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님의 청소이야기

요요
2021-12-1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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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세미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문탁 2층 청소를 합니다.

오늘은 청소당번인 미르님께 특별히 남자 화장실 청소를 부탁드렸습니다.

미르님은 오늘 아침 오랜 시간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우리가 함께 공부한 신수대사의 시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중국 선종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분이 6조 혜능대사인데요.

6조 혜능대사는 5조 홍인대사 문하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신수대사 대신에 5조의 의발을 전수받았습니다.

두사람의 시 배틀은 선종사에서 정말 유명한 이야기랍니다.

 

신수대사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몸은 보리수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맑은 거울대이다(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時時懃拂拭)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莫使有塵埃).

 

신수대사의 시는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만

혜능대사의 시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발상의 전환, 파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은 보리수가 아니요(身非菩提樹) 마음거울 또한 대가 아니다(心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本來無一物) 어디에 먼지가 끼랴(何處有塵埃).

 

우리나라 선불교 전통에서는 혜능대사의 "본래무일물"을 최고로 칩니다.

먼지 앉을 곳도 없는 본래청정을 깨닫는 것이 선사들의 깨달음의 요체라고 말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미르님은 신수대사의 시를 생각하며 그동안 화장실 구석구석 쌓인 먼지와 때를 떨어냈습니다.

그 결과, 반짝 반짝 변신한 남자 화장실의 새로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남자 화장실의 환해진 모습을 보고 미르님이 등을 바꿔 단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 받았습니다.ㅋㅋ

 

 

본래무일물의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매일매일 먼지를 떨어내는 것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상의 수행이 분명합니다.^^

미르님, 감사합니다!!

댓글 7
  • 2021-12-13 17:32

    1층 남자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면 시가 아니라 욕이 저절로 떠오를텐데,

    미르님 뵌 적은 없으나 참 대단한 내공을 지니신듯 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2021-12-13 23:14

    우와, 오늘 일본어시간에 홍인, 혜능, 신수이야기가 제 번역할 부분에서 나왔어요^^ 

    저는 혜능이 말하는 깨달음은 너무 먼 이야기 같고

    신수대사의 시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먼저인 것 같은데 그것 또한 쉽지가 않더라구요. 

    점심 때 뵈니 말씀도 재미있게 하시던데,

    저도 미르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 2021-12-14 10:38

    이 반짝반짝을 유지해야할텐데 말입니다 ㅎ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時時懃拂拭)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莫使有塵埃).

    이제 또 어느분이 신수대사의 시를 읊어주시려나요 ㅎㅎㅎ

    미르님 감사합니다~~!

  • 2021-12-14 11:51

    도는 닦는 맛이죠! ㅎㅎ
    저는 어제 미르쌤께 청소기를 넘기려고 했는데, 
    요요쌤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반짝반짝 화장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미르쌤은 

    벽돌도 닦아 거울로 만드실듯! ^^
    추운날 이른 아침에 감사했습니다~

  • 2021-12-14 13:07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어 글을 씁니다. ㅎㅎ

     

    제가 1년인가 2년만에 다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남자 화장실을 보고 '2년간 손을 대지 않은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기에 어쩔수 없이 들러야 하지만 조금도 머무르고 싶지 않은 ㅋㅋ

     

    견디다 못해 화장실에 대해 요요쌤에게 문제를 제기했을때 

    요요쌤이 저의 청소 당번때 문탁 청소 대신에 화장실 청소 해주시는건 어떤가 하셔서...

    저는 저의 입을 원망했습니다.

    '입이 방정이다. 몇번 안쓰는데 조용히 있을껄 괜히 문제 제기해서..' ㅋㅋㅋㅋ

     

    하지만 존경하는 지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니 일 내 일이 따로 있지 않다. 니 눈앞에 보이는게 니 일이다.'

    그 뒤로..여러가지 번뇌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저것은 몇년간 묵은 때여서 잠깐 청소한다고 될일이 아니다.

    어떻게 처리할까? 청소업체를 내돈 주고서라도 부를까? 회사 하루 연차를 내고 청소를 할까? 

     

    그런데 어느날엔가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악취가 진동하던 화장실의 몇년 묵은 번뇌가 벗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한건 그냥 몇주간의 때를 닦았을뿐..

    저 이전에 몇년 묵은 번뇌를 해결해주신 깨달은 이는 누구일까요?

     

    그 분께 감사드립니다.

    • 2021-12-15 17:48

      문탁 : (깜놀하여) 요즘 남자 화장실 청소 어찌 되가누?

      우현: 제가 1-2주에 한번씩 불규칙적으로 하고 있어요...ㅎ 2주 전에 한번 크게 청소 했구요

       

      남자 화장실... 저는 청소하다 병원 실려갈 뻔 했고,  누군가는 청소하다 토할 뻔 했고, 칸트 강의하러 온 이수영 선생한테 심한 질책을 당했었고, 이제 미르님한테로.... ㅠㅠㅠ...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 2021-12-14 13:58

    가보지 못했지만 남자화장실에는 비밀이 무궁무진하네요......

    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