시간 후기를 간략하게-강의 앞부분은 (아시다시피) 줌에서 잘 안들렸어요;; -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후기 제대로 못 쓰는 이유도 구질구질~~~

 


 

1.

魯人爲長府閔子騫曰仍舊貫如之何何必改作
子曰夫人不言言必有中

 

선진편에 와서 나는 공자의 제자들을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민자건이 특히 그런데, 공자가 그를 일러 不言言必有中이라고 할 때 입 밖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고 궁금했다. 言必有中은 공자가 그의 나이 칠십에 도달한 從心所慾不踰矩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라고.
논어를 공부하면서 나에게 인상적인 제자는 단연 안연이었지 민자건은 아니었었다. 작년엔 민자건의 분량이 적었었나?라고 기억에 없는 공부를 의심해 보지만,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덕행 제자로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앞으로 민자건에 주목하면서 논어를 읽어도 재밌을 것 같다.

 

2.

柴也愚, 參也魯, 師也辟, 由也喭.

시는 어리석고, 삼은 노둔하고, 사는 치우쳐 있고, 유는 거칠다.

 

직역해서 보면, 공자가 네 명의 제자들을 디스 하는 걸로 보인다. 그런데 주석을 보면 느낌이 완전 다르다. 가끔 주석을 통해 보이는 공자는 한 명 한 명의 제자들을 물화 시키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보는 스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 공자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일까?... 의심하지 말고 일단 판단을 중지하고 느껴보자!

 

高柴(子羔)를 설명하는 '愚'를 주석에서는,
"지혜가 부족하고 후덕함이 충분한 것이다. 공자가어에 기록하기를...그는 발로 남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고, 봄이 되어 땅 속에서 갓 나온 벌레를 죽이지 않았고, 한참 자라는 초목을 꺽지 않았으며..."라고 설명한다.(논어집주/성백현/p.310)

교재의 주석에 우쌤의 설명을 더해서 다시 보자!
" '愚'는 공부는 좀 부족했으나 공부를 하면서 점점 행이 채워졌다는 것이다. 남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는 것은 타인을 존중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며..." 갈수록 高柴라는 제자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가 우직하고 성실한 제자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질문: 그런데 주로  '고시'라고 하나요? '자고'라고 하나요? 두 이름 다 좀 낯설어서;; )

 

柴也愚
머리도 별로고 살면서 공부를 잘해본 적도 없는 내게 불현듯 다가온 한 문장 되시겠다. 이제 이 문장을 아끼고 살아야지!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시대에서 시간은 돈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2500년 전 사람들을 읽고 있다. 그것도 무려 2년에 걸쳐서.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진화에 불리한 성정을 타고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댓글 3
  • 2021-03-01 11:16

    도라지님의 좌충우돌 인류되기 후기 재밌습니다.
    옆구리 찔러서 논어듣기를 결심하셨다니, 세게 찌른 것도 아닌데...ㅎㅎ 찔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게지요.ㅋㅋ
    성/이름/자가 헷갈리기는 반장도 마찬가지,
    늘 새롭게 구절이 읽히는 것도 마찬가지...
    주석따라 헤메는 것도 마찬가지...
    하지만 점점 빈도가 줄고 있으니 다행이라 여깁시다.
    도라지님, 화이팅!!

  • 2021-03-01 15:27

    공자님이 그러셨어요? 정말요? 언제 그러셨대요? ..........

  • 2021-03-09 08:52

    고시는 이름인데 주로 자고라고 많이 합니다
    여기서는 다 이름을 써서 시라고 한것같아요^^

    댓글 안달려다가 ㅋㅋ
    다른분이 답을 안하길래
    도라지 안불편하쥬?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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