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11] 일상으로 내려온 플라톤

아렘
2020-05-17 00:43
104

아니 제목이 왜 이래 

  책 제목으로는 좀 후지다. '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 한 방에 눈길을 끌기는 애저녁에 틀려버렸고 기억하기는 수학공식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플라톤의 "국가"를 읽은 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제목이다. 어찌보면 이 책은 플라톤을 읽지 않은 이들보다는 소싯적에 플라톤 좀 읽었지 할 사람들에게 더 잘 다가갈 제목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많이 팔리긴 영 불리한 조건이다. 누가 플라톤을 읽겠는가. 그럼에도 그 한 줌도 안 될 사람들에게는 제목을 물끄러미 쳐다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대신 저자의 이름은 참으로 개성적이다. '박 연옥' 기억하기 참 좋다. 내가 가끔 밥을 얻어 먹어 그런가? 

 

플라톤으로 에세이를...

  에세이라 함은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소리다. 그런데 소재가 플라톤이다. 여기서부터 난관이 시작된다. '여러분 힘드시죠, 힘내세요' 라며 위안을 가장해 감성팔이를 하기도 틀렸고, 시류에 편승한 인문팔이 하기에도 영 시원찮은 소재다. 더군다나 논문투의 분석서도 아니니  인용과 각주로 페이지를 메울 수도 없다. 이걸 어쩐다....

 

걱정은 기우였지만 나는 어쩌누

  그럼에도 14편의 글들은 한 치의 어김없이 플라톤이다. 더군다나 매 글마다 작가의 개성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다. 플라톤이 영화와 음악과 트와이스와 BTS를 거쳐 하다못해 교통 사고에도 끼어든다. 작가는 애초에 난삽한 각주와 인용 뒤에 숨어서 영혼 없는 목소리를 낼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이는 깊이 읽지 않았다면 내딛기 어려운 길이고 앎과 일상을 같이 놓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용기다. 아울러 개성적인 그의 글 뒤에는 구체적인 그의 삶이 녹아 있다. 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이라는 먼 얘기들이 술 잔에서, 경제적 궁핍에서, 흔들리고 불안한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피어오른다.  개성적인데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에세이라 가볍게 들이댔다가 오래 머물렀다. 똥폼으로 플라톤을 읽은 내가 초라해진다.

 

그래서 다음은

  제도권에서 영혼없는 글들로 학자 권위를 유지하는 이들에게 볼 수 없는 개성이 있고, 친절한 요약과 날선 감정 추임새를 버무려 물들어 올때 노젓기 식으로 나오는 인문서에는 없는 깊이가 있다. 이는 아마 대중지성이 낼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 아닐까? 제도권도 아니고 눈치볼 학회도 권위도 없으니 가능한 자유가 아닐까? 그나저나 좀 팔리긴 해야 할텐데...

 

 

 

 

 

 

 

 

 

댓글 4
  • 2020-05-17 09:00

    아렘님이 걱정해주시니 그걸로 됐어요^^
    남의 책 읽고 뭐라뭐라 쓰기 어려운 일인데...꼼꼼이 읽어주시고
    글로 남겨주시고, 아렘님의 호의와 선의에 감사해요!
    호의와 선의로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선명한 생각이 든 일요일입니다.

  • 2020-05-17 11:26

    아렘샘!
    이런 서프라이즈라니!
    많이 감동했어요.^^

  • 2020-05-18 11:16

    내년에는 함께 플라톤 읽기 한번 해야겠네요. ^^;

  • 2020-05-18 11:43

    새털샘의 책 만큼이나 센스있는 글(후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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