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삼아 걸었다-06

도라지
2022-05-1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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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삼아 걸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으러 나가기 싫었다. 전에 찍은 사진을 사용하고, 언젠가 걸으며 했었을지 모를 생각을 일지에 적으면 안될까? 발칙한 생각도 했다. 걷기 싫었다기보다 밖에 나가기 싫었다.

 

녀석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어제 아들 1이 조기 전역했다. 입고 온 옷을 벗고 가방에 잔뜩 넣어온 짐을 푸는데 이십분 걸렸을까? 떠나있던 시간이 한참 오래 전 같은, 익숙한 시간이 되는데 딱 이십분 걸렸다. 두 컵의 쌀을 씻다가 세 컵의 쌀을 씻는 날들이 돌아왔다.

 

"엄마 낮술 먹자!"라는 녀석의 말을 과감히 뿌리치고 걸었다.
대신 걷고 들어가 술 마실 생각에 겁나 빨리 걸었다.

녀석이 오면 오는 대로, 남은 아들 하나가 또 가면 가는 대로.

녀석들의 청춘이 마음껏 피어나고 쏟아지길.  기도하며 걸었다.

 

 

녀석이 말했어요. 요즘 군인들은 전역하고 군기 빠지는데 이틀 걸린다고.
글쎄요... 이틀은 남의 집 아들 이야기. 군복 입은채로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사서 하고 저희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어요.

군기는 오는 길에 내다버리고.

 

전 이제 공부방 더 자주 가야해요.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딱 그만큼 억수로 많이.

 

 

탄천은 이제 아카시아에서 때죽으로 넘어가네요. 향기로운 꽃비 맞으러 어서 나가보세요!

 

 

 

댓글 7
  • 2022-05-16 18:52

    글도 어찌 이리 맛나게 쓰시는지...

    간다고 찔끔거리더니 벌써 왔네.ㅋ

    벌써 봄이 오고, 벌써 아키시아가 지고,

    나도 벌써 일삼아 걷기 쓸 차례가 되었군. 
    아니 벌써.

  • 2022-05-17 00:54

    꽃보고 군침을 흘리네요. 왜 그럴까?? 지난 주 같이 걸을 때 아카시아 튀김 얘길 햐서인가요. ㅎㅎ

  • 2022-05-17 09:02

    "전 이제 공부방 더 자주 가야해요.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딱 그만큼 억수로 많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주 나오셔~~~~~

  • 2022-05-17 11:5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케 웃기냐~~~

    웃으면 안되는 거지... (입가리고 웃음)

  • 2022-05-17 15:06

    일산의 공원길에도 때죽나무꽃, 산딸나무꽃,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도라지님, 공부방에서 더 자주 만납시다.ㅎㅎ

  • 2022-05-17 21:32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저는 도라지샘이 참 부럽습니다. ㅎㅎ

    암튼 앞으로 파지에서도 자주 뵐 수 있기를요~^^

  • 2022-05-18 09:55

    돌아온 아들1과 낮술!!

    모자사이 애틋해보이네요.

    공부방에 자주오면 도라지 얼굴 많이 볼 수 있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