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릴18]'오늘 뭐 먹지?'

자작나무
2020-05-05 21:02
927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내 일상에서 '그나마' 커다란 고민이라면 바로 '오늘 뭐 먹지?'이다.

지금도 이 고민은 진행중이기에 과거형이 아니다. 오늘도 그렇다. 문탁에서 집으로 귀가할 때, 마트에 들러야 하는지 생각한다. 결정 내리기 전에 머리속에는 냉장고 속이 휙하고 지나간다. 아무것도 없으면 마트로 가고, '냉장고 파먹기'라고 가능하면 그냥 집으로 간다. 오늘은 어제 우연샘이 기부(?)한 자가격리용 육개장을 먹기로 했기에 집으로 곧장 왔다. 이렇게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이 나의 저녁이 있는 삶의 실상이다. 그런데 코로나처럼 작금의 내 모든 고민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은, 슬슬 나의 일상을 조금은 좀먹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저녁은 꼭 집에서 먹기로 했다. 귀찮아도 한끼는 큰 피로감을 주지 않았으니까. 기꺼이 '즐거이' 저녁은 꼭 집에서 해서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의반 타의반 식으로 온전히 끼니를 다 챙기려니, 이게 그렇게 즐겁진 않다ㅠ 게다가 '오늘 뭐 먹지?' 하는 고민은 나에게 더이상 메뉴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되어서 더 그렇다. 내게는 생활비 문제이기 때문이다. 돈이 풍족하다면 먹고 싶은 거 다 사먹고 다 해먹으면 오늘 뭐 먹을지 고민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돈에서 나아가 돈을 관한 나의 자세 문제로 확대되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물건 가격표 앞에서 때로는 쿠키 박스를 접다가 방황하는 나를 발견한다. 스스로가 참 찌질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머니만큼 마음도 빈곤해지는 것 같아서, 요즘 마음이 참 그렇다.  

재난기본소득을 준다길래(나는 아직 받지 못했다. 온라인 신청이 여의치 않아 오프라인 신청을 기다린다), 어디에 쓸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도 오마카세 요리집이라도 갈까... 그러면 허한 마음이 좀 찰까, 이런 생각도 했지만, 그런다고 채워질 마음이면 돈 벌러 길을 나서야 한다. 그러니 패스. 하루하루 식비로 쓸까... 그럴려니 왠지 찌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이것도 패스. 맨날 먹는 걸로만 고민하는 나, 흡사 먹는, 아니 먹기만 하는 인간인가 싶다. 맹자는 '먹을 것과 예의 중, 어느 것이 중하냐?'고 했고, 공자는 '너는 양이 아깝냐, 나는 예가 아깝다'라고 했다. 공자와 맹자의 정답인 '예', 나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재난기본소득을 받기 전까지 잘 생각해보고, 나는 그것을 '나의 예'(를 실천하는 데)에 써야 겠다.  

 

 

 

 

댓글 7
  • 2020-05-06 14:13

    조금 전 파지사유
    나 : "자작아, 글 잘 읽었어. 짠 내 가득 리얼라이프더라.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자작 : "아, 샘, 돈이 없는 건 아네요."
    나 : "근데 뭐 그렇게 구질구질 궁상궁상이냐?"
    자작 :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성격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양을 아까와하지 않고 예를 아까와하는 자작에게 홧팅을!!!

  • 2020-05-06 17:37

    슬픈 소설 같아요
    고골의 소설

    자작과 함께 밥 한번 먹어야지 결심하게하는 글이네요

    아까 뚜복이가
    시간이 갈수록 진솔한 릴레이 글이 올라와서 재밌다고 하시네요 ㅋㅋ

  • 2020-05-06 18:16

    자작샘~ 역시 예를 고민하고 계셨던 거네요 ^^
    이제 초딩입맛이라고 놀리지 않을게요~~~~;;;

  • 2020-05-06 23:12

    나랑 비슷한 고민.....
    남편도 육아휴직중, 입벌리고 있는 아기새는 세마리, 코로나로 삼시세끼 밥챙겨야지... “뭐먹지?”고민이 전부인 일상에 짜증도 났다가... 이제는 좀 내려놓았다가.. 재난 소득 받고 처음엔 마음의 여유가 점 생겼다고 기뻐했다는......
    튼 보고싶네요 자작샘 ^^

  • 2020-05-07 02:25

    난쏘릴 재밌어요~><
    저는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요리의 즐거움을 얻게 되었는데요.. (할 수 있는 메뉴가 제한적이라 고군분투중) 단 둘이 먹는거라 즐거운건가 하는 생각이 글을 읽으며 들었네요ㅎㅎ 삼시세끼를 매일 챙겨야한다면 어.. 어... 많이 힘들듯..

  • 2020-05-08 21:19

    저도 드뎌 재난소득 받았어요. 전 아직 예를 모르는 관계로 자작샘이랑 맛난거 먹고 싶으네요!
    자작샘 화이팅!! ^^

  • 2020-05-09 08:46

    자작샘~~~
    데이트신청하려면 줄부터서야 하나요?
    히말샘이랑 약속잡으면 저도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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