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가족③] 그런 사랑 어디 없습니다

고은
2020-09-18 11:05
146

 

[청년과 가족③] 그런 사랑 어디 없습니다

- 신근영,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를 읽고

 

 

 

   줄기차게 연애했다. 20대 중에 연애를 안 하고 있었던 날을 손에 꼽을 정도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외쳤다. “아, 이런 사랑 어디 없다! 얘랑은 결혼할 거야.”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공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애인만큼은 나의 안락한 보금자리, 스윗홈이었다. 오랜만에 연애를 쉬고(?) 있는 요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연애가 스윗홈이기만 했던가?’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의 저자는 사람들이 가족을 양가적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가족은 편하고 안락한 장이지만 동시에 다른 관계들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이 유일한 내 편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다가도, 금세 등을 돌리곤 갑갑하고 지겹다고 불평하게 되는 것이다. 내겐 연애가 그렇게 양가적으로 느껴졌다. 어느 날엔 너무 따뜻해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날엔 답답해서 숨도 쉬기 어려웠다. 때문에 막상 헤어지고 나면 전자가 아쉬워 연애가 생각나고, 다시 연애를 시작하면 후자가 눈에 밟혀 지속하기 쉽지 않았다. 여러모로 나에게 연애는 가족의 연장선 위에 위치했다.

 

   저자는 『안티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가족 간의 사랑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적 가족의 또 다른 특징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소유적 경험이라는 거예요. 묘하죠. 가족 간의 사랑, 이것의 정체는 소유다. … 가족은 원래부터 우리가 상상하는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의 관계망이 아니라 이 소유적인 지층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거예요. (84-85)

 

   소유는 관계의 단절, 오직 하나의 관계만 빼고는 다른 관계는 모두 끊어지는 거예요. (87)

 

   분명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치고 박고 싸우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가족 간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소유적인 지층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므로 멋진 관계 맺는 행위는 가족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다른 관계를 차단하지 않으면서 안락한 요람이 되어주기만 하는 그런 가족 간의 사랑은 없다. 연애 역시 마찬가지이다. 연애는 가족의 연장선 위에 놓이기 쉽고, 가족간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소유적 경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때의 안락함과 구속의 불편함은 소유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쩌면 소유적인 관계로부터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사랑(욕망)이란 나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다른 관계들과 만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제약하는 것이라기보단 확장하는 것이다. 나의 내재된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라기보단 나와 다른 존재들과 함께 관계를 생성하는 것이다. 사랑의 충만감은 거기서부터 온다. 내가 관계를 생산하고 있다는, 그럼으로써 나 역시 존재한다는 것으로부터 존재의 충만함도 생성된다. 오히려 상대의 결핍을 채워줌으로써 서로를 옭아매는 소유적인 관계는 사랑의 역동을 제한한다.

 

   작년에 『안티오이디푸스』 강의를 들었지만, 내 연애를 가족문제와 연결시켜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왜 연애를 할 때 종종 스스로 외소해지는 느낌을 받았는지, 그럼에도 계속 연애를 하고 싶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유적인 관계는 중독성이 있다. 연애를 하지 않으면 일부분이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나의 잃어버린 일부분을 되찾아야 할 것은 느낌이 든다. 연애를 해도 그것이 결코 충족될 수 없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떻게 하면 이 중독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저자는 책의 뒤에 붙어 있는 질의응답 파트에서 우선 친구를 사귀라고 귀띔한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친구들과 관계맺을 때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지금 나에겐 친구들을 통해 풍성한 존재가 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댓글 2
  • 2020-09-19 01:30

    들뢰즈와 가타리에따르면 사랑을 통해 얻은 확장의 힘을 상대에게 또 주고 싶은
    티키타카가 사랑인가봅니다~
    소유하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는 것도 사랑이겠구요!
    그게 멋진 관계를 맺는 방법이겠군용

    갑자기 궁금하네요 가족을 이루신 분들은 소유한 가정이 있는 것인데
    모두가 단절을 느낄까요?

  • 2020-09-20 12:00

    가정을 소유 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단절이겠죠.
    가정을 이루었다라고 생각하면 좀 다르겠죠?

    사랑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죠. 그런 사랑은 불안합니다.
    각자 부족한 대로 그 자체로 각자 온전체가 됐을 때 튼튼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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