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한시기행 둘째 날-문수원, 두보초당, 무후사

기린
2019-11-0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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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정은 바꾸라고 있는 거?
청두에 온 첫날 밤, 숙소에서 다음날의 일정을 체크중
-청량궁갔다가 두보초당 무후사 이렇게 
-청두에 불교사원 문수원이 있대, 청량궁 팀 문수원팀 나누면 어떨까?
-그럼 두보초당표 예매해 놓은 것 시간 맞출 수 있을까?
-청량궁팀 끝날 때까지 후다닥 보고 두보초당으로 갈게
-지리도 잘 모르는데 가능할까? 그냥 함께 청량궁으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쩌구
-.........(그 사이 문수원 검색하던 누군가)
-문수원 멋있는데? (갑자기 분위기 반전)
-그럼 문수원으로 함께 갔다가 두보초당으로 갈까?

그래서.... 첫 일정으로 잡은 청량궁(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은 패스하고
전원 문수원으로 출발~ 역쉬 일정은 바꾸는 재미가 여행의 묘미지
(물론, 우리 여행단에는 중국어 능통자가 셋이나 있기에 가능한 묘미이지만^^)


문수원은 중국 불교선종 4대 수행장소 중 하나로 청나라 강희제 때 재건된 절이라고 한다.
월요일이라 한산하겠지... 는 오산이었다. 
아침 일찍 움직여서 문수원에 도착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줄줄이 문수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꼬리를 물고 들어간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아침 예불을 드리는 데 이르렀다.
아... 예불 드리러 사람들이 그렇게 모였나?
예불 드리는 스님들을 에워싸고 연신 반절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예불 후반부에 들어가서 예불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는 스님들을 뒤로 하고 문수원을 둘러보았다.
문수원 절을 에워싼 정원이 근사했는데 대나무(판다가 먹는다는?)도 많이 심겨져 있었다.

2. 두보초당은 어디에?

두보는 이백과 함께 중국의 시성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한문강독에서 당시 300수를 읽을 때도 두보 시가 있었고, 우샘의 한시 강좌에서도 두보와 이백의 시를
읽은 터라 익숙한 편이었다.
청두에 있는 두보초당은 두보가 안록산의 난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피난와서 지낸 곳이라 여겨지는 곳에
여러 유적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두보는 관직을 구하기 위해 여러방면으로 노력을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청두 피난 시절이 그나마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냈던 시절이어서 그런가 초당 안에 가족들과 보내는 모습을
동상으로 그려 놓은 곳도 있었다. 두보 시에 청두 시절을 읊은 내용을 바탕으로 두보가 초당을 지었음직한
곳을 유추할 뿐 정확하게 어디가 초당이 있었던 곳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여기가 초당인가 저기가 초당인가 한참 헤맸다. 
초당 전체를 정원처럼 꾸며서 다양한 나무와 꽃들을 보면서 거닐 수 있었다.
두보초당에서 ' 大雅堂'에 이르렀을 때 명칭을 유래를 보고 모두들 반가워했다.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는 <시경>의 대아편의 대아를 따다 붙인 명칭이라고 했다.
대아당 안에는 전국 시대 굴원에서 부터 남송시대 신기질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12명의 
시인의 동상을 모아 놓았다. 각 시인 동상의  개성을 바탕으로 그들의 시풍을 짐작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두보의 동상 앞에서 기념 컷을, 두보의 아내 동상에서 웃고 있는 토용, 그리고 두보의 아이들
두보가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읊은 시의 장면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3. 출사표를 읽다 -무후사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으로 무후사로 갔다. 무후사는 유비의 능묘이지만 동시에 그의 신하인 제갈량의 사당(무후사)이기도 하며 유비 외에도 관우, 장비 등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촉한의 신하들 역시 같이 기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촉한의 군주였던 유비와 신하였던 제갈량이 함께 모셔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유비의 무덤인 혜릉과 제갈량의  상이 모셔져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유비의 상은 혼자 덩그러니 있는데, 제갈량은 양쪽에 아들과 손자가 세워져 있는 점이었다. 유비의 아들로 제위를 물려받은 유선은 완전히 잊혀진 인물인가 보다. 제갈량의 전출사표와 후출사표가 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글씨는 송나라의 충신 악비가 쓴 글씨라고 한다.


한문강독에서는 이번 여행을 떠나기전 출사표를 읽고 갔던 터라 감회가 새롭다고들 했다.(나는 못 읽었다)
자료집에 나온 출사표를 읽으니 중국 드라마 '사마의'에서 제갈량이 유선 앞에서 출사표를 읽던 장면과 겹쳤다.
출사표에서는 유선에게 전하는 당부로 조정에서 어떤 신하들과 함께 나라 일을 꾸려야 하는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밝히며 정사에 힘쓰기를 당부한다.
"(....) 신은 본래 포의로서 몸소 남양 땅에서 농사를 지어 난세에 구차하게 생명을 보존하려 하였고(..) 선제(유비)께서
신을 비루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어 왕람하시어 초려 가운데로 세 번이나 신을 찾아 주시고(...)신은 이 때문에
감격하여 마침에 선제께 국사를 분주할 것을 허락했습니다. (....) 그리하여 저의 노둔한 재주를 다하여, 간흉을 제거하고 
한실을 부흥시켜 옛 도읍으로 돌아가는 것이 신이 선제에게 보답하고 폐하에게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출사표 중에서)
구구절절 충신의 마음을 담은 제갈량의 글은 읽는 이를 저절로 눈물 짓게 한다는데... 
당시를 읽을 때 제갈량을 흠모한다는 구절들을 읽으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유비를 모신 한소열묘가 있는데도 
무후사로 불리는 것을 보면 유비보다 더 추앙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보도 무후사에 들러 제갈량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군주와 신하로 만나서 군주의 후사까지 맡아서 군주보다 더 오래 다스렸던 인물 제갈량.
유약한 군주(유비의 아들 유선)을 조정에 남겨 두고 출정하면서 어떻게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한왕조를 회복하는데 전념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을 출사표에 담았다.
<논어>에서 증자가 말했던 "나이 어린 임금을 맡길 수 있고, 나라의 앞날을 부탁할 만 하고
죽고 사는 순간에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는" 신하였다.

4. 읽는 재미를 너머 보는 즐거움까지
매주 한문강독에서 시를 읽으면서 상상했던 것들을 실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제갈량을 천하의 충신으로 흠모하여 감정 이입하던 싯구들이 그저 미사여구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원문으로 읽을 때는 아무래도 해석에 급급하게 되는데
자연 풍광과 우람한 동상과 같이 공부했던 동학들과 함께 어우러지니 배우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읽는 재미를 너머 보는 즐거움까지 풍성한 여정이었다.

추신: 이번 한시기행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2019년 김장에 보태라고 남은 여행비에서 40만원을 뚝 떼어 선물했다.
여행내내 만찬을 즐길 수 있었던 것도 모자라~ 밥상에서도 맛있는 김장 김치로 이번 여행의 맛을 이어가겠다는
선물이란다. 은방울 매니저로서 고마움을 전합니다^^ 

댓글 4
  • 2019-11-05 03:09

    근데 저기 있는 제갈량 사진은 명월협 사진인데 여기서 쓰면 안되죠
    비예의적이여요ㅋㅋㅋㅋ
    문수원 두보초당 무후사 금리거리까지 좋았습니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구구절절 마음을 저리는 군요. 유비와 유선의 신하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이예요.
    마음깊이 쓴.
    우리나라에 초당두부가 있어선지 나중에는 자꾸만 두부초당으로 발음이 나와서리... 두보샘 죄송함다ㅜㅜ
    아무래도 두부보다는 두보가 더 익숙해질때까지 두보를 읽어야 할까나...^^

  • 2019-11-05 10:41

    청량궁 이니고 청양궁 이에요 ㅋㅋ
    그리고 중국어 능통자가 5명 있었어요. 중국어반 봄날님과 코스모스의 능력을 못보신듯 ㅋㅋ

    갑자기 가게된 문수원도 참 좋았어요. 거기서 무료로 나눠주던 따뜻한 차도 좋았구요 ㅋㅋ

    그리고 이리저리 하니 김장값으로 50 만원 보내게 되었습니다. 많지만 꼭 받아주세요 ㅋㅋ

  • 2019-11-05 12:33

    제가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말은 팅부똥 뿐~ㅠㅠ
    담번 여행때는 중국어 능 통 자가 될수 있도록 분발해야겠네용^^

  • 2019-11-05 14:48

    두보의 아내는 바둑판을 그리느라 붓을 들고 있고
    아이들은 앉아서 낚시바늘을 만들고 있더군요.
    성도시절 평화로웠던 두보가 쓴 시의 한 장면을 만났을 때도 좋았지만
    춘수(春水)니, 화경(花徑)이니, 춘야희우(春夜喜雨)니 하는 두보 시의 구절들을
    두보초당 여기저기에서 발견하는 즐거움도 컸답니다.^^
    이날 방문한 문수원, 두보초당, 무후사 모두
    정원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역시 놀라운 발견이 아니었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