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6일 논어수업 후기

뚜띠
2021-02-20 21:49
365

길다면 긴 방학 끝에 이문 서당으로 향하는 길, 반장도 아닌 일개 학생 주제에 왜 잠을 설쳤는지. 내가 이러면 반장님도 선생님도 더 하시겠지. 중얼중얼 아침 길…. 역시나 선생님께서는 예고도 없이 선진 편을 여시더니…. 논어 전편을 넘나드시며 전년도의 수업을 하얗게 지워버린 나에게 연신 어퍼컷을 날리신다. 이제 너희들은 좀 더 거친 레벨로 올라선 것이다. 우하하하…. 나는 과연 지난해 무엇을 공부한 것인가. 공부하긴 한 것인가.

 

첫 문장부터 기존의 단어에 대한 선입견을 흔든다. 禮樂에 野人인 先進과 禮樂에 君子인 後進.

야인은 거칠고 덜 세련되었으며 文보다 質이 더 강한 존재. 하지만 여기서는 비록 거칠지만 담백하고 진솔한 모습을 표현하는데 쓰인 게 아닐까? 반대로 논어에 숱하게 나오는 군자라는 말은 그저 형식에 치우친 세련됨이 과한 모습으로 나온다.

선진과 후진에 대한 의견은 제자 중 인연을 기준으로 나이도 많고 먼저 공자님의 제자가 된 그룹이 선진. 그러니까 자로, 안로, 민자건, 염백우 같은 이들. 그리고 그보다 젊고 공자님 후대의 제자들은 후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을 자로나 다른 제자들로 본다면 안연의 장례를 치를 때 스승의 가르침을 깨닫지도 따르지도 않았던 제자들의 모습과는 상충하는 느낌이다. 평생을 스승께 배웠음에도 결국은 예와 상관없이 사사로운 정과 세간의 눈을 의식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공자님께 깊은 절망을 안겼을 것 같기도 하다.

 

또 다른 의견은 주초 문무 주공 시대의 선인들을 선진이라고 하며 공자와 동시대의 지식인들을 후진으로 본다는 의견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의견이 더 그럴듯하다. 그러니까 거칠지만 담백한 앞 시대의 선인들이 예악을 행하고 사는 모습이 후대의 세련된 지식인들보다 취하여 따를 만하다는 말씀일까. 공자님께서는 끝도 없이 까다롭게 예를 따지시는 것 같다가도 결국은 그것을 행하며 사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이 없는 세련됨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심을 더 높게 쳐주시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렇게 내 맘대로라도 공자님께서 이런 분이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면 조금은 공부할 힘이 난다.

 

두 번째 장 또한 제자들의 이야기이다. 陳蔡之間에 함께 고생했던 제자들을 그리워하시며 제자들의 수준을 덕행과 언어와 정사와 문학으로 나누신 내용이다. 이 대목은 돌아가신 후 어느새 성인이 되어버리신 공자님의 뒤를 이은 무수한 10대 제자 모음의 출발이라고 한다. 틈만 나면 줄을 세우고 뭔가 특별한 그룹에 속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공자님께서 주신 가르침에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이문서당 십대제자 명단을 만들어볼까나.

 

세 번째 장은 顏淵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너무도 깊이 쉬이 깨닫고 받아들여 그만 스승님과 敎學相長의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안연의 뛰어남이라니. 단명함이 원통해 감정을 못참고 慟을 해버리실 만큼 뛰어난 제자지만, 스승님께서 질문에 답하시며 좀더 깊게 이치를 깨달으실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리다니. 쓸데없는 질문 열 번에 쓸만한 질문 한번을 할까말까하는 조금 모자란 제자들도 이럴 때는 약간 으쓱함을 느꼈을까?

 

네 번째 장은 閔子騫의 효에 관한 이야기다. 이웃들과 가족들이 이견 없이 효자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인 민자건의 훌륭함이라니. 모름지기 앉은 자리 보는 자리에 따라 천하의 나쁜 사람이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런 만큼 민자건의 효도는 천하무적인 셈이다. 일말의 의혹도 없이 훌륭함을 인정받으니 참 효자인 듯하다.

 

다섯 번째 장은 南容의 이야기이다. 시경 白圭를 하루 세 번 반복해서 낭송하는 남용. 하루 세 번 이시를 낭송할만큼 말을 하는데 엄중했던 남용. 아니면 그만큼 남용의 시대는 엄중했었을까? 말하나에 목숨을 걸 만큼, 하루에 세 번씩 마음에 되새기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시절. 하지만 그는 孟孫氏 집안의 장남으로 추정되며, 공자의 제자였고 날마다 白圭를 세 번씩 암송하는 태도로 스승의 눈에 들어 스승의 조카를 처로 맞이하게 된다. 노나라 주공의 후예이니 성은 姬氏이고 남쪽의 궁을 지어 살아 남궁도 남궁괄이라고도 불렸다니. 먼옛날 코끼리 모습을 찾아가는 느낌으로 남용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본 시간이었다.

 

첫 수업이긴 하지만, 나는 공부를 한 것인가. 아니면 선생님의 가르침을 머리와 마음으로 퉁퉁 튕겨내며 딴생각에 골몰한 것인가. 나의 올 한해 논어 수업은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바람이라면 줄줄 논어를 읊어댈 수는 없겠지만, 공자님과 만나는 시간 동안 나는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 5
  • 2021-02-21 14:54

    뚜띠님의 후기를 읽다 보니 가슴이 훈훈해 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공자님을 사모하는 뚜띠님의 마음이 읽혀져서겠지요.ㅎㅎ
    맞아요, 늘 지난 시간에 배웠던 자구들이 새롭게 보이기는 해요.
    하지만 가끔은 '아 작년에 이 구절을 공부했었지'하는 자각이 들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지요.
    저는 지난 시간에 공자님이 비유에 썼던 '군자'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게 들었어요.
    여기에서 쓰인 군자는 맹자가 이야기하던 '향원'에 가까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겉으로 보기에 군자와 향원은 구별되지 않거나, 오히려 향원이 더 사람들의 눈에 들어올 수 있지요.
    '야인'으로 표현할 만큼 거친 사람의 묵직한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공자님의 혜안이 어디에서 오는지
    더 공부하면 알 수 있을까요?ㅎㅎ

  • 2021-02-21 16:15

    늘 말보다 행동, 실천을 중시하신 공자님이라...
    백규를 읊는 남용이 말에 신중하다 보시고 맘에 드신것 같았어요.

    안연의 죽음에서...
    공자님의 말씀을 듣지않고, 안연의 평소 안빈낙도의 소신을 존중하지도 않고 후장을 택한 제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참 무거웠어요.
    공자님의 직계 제자님들도, 더구나 자기들 선생님이 살아계시며 조언을 하시는데도 눈앞에서 무시하며 본인들이 택한 후장을 치르다니...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배운 바를 과연 실천할지 뻔히 짐작이 가서요.
    물론 각자의 생각과 결정이 있을게 당연하겠지만...그러려면 공자의 제자라는 타이틀은 벗어던지고나서 그래야하지 않을까...
    설마...살아생전 선생의 편애를 받았던 친구에게 복수삼아 선생과 친구가 원치않았던 방식으로 장례를?
    그럴리가 없겠지요...ㅎㅎ

    선진으로 시작되는 논어후편...
    여러 의미로 재밌어요~

  • 2021-02-21 17:23

    뚜띠샘, 근데요...중요한 지점에 오타요~
    안연이 인연으로...ㅋㅋ
    인연을 중심으로 해도 되긴 돼죠.ㅎㅎ

    • 2021-02-22 00:45

      에쿠...

  • 2021-02-22 13:20

    저도 선진 후진에 대한 생각은 투티님 생각과 넘 같아요. 예악에 대해 단박한 마음의 중심과 영혼 없는 세련됨 ㅎㅎ 이말은 지금도 유효한듯 해요

    누구보다도 분주하게 방학을 보냈으면서도 선뜻 논어풀이에 함께 하고, 올해 또 큰 마음을 내서 멀리서 강의들으러 올 투티님. 계속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넘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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