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논어 미리 읽기] 13편(자로)의 질문, 어찌해야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

문탁
2021-01-31 10:15
153

1. 13편 <자로>의 주인공은 자로가 아니다.

 

 

앞에서도 이야기가 되었듯이 후(後)논어의 대부분은 공자왈(孔子曰)로 시작하지 않는다. 11편 <선진(先進)>에서는 공자의 제자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 안연(顔淵)이야기가 제일 많다. 12편은 아예 편명이 <안연>이다. 안연이 인(仁)을 묻자(顔淵問仁) “인=극기복례”, 라는 그 유명한 공자의 대답이 나오는 문장이 12편의 첫 문장이기 때문이다.

 

논어 13편의 편명은 <자로>이다. 맞다, 공자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자로, 논어 전편(全篇)에 걸쳐 공자와 ‘티키타카’를 벌리는 바로 그 자로, 그만큼 공자와 허물없는 관계였을 거라고 짐작되는, 공자의 친구 같은 제자 자로가 13편의 편명이다. 그럼 자로가 13편의 주인공이냐고? 그건 아니다. 하지만 13편 첫 문장에 13편의 주제가 있기는 하다. 일단 첫 문장을 보자.

 

子路問. 子曰, “先之勞之.” 請益. 曰, “無倦.”

자로가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길, “솔선수범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자로가 더 묻는다. “아니 그게 다입니까? 좀 더 말씀해주시지요”, 그러자 공자가 야멸차게 대답한다. “게으름 피지 마!!” (주관적으로 심하게 의역했다..ㅋ...)

 

“자로문정”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편명이 자로가 되긴 했지만 실제 13편의 주인공 혹은 주제는 자로가 아니라 “문정(問政: 정치를 묻다)”이다. 즉 ‘정치’가 13편의 주제이다.

 

 

 

 

 

물론 다른 주제처럼 ‘정치’와 관련된 내용도 논어 1편부터 20편 전체에 걸쳐 등장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문장(소위 ‘문정(問政)')은 <논어> 전체를 통해 9번이 나오는데, 12편(안연편)에서 5번, 13편(자로편)에서 4번이다.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고 (12-7),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고 (12-11), 자장이 정치에 대해 묻고 (12-14),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묻고 (12-17), 자로가 정치에 대해 묻고 (13-1), 중궁이 정치에 대해 묻고 (13-2), 초나라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묻고 (13-16), 자하가 정치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인(仁)에 대한 질문에도 그러했듯이 정치(政)에 대한 질문에도 공자의 대답은 case by case이다!

 

재밌는 것은 제자들, 그러니까 제후/대부들에게 발탁되어 출사(出仕)하려는/하게 된 제자들이 '정치'에 관해 물을 때는 공자의 대답이 구체적이고 실무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제후/대부들이 정치를 물을 때 공자의 대답은 훨씬 원론적이고 명제적이다. 유명한 것은? 물론 후자이다. “정치(政)란 바르게 하는 것(正)”이라거나(“政者, 正也” -계강자의 질문에 대한 답) “정치란 결국 君君臣臣父父子子”라거나(제경공의 질문에 대한 답) 하는 말! 공자 자신의 정치적 비전은? 바로....“정명(正名)”이다.(13-3), 즉 이름을 바로잡는 것!! 이어 자로와 공자 사이의 티각태각이 또 이어진다. (자로가 공자에게...이런 원론적이고 지당하신 말씀을 하다니....쌤....그러면 아무도 듣지 않아요... 공자가 자로에게....아...넌 아직도 기본기를 못 익혔어....어쩜 좋니...블라블라....) 자세한 건 올해 이문서당에서 확인하시도록!!

 

 

 

2. 어찌해야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

 

 

늘 말하는 것이지만 내가 <논어>나 <맹자>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출현, 그 자체이다. 그들은 천자를 중심으로 천승지국(千乘之國)-백승지가(百乘之家)로 이어지는 "아름다운"(by 공자) 봉건 질서의 말단에서 자기 가문이 부여받은 기술적인 행정업무를 평생에 걸쳐 묵묵히 수행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춘추전국시대) 그들은 지역과 신분의 영토성에서 벗어나서 천하를 주유하면서 자신들만의 삶의 양식을 창안하고 있다.

 

 

 

 

 

사람들은 궁금하다. 일정한 생업도 일정한 직업도 없는 이 ‘듣보잡’ 백수들은 도대체 누구이지? 그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아마도 그들의 대표선수인 ‘공구’라는 인물이 제일 궁금했을 것이다. 초나라 정치가 섭공이 묻는다. 네 스승인 공구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야? (7-18) 그런데 질문을 받은 자로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자 공자가 또 자로를 혼낸다. (불쌍한 자로...ㅠㅠ) 넌 왜 내가 “발분망식 낙이망우 부지로지장지운이”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니? 한마디로 나는(우리는) 전력을 다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잖아?!!

 

하지만 우리는 자로를 이해해야 한다. 주자는 이 문장을 놓고 깜량도 안 되는 섭공이 맞먹듯이 공자의 인물됨에 대해서 묻자 자로가 어이가 없어서 대꾸조차 안 한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탈영토화와 탈코드화의 새로운 선분 위에서 그들 자신도 자신들이 어떤 길(道)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말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13편 <자로> 뒷부분에는 그것과 관련된 중요한 두 문장이 나온다. 공자의 대표적인 두 제자 자공과 자로의 질문.

 

 

子貢問曰, “何如斯可謂之士矣?” 子曰, “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曰, “敢問其次.” 曰, “宗族稱孝焉, 鄕黨稱弟焉.” 曰, “敢問其次.” 曰, “言必信, 行必果, 硜硜然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曰, “今之從政者何如?” 子曰, “噫! 斗筲之人, 何足算也?” (13-20)

자공이 물었다. “어찌해야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워하는 것이 있어야 하고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블라블라...

 

 

子路問曰, “何如斯可謂之士矣?” 子曰, “切切偲偲, 怡怡如也, 可謂士矣. 朋友切切偲偲, 兄弟怡怡.” (13-28)

자로가 물었다. “어찌해야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간곡히 충고하고 상세히 (선을) 권하고 (형제들 사이에서는) 화목해야 선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중요한 것은 공자의 대답이 아니다. 공자가 말한 것이 또 정답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미친 세상에서 1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면서 어떤 삶을 걸어가고자 하는 존재인가?라고 말이다.

 

그들처럼 우리도 지금 이 미친 세상에서 2 삶의 길을 묻고 있는 자들 아닐까? 하여 자꾸 수천년의 이 케케묵은 글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논어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어찌해야 선비라 할 수 있을까요?"라는 그들의 이 절박한 물음을 지금 나의 현장에서의 그만큼의 절박한 새로운 질문으로 바꾸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1년 이문서당에서 만납시다!

 

 

 

 

주1:

“지금 세상에서는 처형된 자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칼을 쓰고 차꼬를 찬 자가 비좁아 서로 밀치며 형벌로 죽은 자가 서로 바라보고 있다.” (『장자』, 「제유」)

 

“그들은 배가 갈리고 창자가 파헤쳐지고, 목이 잘리고, 얼굴이 뭉개지고,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고, 몸은 풀밭에 흩어지고, 머리통은 땅에 나둥그러진 채, 서로 국경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부모, 자식, 늙은이, 젊은이들의 손과 목을 묶어 줄줄이 연결한 무리의 포로들이 길 위에 끊일 날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홀로 슬퍼할 뿐, 제사를 지내 줄 유족마저 없습니다. 백성들은 삶을 영위할 수가 없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여기저기 떠돌다가 노예나 첩이 된 사람이 천하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기열전』, 「춘신군열전」, 까치, 259쪽)

 

주2 : 

경향신문 2019년 11월21일 1면.

2018년 1월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중대재해 중 주요 5대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이름으로 채워졌다.

댓글 1
  • 2021-02-01 20:22

    언젠가 문탁축제에서
    '데모스, 너의 정치를 발명하라!'는 모토를 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고김종철 선생님, 홍세화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란 무엇인가를 여쭈었지요.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지금 우리에게 다시, 나의 정치, 우리의 정치란 무엇일까요?
    봄이 와서 후논어의 자로편을 읽을 벗들의 후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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