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앤톡]수잔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새털
2020-03-16 23:30
292

오늘은 내가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월요일이다.

문탁에 오는 길에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바라만 봤다.

집에는 몇 장의 마스크가 있지만, 다섯 식구가 쓰기에 그렇게 넉넉한 분량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스크 없이 코로나사태를 지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소에 내가 자주 말하는 것처럼 '마스크' 한 장이 막아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

내가 여러 사람이 밀집된 실내에 집단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 덤덤히 지내려 한다.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갈 때나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날 때

가끔 따가운 눈총을 받지만, 그쯤은 그냥 지낼 만하다.

그런데 지난주 학교에 새로 나온 교재를 받으러 가야 했을 땐

결국 마스크를 쓰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마스크에 대한 내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학교 교직원이 내 얼굴을 알고 있고 그가 내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안좋은 인상을 주면 내게 불이익이 돌아오리라는 계산이 들어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마스크를 사러 줄을 선 사람들의 심리에도

나와 같이 고용이 엮여 있을 거라 이해에 이르렀다.

감염의 공포도 있지만, 실직에 대한, 혹은 평판에 대한 공포도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분당서울대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카프카의 소설처럼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서류에 이름과 연락처를 쓰고, 그간 대구경북이나 외국에 다녀온 이력은 없는지

모두 기록해야 했다. 열체크도 하고, 줄을 서서 이 모든 과정을 마치니

나에게 한장의 종이가 주어졌다. '출입허가증'을 나눠준 병원직원은

오늘 하루 사용해야 하는 것이니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 순간에도 종이 한 장에 나의 출입과 실존이 결정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출입증을 받기 전까지는 없었던 공포감이, 출입증을 받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코로나사태라는 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단순하지 않구나! 하는 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묘한 공포감을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잔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 <사진에 대하여> <타인의 고통>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이며 에세이스트이며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이걸 통틀어 지성인이라 명명할 수도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에서는 결핵, 암, 에이즈를 중심으로 질병을 그냥 질병으로 바라보기 힘들게 만드는

비유들과 그 의미부여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 

 

질병은 고통스럽다. 환자라는 용어에 이미 고통을 당하는 자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런데 환자는 질병뿐 아니라 질병에 부여된 부가적인 의미들 때문에도 고통을 받는다.

자기관리를 못했다든가, 의지가 부족하다든가, 자제력이 부족하다든가, 그에 따른 

인과응보로 처벌을 받았다는 '낙인'이 질병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가장 큰 고통은 스스로 자신의 질병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비하의 감정과 수치심에 있다.

손택은 질병의 또 다른 수난을 '은유'라는 수사법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은유로서의 질병>을 펼쳐보면 질병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세계명작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결핵에 걸린 열정적인 예술가나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그들의 짧은 생애과 그것이 가져오는 비애감이

<마의 산> <밤으로의 긴 여로> <춘희> <레미제라블> 등등 이름은 들어봤으나 읽어보지 못한,

혹은 예전에 읽어서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작품들을 예시로 설명되고 있다.

결핵은 뭔가 고귀하고 신성하며 비애감이 깃들어 있는 아우라를 풍긴다. 

반면에 '암'에는 이런 아우라가 전혀 없다. 암에는 냉혹하고 무자비하고 통제불능이라는

혹독한 이미지만이 그려진다. '암=죽음'이라는 강력한 도식이 다른 상상력이 싹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암에는 전쟁용어들이 많이 동원된다. '암과의 전쟁'을 비롯해서, 암세포를 막기 위해 화학전을 치루어야 한다,

종양이 온몸을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전초전을 치뤄야 한다,

혹은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외계의 침입과 같은

과대망상적인 비유들이 동원된다.

 

역으로 정치적 수사에서도 좌우를 막론하고 '암'의 비유가 대량 사용되고 있다.

나치가 유태인을 매독, 콜레라, 암으로 비유하며 제거의 대상으로 명시한 것을 비롯해서

볼세비키 논쟁에서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를 맑스주의의 암적 존재라고 표현했다. 

워터게이트에서 닉슨은 미국의 암적 존재로 표현되었고, 

손택은 자신도 미국이 베트남에서 자행하고 있는 전쟁에 절망한 나머지

"백인종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쓴 1978년에 결핵은 인류가 치유 가능한 질병이 되었고,

그 당시만 해도 이미 결핵에 대한 신비화는 사라진 때였다. 반면 암에 대한 치료법이

지금처럼 높은 수준에 이르지 않은 때였다. 실제로 손택은 자신이 암투병을 하며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더해진 이러한 의미부여들이 환자의 삶의 질과 질병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질병은 질병일 뿐인데

왜 이런 부가적인 고통까지 추가해서 오히려 환자의 치료의욕을 무너뜨리는지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10년 후에 나온 <에이즈와 그 은유>(1989년)에서 우리는 암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에이즈라는 질병을 목도한다. 손택의 표현에 따르면, 이때 암은

진부한 질병이 되어버렸다. 암에 대한 탈신비화가 사람들의 의식적 노력보다는

의학의 발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우리의 조상이 장티푸스, 콜레라, 천연두,

결핵에 처벌과 승화의 의미부여를 하며 두려워했던 것과 같이

80년대에는 에이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른 정체성(즉 동성애자)을 밝히는 일이 되고

동시에 감염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격리당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2020년 우리는 에이즈를 아주 심각하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 우리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공포와 함께

다른 역병이 돌고 있다. 이것은 처벌의 의미일까?

코로나를 목도하며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도 일고 있다.

이 새로운 역병들은 재앙이고 우리가 받아야 하는 처벌일까?

 

9.11사태가 일어났을 때 손택은 부시정권의 재난대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슬퍼하자. 그러나 바보는 되지 말자!"

<은유로서의 질병>과 <에이즈와 은유>에서 손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질병을 '최후의 심판' 과 같은 재앙을 연상시키는 수사를 남발하면서 공포심을

유발하지는 말자는 각성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마스크사용에도 무신경할 정도로 코로나사태에 무심했던 나에게도

그 여파는 찾아왔다. 교육부는 대학수업을 온라인강의로 대체했다.

갑자기 나는 '인강강사'가 되어 동영상 수업자료를 만들고 있다.

어제는 동영상파일이 업로드가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앞에 파일들이 별탈없이 구글클래스룸에 저장되었는데

어제만 에러가 났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내 파일일까? 구글의 문제일까? 혹은 바이러스? 그럼 동영상을 다시 제작해야 하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에 못가는데, 온라인강의도 바이러스를 겁내야 하니

바이러스는 우리 시대의 공포의 대명사가 될 것 같다.

 

이것을 공포나 은유가 아닌 방식으로 우리는 어떻게 투명하게 맞대응할 수 있을까?

"얼지마! 쫄지마!"의 정신승리법으로는 안 될 것 같고....

손택과 같은 지성이 필요하다. 생각을 멈추지 말 것!

 

질병이 가장 큰 불행이듯이, 질병이 가져오는 가장 큰 불행은 고독이다.

질병에 감염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때,

의사조차도 감히 찾아오는 것을 두려워할 때......

이것은 환자에 대한 사회적 추방이며 파문이다.

(<에이즈와 그 은유> 중에서, <<은유로서의 질병>> 163쪽)

 

 

 

 

 

 

 

 

 

 

 

 

 

 

 

 

댓글 5
  • 2020-03-17 11:10

    온 세계에서 '바이러스와의 전쟁'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이 때 만일 수잔 손택이 살아있다면
    그녀가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에 <에이즈와 은유>를 썼듯이
    < 바이러스와 은유>를 쓰고 싶지 않았을까 싶네요.(우리가 써야 하나?^^ 인문약방팀이 한 번 도전해보삼!ㅋㅋ)
    바로 옆동네 성남에서 확진자가 대거 나오자 또 여지없이 조건반사처럼 터져 나오는 비난과 혐오발언,
    거기다 언제나 오직 한 방향, 기승전 경제라는 논리까지 덧붙여지는 것을 보면서
    이럴 때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지 않고 지성을 발휘하는 건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고 싶네요.
    바이러스를 바이러스로, 질병을 질병으로, 환자를 환자로 보는 그것이 참, 어려운 거군요.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하다기보다는 은유로 개념화하고 있다는 것을 지성으로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 난리통에도 마스크를 그저 마스크로 보면서^^
    묵묵히 인문약방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졸지에 온라인강의를 해야하는 인강강사의 역할마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약속한 월요일 밤 12시를 넘기지않고 이 글을 올린 새털을 응원합니다!

  • 2020-03-17 11:43

    질병 '그 자체'는 어쩌면 없을 거예요.
    은유, 혹은 담론으로서의 질병만 있죠.
    수잔 손택이 문제삼은 것은, 질병에 종종 따라다니는 '도덕적 은유' 겠죠.
    또한 근대생명권력이 전쟁모델에 입각해 구성하는 '질병-전쟁담론'일테구요. (무찔러야 한다. 이겨야 한다. 박멸해야 한다. 추방해야 한다. 지면 죽는다. 누가 변절자냐? 누가 간첩이냐? ......)

    여기까지는 이해 가능.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질병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도덕적 은유가 아닌 다른 은유로? 과연 그것만으로?
    저의 요즘 고민은 이 지점에 있습니다.

    피에쑤: 새털이 의외로 오디오, 비디오 양쪽이 다 가능한 인간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어서, 전 참으로 기쁩니다. 아마 새털도 자기자신의 용법을 잘 몰랐을거야요. ㅋ

  • 2020-03-17 12:07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코로나가 주는 좋은 측면도 있는 거 같아요.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되는 강제적 시간이 주어지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두려워만 하지 말고 더불어 생각해보자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진 않아서 아쉽기도 하지만요.
    새털샘은 새로운 용법도 발견하시고^^
    인간에게 "은유"라는 장치는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후기였습니다.

  • 2020-03-17 13:32

    <코로나19와 이타주의>

    아침에 남편에게 코로나예방수칙에 대해서 꼭 얘기한다.그러고는......
    "최전선에 나가는 너가 뚫리면, 우리 모두 감금이다. 너의 몸은 니꺼가 아니다. 명심해라."

    한달전쯤 아파트에 확진자 나오고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안에 손세정제가 생겼다. 누르기전에 소독 먼저 센스있게 하라고한다.
    며칠전부턴 엘베안에 코로나예방수칙관련 메모가 붙여져있다.
    마스크를 꼭쓰며, 대화를 삼가해달란다고 한다. 타인이 불편을 느끼지않게 해달라는 부탁도 함께있었다.
    눈치없는 남편과 애들이 엘베에서 떠들면, 나는 노심초사한다.......

    요즘 머리속에 떠도는 생각은,
    '타인의 건강을 보호해야한다'라든가
    '공공선을 위한 자발적 행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말들이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마라라는 말보다, 이타주의를 기반에 둔 말들이 내 행동을 더 쉽게 바꾸는것 같다.

    이타주의하면 좋은것, 바람직한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근데 뭔가 불편하다.....
    아놔.....

  • 2020-03-18 11:18

    지속되는 강제적 집콕에 줄지않는 확진자 숫자로 무기력감이 생기는데, 관광객이 줄어 베네치아 운하가 맑아졌다는 뉴스에, 환경도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이 잠식한 일상을 다르게 볼수 있는 책인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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