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한시기행 마지막 날 '검각'

토용
2019-11-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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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기행의 마지막 날이자 드디어 검각(劍閣 현재 검문관劍門關)에 가는 날이다. 검각은 나에게 있어서 이번 여행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1년 반 전에 한시기행을 계획하면서 꼭 가야할 곳 1순위로 꼽은 곳이 바로 여기 검각이었다. 이백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인들이 이곳을 지나며 시를 읊었고, 제갈량이 촉의 최후 방어선으로 굳건히 지키던 관문이었다.

검문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찾아보세요~~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여행 내내 날씨의 축복을 받았다 생각했는데, 하필 가장 날씨가 좋아야할 날에 비라니.... 다행히 우리가 검각을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무렵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그 뿐인가. 비온 뒤의 산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 무엇 할까. 신나게 신나게 발걸음을 떼었다.

조금 걸어들어가자 이백의 시 ‘촉도난蜀道難(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을 새겨 놓은 커다란 돌이 있었다.

        

이백은 ‘촉도난’의 첫구절을 이렇게   읊었다. ‘噫噓嚱, 危乎高哉! 蜀道之難難於上靑天(아! 와! 아! 높고도 높구나! 촉으로 가는 길은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렵구나)’ 희, 허, 희는 각각 감탄사이다. 검각을 지나 촉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했으면 감탄사 한 개로도 부족하여 세 개를 연달아 썼을까.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땐 이백의 과장이 심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검각을 보고 잔도를 걸으면서 나 또한 그저 감탄사 밖에 아무런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백은 멋진 시라도 남겼지....

더 가다보니 좌우로 두보와 이백의 조각상이 서 있고, 그 사이를 이 곳을 지나며 읊은 유명한 학자, 시인들의 시구절이 적힌 돌들이 죽 있었다.

      

‘촉도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地崩山摧壯士死 然後天梯石棧相勾連(땅이 꺼지고 산이 무너지며 장사들이 죽고 나서야 하늘 사다리와 돌길 잔도가 이어졌다네)’ 이 장사들이 바로 오정역사五丁力士이다. 진秦 혜왕이 고촉古蜀을 병합하기 위해 술수를 썼는데, 고촉왕이 이 오정역사에게 길을 닦게 해서 성도에서 검각을 지나 서안으로 이어지는 금우잔도金牛棧道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검각을 향해 가면서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들을 보니 ‘촉도난’의 구절구절들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주변 풍광에 감탄하며 오르다보니 드디어 검문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 옆 깎아지른 절벽이 우뚝 솟아있고 그 사이에 그리 크지 않은 관문이 우뚝 서 있다. 이백은 이 곳을 ‘一夫當關 萬夫莫開(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명이 와도 열 수가 없다)’라고 했는데, 과연 천혜의 요새였다. 여행 중에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별로였지만 검문관을 본 순간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아났는지 아픈 것도, 이전까지 성도에서 본 것들도 모두 싹 잊혀졌다.

검문관을 나와 하늘 사다리라 불리는 천제잔도를 오르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보면서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바로 그 곳이었다. 헉헉거리며 오르고 오르다보니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가 생각났다. 유비의 유훈을 받들기 위해 북벌에 앞서 충신의 절개와 눈물로 쓴 출사표를 올리고 이곳 검각을 지나 명월협 잔도를 거쳐 갔구나. 이곳을 직접 보니 출사표의 구절들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결코 쉽게 오갈 수 없는 촉의 마지막 방어선, 이곳을 지나며 제갈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쟁하러 가는 이 길이 전쟁터보다 더 힘들었을 병사들은 어땠을까. 가다 죽으나 가서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마음 같아선 천제잔도를 지나 산꼭대기까지 걸어서 가보고 싶었지만, 비도 조금씩 다시 내리기 시작하고 시간도 지체되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 눈에 띈 글자 ‘조도鳥道와 원노도猿猱道.’ 이백이 ‘촉도난’에서 ‘높이 나는 황학도 이곳을 지나가지는 못하고 원숭이들 지나가려 해도 부여잡고 올라갈 것을 걱정한다’는 그 길인 것 같았다. 어떻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보고 가야지.

정말 조도라는 명칭에 걸맞게 쇠사슬 난간을 잡고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험한 곳이었다. 저곳을 올라 꼭대기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시간이..... 더 있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렸다.

4시간여를 달려 무사히 성도에 도착했다. 여행 기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노라샘,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콩땅이랑 같이 못 왔다는 점이다. 콩땅도 여기 엄청 가보고 싶어했는데..... 다음번엔 꼭 같이 가요!

댓글 5
  • 2019-11-03 16:57

    아, 아, 아! 하늘 사다리인 천제도 새들이 겨우 지나갈만한 좁고 험한 길인 조도도 그 이름값을 하더군요.
    우뚝 앞을 가로막는 험한 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뚫어서 겨우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만든 길 위에 섰을 때
    이 길은 생명의 길인가, 죽음의 길인가.
    전쟁의 길인가, 평화의 길인가.
    화합의 길인가, 분열의 길인가. 그런 질문이 저절로 뭉글뭉글 피어올랐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그 길들은
    길을 만들고 길을 지나간 사람들의 욕망과 염원을 역사의 흔적으로 품은 채 그저 거기에 있었습니다.
    비록 오늘은 그 길이 우리와 같은 유람객들의 길이었습니다만^^

  • 2019-11-03 18:20

    동네 뒷산도 끝까지 올라가보지 못한 내게 검각을 한바퀴 돌고싶게 만들었어요. 본래부터 이백의 촉도난을 무척 좋아했던터라, 이번 청두기행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었어요^^

  • 2019-11-03 18:27

    아 사진으로는 그날의 비와 운무가 보이지 않네요.
    정말 높은산을 다녀왔네요.
    촉도난이라는 시를 다시 읽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네요. 같이 읽을사람?

  • 2019-11-04 19:54

    읽어야겠죠~~ 촉도난!!
    촉도난을 읽어야 이번 여행이 완성될듯..

    삼국지도 두보시도
    읽어야겠죠~~

    공부할것만 늘어가네요ㅠㅠ

  • 2019-11-05 02:51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런 지형에 비와 운무가 함께 했었다는 것도 멋 있는 일 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