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親복습단> 논어 글쓰기 4회 - 태초에 바탕이 있었다

영감
2020-09-16 06:55
31

논어 팔일 편의 8장에서 공자는 제자 자하와 더불어 향기로운 문답을 이어갑니다. 시를 읊다가 그림을 그리고 예를 논하더니, 자하를 무척이나 대견해 하며 다시 시를 이야기해보자고 하네요. 이 문답이 주는 메시지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인데요 그림을 그릴 때는 좋은 바탕素을 먼저 마련하고 나서 색칠繪을 하라는 가르침이지요. 옹야 16편에서 공자가 문질빈빈文質彬彬, 즉 질(바탕)이 지나치면 촌스럽고 문(꾸밈)이 지나치면 사치스러우니 균형이 있어야 군자라고 했지만, 양씨楊氏는 그 주석에서 ‘문文이 이겨 질質을 없애는 데 이른다면 그 근본根本이 없어지는 것이니, 비록 문文이 있는들 장차 어디에다 베풀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촌스러운 편이나은 것이다.’ 하며 바탕에 방점을 찍읍니다. 이와 비슷한 구절이 논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학이편에 나오는 '군자는 근본에 힘쓰라'라는 말이 그 하나인데, 대개 이렇게 자주 반복되는 주제는 역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더군요.

 

지금 우리는 회繪, 즉 꾸밈이 주도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소素를 다지도록 세상이 놔두지를 않지요. 집단적인 조급증의 사회가 어떻게든 남보다 먼저 성과를 내고 보자는 방어기제를 자극합니다. 보디빌더는 정직하게 땀을 흘려 몸을 단련하는 대신 스테로이드 약물을 주사해서 속성으로 근육을 만들어 냅니다. 의대생들은 성형외과 전공으로 몰립니다. 한편 흉부외과 의사가 부족해서,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어간다고 합니다. 미용이 생명에 우선하는 걸까요. 꾸밈에 치우치고, 그러다 보니 앞뒤가 뒤바뀌는 본말本末의 전도가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목격됩니다.

 

근본의 가치를 절하하는 말초적 가치관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세상 돌아가는 알고리즘은 그대로입니다. 순리는 안 변합니다. 수묵화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회화는 붓질을 절제하지만, 바탕이 다시 채색의 일부로 살아나 비움의 미를 강조합니다. 근본을 중시하고 겉치레를 천시하는 소박한 정서가 바로 우리 문화의 원형입니다. * '치장 차리려다 신주 개 물려보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원형을 찾읍시다.

 

*사당 겉치레만 하며 돌아다니다가 사당에 두는 신주를 개한테 물려 보냈다는 뜻으로, 겉치레만 지나치게 하다가 그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림을 이르는 말.

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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